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회진(한국연구재단학술연구교수/시인)

 

강회진(姜回鎭) 약력:

대한민국 충남 홍성 출생.
시인, 문학박사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 교수.
저서로는 『일요일의 우편배달부』, 『했으나 하지 않은 날들이 좋았다』 등이 있다.

연락처: sprain74@hanmail.net

 

 

*이 글은 「재외 한인문학에 나타난 트랜스내셔널 양상 - 중앙아시아 고려인문학과 재중조선인문학의 시를 중심으로 」, 『한국문학과 예술』 제37집,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21,3. 에 발표된 논문의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1. 트랜스내셔널리즘, 경계 사이 혹은 경계 너머 

  트랜스내셔널리즘(Transnationalism)이란 사람들 사이의 상호 연결성이 높아지고 국가 간 경계의 경제적 사회적 중요성이 줄어들면서 성장한 학문적 연구 의제이자 사회 현상을 의미한다. 19세기 이후 국가 간 경계를 넘는 이주는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근대적인 현상 중 하나가 되었다. 아울러 기존의 국가들이 상정해 놓은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과 영토를 횡단하는 트랜스로컬 주체들 역시 계속 늘고 있는 실정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공간을 떠나 타향으로 이주하는 실향민들, 무국적성과 불안정성을 지닌 채 모국으로부터 추방된 디아스포라들, 자본과 노동을 찾아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주한 트랜스이주자들을 단순히 민족적 로컬리티를 변환하는 주체들로 이해하고 간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경계를 넘으며 사는 트랜스내셔널 이주민들은 새로운 거주국에서 민족 만들기 과정에 직면하거나, 심지어 그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때문에 그들의 정체성과 일상은 민족국가들의 민족 만들기 과정 속에 깊이 뿌리박힌 인종과 종족성과 같은 헤게모니 범주들에 의해 구성되어진다.1) 이때 개인의 정체성은 개인이 스스로에게 국가, 사회적 계급, 하위문화, 민족성 등 특정 집단의 구성원으로 소속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이주자들의 정체성은 초국적 사회적 장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이주자들은 자신이 정착한 국가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이 태어난 모국 혹은 모국이라 일컫는 국가와의 연결성을 지속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므로 두 국가 모두를 포함하는 초국가적 사회 영역 속에서 살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서서히 이주자의 정체성을 트랜스내셔널한 정체성으로 변화시킨다. 따라서 트랜스내셔널한 정체성은 거주 이전 장소의 문화적 특성과 거주국의 문화가 섞인 것으로서 잡종성의 연속성을 형성한다.2) 이때 정체성은 상호 대립적으로 영원히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인식과 잠시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인식의 혼재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즉, 지금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적응하고자 노력하지만, 언제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로 다시 이주할 준비를 갖추려고 한다. 결국 그들은 상상적 구조로서의 국가에 귀속되기 보다는 경험적 실체로서의 로컬에 귀속된 트랜스이주자들인 셈이다.


