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미란 약력:

(필명: 백한) 흑룡강성 탕원 출생, 숭실사이버대 방송문예창작학과 졸업,
에세이집 "서른아홉 다시 봄"출간.
소설 "로마로 가는 길", "이 밤은 아름다워", "먹골에는 겨울에도 비가 내린다" 발표.
재한동포문인협회 소설분과 부분과장

백한(곽미란) 작가
백한(곽미란) 작가

아내가 사라졌다. 메모를 남겨두고 사라진 거니 납치당한 건 아니겠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으니 실종됐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보니 비행모드 상태다. 문자를 넣었다. 답이 없다. 내가 보낸 문자는 분명히 확인하면서 전화는 받기 싫다는 거군. 냉장고문에 붙어 있는 노란색의 포스트잇에는 마치 집 앞 마트 다녀올게, 하는 식의 담담한 말투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바람 좀 쐬고 올게.”

단문을 즐겨 쓰는 아내의 특성이 제대로 나타난 문장이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을 쓸 때의 일이고, 생활에서까지 소설을 다큐로 생각하면 참 골치 아프다. 다행이도 아내의 가출을 증명해줄만한 실마리가 또 하나 있었다. 두 번째 포스트잇은 정수기에 붙어있었다. 

“내가 왜 집을 나갔는지는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면 답이 나올 거야. 아마 한 스무 번 정도는 봐야 될 걸?”

젠장, 이건 갑자기 나를 무슨 추리탐정 코난으로 만들자는 수작인가? 난 이런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퀴즈풀이 같은 것도 딱 질색이다. 연애 2년에 결혼생활 3년이면 나에 대해 알만큼 다 알 텐데 갑자기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이람? 걱정보다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스무 번 정도라니? 내 이해력을 비웃는 건가? 그 영화라면 나도 아마 세 번은 봤다. 촉망 받던 은행 부지점장 앤디는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두 번의 종신형을 선고받아 악명 높은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거기서 그는 모건 프리먼- 영화 속 배역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과 친해지며 지혜롭게 감옥을 탈출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대체 뭘 어쩌자는 거지? 일주일이나 밖에서 개고생을 하고 돌아온 나에게 이게 할 짓이냐고. 

식탁에는 랩이 씌워진 반찬들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접시에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걸 보아 아내는 분명 내가 집에 도착하기 좀 전에 나갔을 것이다. 나는 캐리어를 현관에 세워두고 모자도 벗지 않은 채 아내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서재의 문을 열어젖히니 노트북이 안 보인다. 하긴 아내와 한 몸이나 같을 바 없는 노트북은 당연히 갖고 나갔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정작 데스크톱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책상을 보니 내 마음은 사막에서 홀로 자라는 나무처럼 쓸쓸했다. 

경찰에 신고할까 하는 생각도 피뜩 뇌리를 스쳤으나 실종신고는 스물 네 시간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아야 할 수 있다. 나는 일을 크게 떠벌이고 싶지 않다. 뭐든 간단하고 단순한 걸 좋아한다. 그리고 이건 분명 실종이 아니다. 아내는 바람 쐬러 다녀온다고 했다. 다만 어디로 떠났는지, 언제 올지를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일시적인 가출로 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아내는 동네 커피숍에 앉아서 조용히 글을 쓰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아내는 아주 가끔 카페에 가서 글을 쓰기도 한다. 밥을 먹고 있다 보면 그녀가 문을 떼고 들어와서 잘 다녀왔어? 수고 많았어, 하고 인사를 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런데 “쇼생크 탈출”을 스무 번이나 보라고? 쉬지 않고 꼬박 본다고 해도 사흘은 걸릴 텐데? 그럼 이 여자가 며칠씩 외박을 하겠다는 건가? 아주 정신이 나갔군. 나는 일단 모자를 벗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식사시간이 지나면 당이 떨어져서 나는 기운을 못 차린다. 내 배꼽시계는 어떤 상황에서도 정확하다. 음식다큐를 촬영하면 매일 맛있는 음식을 포식하는 줄 알지만 일주일씩 같은 음식을 먹고 장정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날이 계속되다보면 아내가 해주는 집밥이 그립다. 된장찌개에 쭈꾸미볶음, 계란말이, 무말랭이 무침, 오이소박이. 아내가 차린 식탁은 항상 정갈하다. 허겁지겁 밥을 두 공기나 비우고 나니 포만감이 몰려왔다. 나는 빈 그릇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소파에 몸을 맡겼다. 

내가 아는 아내는 분수에 넘는 행동을 하지 않는 현명한 여자였다. 수수한 외모에 -찬찬히 뜯어보면 귀엽게 생겼고 여성스러운 면이 있지만 어디 가서 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여자가 아니고 잘 웃지도 않아서 얼핏 봐서는 예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말수 적고 대부분 시간을 책이나 보고 글이나 쓰면서 지내는 작가였다. 애초에 그게 맘에 들어서 그녀와의 결혼을 선뜻 결정한 거였다. 일 년에 3분의 2는 바깥에서 떠돌이생활을 하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는 친구가 많고 사교성 좋은 여자보다는 집에 붙어 있으면서 조용히 글만 쓰는 여자가 딱 어울렸다. 피곤한 객지생활에서 돌아오면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이 날 반겨주고 저녁이면 고생했다며 내 발을 씻어주는 아내가 있는 집이 나는 좋았다. 그 동안 아내는 내가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집안일을 야무지게 꾸려나갔다. 거실과 서재, 침실과 주방을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닦았고 화장실에도 머리카락 한 올 찾아볼 수 없다. 매번 내가 출장을 떠날 때면 아내는 세심하게 내 짐을 꾸렸다. 양말, 속옷을 여벌로 넣는 것부터 해서 면도기, 비상약, 썬크림, 일회용 밴드, 텀블러…… 나는 일절 신경 쓸 게 없었다. 아내는 동네에 친구도 없어서 기껏해야 마트나 카페에 다니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내는 글을 쓰느라 가끔 밤과 낮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으나 내가 집에 있을 때면 어김없이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아침식탁을 차려주곤 했다. 가끔 원인을 알 수 없는 미열에 시달리긴 했지만 그건 글이 잘 풀리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은 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녀가 이렇게 알쏭달쏭한 메모를 남겨놓고 숨바꼭질을 하는 이유가 뭔지 몰라서 나는 화가 났다. 출장을 간 일주일 동안 뭐가 잘못 되었나 돌이켜봐도 나는 아무런 낌새를 챌 수가 없었다. 매일 아침 아내는 좋은 아침, 하고 아침인사를 보내왔고 그러고 나면 나도 좋은 아침, 하고 문자를 보낸 후에 바쁜 하루를 시작했다. 가끔 아내는 재미있는 글이나 사진 같은 걸 보내주기도 했지만 난 거기에 대해선 일일이 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바쁜 인간인지는 나보다 더 잘 아는 아내니까 얼마든지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그녀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대체 어딜 간 거야?”

