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철(경제학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 교육과학부 자문관) 

직장 생활은 사람이 독립된 개체로서 만나 자기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사람들은 직장 생활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좋은 만남으로 아름답게 헤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평생 동안 살아가면서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직장인들이 혈연, 지연, 학연보다 회사 동료, 거래처 등 직장에서 알게 된 직장 인연을 더 중요시한다는 조사 분석 결과가 나왔다. 명함 관리 앱 ‘리멤버’는 국내 직장인 6,7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들의 가장 유의미한 인맥을 ‘직장 인연’으로  꼽았다. 

불교에서 인연(因緣)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인연과(因緣果)’의 준말이다. 인이 연을 만나면 과(果)가 만들어진다는 의미이다. 석가모니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으로써 생겨나고 인연으로써 소멸하는 연기(緣起)의 이법을 깨우쳤다고 한다. 

필자는 삶을 다할 때 까지 꼭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인연이 있다. 곽상만 선생님이다. 그는 1927년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칠방리에서 태어났다. 이원초등학교와 대전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옥천상업고등학교에서 10년, 영동여자고등학교에서 1년, 영동농업고등학교에서 2개월 남짓 교사생활을 하였다. 동아일보에 난 문교부 편수관 모집에 응모해 그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 1962년 5월 1일자로 3급을류 편수관 발령을 받았다. 

11년 2개월 교사생활을 마무리 짓고, 문교부 장학관과 편수관을 거쳐, 안성농업전문학교(현 한경대학교) 학장, 한국교육개발원 간부를 지냈다 정년퇴직한 그는 국내 굴지의 출판사 사장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여 편집위원(1988년-2020년)으로 다시 제2의 인생을 보람되게 현역으로 일하면서 보냈다. 

필자는 1977년 말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처음 만나 2020년 10월 3일,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까지 자주 만났다. 마지막으로 2020년 4월 종로 3가 ‘나주곰탕집’에서 헤어지면서 또 만나자고 했는데 하늘나라로 갑자기 가셨다. 선생님과 만나는 날이면 좋아하시는 설렁탕집이나 곰탕집에 가서 식사를 했다. 젊은 사람보다 식사를 맛있게 빨리 마치시는 모습을 보고 오래 사실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식사 후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거름걸이를 하는 그 뒷모습이 무척 쓸쓸하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필자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연락을 하니 근무했던 출판사 회장께서 “사무실에 출근해 번역 일 좀 해주었으면” 한다는 연락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다리와 허리가 너무 아파 누워있어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연로하셨지만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실 줄은 몰랐다. 장례식을 마치고 큰 따님이 “아버지 하늘나라로 잘 가시도록 했어요”라는 문자를 받고 무척 슬픈 마음이 들었다.  
2017년 필자가 집필책임자로 참여한 중학교 ‘진로와 직업’, 고등학교 ‘성공적인 직업생활’교과서 공동 집필자로 일을 열심히 하였다. 이 교과서들은 현재 전국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필자가 그의 사무실에 인사차 방문했을 때 본인이 쓴 ‘내가 일본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1999년 발행)’는 ‘교육문화 산책’ 수필집을 주어 수차례 읽었다. 그의 가정 이야기와 직장 생활하면서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인연 이야기이다. 

그 수필집 내용 중 필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내용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5‧16 직후 문교부 편수관실을 거쳐 간 사람들 중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이야기이다. 이 당시에는 공무원들에 대한 급여와 복지가 형편없었다고 한다. 행정고시 수준의 시험에 합격한 편수관의 월급이 2만 5,000원이었다고 한다. 동료 편수관들이 격무로 인해 병이 발생, 출퇴근 근태문제로 징계 받은 두 명 동료의 빈곤한 생활과 단명한 이야기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곽선생님의 고향인 옥천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문교부 편수국 간부로 있었던 최태호 선생님 이야기이다. 중앙부처 간부인 사람을 옥천까지 내려가도록 한 당시의 문교부 처사가 아유(阿諛)인줄 모르고 산 그 분에게 매우 서운했던 일인 듯 했다고 한다. 그도 편수국 생활 몇 년과 옥천 생활 몇 년에 견디다 못해 삼청동 집을 팔아 날렸다고 한다. 4‧19 직후 중앙도서관장으로 일했고 그 후 경기상업고등학교 교장, 춘천교육대학교 2대~3대 학장을 역임하고 1987년 72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동문학가로 많은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최교장 선생님은 필자가 근무했던 기관에 가끔 오셔서 곽선생님과 환담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당시에는 두 분의 인연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인연! 필자는 최교장 선생님 자제분과 몇 년 전 교육부 공업계고등학교 교과서를 같이 공동집필하였다. 그는 동시통역사로 서울 모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와 함께 곽선생님의 사무실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식사도 함께 하면서 최교장 선생님과의 인연을 이야기 한 적도 있다.  

