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철(경제학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 교육과학부 자문관)
이남철(경제학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 교육과학부 자문관)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맨발 걷기를 유행처럼 하고 있다. 평지는 물론 험악한 산에서도 맨발로 걷는다. 그들은 대지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낀다고 한다.

걷기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많은 과학적 연구 결과로 증명되었다. 다만 맨발로 걷기가 우리 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확실한 연구 증거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사람마다 발 모양과 건강상태가 다양해 섣불리 맨발로 걷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다. 특히 고령층은 발바닥 지방층이 얇아진 상태여서 충격을 가하면 족저신경(plantar nerve)이 눌리면서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맨발로 걸으면 처음에는 발이 아프지만 그날 저녁에 숙면을 취하게 되고 아침이 되면 피로감이 싹없어진다고 한다.

필자는 맨발운동 효과뿐만이 아니라 맨발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배우 줄리아 로버츠, 가수 이은미, 마라토너 아베베이다. 2016년 5월12일 줄리아 로버츠는 칸 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에서 긴 치마 사이로 맨발이 노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국 가수 이윤미는 “무대 위에서 가장 나답고 싶어 맨발’로 무대에 선다”고 했다.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마라톤 선수! 그는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2시간12분11초로 세계기록을 세우며 올림픽 마라톤 역사상 최초로 2연패를 달성했다. 맨발로 풀코스를 달린 아베베를 두고 “워낙 가난해서 신발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아베베는 가난해서 맨발로 달린 것이 아니었다. 부상 선수의 대체요원으로 뒤늦게 대표 팀에 합류했기 때문에 그에게 맞는 신발이 없었다. 1969년 3월 아베베는 차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궁, 탁구, 눈썰매 경기에 도전했다. 결국 1970년 노르웨이 25km 휠체어 눈썰매 크로스컨트리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베베는 장애인올림픽의 전신격인 스토크 맨드빌 휠체어게임에 양궁과 탁구 선수로 참가하기도 했다. 아베베는 다시 한 번 교통사고를 당하며 1973년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아베베가 기억되는 이유는 그가 단지 뛰어난 선수여서가 아니다. 끝까지 도전하는 스포츠 정신이 아베베의 인생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낯선 이국땅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눈물 흘리던 소녀, 세계적인 무용수 된 강수진의 발이 생각난다. 언론에 보도된 그녀의 뭉개지거나 갈라진 발톱, 발가락마다 옹이처럼 튀어나온 뼈, 버섯 모양으로 퍼진 엄지발가락. 기괴하게 일그러진 그 발은 정말 못생겼다. 피나는 훈련을 하면서 발에 땀이 차고 물집이 잡히고, 자주 발톱이 빠지고 살이 짓무르면서 피가 났다.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 때문에 고름이 흐르기 일쑤였다. 토슈즈를 벗을 때에는 피와 고름이 살과 슈즈에 한데 엉겨 붙어 생살을 떼는 아픔을 느꼈다고 한다. 얼마나 고통이 컸으면 발가락 사이에 쇠고기를 끼워 고통을 줄이려 했을까.

