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향에 있는 한 지인이 위챗으로 "요런 책을 찾았음다. 선생님 극본 보는 중임다"란 문자와 함께 보고 있는 책뚜껑을 사진 찍어 보내왔다. "울고 웃는 사람들", 나의 연극작품 제목을 책 제목으로 1984년 연변희곡가협회에서 편찬하고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한 연극작품집이다.

연길현문공단(후에 용정시예술단으로 개칭)에서 무대에 올린 장막연극 "울고 웃는 사람들"은 경희극 "두부장사", "시름거리 웃음거리"를 이은 나의 세 번째 연극작품이다. 이 연극은 나의 단편소설 "분식 없는 생활기록"과 "희로애락"을 연극으로 각색한 것이다.

조선족 연극사상 처음으로 2층 무대를 꾸몄다. 아래층은 새 생명이 탄생하는 병원 산실 복도이고 위층은 종양환자들의 입원실이다. 생과 죽음을 한 장소에 펼쳐 보인 이 연극에 대해 전성호 평론가는 이렇게 평했다.

"김훈의 장막극 '울고 웃는 사람들'은 '희비극'이라는 장르의 개념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연변의 연극문학 분야에서 재래로 없었던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 새로운 무대, 새로운 구도, 새로운 인물배치, 새로운 극 구성으로 현시대 청년들의 군상 속에서 하나의 시대적 주제를 도출해낸 비교적 성과적인 작품이라고 인정된다.

이 작품은 그 구성으로부터 볼 때 두개의 작은 극, 즉 인상 환락의 원천인 새 생명 탄생지 '산실' 앞에서 벌어진 이야기와 인상 비애의 귀결인 죽음의 예시처 '종양병동'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가 복선을 이루면서 하나의 주제에 교묘하게 합치되어 정체를 이룬 장막극이다."

이 연극을 창작한 후 연변연극단에서 무대에 올린 "청춘 소야곡", "망각된 인간들"이 뒤를 이었다. 이때가 연변 연극계로 말하면 전성기였다. 조선족들은 가무도 즐겼지만 연극을 더 선호했다. 당시 극단은 극장이 있는 곳이라면 죄다 돌면서 순회공연을 했는데 남녀노소 모두가 관객이었다. 연극배우들은 연극을 통해 인기자랑을 했고 극작가는 그 덕을 빌어 여러 가지 상을 수상했다.

조선족 연극의 전성기에 연변을 길림성의 "연극 요람", 중국소수민족 연극의"선구자"라고 했다. 연극의 황금시절은 이젠 옛말이 되였다. 조선족 연극은 쇠퇴기를 지나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 연극의 명맥을 이어오던 연극배우들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마저 지금 소품무대나 기웃거리고 있다.

자치주 수부에 하나밖에 없던 극장마저 사라졌다. 모범자치주 수부에 주립극장 하나 없다는 건 말도 안된다. 수치라면 큰 수치거리다. 문화도 나라를 세운다는 세월인데. 연극과 함께 울고 웃던 사랑스러운 관객들도 "증발"되여 버렸다. 이런 악순환속에서 연극을 쓰던 극작가들도 필을 놓았다. 이중엔 나도 망라되어 있다.

조선족 연극계의 참담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도서관을 뒤져서 물건이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고물 취급을 받을 연극작품집을, 그것도 나이 세 살 때 출판된 책을 찾아 읽는 80년대생 지인에게 경의가 간다. 지인은 나한테 기대의 말씀도 전했다.

"선생님 극본도 계속 써주십시오. 요즘에는 우리글로 극본을 쓰는 분이 적어서 작품이 없더라구요. 많이 써주십시오,"

이 글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지금은 연극작품을 쓸 환경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또 계속 연극작품을 쓰겠다고 할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해서 답을 주지 못했다. 

내가 받은 연극작품상 중 가장 큰 상이 "중국연극진흥상"이다. 진흥상, 명칭이 참 좋다. 조선족 연극의 진흥을 위해 진흥상을 내걸 때가 언젠가는 있으리라는 기대만은 가져본다. 하긴 막연한 기대이지만. 

출처: 위챗 "김훈 勋之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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