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해설 : 남영전 시인

차례
18) 중매를 하는 두마리 개
19) 밤이면 침상을 지켜주는 뱀
20) 울릉도 오랑캐를 항복시킨 사자
21) 동해 룡왕의 아들 처용랑
22) 거타지와 꽃으로 변한 룡녀
23) 김유신을 따른 세 녀인

남영전 시인
남영전 시인

 

중매를 하는 두마리 개

 

신라 22대 지철로왕(智哲老王)은
경진년(500)에 즉위하였으나
오래동안 왕후를
맞이하지 못하였다

왕은
음경의 길이가
한자 다섯치라
마땅한 배필을
찾기 어려웠다

왕은
사신을 삼도로 보내여
합당한 사람을
찾으라고 하였다

하루는 사신이
모량군 동로수 아래에 이르니
개 두마리가
북만한 똥덩어리
량끝을 다투어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겨
동네사람들에게 물으니
한 소녀가 알려주었다
“이 마을 상공의 딸이
빨래하다가
숲속에 숨어 눈 것입니다”

그 상공의 집을 찾으니
처녀의 키가
7자 5치나 되였다
사신이 왕에게 아뢰였더니
왕이 기뻐하며
곧 수레를 보내여
그녀를 맞아들여
왕후로 봉하니
그녀가 곧
박씨 연제부인(延帝夫人)이다

[해설]
개는 주몽의 탄생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수호신토템이다.
이번에는 지철로왕의 애로사항을 알고 인분을 물고 다투는 방식으로 인분의 당사자가 적임자라는 것을 알려준다. 개토템의 지혜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밤이면 침상을 지켜주는 뱀

 

신라 48대 경문왕
이름은 응렴(应廉)
18세에 국선이 되였다

약관의 나이가 되자
헌강왕이 그를
궁중으로 불러
연희를 베풀면서 물었다
“공은
화랑이 되여
사방을 유람했는데
무슨 이상한 것이라도
보았는가?”

“신은
아름다운 행동을 하는
세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른 사람의
웃자리에 있을만 한데도
겸손하여
다른 사람의 아래자리에
앉아있는 이가 있으니
그것이 하나요
세력있고 부유한데도
의복을 검소하게
하는 이가 있으니
그것이 둘이요
존귀한 세력을 가졌지만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있으니
그것이 셋입니다”

왕은 응렴이
어진 사람임을 알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짐에게 두 딸이 있으니
그대의 안해로 삼으라.”

왕의 두 공주
맏공주는 용모가 화려하지 못하고
뚤째가 대단히 아름다웠다

얼마 후
왕이 날을 받아
사신을 보내 말하였다
“두 딸의 선택은
공의 뜻에 따르겠다.”
사신이 돌아와
공의 뜻을 아뢰였다
“맏공주를 받들겠다 합니다.”
왕과 왕후는
대단히 기뻐하였다

그 뒤 석달이 지나
왕의 병이 위독해지자
왕은
군신들을 불러 말하였다
“짐은 아들이 없으니
장사지낸 뒤
마땅히 맏딸의 남편
응렴으로 왕위를
이어받도록 하라”

다음날,
왕이 붕어하니
응렴이 유조(遗詔)를 받들어
왕위에 올랐다
왕의 시호는
경문(景文)이라 하였다

경문왕이 즉위한 후
날만 저물면
왕의 침전에는
항상

무수한 뱀들이 모여들었다
궁인들이 두려워서
쫓으려 하니
왕이 말하였다
“과인은 뱀이 없으면
편히 자지 못하니
몰아내지 말라.”
왕이 잠잘 때면
뱀들은
긴 혀를 내밀어
왕의 가슴을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였다

[해설]
 뱀은 박혁거세의 수호신토템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혁거세의 뼈를 사람들이 못다치게 뱀들은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막는다. 할 수 없이 혁거세의 머리와 사지를 각각 묻어 5릉이 되였고 사릉(蛇陵)이라 이름지었다. 뱀은 이렇듯 책임성이 강한 수호신토템이다.
뱀이 경문왕을 수호하는 경우도 그러하다. 뱀들은 밤마다 경문왕의 침전에 모여들어 긴 혀로 경문왕의 가슴을 따뜻하게 덮어주면 경문왕은 안전하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뱀토템의 책임성이 어떠한가를 또 한번 보여주는 장면이다.

 

울릉도 오랑캐를 항복시킨 사자


  
울릉도는
동해바다의 깊은 섬
바람을 잘 타면
이틀 길 거리
섬 둘레는
2만 6천 7백 30보
작은 섬은 아니였다

신라 지철로왕대에
섬의 오랑캐들이
물이 깊고
동떨어진 것만 믿고
조정의 명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놀아
독립왕국이 되였다

하여, 왕은
이찬 박이종더러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하게 하였다
박이종은
고민을 하였다
울릉도는
주위지세가 험하여
군사로 공략하기는
힘든 고장이였다
그는 생각끝에
나무로 사자를 만들었다

박이종이 큰 배에
나무사자를 가득 싣고 가
위협하였다
“너희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자들을 풀어놓겠다”
섬의 오랑캐들도
사자는 사나운
맹수란 걸 알고 있었지만
실물은 본 적이 없었다
배우의 사자를 보니
집채같은 체구에
뻘건 입을
짝짝 벌리는 것이
사람만 보면
한입에 삼킬 것 같았다
섬의 오랑캐들은
놀라서
활을 놓고
순수하게 항복하였다.