2. 재중 조선인 시문학의 트랜스내셔널 양상-공존과 화합

  19세기 후반, 조선인들은 중국으로 대거 이주를 시작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의 수탈이 극심해지자 중국, 특히 만주로의 이주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현재 중국의 동북 3성에 밀집되어 거주하고 있는 재중조선인은 중국 정부의 소수 민족 정책에 힘입어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세우고 행정과 사법 등에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조선족어를 자치주 공영어로 사용하고 조선족어로 신문과 잡지를 발간하면서 조선족 특유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재중조선인이란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민족에 대한 칭호이지만 중국 내에서 소수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지이기도 하다. 중국 국민과 조선 민족이라는 이중의 호명은 정체성에서 양가적인 면모를 함축할 수밖에 없다. 이에 재중조선인 문학도 자연 이중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트랜스내셔널 문학은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공간과 지리적 공간의 의미, 그들의 다중정체성, 그리고 그들의 방황과 고뇌를 성찰하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외에서 모국어(한국어나 한국말)나 현지어로 이루어진 교포문학 또는 이민문학, 디아스포라문학은 트랜스내셔널리즘에 속한다고 구분하였다. 즉 이민문학과 디아스포라 문학은 기본적으로 트랜스내셔널리즘에 속하는데, 이민자들이나 국외 거주자들은 국경을 초월해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두 나라의 문화를 모두 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 재중조선인의 경우 우선 문화적 동일시, 즉 정체성 확립은 아주 중요한 과정이고 과제이다. 여기는 나는 어디서 왔으며 나는 누구인가를 문학에서 체현하였다 하여 디아스포라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과 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여 갔으며 조선 국내와는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가 의미가 있다. 정체성의 확립에서 의미 있는 것은 나는 현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근대화 과정과 이주과정을 함께 한 재중조선인에게 있어서 정체성적 질문(본질론적 질문)은 시간이 갈수록 약화되고 현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더 강화되었음이 분명하다. 이는 조국 혹은 민족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하고 현실적 생존을 위해 새로운 도덕적 주체로 질서화해 가야 하는, 즉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야 하는 재중조선인의 삶에 있어 더욱 중요한 질문이었을 것이다.4) 재중조선인은 출발했던 곳의 문화를 완전히 버리지도 못했고, 정착사회(거주국)의 문화로도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혹은 두 문화가 결합하여 변형되거나 자생적인 문화를 새롭게 형성하며 혼재된 접경지에 살아가는 혼종성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 혹은 통합, 동화, 문화변용 및 공존을 할 것인가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주공동체들의 공통된 핵심문제라 할 수 있다. 이주란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찾아 삶의 터전을 옮기는 과정이라 했을 때, 이주민들이 새로운 사회로의 통합과 공존을 위한 삶의 방식은 정착지 사회의 요구이기 이전에 이주민들 스스로의 희망이라 할 수 있다. 정착지와 고국을 넘나드는 트랜스내셔널 활동 역시 정착지 사회에서 그들이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찾고 만드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이주문제는 여기와 저기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의 문제, 즉 적응의 문제인 것이다.5)

  접목의 아픔을 안고/먼 이웃/남의/뿌리에서/모지름을 쓰면서 자랐다.//이곳 토질에 맞게/이곳 비에 맞춤하게/이곳 바람에 어울리게//잎을 돋히고/꽃을 피우고//이제는 접목한 자리에/든든한 테를 둘렀거니//큰바람도 두렵지 않고/한마당 나무들과도 정이 들고/열매도 한 아름 안고...//그러나 허리를 잘리어/옮겨오던 그날의 칼소리//가끔 메아리로 되돌아오면/기억은 아직도 아프다

  -리삼월, 「접목」전문6) 

 

  위 시는 낯선 땅에서 이주민으로서의 고뇌와 아픔의 체험과 갈등 및 공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적 화자는 “접목의 아픔을 안”은 채 시대 상황에 순응의 방식으로 적응하고자 하는 수동적인 모습에서 “튼튼한 테를 둘”으는 방식으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으로 전환한다. 이는 한편 “토질에 맞게/비에 맞춤하게/바람에 어울리”면서 거주국 문화 속에 정착과 적응하고자 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결과 “이곳 비”와 “바람” 즉, 시대 상황이나 외부 세력의 횡포 속에서도 지혜롭게 견뎌 낸 접목 나무는 이제 “큰 바람도 두렵지 않”을 정도로 든든해졌다. 나아가 “한마당 나무들과 정이들”고 “열매도 한 아름”맺을 정도로 자기의 자리(위치)를 잡은 상태이다. 이는 타민족들과의 갈등과 혼란 상태에서 공존과 융합의 상황으로 변화됨을 상징한다. 

  이주 초기 재중조선인 문학은 조선과 중국 ‘사이’에서 마이너리티로 외면당한 이민자집단의 정체성 형성과정에 있어서 국가나 국경, 국토와 분리된 ‘북향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에 ‘소속’된 이후의 시기에는 조국과 모국, 국적과 민족적 정체성의 갈등에서 오는 이중정체성 문제를 중심적으로 다룸으로써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서의 정치적 자각과 이에 따른 민족경계의 분화를 전경화하고 있다. 개혁개방기 이후 재중조선인 문학에서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거주국에서의 문화적응 문제라 할 수 있다. 즉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과 동시에 거주국 문화와의 공존, 융합을 지향한다. 따라서 재중조선인 시문학에 나타나는 고향 회귀의 꿈과 통일에 대한 꿈이 실제로 그들이 한반도로 돌아가야 한다는 바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또한 재중조선인의 역사적 경험과 그들이 기억하는 ‘민족성’ 역시 절대적 실체로서의 민족성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재중조선인 시문학에서 ‘민족성’은 격변기의 현실에 능동적으로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그들은 고향과 통일을 염원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뿌리에서 파생된” “중국의 조선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주 1세대들에게 있어서의 조국과 민족은 동일하게 인식되고 있으나 이주 2세대, 3세대들의 인식은 조상의 나라 한반도는 “고국”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고 자신들이 태어나서 성장한 중국은 조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현재 중국 조선족 2세대, 3세대들에게 있어서 민족은 “조선족”이지만 조국은 태어나서 자란 중국인 것이다.7)