어느 원로 시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수진 발이다”라 칭송했다. 울퉁불퉁하고 상처투성이인 그녀의 발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이에게 주어진 훈장 같다. 필자는 세종시에 근무할 때 계족산에 몇 차례 가보았다. 맨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로 소문이 나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걷는 모습을 보았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 453-1에 위치한 계족산 숲속 황톳길은 해발 200M~300M에서 펼쳐지는 14.5km의 짜릿한 황톳길이다. 연 100만 명이 찾는다고 한다. 이곳은 2010년 유엔환경어린이회의에 참석한 100개국 500여명의 외국 어린이들과 세이셸공화국(아프리카 도서국, 인구 8만 7천명의 소국) 미셸 대통령이 맨발로 걷고 극찬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 신체의 한 부분인 발은 26개의 뼈, 32개의 근육과 힘줄, 107개의 인대가 얽혀 있다. 발은 전신에 비해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신체 전체를 지탱하는 ‘몸의 뿌리’이기도 하다. 심장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심장에서 받은 혈액을 다시 올려 보내는 ‘또 하나의 심장’ 역할을 한다. 발이 혈액순환의 원동력이 돼 주기 때문에 ‘제2의 심장’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두한족열(頭寒足熱)이라고 해서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는 것이 현대의학 측면에서 보는 건강에 대한 견해이다. 발 지압을 통해 발을 따뜻하게 해주면 체내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산소와 영양분으로 가득 찬 깨끗한 혈액을 분비, 그 때 더러워진 노폐물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디톡스 기능을 하는 것이다. 사람 발은 몸무게의 120% 하중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의 고통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은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죽기 살기로 걷는다. 이뿐인가! 건강을 위해서 마라톤을 하고 험악한 산을 마다하지 않고 사정없이 걷는다. 이런 발의 고생을 눈 꼼만치도 생각하지 않고 본인의 건강을 위해 혹사를 시키고 있다. 이런 고생에 얼굴, 손, 귀와 비교하면 사람들의 배려는 제일 미미하다. 남자들은 머리 손질을 수시로 이발소에서 하고 염색도 한다. 여자들은 파마도 하고 다양한 스타일로 멋을 한껏 부린다. 얼굴은 어떤가! 하루에 몇 번씩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마사지도 하고, 이것도 모자라 성형수술과 주름제거도 한다. 손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어떠한가? 네일아트샵에 가서 손톱 관리와 손 마사지를 하고 화장품으로 분장한다. 귀는 어떠한가! 세수할 때 비비고 닦고 고가의 귀금속을 처렁처렁 달고 다니면서 귀의 존재감을 나타낸다. 요즈음 시내를 거닐다보면 네일아트샵을 많이 볼 수 있다. 잠깐 밖에서 들여다보면 많은 여성들이 손을 내밀고 아름답게 가꾸고 있다. 발에도 귀금속 발목거리로 치장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성에 비추어 다른 어떤 신체부위에 좀 부족한 대접을 받고 있다.

필자도 동남아시아 출장 중 발 마사지를 받아본 경험이 몇 차례 있다 기분까지 상쾌해지고 장기간 여행으로 인한 피로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저녁에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혈액순환이 순조롭게 되어서일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몸이 아프거나 기력이 떨어졌을 때, 발 마사지만 잘 해도 증상을 완화시키고 기운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평상시 신발을 싣고 걸을 때보다 맨발로 걸을 때 평균 온도가 1도 상승한다고 한다. 체온이 올라가면 면역세포가 활성화되고, 스트레스가 감소하며 질병에 강한 대응을 한다. 여름철 발은 땀이 나 고린내가 풍긴다고 멸시를 받는다. 하루 종일 감옥 같은 답답한 신발 속에서 무겁게 짓밟히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 발은 우리 신체 부위 중 참을성과 배려심이 제일 높은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우리 신체 중에 제일 예민해서 간지러움을 참기가 어렵다. 이런 발이 평생 걷는 거리는 지구 세 바퀴 반 정도라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필자는 발로인한 큰 고통을 몇 차례 받은 경험이 있다. 1970년 대 중반 엄지발톱이 옆 살을 비집고 들어가 생 발톱을 2번이나 발취했다.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발인데, 발톱에 문제가 생기니 기본적인 활동인 서기나 걷기가 불편함을 크게 느꼈다. 물론 통증도 컸다. 자주 마신 술 때문에 몇 년 전에는 요산 수치가 높아져 엄지 발등이 부어올라 일생생활 및 운동 등을 하는데 불편해서 병원을 찾았다.

필자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여름철에는 집에서 맨발로 돌아다녔다. 고무신에 땀이 차고 활동하기에 불편해서였다. 물론 친구 중에 신발을 살 돈이 부족해서 맨발로 다닌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1960년까지 우리나라는 절대인구가 계속 증가하였으며 전체인구 중 농촌인구 구성비가 82.8%까지 이르렀다. 1인당 국민소득은 방글라데시(東파키스탄)·잠비아·필리핀보다 낮은 80달러였다. 이런 경제 상황에서 고무신을 살 돈이 문제인 가정들이 제법 있었다. 필자의 발은 275cm 정도 길이로 돌아가신 아버지 발을 빼닮았다. 아버지는 이제 만날 수 없지만 필자 신체의 일부로 함께하고 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고 생전에 어린 막내아들에게 자주 이야기 한 아버지가 그립다. 발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20대 초반인 1920년 경 고향 정읍에서 서울까지 집신을 신고 공부하고 싶은 곳을 찾기 위해 걸었던 신작로길 600리를 생각해보곤 한다. 아버지 복식(服飾) 보다 발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무거운 육체를 운반하고 다니는 소중한 동반자인데, 그동안 너무도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강수진, 아베베의 영광된 발을 생각하면서 지금부터라도 ‘몸의 뿌리’인 발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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