최교장 선생님께서 편수관 초임자인 곽선생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곽선생님은 평생 공직 생활하면 마음속에 가지고 실천했다고 한다. “편수관 노릇을 잘 하려면 남의 말을 잘 듣는 습관을 해야 해요. 방어형 발언을 일삼거나 자주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어리석은 것이야. 그렇다고 자기 주관을 버리라는 이야기는 아니거든.”이라고. 

곽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일을 당했다. 서울수송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던 딸이 옥천역에서 사고를 당하였다. 옥천역에서 내리려던 언니들과 열차의 플랫폼 쪽의 문이 안 열리자 반대쪽 례일 위로 내리다 그 곳에서 정차하지 않고 통과하는 상행 열차에 머리를 부딪쳐 딸은 즉사를 하였다. 피투성이가 된 2살 위의 누나를 끌어안고 몸부림쳐 우는 꼬마 동생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딸은 옥천역 철길 건너 대천리 야산에 묻었다. 사고 찰나의 무서웠던 아픔을 잊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있을 것이라고 곽선생님은 혼자 마음속으로 평생 살면서 생각했다고 한다. 고속버스를 타겠다는 것을, 위험하니 기차를 타라고 한 것에 대한 책임감이 컸다고 한다. 아이가 묻힌 산기슭에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돌아왔다고 한다. 딸과 짧은 인연이었다. 사모님은 이때 쓰러져 오랫동안 심신이 약해져 고생을 많이 하시다 몇 년 전 돌아가셨다.   

화불단행(禍不單行)! 재앙은 매양 엎친 데 덮친다는 것이다. 곽선생님은 딸을 기차 사고로 잃었고 문교부 장학실과 편수국 일로 큰 시련을 겪었다. 1976년 교과용 도서 편찬 제도가 소위 말하는‘검‧인정 교과서 사건’을 계기로 대변혁이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문교부는 도서 발행의 기획·감독 기능만 수행하고 집필·교정 등의 편찬 기능은 교과서 연구 개발 기관으로 위임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교육개발원에 교육과정 연구업무가 주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2005년 곽선생님은 옥천 제자들과 만남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168세까지 산 세계 최고 오래 산 시라리 루스리모프(소련 그루지아 공화국)란 사람이 있었어요. 그의 이름을 딴 시라리 장수연구소에서 낸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장수를 하려면 맑은 공기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깨끗한 환경과 끊임없는 운동, 그리고 유산균 등의 음료와 신선한 음식, 마지막으로 남을 원망하지 않고 마음을 편안히 갖는 것 등 4가지를 꼽았어요. 그런데 나는 어느 한 가지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환경이 좋은 옥천에 내려오려고요. 여러분과 같이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습니다.” 

여러 번 필자에게 이야기했지만 마지막 만난 종로3가 식당에서 한 이야기가 뇌리를 감돈다.  “이 선생, 선출직 자리에 도전하지 마요. 그리고 소금을 적게 먹도록 해요”. 가정과 건강을 잘 챙기라는 말씀이었다. 몇 년 전 문교부 고위직을 한 사람이 서울시 교육감에 두 차례 도전했지만 많은 빛만 남기고 낙선하였다. 부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야기를 하면서이다. 필자가 2008년 집권당 지역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출마해 낙선한 일을 생각하면서 한 말씀이다. 

사람이 성장‧발전하려면 좋은 인연들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 없이 홀로 살아가기는 힘든 일이다. 소중한 인연은 우연처럼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연은 들판에 핀 들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마침내 아름다운 모습과 그윽한 향기를 발현할 수 있는 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위사람들에게 짧은 삶의 여정에서 아름다운 인연으로 의미 있는 말 한마디라도 전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9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먼 거리를 지하철 2번 갈아타고 7시쯤 출근하여 출판사 책상에 앉아 책 만들기에 전념하시던 모습이선하다. 세상을 떠난 신지 일주년이 가까워진다. 하늘나라에서 이 세상 사람들 일, 교육과 글쓰기 걱정 마시고 편안하게 지내시길 지면을 통해서 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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