“무슨 일 있었어? 뭣 땜에 갑갑한데?”

“언제 올 건데?”

연속 세 개를 연이어 보냈지만 여전히 답이 없다. 전화를 걸었다. 불통이다. 갑자기 나 자신이 무기력해졌다. 그녀 앞에서 처음으로 느끼는 무기력함이다. 술이 당긴다. 냉장고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독일맥주 파울라너 헤페가 꽉 차있었다. 평소 아내와 나는 이 맥주를 즐겨 마셨다. 식사하는 동안 그녀가 하는 이야기란 대개 더운 물이 잘 나오지 않아서 수리공을 청해서 고쳤다든가 화분에 꽃이 폈다는 자질구레한 것들이어서 나는 금세 잊어버린다. 맥주를 둬 병 마셨더니 피로와 함께 졸음이 몰려온다. 그래, 자고 나면 오겠지. 집 나가는 건 내 전문인데, 지가 나가봤자 며칠을 버티겠어. 결혼할 때 이미 다 합의된 부분이 아니던가. 나는 하는 일 자체가 바깥에서 도는 거라 집에 오면 아내가 해주는 집밥을 먹는 게 소원이라고 했고 아내는 집에 들어박혀 글만 쓰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돈은 내가 벌 테니 당신은 글만 써.” 

나의 이 호언장담에 그녀가 결혼을 작심했는지도 모른다.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신혼초의 집에는 서재가 따로 없었다. 그녀는 주방의 간이 식탁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글을 썼다. 작년에 나는 드디어 그녀가 원하는 근사한 서재가 있는 집을 샀다. 물론 대출을 끼고 산거지만 그녀는 얼마나 좋아했던가! 얼마 전에는 최신식 커피머신도 들여놨다. 글을 쓰는 여자에게 아늑한 서재와 언제라도 원두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커피머신이 있는데 뭐가 또 필요하단 말인가. 머릿속으론 온갖 의문을 다 품으면서도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도 일찍 회사에 나가야 한다. 출장 한 번 다녀오고 나면 처리할 일이 산더미다. 업무만 생각해도 머리가 빠개지는 판인데, 이 여자가 대체 어쩌자고 이러는 거지? 머리가 베개에 닿으면 잠을 자는 타입이라 나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강렬한 밝은 빛에 나는 눈을 떴다. 창으로 햇살이 막무가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눈이 부셔 나는 급히 얼굴을 돌렸다. 커튼을 치지 않은 채로 잠이 들었던 것이다. 벽시계의 시침은 7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휴대폰부터 확인했다. 좋은 아침, 하던 문자도 없다. 잠수를 타려고 아주 작정을 했군. 

침실은 조용했다. 거실에도, 주방에도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내의 흔적을 찾을 생각으로 서재로 들어갔다. 데스크톱 가장자리에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있었다. 나는 그 중의 하나를 뜯어서 읽었다. 

-3년에 걸친 투쟁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

그 아래에는 이런 말이 씌어 있었다.

-아내를 믿습니까?

대체 뭐지? 3년이라면 우리의 결혼생활을 말하는 건가? 아내를 믿냐고? 믿지, 믿고 말고. 나한테 무슨 감정이 있어서 이러는 걸까? 테이블 위에 비쳐들어 네모꼴의 창문유리모양을 그리는 햇살무늬와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을 번갈아 보며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천천히 몸을 돌려 책장을 바라보니 빽빽하게 꽂혀있던 책들이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있었다. 아내는 소설을 쓰다가 잘 풀리지 않으면 닥치는 대로 책을 꺼내서 읽었다. 보아하니 아내는 단시일 내에 돌아올 의향은 없어 보인다. 나는 그제야 “쇼생크 탈출”을 스무 번 보라고 한 아내의 말이 농담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내를 믿습니까?

샤워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내내 이 질문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아내를 믿는다. 처음 보는 순간 그녀는 믿을만한 여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는 여렸지만 어딘가 강인한 모습이 있었다. 그런 강인함은 가끔 이상한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내는 뭐 하나에 빠지면 집요하게 매달렸다. 산책을 하다가 개미떼를 만나면 쭈크리고 앉아서 한식경씩 관찰한다거나 하늘에서 날아가는 새를 보면 그 새가 하나의 점으로 보일 때까지 까딱 않고 제자리에서 지켜서 본다든가 하는 이상한 습관들이 있긴 했다. 그럴 때면 아내는 마치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기름을 달군 프라이팬에 깨 넣었다. 치익, 하면서 기름이 팔목에 튀었다. 저도 모르게 앗 뜨거,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애매한 주걱과 계란을 내려다보며 나는 말처럼 콧김을 몰아쉬었다. 완숙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아내는 반숙을 꺼내고도 내 몫의 계란프라이는 한참을 더 익혔다. 뿌직뿌직 가장자리는 벌써 튀김처럼 타들어가고 있는데 노른자는 아직도 말갛다. 어설프게 계란을 뒤집어 노른자를 마저 익힌 후 모양새 없이 쪼그라든 계란프라이를 접시에 담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 나는 주방에 한 번도 들어와 본 적이 없다. 내 입 하나만 책임지면 되는 편안함을 추구하던 독신생활이 몸에 밴 것도 있지만 나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 철저히 여자의 영역이라고 간주했고 그 영역을 침범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설거지 한 번 해준 적이 없었다. 

나는 아내를 믿었다. 수채화 같이 흐릿한 그녀의 얼굴은 표정변화가 크지 않아서 눈에 띄는 희열을 본 적도 없지만 슬픔이 어려 있는 건 단연코 본 적이 없다. 그녀는 묵묵히 글을 쓰고 가사일을 해나가며 아내의 역할에 충실했다. 아내는 공기 같은 존재였다. 

