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수영을 하고 귀가하던 길에 공지를 지나는데 한 할머니가 공지에서 뭔가 캐고 있다. 가까이 가 보니 할머니는 쇠투리를 캐고 있었다. 쇠투리는 사전엔 함경도 방언이라고 나와 있다. 쇠투리의 사전 올림말은 씀바귀지만 어린시절부터 그냥 쇠투리라고 해와서 지금도 씀바귀를 쇠투리라고 한다.

쇠투리는 봄철 가장 먼저 맛보는 나물의 하나다. 잔디가 깔린 공지에 쇠투리가 꽤나 있다. 할머니가 이미 캔 쇠투리가 작은 가방에 가득 차 있다. 

"벌써 쇠투리가 먹을 만치 컸네요."

내가 한어로 할머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중국어로 쇠투리를 "苦菜花"라고 한다.

"먹어봤나?" 할머니가 묻는다.

"네. 어릴 때 봄철에 많이 먹어보았습니다."

할머니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면서 반긴다.

"자네 어디 출신인가? 동북 출신이지?"

 "네."

"동북 어느 성?"

"길림성."

"연변이지? 조선족?"

초면인 할머니가 신기하게 잘도 맞추신다.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이니 또 묻는다.

"연변 어느 현?"

"연길시."

"연길시 어느 가두?"

"신흥가."

"한 고향 사람이군. 난 진학가에서 살았지. '아래개방지'"

연길시를 동서로 나누어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서쪽을 "웃개방지"라고 했고 한족들이 많이 사는 동쪽을 "아래개방지"라고 했다. 그 시절을 연길에서 살아본 사람들이여야 "웃개방지", "아래개방지"란 말을 안다. 지금 다른 현, 시에서 거주지를 연길시로 옮긴 가정이 많지만 이 말을 아는 분들이 거의 없다.

고향 분을 만나 반가운 김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할머니가 연교에 와서 사는 건 북경으로 출근하는 딸이 있기 때문이란다. 집은 나의 집이 있는 아파트를 마주보는 아파트에 있단다. 할아버지시면 고향 분을 만난 기분을 더 살려 그냥 부근 식당으로 모시고 가서 술 한 잔 대접했을 것이다.

헤어질 때 할머니가 쇠투리를 줄 테니 집에 가서 올해 첫 나물인 쇠투리로 무침을 해 먹으란다. 무침을 할 줄 모른다고 하니 반갑게 들리는 말이 또 튕겨 나온다.

"아즈마이 보고 해 달래 해!"  

연변에서는 집사람을 남이 칭할 때 "집의 아즈마이"라고 한다. 말 한마디에 또 고향으로 날아간다.

"아즈마이는 딸이 있는 미국에 있습니다." 하니 "이그, 이그" 하면서 혀를 찬다.

"무칠 줄 모르면 그냥 씻어서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게. 그것도 별맛이지."

이 말에 또 고향으로 날아갔다.

"미국에도 쇠투리 있나?"

이 말엔 미국으로 날아간다. 오늘은 시간여행자가 되는 날이다.

"네. 많습니다. 이 세상 어디가도 꼭 있는 것이 쇠투리입니다."

미국의 집 근처 공원에 가면 쇠투리가 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걸 무침을 해서 먹을 생각이 난다고 했더니 딸이 하는 말이 아빠는 지금 벌금 할 얘기를 하고 있단다. 미국 공원에서 나물 캐거나 꽃 한 송이라도 꺾으면 벌금형을 받는 단다.  

"미국인들은 쇠투리를 먹지 않는데 중국 마켓이나 한국 마켓에선 쇠투리와 무슨들레(민들레)를 팝니다."

"그건 자연산이 아니지. 쇠투리는 자연산이 돼야 쌉싸름한게 제 맛이지."

이번엔 어린 시절로 가본다. 봄이면 할머니와 함께 쇠투리 캐러 연길시 서북쪽에 있는 논밭으로 갔다. 연길시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강을 "공원갠(연집하)"이라고 했는데 강변에 있는 논밭 논두렁에 쇠투리가 많았다.

그 시절 쇠투리를 넣어 끓인 죽을 자주 먹었다. 후에 알고 보니 60년대 3년 자연재해 시절이다. 식량이 모자라던 그 시절엔 봄철이 "보릿고개"보다 더 힘들었다고 한다. 봄철의 첫 나물인 쇠투리가 봄철 "보릿고개"를 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쇠투리 얘기가 나온 바 하고 영화 얘기까지 해야겠다. 소학교시절 쇠투리를 제명으로 한 영화 "苦菜花"가 아주 인기였다. 그 시절을 지나온 분들 치고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마치도 조선 영화 "꽃 파는 처녀"처럼.

영화는 항일전쟁시기를 배경으로 일본군과 그 앞잡이들과 맞서 싸운 8명의 여성형상을 부각했는데 그 중에서도 어머니 형상이 더 도드라진다. 비록 쇠투리같이 미미한 존재이지만 나라를 위한 위업에서 영웅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머니 형상을 통해 보여주었다.

오늘은 쇠투리 캐는 할머니를 만나 고향으로, 옛 추억속으로 오락가락한 시간려여자가 되였고 기억속에서 거의 사라져가는 영화마저 떠올렸다. 

감사합니다. 쇠투리 할머니!

출처: 위챗 "김훈 勋之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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