[해설]
  중국이나 조선반도는 맹수 사자가 서식하지 않는 지역이다. 하지만 삼국시대에 사자를 구경도 못한 선조들이 용화산에 신앙과 숭배의 장소인 사자사(狮子寺)를 세워놓고 향불이 흥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비상한 현상은 아마도 가락국 김수로왕이 멀리서 온 인도공주 허황옥을 왕후로 맞아들인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시대, 인도의 왕족들은 대개 코끼리, 사자, 범 토템이였다. 사자의 위력이 범보다 한수 우였다. 허황옥의 토템은 사자인 것 같다.
그래서 사자를 보지 못한 수로왕도 사자를 숭배하게 되였고 사자사가 세워지게 되였으며 사자의 형상이 널리 알려진 것 같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자가 선인들의 신앙대상이 될 아무런 리유도 없지 않는가!
김수로와 허황옥은 수하에 아들 10명을 두었는데 맏이 거등공이 수로왕의 왕위를 이었고 둘째, 셋째는 모친 허씨 성을 이어받았고 나머지 일곱은 절에 들어가 신앙생활을 하였다. 조선민족의 허씨는 허황옥으로부터 이어졌기에 허씨 성의 토템은 사자다.

 

동해 룡왕의 아들 처용랑

 

신라 49대 헌강왕 때
왕이
개운포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
물가에서 다리쉼 하는데
홀연히
구름안개가 덮쳐들어
캄캄한 밤이 되였다

이 괴이한 일,
동해 룡의 변괴임을 알고
왕은
유사(有司)에게 명했다
“룡을 위해
이 근처에
절을 하나 짓도록 하여라.”

왕의 명이
내리자마자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다
그리고
동해의 룡이 기뻐서
아들 일곱을 데리고
왕의 수레 앞에 나타나
왕의 덕을 칭송하여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또
아들 하나를 딸려서
왕실을 돕도록 하였으니
이름이 처용이였다

왕은
미모의 처녀를 골라
처용의 안해로 삼게 하고
그가 마음 잡고 머물도록
급간의 벼슬을 내렸다

그런데
처용의 안해는
미모가 너무나 뛰여나
역신(疫神)이 탐을 내여
사람으로 변해
밤이면 남몰래
처용의 집에 들어갔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잠자리를 보니
두사람이 있는 지라
노래를 지어부르고
춤을 추다가
물러갔다

“서라벌 밝은 달에
밤새도록 노닐다가
돌아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로다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가
본래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이 때
역신이 모습을 드러내여
처용 앞에
꿇어앉아 사죄하였다
“제가 공의 안해를 흠모하여
죄를 범했는데도
공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그 미덕에
감복했습니다
이 후로는
공의 얼굴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절대로 그 집에
들어가지 않기로
맹세합니다”

그 후부터 민간에는
처용의 화상(画像)을
문에 붙여
역신을 막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해설]
룡은 조상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토템이다.
해모수가 강림할 때, 오룡거를 끈 룡, 석탈해가 아직 알에서 나오지 않아 바다에 버려져 표류할 때, 그 배를 호위한 룡, 무왕 장의 어머니는 룡과의 관계에서 장을 탄생시켰다. 룡은 장의 아버지친족토템이다.
이 번에 룡토템은 사람으로 화하여 조정의 정사를 돕고 악귀를 막는 수호신이 되여 백성들을 보호하고 있으므로 룡토템수호신의 아름다운 풍경선을 이루고 있다.

 

거타지와 꽃으로 변한 룡녀

 

신라 51대 진성왕 때
왕의 막내아들
아찬 양패가
사명을 받들어
당나라로 가려 할 때
해적들이
진도에 집결하고 있어
활쏘는 군사  50명을 뽑아
공을 따르게 하였다

배가 곡도에 닿았을 때
풍랑이 크게 일어
십여일을 묵게 되였다
공이 점을 치게 하니
점쟁이가 말하였다
“이 섬에는 신지(神池)가 있으니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이에 못에 제물을 차리니
못의 물이
한길 넘게 솟구쳤다

그날 밤 공의 꿈에
어떤 로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사람 하나만
이 섬에 남겨두면
순풍일 것입니다.”
하였다

공은 꿈에서 깨여나
군사들과 상의하였다
“누구를 남게 할가?”
“나무조각 50개에
우리들의 이름을 써서
물에 던져 가라앉는 자의
이름으로 제비를
뽑아야 합니다.”

