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미뤄졌던 '송화강'잡지 2019년도 "송화강-수필문학상" , 2019-2020년도 '송화강-상상시문학상' , 2019-2020년도"송화강-해외문학상" 시상식이 지난 5월 15일 할빈에서 진행된 가운데, 백성일 시인의 '바람이었다' 외 9수가 2019년 중국 할빈 송화강 문학지 해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편집자> 

백성일 시인

 

바람이었다

 

하늘과 땅은
흰 구름 속으로 숨어들고
함박눈이 내린다.
마음은 소년이 되어

몸으로 세상을 쓸고 다니며
흘린 낙엽에 생각이 멈추고
쓸고 다니는 바람 이었다

단풍이 낙엽 되고
마음은 세월을 먹어버리고
푸른 잎의 시절 찾아 헤맨다.

내가 낙엽인줄 나만 모른 채
함박눈은 소년의 얼굴을 적시며
이리저리 어제를
쓸고 다니는 바람이었다

 

시인

 

이상(理想)의
꿈을 먹고 취하여
사방 구석 헤매고
삶이 마음 누르니
허우적거리는
육신을 재촉한다

외면 할 수 없는 갈림길
두마음 가슴에 안고
바삐 뛰어 가지만
시계의 톱니는
걸음 앞질러가고
심장의 고통 참으며

그래도,
이상의 꿈을
찾아 헤맬 것이다

 

바람의 실체

 

강 뚝 숨은 곳에서도
한그루 나무가 싹틔우고
푸름을 자랑하며 단풍 되어
살아 있음을 알리는데,
허공중의 허공
실체도 보이지 않고
눈으로 귀로 손으로도
확인할 수 없으며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나는 너를 모르고
너는 나를 잘 알고
초여름 서늘한 어느 날
상쾌함이 가슴속까지
적시는 너의 기운을 느끼며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동행인 것을
온다간다 말 한마디 없이
행하는 버릇은 여전하지만
이미 내 가슴속 깊은 곳까지
흔적을 남기고,
허공중의 허공인줄 알았는데
너의 실체가
단풍 되어 살아있음을 알았다


허상(虛想)

 

해와 달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이
내가 사는 별의 세상을 만들었다
별들의 신은
함께 하는 것이 아니고
짧은 시간 동안만
힘을 빌려주는 것이며,
가뭄의 지친 식물에 물주면서
나는 작은 별이 되었다
서녘 하늘 노을에 물든
단풍잎은 낙엽이 되고
시계의 톱니바퀴 속에
작은 톱니가 되어
세월을 잡아 놓을 줄 알았는데,
태양이 지고 밤이 되면
달빛이 밝아지듯
작은 별의
멈춤 없는 심장 박동소리
한낮 달빛처럼
허무를 허공에 날려 보내면서
심장의 뿌리는 끝내 찾지 못하고
모든 것 들이 허상(虛想)이라면,
그래도
나는 작은 별이 되었다

 

연꽃 향기

 

뭉글 뭉글한 구름이 솜사탕 되어
발자국 소리 죽이고
사뿐히 파란 가슴위에 내러 앉는다
기다림에 지친 만남은
눈물이 구슬 되어 가슴을 더듬고
두 몸이 하나 되어
황홀한 정사를 이루고
흙탕물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청정한 몸과 마음
그대의 향기가
세상을 정화시키고
이제,
잊을 수 없으며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해도
푸른 마음은
그대를 쓸어안고 죽어갈 것이다


그리운 사람

 

심장을 찌르는 큐피트
화살의 아픔을 모른 채
도도함을 지키기 위하여
온몸을 창으로 무장한
절박함이 애잔하다
오월의 하늘을 질투한 먹구름이
하늘을 더듬더니 힘은 잠간이고
그리움 되어 떨어지며
얼굴을 적시는 희열을 안고
활짝 핀 봄 속에서
장미를 보고
장미라 부르지 못하고
그냥 장미라고 부른다.

