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포스터
영화 미나리 포스터

 

미나리와 인간 윤여정

 

미나리는 식용으로 땅과 물의 경계에 서식하면서 양쪽의 영양분을 동시에 흡수한다.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면서 다량으로 제배한다. 옛날에는 지천으로 깔려 있어 미나리 밭이나 미나리 논으로 불리지 않고 미나리꽝이라고 했다. 미나리는 줄기 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져 옆으로 퍼지면서 자란다. 여름철에 주로 백색 꽃이 피며 줄기 끝에 산형繖形 꽃차례를 이룬다. 꽃차례는 잎과 마주나 작은 꽃자루로 갈라지고 각각 10~25개의 꽃이 핀다. 가을에는 줄기 마디에서 뿌리가 내려 번식한다. 미나리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언제 어디든지 상관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간다. 독특한 향과 맛은 입맛을 돋워 주고 각종 독소를 배출하는 해독 작용이 뛰어나다고 방송을 타기도 했다.

요즘 영화 ‘미나리’가 화두다. 2021년 4월 25일 (현지기준) 미국 캘리포니아 주 LA 유니언 스테이션Union Station과 LA 돌비극장Dolby Theatre(코로나19로 인해 두 군데서 열림)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상)에서 우리나라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자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왔다. 한국 영화계 102년 역사상 최초다.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한인 이민 가정 이야기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1세대 한국계 미국인의 고난을 현실적이고 따뜻하게 만든 가족 드라마다. 담담하게 연출하였다는 점으로 호평을 받았다.

남편 제이콥과 아내 모니카 부부는 아칸소 주의 농장이 딸린 트레일러 집으로 딸 앤과 심장병이 있는 아들 데이빗을 데리고 이사를 한다. 제이콥이 마련한 바퀴 달린 트레일러 집에 오르는 모니카는 남편이 내미는 손을 잡지 않는다. 클로즈업된 모니카의 불안한 시선은 오랜 불화로 망가진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린 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고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 씨를 담아 도착한다. 손녀 앤과 장난꾸러기 손자 데이빗은 여느 그랜드머더Grandmother같지 않은 할머니가 못마땅하다. 데이빗은 심장이 나빠 달리거나 뛰면 안 된다. 거기다가 이불에 지도를 그리는 '띵똥 브로큰(거시기 고장)'이다. 함께 하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한 가족의 특별한 여정이 영화 ‘미나리’다.

불화와 불안의 심리적 요인으로 망가진 가족들은 교회를 찾는다. 모니카는 아들 데이빗에게 천국을 보는 꿈을 꾸라고 말한다. 할머니 순자는 발을 다치고도 울지 않는 손자 데이빗에게 '스트롱 보이'라고 칭찬해 준다. 가족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신뢰는 때로 큰 힘을 발휘한다.

미나리 밭에서 할머니 순자와 함께 물을 길어 온 손자 데이빗은 심장이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었다. 할머니는 "원더풀 원더풀 미나리 미나리" 손자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 순자는 뇌졸중으로 입원하게 된다. 손자의 병을 모두 가져간 것 같은 장면은 구원의 주체가 신이 아닌 가족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 제목으로 사용한 '미나리'는 가족 사랑을 뜻한다. 할머니 순자는 미나리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냇가에 심는다. 1년이 지나자 다 자란 미나리는 물과 땅을 정화해 준다. 무성해진 미나리만큼 가족의 사랑도 무성해진다. 할머니 순자의 지혜와 사랑을 암시하는 미나리는 특별하다.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미나리라는 말은 관객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줄 뿐만 아니라 비좁은 공간을 정밀하게 비춰낸다.

영화에는 한국적인 오브제Objet가 다수 출현한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여러 식품은 물론 데이빗을 위해 달여 줄 약재까지 있다. 할머니 순자는 아이들에게 화투를 알려주며 '지랄' '염병'이라며 구수한 욕을 마구 뱉어낸다. 한약, 고스톱, 회초리 등은 가족 중심인 한국적인 가치관과 서구적 가치관의 착종錯綜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거기에다 하늘이 만드는 번개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불의 이미지와 우물 또는 오줌은 물의 이미지가 되어 교차한다. 물 이미지는 땅과 함께 생명을 키우는 힘으로 그것을 소멸시키려는 불과 맞선다. 영화 ‘미나리’는 온 몸을 던져 가족을 치유하며 소멸해 가는 희생에 힘입어 희망이라는 뿌리를 내린다.