아내와 나의 만남은 어떤 행사의 뒤풀이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마침 같은 테이블에 앉았고 그녀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벌렁댔다. 나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 같은 건 모두 지어낸 것이라고 믿는 편이지만 그 순간의 느낌을 사랑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빗물이 흐르는 유리창처럼 흐릿한 얼굴이었는데 꼭 다문 입술 왼쪽에 있는 참깨만한 점 때문일까? 어딘가 고집스러워 보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이 저 여자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사정없이 들이닥쳤다. 내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쌔근쌔근 잠자는 그녀의 희미한 얼굴을 조심스레 받쳐 들고 입 옆에 있는 참깨를 긁어보고 싶었다. 결혼은 했을까? 나이는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그나저나 전화번호는 어떻게 물어보지? 갑자기 머리가 초고속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너 방송작가 찾는다고 안 했어? 자, 소개해줄게. 이쪽은 석산씨, 소설가. 이쪽은 다큐 촬영감독 진규씨. 인사들 해요.”

K방송사의 김과장이 마치 내 마음을 꿰뚫기라도 한 듯 그녀를 내게 소개시켜주었다. 석산? 특이한 이름이었다. 돌과 산이라? 여리여리한 그녀가 왜 이런 이름을 지녔는지, 그녀에 대한 호기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런데 다음 순간, 드라마처럼 반전이 일어났다.

“전 소설 쓰는 사람이에요. 방송작가엔 관심 없어요.”

거 참 보기보다 콧대는 높네, 그럴수록 그녀의 전화번호를 꼭 따야겠다는 생

이 강하게 남자의 자존심을 충동질했다. 나는 마지막 카드를 빼들었다. 

“제 명함입니다, 혹시 아나요? 제가 나중에 작가님의 소설로 영화를 한 편 찍을 지도요.”

이건 진심이기도 했다. 감독으로서 누군가 인생 영화 한 편 정도는 찍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녀는 썩 내키지 않는 시선을 테이블 아래로 떨구더니 핸드백을 열어 명함을 꺼냈다.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하는 말과 함께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새하얀 바탕의 명함장에 인쇄된 석산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이름 산은 마늘 산자였던 것이다. 적이 놀란 내 모습을 보아냈는지 그녀가 설명을 곁들였다.

“석산이라는 꽃이 있어요, 꽃무릇이라고도 하죠.”

석산, 꽃무릇 하고 나는 입속으로 두 번 되새겨보았다. 구글에서 꽃 이미지를 찾아보니 불꽃처럼 빨갛게 타오르는 꽃이었는데 모양도 이름처럼 특이했다. 꽃잎은 뒤로 말려있고 꽃술은 부채살처럼 사방으로 펼쳐나간 꽃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짜봐도 이 강렬한 붉은 꽃과 수채화같이 흐릿한 그녀에게서 연관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첫 만남에 나를 오리무중에 빠지게 했다. 

나이가 나와 동갑인 그녀는 돌싱이었다. 나의 끈질긴 구애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노력해볼게요, 하고 대답했다. 이혼한 사유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남편이 바람을 펴서요, 하고 남 일처럼 건조하게 대답했다. 괜한 질문을 했나 싶어 어색한 시선을 거두어들이다 야릇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눈길과 딱 마주쳤다. 
“김태희하고 살면서도 전원주랑 바람 피는 게 남자들이라면서요? 뭐 그렇다고 제가 김태희만큼 이쁘지도 않잖아요. 살려고 노력해봤는데 안되겠더라구요.”
그 눈빛은 내게 이렇게 되묻는 듯했다. 

“당신은 다른가요?”

그때 나는 다짐했다. 절대로 그런 일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총각인 내가 돌싱인 그녀에게 과분한 존재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그녀는 내게 정말 잘했다. 나는 아내를 믿었다. 그녀가 나를 배신하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내의 말대로 “쇼생크 탈출”을 봤다. 영화는 첫 시작부터 내 속을 아주 긁는다. 저런 망할 년이라고, 한 남자의 인생을 통째로 말아 먹을려고 아주 작정을 했구먼. 불륜도 모자라 애매한 남편이 두 번의 종신형을 선고받게 하다니? 지 년이야 잘못을 저질렀으니 백 번 죽어 마땅하지만 왜 무고한 남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죽었는지 화가 나서 나는 욕이 절로 나갔다. 집 나간 아내 때문에 감정이입이 되었던지 술이 당겼다. 냉장고를 열고 파울라너 헤페를 꺼냈다. 영화를 다 볼 때까지 여섯 캔이나 축냈다. 무고한 감옥살이, 고난의 시작, 인정받은 재능, 두 남자의 우정, 탈출 시도, 자유 획득…… 영화는 이 몇 가지를 보여주었다. 이게 대체 아내가 집을 나간거랑 무슨 상관이람? 내 집이 쇼생크 감옥이라도 된다는 얘긴가? 우라질, 러닝 타임이 두 시간도 넘는 영화를 집에서 이렇게 열심히 본 적이 언제던가? 대부분 나는 이동 중에 기내에서 영화를 본다. 아내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적은 연애시절에 한 번 간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날 영화가 시작돼서부터 끝날 때까지 내 손을 꼭 잡고 있던 아내의 자그마한 손은 차가웠던가 따뜻했던가. 아내의 손을 잡아본지가 언젠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내가 사라진 지 닷새 째.

나는 그 동안 메이퇀으로 음식을 시켜먹고 출장 때 입었던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돌려서 널었고 소파에 누워서 애매한 맥주만 축냈다. 쇼생크탈출을 세 번 봤으나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아내에게 대체 어떤 답을 원하냐고, 힌트라도 달라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문자를 보냈지만 황포강에 돌 던진 격이었다. 

나는 아내와 주고받았던 문자를 뒤져 보았다. 엿새 전에 주고받았던 문자 중 아내가 보내온 사진이 있었다. “눈도 아프고 손목도 아파서 약방에 가서 안약이랑 손목보호대 샀어”라는 문자와 함께. 거기에 내가 답한 문자는 “무릎보호대?” 였다. 일이 바쁘다보니 나는 아내가 보내온 사진만 피뜩 보고 무릎보호대로 생각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팔목이 아프다는 말을 심심찮게 했던 것 같다. 자그마한 체구의 아내는 골격이 원체 가늘었다. 칼질을 하다가도 팔목이 시큰거린다며 잠깐 칼질을 멈추고 왼손으로 오른손 팔목을 잡고 앞뒤로 한참 흔들곤 했었다. 매일 글을 쓰다 보니 팔목이 많이 아팠나보다. 

