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미뤄졌던 '송화강'잡지 2019년도 "송화강-수필문학상" , 2019-2020년도 '송화강-상상시문학상' , 2019-2020년도"송화강-해외문학상" 시상식이 지난 5월 15일 할빈에서 진행된 가운데 고안나 시인의 '포구에서' 외 9수가 2020 중국 할빈 송화강 문학지 해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편집자>

포구에서

 
묶인 배와 묶이지 않은 배가
서로 열심히 바라본다
마음의 팔은 분명 저 만큼 뻗어 몸을 묶고 싶지만
무정타 생각 바뀐 포구여
박탈당한 자유와 완전한 자유가 공존하는 그 사이 개펄이다
미쳐 물과 묶지 못한 불찰이다
습관은 정신을 묶었다
목 사슬 묶인 채,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안일한 행동을 묶었다
고삐 묶인 소, 맞다
이랴 그러다 말뚝에 묶인 채
꼼짝 않고 하염없이 시간의 풀만 뜯는다
자꾸 돌아 봐도 엄연히 갈 수 없는 출렁이는 풀밭이여
 
나 그대와 묶여 오도 가도 못한다
묶인 글에 칭칭 감겨 숨이 찬다
시(詩)에 연루되어 혐의에 묶인 지 오래다
사랑보다 더 질긴 너를 풀까 말까
 
한 잔의 커피 향에 묶인 시간은
가서 돌아오지 않는 바퀴처럼 방향에 묶였다
창밖 수평선에 묶인 하늘과 바다
그대와 나를 묶고
태양은 또 완벽한 하루를 묵는 중이다


국화꽃 피우기


 
석대화훼단지 둘러
노란 국화 화분 하나
덥석 안고 돌아오는 길
뭐가 그리 좋은지 오므렸던 작은 입들
일제히 벌린다
닫혀있던 내 입도 한 몫 거든다
함께 정 붙이고 살아보자 했다

차보다 더 빨리 달아나는
산은 어디로 가는지
엉덩이 들썩이며 줄줄이 따라가는 가로수
목줄 메인 채 끌려가는 전봇대
저들은 또 어디까지 가는지
물끄러미 쳐다보는 초승달
엉겁결에 놓쳐버린 석양 탓하며
잡지 못한 그 무엇 생각하는지
 
나는, 피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헤드라이트 불빛에 깜짝 놀란 밤하늘
노란 국화꽃 피우기에 한창이다

 

은행나무 연서

 
바람의 각 누이며 써내려간 사연
시간을 앞세워 바삐
지워지고 있습니다
쓰다 지우다
포기한 채 나뒹구는 글자들
완성되지 못한 문장들이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미처 조립되지 못한 언어들이
마음의 각을 세웁니다
읽지 못할 내용 하나도 없습니다
붉은 혀의 유희 보다
검정 펜의 글씨 보다
가슴 깊숙이 각인되는 연서입니다
지워지기 싫은 단어들이
꼼짝달싹도 않은 채
엎드려있습니다
 
내 마음속 그대처럼

 

가야금

 

하고 싶은 말 너무 많아
열두 개 입 가졌지
한 개의 공명통
오동나무 심장에는
소리들 숨어있어
열두 줄로 말하지
희미한 기억 깨우며
공명통 열고 나오는 소리들
멈춘 바람이다가
다투는 구름이다가
파닥이는 날개였다가
허공 뚫고 올랐다가
아, 황급히 날아 사막 넘다가
뜨거운 모래바닥 추락하다가
당신 손에 잡혀
나 목청 가늘어졌지
무엇 때문 우는지
무슨 일로 웃는지
아슬아슬한 줄에 잡혀 생각중이야
여전히 뜨거운 피
당신 마음 훔치고 있지
열두 줄 떨림 위
위태위태 꽃 피우는 현의 말
팽팽한 긴장감 쥐었다 놓았다
기러기 발 가진, 나는


빈손


 
식어버린 몸 추스르고 있다
임시 휴업중이다
할일 없는 연장의 서글픔
목줄 뚝뚝 끊어지는 설움도 봤다
잃어버린 열정
남아 있는 힘 깡그리 무시당한 채
더 큰 힘에 밀렸던 기억이 있다
멀쩡한 육신 저당 잡힌 채
땀 흘렸던 어제는 추억이다
빈주먹으로 서서
황량한 들판처럼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채워주고 싶은 입들 주렁주렁 거느린
가장의 한숨 소리 
넘어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바람과
비밀스럽게 사투중인
저 무거운 빈손


역류할 수 없는 길에서

 

고집 속에 갇혔다가
몸 허물며 나선 길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세월 앞에 덥석 주저앉은 앉은뱅이걸음
비바람 천둥 번개소리 무섭던 날
지렁이처럼 땡볕에 말라가던 그 즈음
그늘자리 만들어주던 산을 지나
갈대 숲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거기는 어디였던가
 
가고 또 가고
쉬지 않던 흐름이로
웃음 뒤에 숨어있던 젖은 마음으로
대물릴 수 없는 물의 길
밑그림 완성되면서
바다로 가는 강물처럼

 