아!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붉은 장미의 향기여


꿈꾸는 노총각

 

강변 버들강아지 피리소리에
아지랑이 춤추고
산과 들도
부스스 기지개 펴는데
고집 센 함박눈은
부끄러움도 잊어버리고
목련 가지가지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건넛마을 노총각 칠복이
화사한 얼굴에 반하여
방망이질 치는 가슴 쓸어안고
목련꽃 한 송이
두 손에 쥐어 들고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이라
속으로만 불러본다

 

경험이란 것은

 

구름에 가린 아물거리는 저 먼 곳
산 넘어 나는 가보았다
사람 사는 것은 별반 다른 것도 없지만
초가삼간 집에 살면서 행복이 가득한 곳도 있고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살면서
근심걱정과 슬픔을 안고 사는 곳도 있더라,
사과나무에 배가 열리고 감나무에 대추 달리고
토마토줄기에 수박이 주렁주렁 자라고 있으며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있다는 것은
오래 살다가 보니 세월의 경험인 것들이다

부모는 자식이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해도
죽을 때까지 가르치고 간다는 것이다

초스피드 시대에 먼 곳까지
성능 좋은 카메라를 드론에 달고
그곳 세상사 보고 오면 되는 것을
무엇이 그리 근심걱정을 하나 싶지만
이것 또한 경험인 것이라

반백년 동안 한 이불 덮고
사는 사람도 외면 할 때가 있는데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고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고

대봉감나무 홍시나 따야겠다.
까치 입질한 홍시 맛도 모르면서

 

포박을 풀어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는데
잔잔하게 가슴 울렁이며
내가 날 찾지 못하고
불안 초조 분노의 감정이
대문 옆 소나무도 가볍게 팔 흔들고
근심어린 얼굴로 무어라 말하는데
붉게 불붙은 영산홍도 아름답지 않고
터질 것 같은 앵두를
보고도 감정이 없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는데
회천의 물결이
잔잔한 파도로 마음을 휘젓고
짧은 추억이 포박되어
생각을 멈추게 한다.
검은 하늘 달님도
반쪽은 날아 가버리고
구름붕대로 감아도
상처가 너들 너들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는데
그대여!
저기 저 달님을 보고
추억을 감은 포박을 풀어라

 

동행

 

숲이 푸르면
바다의 고기 떼도 그리워하며
마음이 푸르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리고,

마음과 마음이
하나 되어 고속도로를 달리면
일렁이는 호수의 파장도
요동치는 바람도 잠재우고
클로버 꽃밭 나비가 너풀너풀

만남을 위하여
헤어짐을 생각하고
추억을 그리워하기 위하여
미리 꽃밭을 만들며

맑은 하늘
솜털 구름이
포근히 산을 쓸어안으니
두마음도,


할매 한태 물어보고

 

중국 길림시 어느 작은 주막집 그를 만났다
오십대 후반의 건장한 남자 통성명도하지 않고
뜬금없이 고향부터 묻는다.
“경상도 대구라에”
가는 말이 있으면 오는 말이 있듯이
“나도 경상도라에”
수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같은 동네 사람을 만났으니
경상도 어디인지 물으니 뜸들이고 나도 침묵 한다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할매 한태 물어보고 할매 한태 물어보고”
구름 잡듯이 할매는 기어들어가는 죄인처럼
사년 전에 하늘나라로 이사갔다한다
약속한 것처럼 술잔은 바쁘고 슬픔에 지친
부모 잃은 소년처럼 토해낸다
“내가 바보다 내가 바보다 스마트폰만
할매 한태 사주었다면 오늘 같은 날 물어보면 되는데”
눈가에는 이슬이 맺히고 내손을 덥석 잡으며
“그러면 내 고향도 경상도 대구인기라”
수정 같은 보석이 술잔을 일렁이고 나도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그래, 니 고향도 경상도 대구인기라”
우리는 죄 없는 흰 술만 죽이고 정신은 몽롱하고, 그는
“대구가 어디라에”
“어디기는 경상도에 있는 기라”

< 만남의 인연 >
중국 문학기행 중에 길림시 탁구협회 회장님을 생각 하면서 쓰다.

 

약력
백성일(1947년생)
시전문지 심상 신인상등단
시집: < 멈추고 싶은 시간 > < 바람이었다 >
수상: 작가와문학상. 백두산문학상.
중국도라지해외문학상. 경기문창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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