아내가 사라진 지 일주일 째.

-내가 한 사나이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냐 아니면 조그만 핵을 둘러싸고 있는 진주처럼 그의 주위에 만들어진 전설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냐 하는 점에 대하여 솔직한 대답을 해 주길 원한다면 그 대답은 그 둘의 어느 중간 어디쯤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따위의 메모는 정말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든다. 사나이라? 아내에게 정말로 정부라도 생겼단 말인가? 그러면서 나에게 아내를 믿냐고? 대체 어쩌자는 건가? 나는 아내에게 충실했다. 출장을 나가서 보름씩, 한 달씩 있다 보면 불끈불끈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을 참느라 힘들었지만 그럴 때면 나는 격렬한 운동으로 생각을 떨쳐버리곤 했다. 내 몸에 달린 물건 하나 제대로 건사 못하는 못난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처럼 시간이 더디게 흐른 적은 없었다.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냈고 황산에서 털두부 촬영을 할 땐 자꾸 NG를 냈다. 털두부에 피어나는 곰팡이처럼 내 마음에도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촬영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엄마의 전화가 들어왔다. 

“진규야, 너 색시는 바쁘냐? 전화를 했는데 받지도 않고.”

나는 엄마가 대개 어떤 잔소리를 할지 알고 있다. 과연 엄마는 3초도 참지 못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언제 집에 들러 흑염소탕 좀 갖고 가거라, 올해는 니네도 애를 낳아야지 않겠냐?”

“아, 엄마, 나 지금 바빠요. 산이도 요즘 장편 쓰느라 시간 없고.”

“장편인지 단편인지 소설만 만들지 말고 애를 만들어야지. 니들 나이를 생각해라.”

“엄마, 나 지금 나가봐야 돼요. 나중에 전화할게요.”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전에는 설명절만 되면 친척들이 모여앉아 청문회라도 하듯이 나를 닦달했다. 여자 언제 데려올 거냐고, 결혼 언제 할 거냐고. 결혼을 하고 나서 드디어 어른들 잔소리에서 자유로워졌다 싶었는데 이제는 또 애를 언제 낳냐고 닦달이다. 아내와 나는 애를 가지는 일에는 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각자 하는 일에 몰두하기로 했다. 내가 처음 그녀를 부모님께 데려갔을 때 엄마는 아내를 탐탁치 않아했다. 이혼녀여서 마음에 걸리는 게 아니라 왠지 차가운 기운이 느껴져서 싫다고 했다. 

“글 쓰는 사람이라서 그래요, 차가운 게 아니고 차분한 건데요.” 

“왠지 애가 많이 슬퍼 보인다. 가슴속에 한이 맺힌 거라도 있나. 그래 뭐, 니가 좋다하믄 좋은 거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엄마의 생신이며 어버이날 같은 명절을 알아서 잘 챙기는 아내에게 엄마도 별다른 내색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소식을 딱 끊고 사라지다니, 갑자기 아내에게 화가 났다. 

“애라도 가질 걸 그랬나?”

애가 있었다면 지금 같은 이런 상황은 적어도 생기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뭐 자신의 옷을 숨겨놓은 나무꾼의 아내가 된 선녀는 애를 셋씩이나 낳고도 결국은 하늘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아내가 집을 나간 건 절대로 애 때문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 널찍한 집에서, 방해하는 사람 없이 지가 좋아하는 글을 맘껏 쓸 수 있는데 대체 또 뭘 바란단 말인가? 알고도 모르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다. 소설 쓰는 여자의 마음은 더욱 모르겠다. 나는 문득, 내가 아내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을 첨으로 해봤다. 

아내는 내게 도전적이지 않았다. 고분고분 내 의견에 따랐다. 사귄지 일 년 가까이 되었을 때 나는 자칭하여 그녀의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그녀의 주변정리를 하나하나 했다. 그녀가 해바라기처럼 나를 바라보게 하려는 사심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오롯이 글쓰기에만 몰입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그녀는 약간 억울해하는 듯 했으나 그냥 묵인했다. 소설집 한 권만 냈던 아내는 나를 만난 후에 소설집 한 권을 더 냈고 장편소설도 출간했다. 장백산 밀림에 사는 요정 이야기와 천지의 괴물이야기를 엮은 장편으로 말하자면 중국식 해리포터 같은 소설이었다. 한동안 티브이며 신문매체에서는 아내의 신간소설 보도로 떠들썩했다. 붉은 띠지가 둘러진 아내의 책은 전국의 서점에 쫙 깔렸다. 나는 우쭐했다. 

“이 소설로 내가 나중에 영화 찍을까?”

“공감능력이 1도 없는 당신이 무슨 영화를 찍어? 그냥 다큐나 쭈욱 찍으세요.”

그녀의 장편은 꾸준히 팔렸고 인세를 받는 족족 그녀는 책을 사들였다. 어림짐작으로 보아도 서재에는 책이 몇 천권은 넘을 것 같다. 그녀에게 말은 안했지만 나는 내년쯤 그녀의 서재를 늘려줄 생각이었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나에 비해 아내는 사랑표현에 인색하지 않았다. 아니, 제법 대범했다.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길을 가다가 갑자기 시내 한복판 사거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게 키스를 해서 당황했던 적 있다. 나와 섹스를 나눌 때도 그녀는 우물쭈물하지 않았다. 연애시절, 집에선 도저히 글이 안 써진다며 시골로 내려가 골방이라도 한 칸 얻어서 글을 쓸까 어쩔까 하는 그미에게 나는 내한테로 오라고 했다. 나는 시골에 셋집을 한 달간 빌렸고 그미에게 그 집에서 지내면서 글을 쓰라고 했다. 그미가 나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가 됐을지도 모르는 그 번의 만남. 그미는 내가 찾은 집을 맘에 들어 했다. 그미는 채광이 좋고 거실이 모던한 젊은 감각으로 장식된 그 셋집의 베란다에 일본 다다미식으로 만든 다다미방위에 누워서 볕쪼임을 하며 책을 읽는 걸 즐겼다. 그리고 주방의 식탁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글을 썼다. 

