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고 영민한 처세철학

어려서부터 “착하다.”, “순하다.”, “얌전하다.”는 칭찬을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딱히 그런 칭찬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많은 상처를 입은 후에 아마 이렇게 느꼈을지 모른다. 

본성이 착한 사람보다는 개성이 분명하고 성질부릴 줄 아는 사람이 훨씬 잘 산다고 말이다. 

타인을 과도하게 허용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학대다. 

온화하고 선량한 것도 좋지만 필요하다면 자신을 위해 싸울 수 있는 무기인 ‘까칠함’도 갖춰야 한다. 

기억하자. 

강해야 할 때는 강하게, 부드러워야 할 때는 부드럽게 변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툭하면 그녀의 옷차림을 지적했던 룸메이트도 그녀가 잠자코 있으니까 계속 지적한 것이지, 만약 반박했더라면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같이 사는 다른 두 룸메이트는 지적하기 좋아하는 그 룸메이트가 뭐라고 하면 코웃음을 치며 “그래도 난 맘에 드는데.”라고 하거나 반 농담식으로 “내가 무슨 옷을 입든 네가 무슨 상관?”이라고 되받아쳤다. 

그래도 웬만해서는 아무도 불쾌해하지 않는다. 

혹 기분 나빴다면 이 역시 솔직하게 말하면 그만이다. 

내가 아무리 선의를 품는다 해도 악의와 마주칠 수 있다. 

진심을 내보여도 의심받을 수 있다.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해도 냉담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조용히, 나답게 살려고 애써도 누군가는 내게 이러저러한 기대와 요구를 들이밀 수 있다. 

솔직하게 나 자신을 보여줘도 상대는 나를 거짓과 기만으로 대할 수 있다. 

이러한 모순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나면, 오히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길이 열린다. 

겉보기에 어수룩해 보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중에 최소 절반은 ‘세상 물정을 아는 척하는 수’를 쓰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잡다한 세상사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단순하다. 

이들은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줄도, 개인의 원칙을 능동적으로 지킬 줄도 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완전하고 영민한 처세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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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옌거, <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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