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그 아이를 찾습니다

카드 한 장만 남기고 간 그 아이를 찾습니다

이름밖에 없는 비어있는 카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또렷이 기억합니다

 


도둑과 강아지


사람 사는 우리 동네
부자가 된 듯 아저씨는 꿀 먹은 벙어리
기상천외한 발명을 해놓고
눈을 딱 감고선 모르는 척
처가 모임에 나와 홀로 왕따를 당하는데도
하품에 숨긴 한 번의 큰 숨은 자제가 안 되어
멍하니 눈만 치켜뜨고 멀뚱

강아지가 갑자기 달려와 마구 밟는다
갚지 않은 자기만의 아는 빚을 찾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말을 못하는 것이
수술자국 선명한 성대의 소리샘은
겨드랑이에 붙어 가볍게 떠다니고
혼란스러운 몸의 기관들은 각자
저마다의 실리를 챙기려든다

 


땡볕의 그늘


야들아, 느릿한 그늘로 들어온
느림보로 흔들흔들
날카로운 소리
흐물흐물 녹여주마
느려터진 나에게로 온

다리 자꾸 꼬여 지치면
나뭇잎 흔들흔들 
풀어진 그늘의 바람질로 온

젖은 등 시원하게
네게로 옮겨가마
느린 그늘이 슬슬 쓸어주마

 


손거울


동그란 거울 속에 내가 있었던가
거울 속에서 나를 쳐다본다

맑은 별 속에 내가 있었던가
아이처럼 웃고 있었던가

내가 널 알고 있었던가
내가 널 잊고 있었던가

반짝반짝 닦아 봐도
그 아이는 어디 갔을까

 


길 위의 선물


아득한 별들의 이야기를 꿈으로 속아내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면 눈目꽃들이 버릇처럼 일어나
빛의 날개를 따라 꼬박 하루를 들쳐댄다
종일 빛을 따라 일렁이는 푸른 잎사귀들의 춤
까만 망막에 가녀린 얼굴들이 하나씩 지나간다

별밤과 해낮을 종횡무진으로 달려서
밤마다 별빛으로 집을 짓고 
햇볕 따가운 낮에는 땀을 흘려 해색을 칠한다
지은 집엔 별이 들어와 살게 되고 
어느 날은 수백 마리의 새가 집을 통째로 하늘로 물고 올라갔다

꽃을 꽂아 울타리를 만들고 향기를 심었다
날개 돋치듯 꿈을 꾸고 있어서 더 빛이 나고 있었다
하늘을 항해하는 영혼의 배였으리라

흰 구름처럼 날마다 뜨고 싶어 들썩거리고
어느 날은 바람타고 휙 날아갈 거야 멀리멀리
까만 밤볕이 내려쬐이는 동안
지상을 밝히는 별이 되어 돌아올 거야

우리는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었던 거야
눈썹 너머로 보이는 반짝이는 별들을 쫒고 있었지
환한 달밤에 꿈 사이를 유영하고 있었던 거야
일기장이 한 장씩 쌓이면서 시가 되었던 거야

 

 

 

 

 

 

시인 유형 프로필

․ 지필문학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 탐미문학상 수상
․ 시집 『月幕』 외 6권
․ 현) 아태문인협회 이사장
․ 한국신문예문학회 지도위원
․ 서초문인협회 회원
․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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