그날 나는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뉴스를 보고 있었고 그녀는 책을 읽다가 내 발치에 와서 앉았다. 그녀는 재미있는 내용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내게 소리 내어 읽어주곤 했다. 오른손에 책을 들고 소리 내어 읽으며 그녀의 왼 손은 헐렁한 내 팬티 속으로 들어와 나의 그것을 조물락거렸다. 나는 끙 신음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살짝 들어 팬티를 끌어내렸다. 그녀의 손동작이 빨라졌다. 내 물건은 금세 단단하게 부풀어 올랐다. 음, 으윽, 나는 참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녀를 번쩍 안고 침실로 향했다. 가벼운 그녀의 몸이 거뜬히 들렸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목을 꼭 끌어안았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나는 그녀가 입은 원피스를 위로 밀어 올렸다. 겨드랑이까지 말아 올리자 그녀가 두 손을 가슴에 교차하더니 머리 위로 원피스를 벗어버렸다. 그녀의 앙증맞은 가슴이 드러났다. 그녀는 집에서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 나는 급급히 그녀의 팬티를 끌어내리고 뒤이어 내 팬티와 티셔츠도 벗었다. 

화장기 없는 그녀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매혹적이다. 창백한 빛이 도는 얼굴, 깡마른 그녀의 몸에 내 것을 힘 있게 밀어 넣었다. 응, 그녀가 신음을 하며 눈을 감는다. 나는 거세게 밀어붙였다. 잠깐만, 갑자기 나는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거실로 나가 휴대폰을 들고 왔다. 이 장면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이런 걸 왜 찍어? 이상하게” 

그녀가 손으로 휴대폰을 밀쳤다.

“나중에 보면 좋잖아, 10년 후에.”

그녀는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오므렸던 다리를 벌렸다. 그녀에게 몸을 밀착시키던 나는 다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햇볕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아, 눈 부셔, 커튼은 왜 걷어?”

“촬영에는 조명, 빛이 젤 중요하거든.”

나는 오른 손에 휴대폰을 들고 그녀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힘껏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섹스를 하면서 촬영하는 건 나로서도 처음이라 흥분했는지 긴장했는지 난 다른 때보다 빨리 사정을 했다. 그녀의 몸에 쓰러져 한참을 조용히 그녀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왼손으로는 내 등을 껴안고 오른 손으로는 내 머리를 쓸어 넘겼다. 기분이 이상해, 이런 모습이 찍혔다는 게. 그녀는 어린애가 옹알이하듯 중얼거렸다. 

“자기야, 이거 잘 저장해뒀다가 나중에 나 생각나면 이 동영상 보면서 마스터베이션 해, 알았지?”

“나중에 언제? 출장 가서?”

아내는 꽃봉오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아내가 집을 나간 지 한 달째.

긴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괴로운 정적 속에서 그녀의 동영상을 보며 마스터베이션을 했다. 오랫동안 고여 있던 정액이 분수처럼 천정으로 치솟더니 나를 골려주기라도 하듯 내 콧등에 뚝 떨어졌다. 누군가가 킥킥 웃으며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침대머리 옆 테이블로 손을 뻗어 각티슈를 꺼내려고 했다. 통 안은 텅 비어있었다. 

“젠장, 다 썼으면 새 걸로 갈아놓던가.”

나는 빈 휴지통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오늘 회식 할까?”

“회식은 무슨, 일 년에 3분의 2는 밖에서 도는데 오늘같이 사무실에 있는 날은 일찍 집에 가셔요. 형수님이 기다리잖아요.”

남의 속도 모르고 날 생각해주는 척 하는 이넘들 봐라. 차마 아내가 집을 나갔다는 말은 못하고 하는 수없이 나는 휴대전화에서 친구들의 이름을 휘휘 넘겨보며 어느 녀석에게 말을 걸까 고민했다. 

기사가 사무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뭘 찾아요?”

“퇴근하려고 하니 이제야 생각나네요. 오늘이 마누라 생일인 걸 깜빡했어요. 선물로 줄 거 뭐 없나 싶어서.”

“당신 해도 해도 너무 한 거 아니야?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마누라 생일에 꽃은 못 사들고 갈망정 선물이라도 근사한 거 사들고 가야지. 촬영장비밖에 없는 우리 사무실에 선물거리가 뭐가 있다고 그래? 카메라 렌즈라도 뽑아줄까? 비싼 거라고 좋아할라나?”

내 반응에 기사는 물론 다른 직원들도 놀라서 나를 돌아다보았다. 말하고 보니 민망했다. 내가 왜 이렇게 민감해졌지? 나는 지갑에서 잡히는 대로 백 원짜리 지폐를 몇 장 뽑아서 기사에게 건넸다.

“괜찮은 식당에 가서 식사라도 대접해요.”

언젠가 그녀가 불평한 적이 있다. 여태 생일 한 번 제대로 쇤 적 없다며 올해는 생일파티를 해달라고 했다. 파티는 무슨? 애도 아니고. 형식적인 건 딱 질색인 나는 한사코 거부했다. 촬영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설정을 해놓고 찍는 건 다 가짜처럼 느껴진다. 마침 올해 그녀의 생일날은 내가 보름 동안 출장을 떠난 사이에 있었다. 아내의 생일날 내가 축하문자를 보냈던가? 아내는 그날 어떻게 생일을 쇴을까? 미역국은 끓여먹었을까? 누가 케익을 사주긴 했었나? 아내는 잊어먹었는지 나중에 생일선물을 사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생일이면 아내는 일주일 전부터 무슨 선물을 갖고 싶냐고 물었고 생일날 아침엔 소고기를 넣고 미역국을 끓여줬다. 저녁이면 생일상을 차려 우리 회사 사람들을 다 불러서 내 생일을 축하했다. 물론 해마다 그녀가 성심성의껏 고른, 내게 딱 필요한 선물도 잊지 않고 생일날 아침이면 내 머리맡에 놔두곤 했다. 어쩌다 내 생일이 촬영일정과 겹치는 날이면 그녀는 영상통화로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반시간 후, 나는 꼬치집에서 명수와 마주 앉았다. 녀석은 이혼을 두 번이나 하고

지금은 자기보다 열 살 어린 여자를 데리고 산다. 

