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해설 남영전 시인

24) 헌강왕의 눈에만 보이는 상심무
25) 거북이 등에 지고 있는 문구
26) 역류하는 강물
27) 벽화속에서 우짖다가 또 뛰여나온 개
맺는말

남영전 시인
남영전 시인

 

 

헌강왕의 눈에만 보이는 상심무

 

 

신라 49대 헌강왕때

왕의 행차만 있으면

종종 신기한 일이 있었다

 

왕이

포석정에 거동하였더니

남산신이 나타나

어전에서 춤을 추었으나

옆의 신하들에게는 보이지 않았고

오직 왕의 눈에만 보였다

 

그래서 왕이 몸소

신이 추는 춤을 추어

그 원형을 보여주었는데

신의 이름이 상심(祥审)이라 하여

그 춤을

어무상심(御舞祥审)이라 하여

세속에 전해졌고

춤의 형상을 조각하여

후세에 전하였기에

춤이름을

또 상심무(象审舞)라 하였다

 

왕이 또

금강령에 행차하였을 때

북악신(北岳神)이 춤을 바쳤으니

그 춤을

옥도금(玉刀钤)이라 하였다

 

왕이 또

동례전에서 연회를 하니

지신(地神)이 나와 춤을 추니

그 춤을

지백급간(地伯级干)이라 하였다

 

《어법집(语法集)》에서는

이렇게 해설을 달았다—

“그 때 신들이 나와

춤 추고 노래 부르되

지리도도파(智理都逃破)

한 것은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이

사태를 미리 알고

모두()

달아나()

도읍이

곧 파()한다는 뜻이다

 

산신과 지신이

나라가 망할 것을 미리 알고

춤과 노래로

깨우쳐주는데도

왕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상서로움이라 하여

탐락이 점점 심해져

나라가 망하였다고 하였다

 

[해설]

태평성세라고 국사를 돌보지 않고 향락을 즐겨 헌강왕이 각 유람지만 돌고 있을 때, 왕이 매 한곳에 도착하면 그곳의 산신이나 지신이 급급히 무녀로 화하여 춤과 노래로 왕을 깨우친다.

하지만 혼탁한 왕은 오히려 자신을 칭송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그의 탐락은 점점 더 심하여지니 한심하지 않은가! 신라의 국운은 이 때부터 기울기 시작하였다.

 

 

 

거북이 등에 지고 있는 문구

 

 

의자왕(义慈王)

백제의 마지막 왕이다

태자 때는 칭찬받는

해동증자(海东曾子) 였으나

왕이 되고는

주색에 빠져

백제를 말아먹는

혼왕(昏王)이였다

 

기미년(659)

오회사(乌会寺)

보지 못한 홍마가 나타나

밤낮 절을 에워싸 돌았고

여우 여러마리가

궁궐까지 들어왔다

 

사비수 언덕에는

물고기가 뛰쳐나와 죽었고

밤에는 홰나무(槐树)

사람이 곡하듯 울었다

 

경신년(660) 1월에는

왕도의 우물이 피빛이 되더니

잇따라 사비수의 물도

피빛으로 변하였다

 

4월에는

청개구리 수만마리가

나무 우에 모여앉아

무슨 긴급회의를 하는듯

의론이 분분하였다

 

6월에는

사슴만한 큰 개가

사비수 서쪽 언덕에서

왕궁을 향해 짖다가

간 곳을 알지 못하니

성안의 개들도 길가에 모여

짖고 울기를

반복하였다

 

또 괴물이

상공에 나타나 웨쳤다

“백제는 망한다”

그리고 곧

땅속으로 사라졌다

 

땅을 파보니

석자 깊이에

거북이 한마리가

등에 글귀를 지고 있었다

“백제는 보름달

신라는 초승달”

 

옳바로 해석한 무당은

죽음을 당했고

거꾸로 아뢰인 신하는

상을 받았다

 

하지만

왕의 웃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제의 기발은

구름속으로 사라졌다

 

[해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간신의 말만 믿고 충신을 배척하여 국정을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졌기에 백제는 위기의 길로 들어섰다.