씨앗

 

이 가벼운 우주의 알
어떤 날개로 하늘 날지 몰라
어떤 힘과 어떤 기술이
심장의 힘줄 비틀 수 있다면
움츠린 박동소리 펴질 때
그 연약한 손 과 발
세상 움켜쥘지 몰라

이 두려운 입속의 말
어떤 노래의 사연 말할지 몰라
종달새 떠서 흐르는 웃음소리
구름 속 밀고 다니면
참지 못한 입술 벌어질 때
그 여린 혓바닥과 목청
당신 마음 훔칠지 몰라

나는, 신성하고
마력 지닌 땅속에 묻힌 타임캡슐

이 어둡고 좁은 세상
웅얼거리는 소리 억제하며
단 하나의 사실만 인정하지
스스로 일어 설 수 없는
어둠과 나만이 남아
바깥소리에 귀 기울이지

 

노을빛에 붉어지던

 

그 무렵이다

누구나 한 번쯤
다른 나로 살고 싶은 때
그러나 변할 수 없는 본질과
카멜레온처럼 달라지는
현상은 어쩌란 말인가

함께 가는 길이라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알고 보면 언제나 혼자 가는 먼 길인 것을

꽃들이 진 자리엔
사람꽃밭 이더라
어깨와 어깨
손과 손의 거리가
너와 나 우리의 사이였던
그 강변의 이야기를 기억하는지

술렁이던 물살의 주렴은 헤아려 보았는지
저도 저 혼자 노을빛에 붉어지던 그 때
붉어지던 마음은 어디에 숨었는지
살면서, 몇 번이나 더 붉어질 수 있는지

물살을 가르는 유람선 위의 젊은이들은
카멜레온처럼 붉게 속삭이고
노을이 서럽게 풀어지던
그 무렵이다

 

*가파도를 지나며

 
너 또한 누구의 사랑이더냐
 
떨어져 나간 살점 
쳐다보기조차 시린데
살아보지도 않고
못살겠다고 울먹이는 여자 보란 듯
바다는 흰 피를 토하며 울어 샀는다
 
방목하던 소떼들 보이지 않고
야성을 잃은 목 쉰 갈매기떼
목장의 노래도 잊었다
 
누가 살자 한 것도
누가 살아보라 한 것도 아니라고
갈매기가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뱃머리 돌리는 여객선
마주 선 눈빛 또한 사랑이어라
파도가 뜯다 만 살점이
해무에 가려 너덜너덜 하다
 
누군가 한세상 질펀하게 살다가고
또 누군가 한세상 뜨거워 몸 닳을 때
떨어진 살점 위로 청보리가 피겠지


*가파도 : 제주도 남단에 있는 섬


*애월에서

 

그리움의 빛깔이다
애월의 바다는 풀냄새가 난다
누군가 쉴 새 없이 밀어 보내는
녹색의 잠언들
누가 난해하다 했던가
물가에 앉아 푹 젖어 살자
달의 입장이고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물에 빠진 달이 되거나
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마음을 긁어 본 사람은 안다

내가 먼저 푹 빠져
심장 깊숙이 한 문장 한 문장 새기다 보면
덩달아 초승달도 파도소리에
흠칫흠칫 놀라며
바다 속으로 긴긴 연서를 띄울까
침묵의 소리까지 깨우고 싶어서
내 발목이 젖는다
어두움이 채 오기도 전에
애월이다
가슴 한 쪽이 아릿한
에메랄드 빛 그리움이다

*애월 : 북제주군 애월면에 있는 바닷가

 

-수상소감-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꽃 진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좋아지는 나이다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고 있는지
질 좋은 포도주처럼 제대로 익어 가는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자꾸 멀어진다.

사람이 좋아서 사람을 찾아 나섰던 그 때
멀지만 가까웠었던 그 곳
쳐다만 보아도 좋았던 기억들
정해진 시간 앞에 안타까웠던 순간들
헤어질 때면 기약이 있어 가볍게 돌아섰던 발걸음
고향의 도랑물 넘치듯이 주고받았던 이야기들
말이 사라지고
만남이 사라지고
이러다 기억도 추억도 사라질까 두렵다.

코로나 19로 단절되어가는 지금, 작은 통로가 되어주어서 고맙다.
상벌의 개념보다는 우정의 징표라서 더욱 감사하다.

2021년 5월 15일 고안나

 

고안나 약력

▲시인, 시낭송가
▲[시에] 등단
▲시집 : 양파의 눈물
▲시낭송집(CD) : 추억으로 가는 길

2017년 ‘중국 도라지 해외문학상’ 수상
2018년 ‘한중 문화예술교류공헌상’ 수상
2018년 '한국을 빛낸 한국인 대상수상<시낭송 대상>
2019년 '경기문창문학상' 수상
2019년 '시인마을문학상' 수상
2019년 '한국사회를 빛낸 충효대상 <시부문 대상> 수상
2019년 '백두산문학상' 수상
2020년 ‘새부산시인 작가상’ 수상
2020년 '대전시장 감사장'(표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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