  따라서 살펴본 재중조선인 작가들의 시문학 작품에서는 중국이라는 국가적 정체성과 조선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의 차이를 횡단하면서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때 동화와 비동화라는 양가성을 문학적 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는 거대 국가인 중국의 국민이면서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의 위치 사이에서 길항하면서 ‘공존’과 ‘화합’을 꿈꾸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다음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불행이였을수도/아니, 한때는 행운이였을수도/뿌리에서 파생된 아리랑의 족속/나는 중국의 조선족이다//-중략-//그처럼 어려운 날에도/잊지 않은 민요가 있어라/버리지 않은 말과 글이 있어라//-중략-//조국과 고향의 의미를 더하며/이 땅을 떠나가서 외려 애국이 된다는/난 중국의 조선족이다//-중략-//나는 나의 운명을/싫든좋은 이 땅의/어제와 오늘 래일에 맡겼기에/뿌리와 뿔의 이어짐에 힘입어/이 땅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 

-강효삼,「이 땅-나의 삶」부분8)


  위 시에서는 이산의 경험과 그것이 빚어낸 기억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현실적 상황을 응축한 목소리를 엿볼 수 있다. 시적 주체는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과 중국인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말한다. 이는 1민족 1국가 체제가 개개인의 삶과 기억을 대변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이울러 사회 역사적 격동 속에서 다양한 정체성이 생성되어 왔음을 말해준다.9) 

  현재 재중조선인은 ‘한국인’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닌 중국 국적의 조선인이다. 위의 시에서처럼 조선인(조선족)은 민족적 근원을 한민족의 역사 및 민족적 정서에서 찾으려 하면서도 그들만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특수한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중국이라는 국가 체제 하에서 형성된 또 다른 양상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즉 중국이라는 국가 체제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가능성을 내포한 ‘중국의 조선족’이라는 조선인(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민족은 객관적 요소들인 언어, 지역, 혈연, 문화, 경제 역사 그리고 주관적인 요소인 민족의식을 공통으로 갖는 집단10)이라는 전통적인 민족이론에 비추어 보면, 재중조선인은 우리와 언어적, 혈연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지만 중국이라는 국가 체제에 종속되어 있는 특수한 성격을 가진 집단이다. 즉 재중조선인의 정체성은 중국 공민이라는 국가적 정체성과 조선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이중 정체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조선인은 중국 내의 평등하면서도 구별되는 특수한 문화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과도 혈연적인 유대가 있으면서도 구별되는 특수한 문화공동체11)라고 할 수 있다.

  재중조선인 문학은 중국이라는 국가 체제에 기본적으로 속해 있으면서 조선인의 언어로 되어 있다. 즉 우리말과 글을 표현매체로 한 재중조선인 문학은 중국문학과 분명히 다른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지만 중국문학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동포문학이라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의식은 국가와 민족이 다르다는 차이에서 새롭게 형성된 것이다. 즉 국가적 정체성과 민족적 정체성이 혼재된 양상을 보이므로 어느 한 가지만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 

  아, 이 고장을 떠나서 또 어디로 가랴!/당이 키워 준 이 팔로/당이 안겨 준 이 땅에서/주어진 곡창문을 열어 젖히지 못하고서야/조국의 그 어느 한 치의 땅에 가서/떳떳이 걸어다닐 면목이 있으랴.//벗이여, 내 떳떳하노라,/내 고향 소나무에 칭칭/천오리 만오리 이 몸을 얽매여/이 땅에 뿌리 박고 아지 치기 원하노라!