“야, 일 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바쁜 니가 웬 일이냐?”
반가운건지 비꼬는 건지 모를 녀석의 말에 나는 말없이 맥주잔만 기울였다. 녀석은 내게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장황하게 자기 이야기를 늘여놨는데 주된 골자는 젊은 아내에 대한 자랑질이었다. 내 기분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부부세계에 대해 논문을 쓸 만큼 떠들어대는 녀석이 아니꼬왔지만 나는 드디어 아내가 집을 나갔다고 실토했다. 

“하하하하!”\

녀석은 그게 그리 재밌는지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물이 찔끔 나오도록 웃었다. 맥주병으로 대갈통을 까부시고 싶었다.

“바람 난거구나. 독수공방도 하루 이틀이지 어느 여자가 허구한 날 밖에서 떠도는 남자를 기다리겠냐! 내 이럴 줄 알았다.”

위로를 받으려고 왔다가 되려 불난 집에 부채질 당한 기분이다. 긴가민가 하던 마음은 아내가 바람을 폈다쪽으로 확 기울었다. 그래서 지금 정부와 도망을 간 걸까? “쇼생크 탈출”을 보라고 넌지시 내게 힌트를 준 게 다 의미가 있는 거였군. 그러면 지금쯤 아내는, 내가 모르는 어떤 놈과, 아니, 어쩜 나를 속속들이 아는 놈과 어느 호텔에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쳤다.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진규야, 진정해! 세상에 널린 게 여잔데 뭘 그래!”

“개새끼, 지금 나한테 뤼모우즈 씌우는 거야?”

나는 명수의 멱살을 잡았다. 난 녀석에게 펀치를 날렸고 녀석은 뒤질세라 내 눈꼬리를 강타했다. 의자가 넘어지고 맥주병이 쓰러졌다. 가게의 사장이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은 나와 명수를 억지로 떼어냈다. 

결국 나는 집에서 혼자 맥주를 축내며 “쇼생크 탈출”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 관자놀이가 따끔따끔했다. 명수 녀석한테 맞아서 터졌는 모양이다. 앤디가 두 번의 종신형을 선고받은 거에 대목에선 저도 몰래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C로 시작되는 육두문자를 거칠게 입 밖으로 뱉어냈다. 그러다가 앤디가 해들리의 증여세를 해결해주고 그 대가로 ‘작업 동료들’에게 맥주를 제공해주는 딜을 성사한 걸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동료들이 맥주를 마시며 자유를 느낄 때 이름 못할 미소를 지은 채 그늘 속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앤디의 모습에서 수수께끼를 맞춘 자의 희열 같은 걸 느낀다. 나는 점점 앤디라는 인물에 이입되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녀가 이혼을 한 사유가 전남편이 바람을 피운 건데 그녀가 바람을 피울 수가 있을까. 바람피는 건 절대 허용 못하는 그녀가 아닌가.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한 번도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직접 표현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왜 밖에서 이 개고생을 하겠는가? 고산지대에서 하루 종일 추위에 떨며 야외촬영을 하고나면 저녁엔 숟가락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덜덜 떨려서 도수 높은 빼갈을 마셔 몸을 녹여야 했고 밀림 속에서 촬영을 할 땐 꿀벌만큼 큰 모기떼들에게 사정없이 물려 온밤 몸을 긁적이느라 잠을 설쳤다. 매일 들고 다니는 촬영장비는 또 얼마나 무거운가. 그래도 내가 언제 그녀 앞에서 힘들다는 소리 한번 한 적 있던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바람나서 도망간 게 아니더라도 이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내 인내심은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나는 영화 속 앤디처럼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아내의 이상한 습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마 겨울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아내는 저녁을 먹고 소리 없이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에 갓난 애기 몸집만한 화분을 들고 집에 들어섰다. 마늘잎을 닮은 초록색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란 화분이었다. 

“뭐야, 그건”

“내 꽃”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석산이라고.”

“아, 이게 석산이야? 근데 석산은 절에서 피는 거라며? 그걸 왜 집에 들여?”
아내는 화분을 베란다에 옮겨놓고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이 꽃을 못 보면 허전해.”

아내는 내 말을 무시하고 그날 저녁 석산을 무려 다섯 개나 들였다. 그 후로 아내는 글을 쓰지 않을 때면 대부분 시간 베란다에 틀어박혀 살았다. 가끔 뭐하나 싶어 들어가 보면 마른 걸레로 무성한 잎사귀를 하나하나 닦고 있었다. 

“그만 좀 닦아, 청승맞게스리, 베란다를 절간으로 만들 셈이야?”

절에서 피는 꽃이란 말을 들은 후부터 자꾸 화분이 눈에 거슬렸다. 그러나 바쁜 일정으로 돌아치다보니 나는 석산 화분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계절이 몇 번 바뀐 어느 날, 베란다에 뭘 가지러 들어갔다가 꽃대를 길게 올리고 짙은 붉은색의 꽃이 만개해 있는 걸 보고 저도 몰래 멈칫한 적이 있다. 무성하던 잎은 하나도 없고 바람개비처럼 꽃대 위에 꽃만 달려 있었다. 그 붉은 색은 무엇이라도 삼켜버릴 듯 강렬했다. 

“어? 이게 꽃이 폈네.”

“응, 저 꽃을 보면 너무 슬퍼, 슬퍼서 병이 날거 같아.”

“건 또 뭔 소리야? 허전해서 키운다더니 슬프다니?”

“그런 게 있어.”

아내는 멍한 눈빛으로 말했다. 영혼이 가출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갖다 버리라고, 절에서 피는 거라며. 당신 얼굴이 왜 맨날 핼쓱한가 했더니 이제 보니 다 이 꽃 때문이야.”

나는 더 이상 말씨름을 하기 싫어서 화분을 양팔에 껴안고 밖으로 나가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가 씩씩거리며 화분 다섯 개를 다 갖다버리는 동안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던 아내의 눈확에 눈물이 고여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그깟 화분 몇 개가 뭐라고?”

“차라리 날 내쫓지.”

“말을 해도 참.”

“석산이라고.”

“착각하지 마, 이름이 같다고 당신이 진짜 꽃이라도 되는 줄 알아? 저건 그냥 식물이야. 당신은 사람이고.” 

하지만, 출장에서 돌아오니 베란다에는 어김없이 꽃무릇이 불타고 있었다. 두 번을 더 갖다 버리고 나서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도저히 그녀의 집요함과 겨룰 자신이 없었다. 

“저걸 안 보면 자꾸 아파.”

