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자강에서 만난 노부부

 

지금부터 꽤 오래전 일이다.

그때 나의 직업은 일본말 가이드, 중국을 주름잡아 다니던 시절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여행사는 사천에 있었는데 그해 눈코 뜰새없이 바빴다. 양자강 삼협 여행이 가장 뜨거운 해였다. 삼협땜 건설을 위해 양자강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일본팀 담당으로서 열심히 일했다. 근데 한 배에 타고 있는 미국팀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동양인 얼굴을 한 인자한 노부부가 있었다. 내가 일본말을 하니 나에게 일본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서 깊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세상에 나와 같은 민족인 미국 교포셨다. 할아버지는 그때 일흔이 지난 것으로 기억한다.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신사분이셨다. 할머니는 일흔이 지났는데도 아주 멋쟁이셨다. 게다가 할머니는 북한 출신으로 이야기를 하시다가 생사도 모르는 형제들 걱정에 끝내 손녀벌이 되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얼마나 많은 한과 서러움이 쌓였을까?
나는 그때 신문에 글도 발표하는 문학 소녀였다면 할아버지는 한자로 옛날방식대로 시를 능수능란하게 쓸 수 있었다. 나와 만난 기쁨으로 한시 한수를 선물했다. 나는 그 시를 지금까지 일기장에다 간직하고 있다. 내용은 넓고 넓은 세상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니 얼마나 기쁜가 하는 것이다. 한시를 좋아하시는 할아버지께 여가시간에 당시 300수 책을 사서 선물로 드렸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다. 미국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카메라를 선물로 보내왔다. 고마울 따름이다. 십여 년이 흘렀지만 두 분이 장수하시길 바랄 뿐이다.

오늘도 쩍하면 전쟁이니 뭐니 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속되고 있는 한반도, 할머니는 또 울고 계실까? 나는 그 카메라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2.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중학교때 동창생인 춘자의 할머니 이야기다. 춘자네 할머니는 근 백세를 사신 장수한 분이셨다. 우리가 중학교 다닐 적에 벌써 아흔이 다 되신 걸로 기억한다.

춘자네 동네는 우리집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하루는 주말에 집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깥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웬일인가 해서 나갔는데 춘자네 할머니가 불편한 몸으로 지팡이를 잡고 우리 마을에 와 계셨다.

따스한 봄날이었는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걸 보니 한참은 걸어오셨던 모양이다.

동네 아줌마들도 꽤 모였다. 옆집 아줌마 말로는 춘자네 할머니가 노망이 나셨 다나 뭐 라나. 춘자네 할머니가 친정집을 찾아내 섰던 것 이였다.

그때의 심정을 어떻다고 말해야 할지. 마음속으로 짠하기도 하고 뭉클한 무엇이 확 올라왔다. 아흔이 다 되신 백발노인이 친정집을 찾아나서다니.

그러나 그분의 친정집은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한국이었다. 물론 부모님이 계실 수도 없지만.

그 당시 중한수교도 안되어서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88올림픽개막식을보면서 얼마나 감동했던 우리 동포들이었던가?

그러니 그 연세에 한국에 가신다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노망이 나셔서 이웃동네를 친정집이라고 오셨다는 자체가 사람 마음을 짠하게 하는 것이다.

춘자네 할머니도 타계하신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방문이 많이 자유로워졌다. 가끔 지팡이 짚고있던 춘자네 할머니의 그 모습이 떠오른다.

남혜란 작가
남혜란 작가

주요 경력:
1992년7월 흑룡강성수화시 조선족 고등학교 졸업
1992년9월~1995년7월 흑룡강대학 일본어학과
1995년8월~1996년6월 북경황가가여행그룹 일본어, 한국어 통역
1996년~2006년10월 쓰촨성도시 해외여행사 일본가이드
그외 서남민족대학, 노다 일본어학원에서 한국어강사, 일본어강사를 겸직했음.
2007년2월~2019년10월 산동성 청도 리공대학교 일본어강사

창작경력:
중학교때부터 <흑룡강신문사><꽃동산><송화강><연변녀성><청년생활>등 신문사, 잡지에 꾸준히 글을 발표,
2010년에 중국 청도 조선족 작가협회 가입.
그후 20여 편의 수필, 수기 등 잡지에 발표..

직업: 기자, 편집, 번역가
창작쟝르: 수필, 소설, 칼럼
현재 동북아신문사 기자겸 편집, 번역가 
이메일: p010849012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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