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숙 약력: 심양 출생. 사평사범학원(현 길림사범대학) 정치계 철학학사. 길림조중 교원 역임. 월간 『문학세계』 등단. 대한민국통일예술제 해외작가상(2015). 제12회 세계문인협회 세계문학상 해외문학 시 부문 대상. 제10회 『동포문학』 시부문 최우수상. (사)세계문인협회 일본지회장.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시집 「아름다운 착각」 「빛이 오는 방식」 「날개는 꿈이 아니다」
김화숙 약력: 심양 출생. 사평사범학원(현 길림사범대학) 정치계 철학학사. 길림조중 교원 역임. 월간 『문학세계』 등단. 대한민국통일예술제 해외작가상(2015). 제12회 세계문인협회 세계문학상 해외문학 시 부문 대상. 제10회 『동포문학』 시부문 최우수상. (사)세계문인협회 일본지회장.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시집 「아름다운 착각」 「빛이 오는 방식」 「날개는 꿈이 아니다」

시가 꽃이다

 

꽃이 스스로 인간에게

기쁨을 주려 애쓰지 않아도

모든 축복의 자리에

꽃다발이 쌓이듯

시집에 갇혀 사는 시는

인간을 도우려 굳이

집을 나서지 않아도

세상 낮고 어두운 자리에

마음의 노래로 꽃핀다

감사의 기쁨을 아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꽃이 되어 누군가의

빛이 되고 사랑이 된다.

 

 

 

걸어다니는 바다

 

멈춰있는 것들은 썩는다

바다는 쉴 새 없이 철썩이고

나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일출과 일몰의 웅장함에서

좁쌀만 한 풀꽃의 떨림에서

만개한 모란의 황홀함에서

하룻밤 새 통째로 무너져 내린

동백꽃을 가슴에 대고서

그들만의 삶의 기록을

내 안 가득 채워

썩지 않도록 출렁이는

바다를 내 안에 들여앉혔다

 

걸어다니는 바다가 되어

세상 속으로 스며드니

나의 몸에서 향기가 난다

 

 

날개와 뿌리

 

날개는 뿌리보다 소심하다

뿌리를 가진 꽃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색깔과 향기로 유혹하지만

나비며 새며 날개 가진 것들은

사람이 두려워 피한다

날개와 뿌리는

만나지 못하는 운명이다

젊었을 때는 날개를 얻어

하늘을 즐기고 싶었다

이젠 날개의 꿈을 내려놓고

뿌리의 강직함을 얻어

사람 가까이 살려한다.

 

 

꽃 피우는 속도로

 

동네 공원에서

명자꽃과 만났습니다

꽃 피우기 전에는

명자나무를 잊고 있었습니다

매일 한두 번 지나치면서도

무덤덤한 걸음과는 달리

마음은 늘 바빴습니다

앞만 보고 걷지 말고

자기가 사는 모습도 봐달라고

봉오리들이 목청을 내

나를 불렀을 것입니다

명자꽃이 핀 오늘은

햇살이 더 반짝거렸습니다

꽃 피우는 속도에

마음의 시계를 맞추겠습니다

순서를 지키며 핀 꽃이

더 예뻐 보였습니다.

 

 

겨울 나 홀로

 

국화가 지고난 후

그 향기가 다시 돌아왔다

향기가 코끝을 찾을 때

그리움이 애잔하게 돋았다

지난가을에 함께 했으나

지금은 떠나간 이들

그들과 같이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들었던 노래를 떠올리면

향기는 피어나 나를

더욱 외롭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 깊숙이 스며들었다가

스며든 속도로 고요히

다시 번져 나오는 향기

겨울 나 홀로

그 향기에 묻힌다.

.

 

윤회

 

비행기 티켓을 구입할 때

돌아올 날짜까지 정해진

왕복 티켓을 끊습니다

그날 돌아와야 할

급한 용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그날 기다리겠다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룰을 어긴 적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생의 마지막 날에도

마중 온 천사에게 잊지 않고

왕복 티켓을 끊겠습니다.

 

 

시옷

 

옷을 살 때

디자인이나 색상보다

옷감의 질을 눈여겨보듯

읽을 시를 고를 때

짜임새나 리듬보다

언어의 정갈함에 마음이 간다

정갈한 시를 만나면

비단을 쓰다듬듯

시를 어루만지게 되고

누워있던 시는

손길에 놀라 일어서고

나는 그 시옷을 입는다

긴 머리칼 바람에 흩날리듯

시옷을 입으면

감수성이 올올이 선다.

 

 

봄빛 내음

 

그에게는 그늘이 없다

그가 다가올 때는

빛의 기둥이

걸어오는 것 같다

빛의 몸과 마주앉아

맥주를 마셨다

맥주가 혈관을 타고

온몸을 점령하듯

그는 나를 관통했다

갓 녹기 시작한 텃밭에

스며든 햇살처럼

내 몸에서

행복한 봄내음이 났다.

 

 

꼴찌를 꿈꾸며

 

낡은 담벼락이 엄마품인양

담쟁이는 벽에 안긴 채 자라고

나무는 잠을 자도 서서 잔다

우리집 냥이는 무조건

적게 먹고 적게 움직인다

뒤돌아보면 나의 삶은

빚쟁이한테 쫓기듯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몇 십 년 세월이 징검다리처럼

돌 몇 개로 남아있고

내 인생의 출발역보다

종착역이 더 가까워졌다

인생 마지막 질주는 포기하고

거북이 걸음으로

바닥을 한껏 느끼며 기어서

맨 꼴찌로

결승점에 누울 것이다.

 

 

꿈과 찰나

 

찰나를 사는 나는

꿈속을 사는 그녀와

가끔 만난다

맥주 몇 잔 오가는 동안

찰나는 꿈에 실려

아찔한 정상에 오르기도 하고

아득한 환호소리에

눈이 멀어 안개 속을 걷기도 한다

하나의 빛이

온몸을 스캔하고 지나간 뒤

우울 몇 개가

찍혀 나와 꼬리를 흔들고

그녀 만나러 가던 길

되돌아 내려오는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낯설게 다가왔다.

 

<도라지> 2021년 3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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