-김성휘, 「나는 이 고장에 살겠노라」12)


  위 시에서 화자가 “뿌리 박고”살고 있는 고향은 중국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향’은 “고장을 떠나서 또 어디로 가랴”라는 탄식조에서 엿볼 수 있듯이 중국 조선족이 떠나온 곳과 연장선에 놓여 있다. 화자가 정착한 “이 땅”은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선 길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이동로의 한 점에 불과하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그들은 현재 머물고 있는 “이 고장”은 고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음 시에서는 중국이라는 거대 체제에 속하고자 했던 타자에 대한 주체의 동일시가 결국은 오인에 불과했음을 인식하고 있는 화자를 엿볼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단순했던가?/붉은 도마도를 먹어도/래일엔 당장 마음까지 붉어지는줄 알고/밤사이 거리를 <붉은 바다>로 만들었다//-중략-//아, 그때 우리는 어찌하여 <반란>의 기발 들고 마스고 짓부셨던가

  -한춘, 「그때 우리는 어찌하여」13)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벗어나지 않는 한계 속에서 경제, 문화의 발전을 촉진시켜 공동번영을 꾀하자는 것을 중국 공산당의 소수민족 정책의 기본 방침으로 삼았다. 민족의 다양성, 특수성을 인정하는 소수민족 정책의 변화는 조선족들에게 소수민족으로서의 삶의 정서를 표출하는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주체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타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정체성을 구축하고자 했으나 위의 시에서처럼 “붉은 도마도를 먹어도/래일엔 당장 마음까지 붉어지는줄” 알았던 것들이 오인된 환상임을 깨닫게 된다. 이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모색할 수 있는 자각으로 이어진다. 

 

  나는 나입니다/나는 여기저기에서 아무렇게나 뒹구는 이름없는 조약돌도 아니고 뭇사람들이 쳐다보는 하늘가에서 도고한 빛을 뿌리는 그 어느 성좌의 이름있는 별도 아닙니다//나는 나입니다/내가 어찌 그저 한송이 꽃이나 한그루 나무나 또 돌이나 별이겠습니까, 나는 그것들과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것들이 합쳐진 통일체이며 세계이며 우주입니다//나는 나입니다/자꾸만 그저 꽃이나 나무나 돌이나 별이 되라고 하지마십시오 그것들은 나의 머리카락 한 올이나 귀나 코나 눈밖에 또 무엇이겠습니까//나는 나입니다/그리고 당신도 당신이기를 바랍니다 

-석화,「나는 나입니다」14)


  화자는 꽃, 나무, 돌, 별의 개체가 아니라 그것들과 더 많은 것들이 합쳐진 통일체, 세계, 우주가 바로 ‘나’라고 말한다. 즉 꽃, 나무, 돌, 별로 상징되는 하나의 구성원으로 강요되는 체제에서 벗어난 ‘나’라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의식을 깨우쳤음을 의미한다. 시적 자아는 체제에 순응하는 피동적이고 수동적인 한 구성원이 아닌 ‘세계’와 ‘우주’를 구성하는 중심에 서 있는 ‘나’인 것이다. 이는 스스로가 세계의 주체임을 재인식한 것이다. 작가들의 특수한 국가적 정체성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고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적(혹은 문화적)정체성이 전제하는 구성원들 간의 공통분모, 코드의 공유, 원활한 소통 등의 개념도 좀 더 철저하게 분석해보면 역사적 맥락에서 구성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15) 이렇게 봤을 때 “나는 나”이고 “당신도 당신”으로 남기를 바란다는 것은 영원히 동일시될 수 없는 중국이라는 타자 속에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을 모색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국민’에 귀속하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국가’와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 화자에게 트랜스내셔널한 경험 혹은 상태는 고통스럽거나 불완전한 것,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낯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화합과 공존을 찾아가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꽃이나 나무나 돌이나 별이 되라고 하지마십시오” 라고 단호히 말하는 화자의 정체성은 ‘내셔널’한 틀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며 변화할 것임은 자명하다. 

  살펴본바와 같이 재중조선인 시인들은 디아스포라의 삶과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을 타문화와의 ‘공존’과 ‘화합’을 통해 풀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재중조선인 문학이 보여주는 트랜스내셔널리즘의 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

3. 결론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한인들은 거주국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여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때 문화는 이주 전 장소의 문화와 동질성을 띠기도 하지만 이주 후 거주국의 영향을 받아 이질성을 보이기도 한다. 전지구화시대의 문학적 양상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 새로운 사유 양식이 필요하다. “Trans라는 용어는 보통 across(횡단), beyond(超), through(通)이라는 의미를 포괄하는 접두어”로 보고 있으며 트랜스내셔널이라는 용어는 횡단국가적, 초국가적, 통국가적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16)는 점을 고려할 때, 기존의 민족과 국가적 틀만으로는 해독할 수 없는 정치, 사회, 문화, 문학의 혼종적인  현상을 해석하는 데 있어 트랜스내셔널리즘의 방법론은 유용하다고 본다. 