공이 그 말 대로 했더니
거타지(居陀知)의 이름이
물에 잠겨 뜨지 않았으므로
거타지를 남기고 떠나니
배는 거침없이 잘 갔었다

거타지가
근심에 싸여
홀로 섬에 서있는데
한 로인이
못에서 나타났다
“나는 서해 해신인데
날마다 해 뜰 무렵이면
사미승이
하늘에서 내려와
주문을 외면서
이 못을 세번 돌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떠오르게 되오
그러면 사미승은
우리 자손의 간을
먹어버립니다
이제 우리 부부와
딸 하나 뿐이오
래일 아침이면
또 올 것이니
청컨데
그대가 쏘아 죽여주시오”
“활은 나의 특기이니
명대로 하겠습니다.”
로인이
고마워하고 사라지자
거타지는 숨어서 기다렸다

다음날
동해에 해가 솟아오르자
과연 사미가 나타나
주문을 외우고
늙은 룡의 간을 빼려 하였다
이때, 거타지가
활을 쏘아 명중하니
사미는 늙은 여우로 변해
땅에 떨어져 죽었다

로인이
못에서 나와 기뻐하였다
“그대의 은혜로
우리 식구의 생명을 구하였으니
청컨데, 내 딸을
그대의 안해로 삼으소서.”
“귀한 공주를
저에게 맡긴다면
평생을
버리지 않고 잘 살겠습니다.”

로인이
딸을 꽃송이로 변신시켜
거타지의 품속에 넣어주고
두 룡더러
거타지를 데리고
사신의 배를 뒤쫓게 하였다

당나라 사람들이
두 룡이 신라의 배를 호위하여
들어오는 것을 보고 왕실에 알리니
당나라 황제는
신라의 사신은
비범하다 하여
연회를 베풀어
군신들을 웃자리에 앉히고
금과 비단을 후하게 내렸다

신라로 돌아온 거타지가
품속의 꽃송이를 꺼내니
아름다운 녀인이
웃으면서 나왔다
이리하여
거타지와 룡녀는
한쌍의
아름다운 부부가 되였다

[해설]
    백성들과 점점 더 가까와지는 룡토템, 이제는 백성과의 혼인도 이루어진다.
룡녀가 꽃으로 변하고 꽃이 다시 아름다운 녀인으로 돌아온다. 멋진 토템변신이다.
거타지와 룡녀의 혼인, 사람과 자연신의 더 조화로운 관계를 말하는 대목이다.

 

김유신을 따른 세 녀인
  

김유신은
18세에 검술을 익혀
국선(国仙)이 되였다

그 당시
백석(白石)이라는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으나
몇해동안
화랑도에 속해있었다

김유신은
고구려, 백제를 정복하려고
밤낮 깊이 계획하고 있는데
백석이 그의 계획을 알고
“제가 공과 함께
은밀히 저쪽 형편을
살펴본 뒤에
일을 도모하면
어떻습니까?”하였다
김유신이 기뻐서
백석을 데리고
밤에 출발하였다

그들이 고개 우에서
쉬려고 할 때
두 낭자가
그들을 따라왔다
골화천에 이르렀을 때
또 한 낭자가 나타났다

김유신은
세 낭자와
즐거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낭자들이
맛있는 과실을 주므로
김유신이 마음이 통하여
속사정을 말하니
낭자들이 말하였다.
“공의 말씀을 잘 알았으니
원컨대 공은
백석을 잠간 떼여놓고
숲속으로 들어가면
실정을 말하리다”

하여,
김유신이 그들과 함께
숲속으로 들어가니
세 낭자는 홀연히
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우리들은
내림(奈林, 경주남산)
혈례(穴礼, 금강산)
골화(骨火, 오산)
세 곳의 호국신입니다
지금 적국사람이
공을 유인해 가고 있는데
공은 알지 못하여
따라가므로
우리가 공을 만류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세 낭자는
말을 마치자 사라졌다

김유신은 크게 놀라
세 산신에 두번 절하고
골화관에서 자고나서
백석에게 말하였다
“지금 타국에 가면서
중요한 문서를 잊고 왔으니
같이 집으로 돌아가
가지고 와야 하오”

곧 집으로 돌아와
백석을 묶어놓고 심문하니
“나는 원래 고구려사람”
백석이 실정을 고하였다

김유신은
백석을 처치하고
온갖 음식을 갖추어
세 산신에 제사하니
세 산신은
모습을 드러내여
제사를 받았다

[해설]
    신라의 명장 김유신은 보통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그도 나무잎에 눈이 가리워질 때도 있다. 국선으로 활약하던 김유신이 고구려 간첩 백석의 유인으로 위험한 길을 가고 있을 때, 녀성으로 화한 세 산신이 나타나 김유신을 깨우쳐 화를 면하게 하였다.
세 산신은 자신들은 “내림, 혈례, 골화 세 곳의 호국신”이라 하였다. 이 말은 그 나라 강산은 그곳의 강산신이 지킨다는 뜻으로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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