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시 알바생
초몽
교통카드 충전하러 25시에 들렸다
예쁘장한 소녀야, 가녀린 몸매에
꽃 한 송이가 무거움 모르고 피였구나
마스크가 네 얼굴을 가려도
눈매에 흘러 나는 눈빛은
네 고운 마음을 가리우지 못하누나
조금은 수줍어 떨리기도 하누나
살짝 짓는 눈 웃음
그게 살아가는 힘이 아니겠느냐
힘든 세월이라도
근심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모르는 듯
여린 어깨의 무게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모르는 듯
그토록 예쁜 꽃 한 송이를 떠 올렸구나
베개를 적시던 눈물도 촉촉히
눈 굽에 빛나누나
너는 대학가에서 혹시 빵 한 조각
혹은 컵라면 하나로 때우며 공부하겠지
학비도 벌기 힘든 가난에 허덕이는
고생하는 부모님의 피눈물이 애처로워
콜콜 아픈 할머니가 불상해
네가 나약한 몸으로 이렇게 나섰구나
착한 소녀야, 아름다운 꽃봉오리야
이 세월에 가뭄이 들어도
앞길이 험악하고 시련이 많더라도
순진함으로 앞날을 향해 헤쳐 가리니
낙심하지마, 절망하지마
너는 이 강산을 싱싱한 꽃을 피워야 하지 않겠니
내 교통 카드를 충전해다오
잔액이 얼마 남지 않은 인생도 충전해다오
나도 수줍은 인생이 되였다 만은
너의 순진함이 이 나라 견강한 힘이 아니겠니
너의 기특한 정신이 이 나라 희망이 아니겠니
너의 마음도 내 마음에 충전해다오
파이팅, 소녀야. 활짝 웃어다오
2021.4.20 서울에서
꽃사슴
먼 기억이 뻗어가 멈춘 그림 속에
너는
고향 산 기슭의 냇가에 고요히 서있다
푸른 하늘을 닮은 조용한 눈
해볕이 융단을 깔아 놓은 산천이 들어
일렁이는 냇물이 섬광을 반짝이는 눈
나는 몰랐다. 마지막 운명을 맞는
너의 그 무거운 슬픔이 그토록 도고 한지를
혼자 남은 외움이 서러워
그처럼 고아하게 머리를 쳐들고 있는지를
나는 너의 눈에서 나의 동년 시절을 찾는다
철없이 즐거운 동년이 그 눈에 있다
활동 사진처럼 번지는 고향의 기억이
그 눈에 알른거리고 있다
서럽도록 조용히
그리고 그 조용한 눈에 고스란히 숨겨 두었다
내가 걸어온 피나는 발자국들을
그리고 잊음으로 묻어 두었다
내가 격은 파란만장한 고생들을
그래서 나도 꽃 사슴의 눈처럼 조용하다
꽃 사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혼란스럽고 위험으로 가득한 세상을 아름답게
아무 떨림 없이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미 죽었을 그 꽃 사슴의 조용한 눈빛 속에
내가 살아 있다, 슬픔인지 모르는 그 눈빛 속으로
황홀한 저녘노을이 들어온다
꽃 사슴의 눈은 조용하다
나의 눈도 조용하다
말 못할 그리움이 묵묵히
아무 설레임 없이 그저
최후의 무엇을 찾으며 묵묵히...
2021.4.20 서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