조상들의 수호신토템인 홍마, 여우, 물고기, 해나무, 우물, 청개구리, , 거북 등이 각기 자신들의 방식으로 의자왕을 깨우치려고 급급히 경종을 울린다. 하지만 혼탁한 의자왕은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바른 말을 해주는 신하를 죽인다. 황당함은 계속 황당함으로 이어지니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

백제의 위기를 알리는 이 신화에서 여우, 홰나무, 청개구리, 거북이는 새로 등장한 수호신토템들이다.

 

 

역류하는 강물

 

 

고구려의 마지막 보장왕때

강물이 역류하는

비상한 일이 나타났다

 

왕이

선비 추남에게

점을 치라 하였더니

추남은

“대왕의 부인이

음양의 도를 역행한 징조”

라고 하였다

 

왕은 크게 놀랐고

왕비는 크게 노하여

“이것은 요망한

여우의 말”이라면서

다른 것을 물어보아

틀리면 중형을 가하게 하였다

 

왕이

쥐 한마리를

함속에 숨겨두고 물었다

“함속에 무슨 물건이 있느냐?

추남은

“이것은 틀림없이 쥐인데

모두 여덞마리입니다”

하였다

 

“말이 틀린다”하여

왕이 추남을 죽이려 하자

추남이 맹세하였다

“내가

죽은 뒤에는

장군이 되여

고구려를 기어코

멸망시킬 것입니다”

하였다

 

추남을 죽이고

쥐의 배를 갈라보니

일곱마리의 새끼가 있는 것을 보고

그의 말이 맞았음을 알았다

그 날 밤

왕의 꿈에

추남이

신라 서현공 부인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신라 진평왕 을묘년(595)

태여난 서현공의 아들

김유신은

실상 추님의 전세(转世)였다

 

김유신은

재질이 뛰여나

18세에 검술을 익혀

화랑의 총지휘자인

국선(国仙)이 되였고

고구려, 백제군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혁혁한 공이 있는 명장이였다

668

고구려는 결국

김유신의 손에서 막을 내리웠다

 

[해설]

고구려 마지막 대인 보장왕시기 조정은 자연법칙을 어겼기에 강물이 역류하는 특수한 방식으로 나라의 심각한 위기를 보장왕에게 알렸다.

보장왕은 자신을 반성하고 착오를 시정하여 옳바르게 나라를 다스려야 했지만 오히려 백제 의자왕과 똑같이 바른 말을 해주는 점성가를 죽인다. 착오에 착오를 거듭하니 결과는 어찌 백제의 멸망과 다를 수 있으랴!

 

 

 

벽화속에서 우짖다가 또 뛰여나

 

 

신라가

저녁노을이 된 시기는

52대 효공왕 때부터다

 

효공왕 임신년(912)

봉성사에는 이상하게

까치둥지

하나가 나타났다

 

53대 선덕왕 을해년(915)

영묘사 행랑에는

까치둥지 34

까마귀둥지 40개가

따닥따닥 붙어있어

사람들이 놀랐다

 

54대 경명왕 무인년(918)에는

사천왕사

벽화속의 개가

웡웡 짖어

3일이나 독경을 멈추었는데

반나절 쯤에

개가 또 짖었다

 

경진년(920) 2월에는

황룡사의 탑그림자가

금모사의 집뜰에

한달동안이나

거꾸로 비쳤다

 

10월에는

사천왕사

오방신의 활줄이

모두 끊어졌고

벽화 속의 개가

뜰안까지 뛰여나왔다가

다시 벽화속으로 들어갔다

 

55대 경애왕 전해년(927) 11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엄습하였는데

경애왕은

비빈들과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기느라

적병이 오는 것조차 몰랐다

왕은 스스로

자결하게 되였고

왕의 아우 김부가

강제로 왕위에 올랐다

 

신라의 국운은

기울대로 기울어져

기원 935 10

56대 경순왕은

백관을 데리고

고려태조 왕건에게

귀순하였다

 

이 때

옛 알천언덕에서는

태조 박혁거세의

긴 한숨소리가 들렸다

 

[해설]

천년 사직을 자랑하는 신라.

