글 엄정자 평론가

김영건(필명 刀玉)연변대학 졸업, 한국 중앙대학교 영상대학원 수료, 연변TV 문예부 주임, 감독 등 역임.진달래문예상, 단군문학상 등 수십 차 수상. 시집 『사랑은 전개가 없다』, 『빈자리로 남은 이유』, 『아침산이 나에게로 와서 안부를 묻다』, 『물결이 구겨지고 펴지는 이유』, 『류신동 산새는 겨울산에서 운다』 등을 출간, 현재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시가창작위원회 주임,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국방송인협회 회원, 연변대학 예술학원 예술창작심사위원회 위원, 연변장백문화발전추진회 회장, 일본조선족작가협회 고문.
김영건(필명 刀玉)연변대학 졸업, 한국 중앙대학교 영상대학원 수료, 연변TV 문예부 주임, 감독 등 역임.진달래문예상, 단군문학상 등 수십 차 수상. 시집 『사랑은 전개가 없다』, 『빈자리로 남은 이유』, 『아침산이 나에게로 와서 안부를 묻다』, 『물결이 구겨지고 펴지는 이유』, 『류신동 산새는 겨울산에서 운다』 등을 출간, 현재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시가창작위원회 주임,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국방송인협회 회원, 연변대학 예술학원 예술창작심사위원회 위원, 연변장백문화발전추진회 회장, 일본조선족작가협회 고문.

저 울바자 외길로 지나간

발자국 몇 천 만일까

바람은 몇 만 줄기일까

칠십 년 세월 낙엽 내리고

눈이 오고 바람 불고

지금은 소소리 솟은

나무의 숲과 그늘 뿐이네.

아니지 세상 한 절반

살아온 사람들 침묵의 언어

그리고 그제처럼 우짖는

청맑은 새소리 타고

평화롭게 흰 구름 놀고있지

-「숲길」 전문

 

겨울숲에 난 작은 외길, 그 양옆에 나무가 빼곡히 서있는 것이 마치 그 옛날 고향집에 세웠던 ‘울바자’ 같다. 그래서 시인은 그 숲길에서 고향집 울바자 옆으로 뻗어 나간 고향길을 연상하며 우리 민족과 가족이 걸어온 역사를 돌이켜본다. 몇 천만의 ‘발자국’, 몇 만줄기의 ‘바람’, 그것이 곧 우리의 역사이며 모습이다.

조선족이 해방된 땅에서 중화의 한 일원으로 살아온 세월도 어언간 70년, 그동안 “눈이 오고 바람 불고” 쉬운 세월이 아니었지만 작은 나무는 ‘소소리 솟은 나무’가 되었고 ‘숲’이 되었다. 따라서 시적 주인공도 이제는 반백이 된 사나이가 되었다.

여기에서 시인은 “아니지”라는 부정어를 넣어서 격동적인 역사로부터 시인의 인생에로의 반전을 기하였다.

“세상 한 절반/살아온 사람”인 시인은 수많은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는 숲길을 마주하고 그 숲길에 새겨진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흔적을 보게 된다. 바라보면 소소리 솟은 나무 밑동에 새겨진 상흔, 떨어진 낙엽이 눈에 들어올 것이며 거기에서 시인은 인생무상人生無常의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이 몇 십년이라면 자연은 오랜 세월 거기에 남아서 인간의 역사를 관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한한 인생을 가진 인간이 무한한 자연의 힘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무상함, 그래서 오히려 짧은 인생이 의미가 있고 분투할 가치가 있다고 시인은 느낀다. 시인의 가슴속에 감정의 회오리가 쳐 오르며 시인은 그것을 ‘침묵의 언어’로 토로한다.

고요한 ‘숲길’에서 터져 나오는 ‘침묵의 언어’는 우리의 역사를 말하고 있고 시적 주인공의 인생을 말하고 있어서 시인의 격정은 또다시 격앙된다.

시인은 “그제처럼 우짓는/청맑은 새소리 타고/평화롭게 흰구름 놀고있지”라면서 높은 하늘로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그렇게 높아지는 시선을 따라서 시인의 감정도 다시 한번 고조에로 오른다.

여기에서 시인은 사람들이 흔히 쓰는 “구름을 타고 논다’는 표현에서 역발상逆發想을 하여 ‘구름’이 ‘새소리’를 타고 논다고 묘사함으로써 역동적으로 자연의 아름답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눈을 감으면 푸른 하늘에는 흰구름이 흐르고 그 사이로 ‘소소리 솟은 나무’가지 사이에서 뛰노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그런 깊은 고요함을 지닌 숲길의 영상이 우렷이 떠오른다. 모든 것이 살아있고 움직인다.

그렇게 상상해보고 다시 돌아가서 보니 “아니지”는 부정이 아니라 시 흐름에 변화를 주면서 시인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강조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같이 격동적인 정서로부터 아름다우면서도 센티멘털한 분위기로 차분해졌다가 다시 ‘청맑은 새소리’ ‘흰구름’과 함께 하늘 높이 감정이 고조되는 격렬한 감정의 기복이 이루어져 있어서 이 시를 읽고 나면 독자들은 먼 길을 걸어온 듯한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짧은 시에 방대한 민족의 역사를 담았고 시인의 인생을 담았다. 고요한 숲길에 율동치는 감정의 흐름이 맥박 친다.

고요한 “숲길”, 걸어보고 싶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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