“내 보기엔 저 꽃이 있으니까 당신이 더 아픈데?”

아내의 얼굴은 밀랍처럼 창백했고 목소리에도 기운이 없었다. 

“세상에 꽃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다른 꽃 키우자.”

“싫어!”

아내가 완강하게 고집을 피웠다. 아내는 글을 쓰지 않는 시간 대부분을 베란다에서 보냈다. 가끔은 대체 베란다에서 뭘 하나 싶어서 들어가 보면 멍하니 앉아서 잎만 무성한 화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왜 여태 꽃무릇을 생각 못했지? 나는 급히 베란다로 가서 유리문을 세차게 열었다. 무성하던 잎사귀는 축 처져있었고 시들시들 마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다가 옆에 놓여있는 분무기가 눈에 띄자 물을 담아서 화분에 물을 주었다. 다시 소파로 돌아온 나는 아내가 늘 그랬듯 멍하니 앉아있었다. 

꽃무릇을 무더기로 본 적이 있다. 아내와 한국의 길상사에 갔을 때였다. 아내는 한국에 가면 제일 먼저 들러야 할 곳이 길상사라고 했다. 

“거기가 어딘데?”

“법정스님이 계시던 곳이야.”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나와 아내는 서울에 도착하자 곧바로 길상사로 향했다. 9월이었다. ‘삼각산길상사’라고 쓴 입구에 들어서니 고즈넉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상상했던 웅장한 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담한 절이었다. 아내가 앞장서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갑자기 내 시선을 강탈하는 붉은색이 나를 사로잡았다. 하늘을 향해 빨간 불꽃을 태우고 있는 그것은 군락을 이루어 피어난 꽃무릇이었다. 기다란 녹색 줄기 위에 보란 듯이 도도하게 피어있었다. 

“봤지? 꽃무릇은 꽃과 잎이 절대로 만날 수 없어. 잎이 지고 나면 꽃대가 나오고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나오거든.”

“어? 그러네. 그래서 꽃이 특별히 빨갛게 보이는군.”

“꽃말도 나라별로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슬픈 기억’, ‘환생’, ‘재회’……”

“여기구나, 법정스님을 모셔둔 곳”

나는 꽃무릇 가운데 있는 “법정스님 유골 모신 곳”이라는 팻말을 보고 제대로 찾아왔다는 기쁨에 들떴다. 고개를 드니 담장 너머에 진영각이 보였다. 문고리를 당기자 대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투박한 나무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법정스님이 직접 만든 의자라고 한다. 의자에는 “앉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진영각 내부는 작고 아담했다. 법정스님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법정스님의 책도 놓여 있었다. 잠시 둘러보고 밖으로 나가던 나는 그때야 아내가 날 뒤따라오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급히 담장쪽으로 가보니 그녀는 그때까지 꽃무릇 앞에 못 박힌 듯 서있었다.

“뭐하고 있어, 여기서? 빨리 들어가서 법정스님 유품 구경하고 와.”

“그깟 천억 원,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

“뭐라는 거야?”

“자야, 김영한 여사 말이야. 20대에 운명처럼 백석을 만나 83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백석 한 남자만을 평생 사랑했어. 그러다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서 그녀의 재산 전부를 시주할 테니 절을 세워달라고 법정스님에게 간청했지. 그래서 이 길상사가 세워진 거야.”
진영각에서 내려오는 길에 나는 풀 속 여기저기 보이는 법정스님의 글귀에 정신을 빼앗겼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이런 구절도 있었다.

“사랑의 실천이란 자기와 타인이 서로 대립하고 있을 경우, 자기를 부정하고 타인에게 합일하는 노력이다. 그것은 ‘닫혀진 나’로부터 ‘열려진 나’로의 비약일 수 있다. 삶은 대결이 아니라 포용이기 때문.”

그러나 아내는 정작 법정스님과 관련된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은 길상화의 공덕비가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비석에 새겨져있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나직하게 읊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나는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 위키백과를 클릭했다. ‘석산’이라고 입력하자 석산의 꽃 이미지부터 시작해서 생육환경, 번식법, 관리법 그리고 석산에 대한 설화까지 나와 있었다. 석산은 반그늘이나 양지 어디에서도 잘 자라고 물기가 많은 곳에서도 잘 자란다고 했다. 나는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석산은 9~10월경에 꽃이 핀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이 지면 그 후에 진녹색 잎이 나고 잎은 이듬해 봄에 시든다. 석산은 유독성의 다년생 구근 식물이다……”

한방에서는 해열, 거담 통증완화제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잘못 먹게 되면 중추 신경이 마비되어 큰일 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예쁜 꽃이 독이 있다니? 

“음……”

내 입에서 탄식 비슷하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꽃색깔이 저렇게 붉은 걸까? 한이 서린 독이 가득해서? 나는 맥이 탁 풀렸다. 그렇다면 아내는 여태 무엇을 그리워했을까? 나는 늘 병색이 돌던 아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니, 아내는 이제 저 꽃을 버리고 싶은 건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기르던 꽃, 3일만 물을 주지 않아도 마르는 꽃을 왜 아내는 나몰라라 하고 가출한 걸까? 아내는 나를 사랑한 걸까? 아내가 여태 내게 보여줬던 건 사랑이 아니라 의무였나? 이 질서 정연했던 삶을 영위하려고 아내는 어쩜 처절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뛰쳐나갔다. 문득 아내가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쇼생크 탈출”영화의 후반부에 혜성처럼 나타난, 앤디가 누명을 벗을 수 있는 목격자 토미를 떠올렸다. 흥분한 앤디는 교도소장 노튼에게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 했다가 되려 독방 신세를 졌고 토미는 노튼에게 쥐도 새로 모르게 살해당한다. 머릿속에서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던 운무가 다시 자옥해졌다. 

아내에게서 서늘한 기운을 느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연애시절, 장백산에 가재두부를 촬영하러 갔을 때였다. 한참 걷다가 그녀가 보이지 않아 뒤돌아보면 그녀는 십중팔구는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에 꽂혀서 목이 빠져라 나뭇가지를 쳐다보거나 새가 날아가면 쫓아가곤 했다. 꽃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갑게 악수라도 청하듯이 꽃 가까이 가서 허리 굽혀 냄새를 맡고 휴대폰으로 사진까지 여러 장 찍고서야 자리를 떴다. 그녀에게는 이 세상 만물이 모두 처음 보는 것 같은 신비로움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몇 번 부르다가 지쳐서 그녀를 기다리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단말마 비명을 질렀다. 