49대 헌강왕시대부터 내리막 길에 들어섰다. 그 때부터 왕들의 향락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54대 경영왕시기는 국운이 더 쇠약해졌다. 하여 절의 벽화 속의 개토템이 웡웡 짖어대는 것으로 왕에게 급히 경종을 울렸지만 왕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에 3일 후, 벽화 속의 개토템은 또 짖었다.

탑그림자는 한달이나 뜰안에 거꾸로 비쳤고 사천왕사 오방신(五方神) 활줄은 모두 끊어졌다. 심각한 경종이다.

그래도 왕은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급해난 벽화속의 개토템은 뜰안까지 뛰여나왔다가 다시 벽화속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심각한 경종인가!

55대 경애왕 때, 왕이 비빈들과 향락에 빠져있을 때, 견훤의 습격을 받아 강박으로 자결하는 비극을 초래하였다. 56대 경순왕은 고려태조 왕건에게 귀순하는 길 밖에 없었다.

 

 

맺는 말

 

 

조상들의 토템신화를 두고

“너무 기괴하다.

“너무 허황하다.

이러한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옛조상들의 세계관을 모르고

토템문화를 모르는 무식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런 연고로

고려시기

《삼국사기》의 편찬자들이

조상들의 토템신화를

빼버린 편파가 생긴 것이다

만약 일연이

버린 것을 거두지 않았다면

우리 후세들은

단군 시조가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하마트면 우리는

문화뿌리를 잃은 민족

정신고향이 없는 민족

바람따라 흔들리는 가련한

갈대족속이 되였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하다

그래서

일연이 너무너무 고맙다

일연의 공은

일월성진과 비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연의 덕분으로 알게 된

조상들의 토템신화

조상들의 출처를 알려준다—

하늘은 천신

, , , 바람, , 구름, 우뢰

땅은 지신

, , , , 식물, 동물,

조상들의 토템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다보면

문득, 무릎을 탁 치는

깨달음이 있다

원래

그 신비로운 천지신들의 조화가

조상들을 탄생시켰고

자연은 또 조상들의 수호신이였다

 

그 때로부터

성이 없고

이름이 없던 조상들은

탄생토템으로

()을 정하고

이름을 지으니

조상들의 성씨는

대대손손 이어진다

 

자연과의 혈연관계를

령혼에 새긴 선인들

토템관념으로

자연을 경외하고

조상신을 숭배하여

입산하면

산제 올리고

물에 가면

수신 섬기여

자연법칙에 따라

자연과 공생공존하는

생의 지혜를 익혔다

 

하지만 인간이

기술의 힘만 믿고

자연을 무시하여

자연과의 갈등이

점점 더 격화되는 오늘

옛 삼국의 흥망성쇠는

우리들에게 심각한 교훈을 보여준다

자연법칙을 망각하고

반성하는 정신이 없다면

망하는 길 밖에 없다

삼국의 위기에

토템들의 급급한 경종

얼마나 심각한가!

자다가도 놀라서

벌떡 깨여날 경종이다!

 

보다싶이

조상들의 토템신화는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물음에

가장 근원적인 진실로

인간도 자연의 일원이고

인간도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깨우쳐주는

생명계시록이다

 

생명계시록

날이 갈수록 더 매력적이고

날이 갈수록 더 빛나는

진귀한 문화유산이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편찬한

일연이 고맙고 또 고맙다

 

하지만

일연(1206-1289)이 세상을 떠나

730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조상들의 토템신화는

여전히 구름에 가리워

해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어찌 크나큰

아쉬움과 유감이 아니랴!

 

이제는

일연의 삼국유사

토템학설의 조명을 받아

자신의 진면모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시기가 아니겠는가!

이 또한 후세들의

사명과 책임이 아니겠는가!

 

2018.9--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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