영화 ‘미나리’로 연기 인생 정점을 맞이한 배우 윤여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인물이 아니다. 그녀의 스크린 데뷔작은 50년 전인 1971년 김기영 감독이 연출해 화제를 모은바 있는 '화녀'다. '화녀'는 시골에서 상경해 부잣집에 취직한 가정부 명자(윤여정)가 주인집 남자의 아이를 낙태하면서 벌어지는 파격과 광기의 미스터리 드라마다. 화녀로 윤여정은 제10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상, 제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4회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Sitges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47년생인 그녀가 여기까지 오기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많다. 윤여정은 한양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하던 1966년 연극배우로 처음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19세 어린 나이에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시험에 응시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도전한 결과였다고 한다. 그녀의 첫 번째 출연작은 1967년 TBC ‘미스터 곰’이다. 그 후 수많은 작품을 거친 그녀는 영화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제93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을 비롯하여 각종 시상식에서 사십여 개의 연기상을 끌어왔다. 한국 배우로 유일무이한 배우의 클래스를 입증하는 동시에 세계적 유명세를 얻었다.

윤여정은 1974년 미국행을 선택하면서 공백기가 있었다. 낯선 이국땅에서 결혼 후 13년 만에 이혼을 했다. 2009년 MBC ‘무르팍 도사’에서 “결혼은 장렬하게 끝이 났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브라운관에 복귀하며 생계형 여배우로 살았다. “쌀독에 쌀이 있던 때보다 떨어졌던 때가 더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한다.

생활에 지친 윤여정은 먹고 살기 위해 연기를 한 것이다. 전원일기에서 단역을 맡은 당시 일화가 있다, 밥을 먹는 장면에서 자신보다 5년 후배인 김수미에게 밥을 끼적끼적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작은 역할이었지만 새참을 먹을 때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먹고, 발음 하나도 틀리지 않으려고 밤새 연습을 한 후 촬영에 임했다는 그녀의 말이다.

높은 노출로 다른 배우들이 꺼렸던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을 선택한 이유도 “당시 집수리를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나 역시 꺼려졌지만 돈이 너무 급해 결국 수락했다. 배우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잘한다. 고 말하기도 했다. 솔직하고 진정성 넘치는 회고는 배우 윤여정 어록의 시작이다.

나이 희수喜壽(77세)를 바라보는 인간 윤여정, 그녀의 노력은 끝이 없다. 영화는 물론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끊임없이 배우고 스스로를 담금질을 한다. 윤여정은 대한민국 여배우들의 맏언니이자, 상징이 되었다. 그녀는 따뜻한 햇볕이 내리 쬐는 비옥한 토지에서 자란 화초와는 거리가 먼 여자다. 지금까지의 연기 인생을 보면 척박하고 불리한 환경에서도 뿌리 내리는 미나리처럼 자신만의 튼튼한 성을 쌓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에 기뻐하는 이유다. 노력하면 언젠가는 통한다. 윤여정의 성공기야 말로 미나리의 근성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때 배우들의 삶은 열악했다. 출연료도 ​몇몇 스타들을 제외하면 변변치 못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또한 영화 품질 면에서도 할리우드, 일본, 홍콩 영화에 미치지 못했다. 우리조차 우리 영화를 부끄럽게 여긴 것이다. 그러던 것이 2010년대부터 완전히 뒤집혔다. 힘든 시기를 견디며 살아남은 배우들이 재평가를 받고 우리의 영화가 세계무대에 자연스럽게 소개되면서 세계인들이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베어내도 베어내도 자라나는 미나리처럼, 어디서든 뿌리내리고 억세게 자라야 한다. 살아남은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인간사 새옹지마인 윤여정이 처럼…

 

윤여정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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