“앗!”

돌아보니 그녀가 뱀, 뱀이 있어, 하며 수풀을 가리켰다. 수풀이 음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뱀이 틀림없었다. 나는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녀는 어느새 막대기를 하나 찾아서 쥐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뱀을 쫓아가서 막대기로 뱀을 눌렀다.

“빨리 와!”

나는 헐레벌떡 달려갔다. 누룩색 바탕에 검정 바탕이 있는 뱀이었다. 그녀는 뱀을 제압하고 있던 막대기를 천천히 뱀의 목 쪽으로 옮겼다. 

“끈 같은 거 없어? 모가지를 묶어야 하는데”

“끈이 어딨어?”

“그럼 끈으로 사용할만한 덩굴이라도 있나 찾아봐.”

내가 덩굴식물을 찾느라고 이리저리 살피는 사이에 그녀는 막대기를 버리고 뱀 머리 바로 아래를 손으로 잡고 있었다. 

“집에 가서 뱀술 담궈줄까?”

“에이, 징그러워.”

“그럼 그냥 살려주자. 얘는 독도 없는 순둥이야.”

그녀는 뱀을 훌 던졌다. 뱀은 삽시간에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집에서 뱀을 키워볼까, 하는 말을 꺼낸 건 출장이 잦은 내가 집을 자주 비우면서 그녀에게 혼자 이 큰 집에서 지내는 게 두렵지 않냐고 물어봤을 때였다. 그 며칠 그녀는 다섯 권으로 된 이집트의 역사소설 “람세스”를 읽고 있었는데 그 책에 뱀과 독을 능숙하게 다루는 람세스의 절친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아내는 그 부부를 흠모했다. 아내가 그 부부의 이름을 말했지만 내가 기억할 리가 만무하다.

“미쳤어? 뱀이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왜? 내가 이뻐하면 애완동물이 되는 거지. 더 중요한 건 뱀은 불사의 존재란 거야.”

“뱀이?”

“응, 뱀은 허물을 벗잖아. 그래야 살거든. 뱀은 아홉 번 죽었다가 열 번 살아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대가리가 아홉 개 달린 독사가 내 앞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것 같아 등줄기가 서늘해났다. 여름에 옷을 입은 채로 장백산 비룡폭포에 뛰어든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도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다만 두 번 다시 그녀를 촬영 할 때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그녀가 산속에 눌러앉아 뱀과 친구하며 살겠다고 할까봐 더럭 겁이 났던 것이다. 

그녀는 정작 이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뱀처럼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면 외로움이란 걸 못 느낄까?”

아내가 집을 나가고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나는 황산에서 털두부를 촬영하고 귀양에 가서 쏸탕위 촬영을 했다. 서녕에 가서 야크치즈를 촬영하고 광서에 가서 뤄스펀(우렁이쌀국수) 촬영했다. 촬영 전 답사를 갈 때마다 나는 아내가 혹시 그곳 어딘가에 숨어있지 않을까 하고 샅샅이 찾아보았으나 아내는 어디에도 없었다. 긴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먼지가 뽀얀 바닥과 책상, 빈 식탁, 정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의 부재가 주는 공허와 두려움이 서서히 나를 엄습했다. 정적 속에서 나는 지나간 시간에 대해 그리고 아내와 나 사이에 생긴 엄청난 거리감에 대해 생각했다. 뭘 해야 좋을지 모를 때마다 나는 “쇼생크 탈출”을 보거나 꽃무릇 화분을 들여다보곤 했다. 불확실한 것들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내는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운이 좋으면 출장 중 어느 절에서 우연히 석산을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일한 아내의 소식은 다달이 우편으로 도착하는 간행물에 실린 아내의 새 소설뿐이다. 토씨하나 빠뜨릴 세라 꼼꼼히 읽어보아도 아내의 행방을 알만한 실마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지구온난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 양성평등에 관한 문제들을 들먹이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쇼생크 탈출”을 스무 번도 넘게 봤다. 이제 나는 그 영화가 시작되면 배우들의 대사를 내가 먼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달달 외울 수 있게 되었다. 

“난 지금도 이탈리아 여자들이 뭐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사실은 알고 싶지 않다…… 난 그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얘기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그 짧은 한 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앤디가 2주간의 독방생활 감행을 무릅쓰고 교도소 안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틀어준 LP판의 노래를 듣고 나서 레드는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이 말이 좋았다. 이 말을 입안에서 나직이 따라하다 보면 아내가 가출했다는 것도 잊고 감상에 젖어있는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멀쩡한 앤디가 왜 자기가 아내를 죽였다고 자책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새들은 새장에 가둬둬선 안된다고 여겨진다. 그들의 날개는 너무 빛나니까.” 앤디가 탈출에 성공한 후 친구 레드가 앤디를 떠올리며 한 이 말이 오랫동안 뇌리에 박혔다. 나는 여전히 아내를 알 수 없었으나 더 이상 아내를 원망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내가 절대 바람을 피진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다. 나는 앤디처럼 광석에 흥미를 갖고 광석을 조각하는 취미 같은 건 없지만 나에게도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바로 꽃무릇 돌보기다. 잎이 다 떨어진 꽃무릇의 뿌리가 살아있는지 궁금해서 흙을 파헤쳐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나는 꾹 참았다. 흙이 조금만 말랐다 싶으면 물을 주며 아내를 돌보듯 화분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 계절이 바뀌자 죽은 듯 잠잠하던 화분에서 신기하게도 꽃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앤디가 500야드, 미식축구장 길이의 다섯 배 되는, 오물로 뒤섞인 하수구를 기어나가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기분이랄까. 나는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여보, 꽃대가 올라왔어. 석산이 꽃을 피우려나봐.

-오래 기다렸어, 아주 오래.

아내는 여전히 답이 없다. 

어느 날, 사흘간의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베란다로 향했다. 문을 열던 나는 우두커니 서버렸다. 출장 가기 전에 봉오리가 맺혀있던 꽃대에서 어느새 꽃 한 송이가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속을 활짝 열어 보이는 꽃무릇을 보는 순간, 희열과 함께 가벼운 통증이 지그시 내 가슴을 눌렀다. 

2021년 연변문학 6호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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