   해외한인문학은 지금까지 많은 학자에 의하여 연구되고 있다. 재중조선인문학 역시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연구는 해외한인문학이 한국문학 내지 민족문학에 귀속되느냐 여부라든가, 이들 문학에 나타나는 민족문학적 성격이나 성취의 정도, 디아스포라 관점 등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쉬움이 있다. 기존의 연구가 민족이라는 범주를 선험적으로 설정하고 재중조선인문학과 삶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면 이제는 반대로 확산의 발상이 필요하다. 주지하다시피 재중조선인들은 민족적인 정체성의 공유라는 틀을 넘어서서 그 정신적 지향 역시 이산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이산의 정신적 지향도는 물론, 아직은 민족적 상상력과 민족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정신과의 길항관계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민족이라는 타자적 개념을 분리해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끊임없이 민족 간 경계를 넘어서는 장소의 삶 속에서 정체성을 상상하고 구축하고자 한다.  

  글로벌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우리는 제 4차 산업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멜팅 팟(Melting Pot)이나 샐러드 볼 사회(Salad Bowl Society)라는 인식으로만 모든 사회와 문화, 그리고 문학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세계 여러 문화권 내에서 한민족의 문화적 다양성은 공통적으로 심화되고 있으며, 더 이상 민족이라는 동질적 혈연의식에 기반한 통합적 정체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그들이 공유하는 역사적 전통과 정체성은 거주국이 가지고 있는 구성요인 및 상황요인에 따라 내용과 강조점이 다르게 나타나게 되며 다면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재중조선인 작가들의 시문학 작품은 중국이라는 국가적 정체성과 조선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의 차이를 횡단하면서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동화와 비동화라는   양가성을 문학적 전략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민’에 귀속하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국가와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즉 거대 국가인 중국의 국민이면서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의 위치 사이에서 길항하면서 ‘공존’과 ‘화합’을 꿈꾸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이용일, 「트랜스내셔널 전환과 새로운 역사적 이민연구」, 『서양사론』 제 103호, 참조.
2) 이소희 엮음, 『다문화사회, 이주와 트랜스내셔널리즘』, 보고사, 2012, 21쪽 참조.
3) 김성곤,『하이브리드시대의 문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9,27-29쪽 참조. 
4) 장영미, 「재중조선인 시문학 연구의 디아스포라적 접근」, 『통일인문학』, 건국대학교인문학연구원, 2013, 320쪽.
5) 이용일, 앞의 논문, 337쪽 참조. 
6)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편찬, 『조중대역판-중국조선족 명시』, 민족출판사, 2004, 74-75쪽.
7) 석화, 「중국 조선족 詩文學의 한 경향2」, 『동북아신문(http://www.dbanews.com)』, 2018,11,25.
8) 『흑룡강신문』,1994년 10월 1일자.(김경훈, 『중국 조선족 시문학 연구』,한국학술정보, 2006 , 201-202쪽)
9) 장은영, 「‘고향’의 기억과 우리에 대한 질문」, 『중국조선족디아스포라문학』, 국학자료원, 290쪽.
10) 고부응, 『초민족 시대의 민족 정체성』, 문학과지성사, 2002, 131쪽.
11) 윤인진, 『코리안 디아스포라』,고려대출판부, 2004, 81-83쪽 참조.
12) 임효원 외, 『연변시집1950-1962』,연변인민출판사, 1959.
13) 김경석, 『봄바람』,연변인민출판사, 1981.
14) 석화,『연변』,연변인민출판사, 2006.
15) 박선주, 「트랜스내셔널 문학-(국민)문학의 보편문법에 대한 문제제기」,『영미문학연구』28권, 2010, 181쪽.
16) 윤해동,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의 가능성-한국근대사를 중심으로」, 『역사학보』vol,no 200, 역사학회, 2008, 3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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