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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나 약력: 시인, 시낭송가, [시에] 등단, 시집 : 『양파의 눈물』,시낭송집(CD) :『 추억으로 가는 길』、2017년 ‘중국 도라지 해외문학상’ 수상, 2018년 ‘한중 문화예술교류공헌상’ 수상, 2018년 '한국을 빛낸 한국인 대상수상. 시낭송 대상, 2019년 '경기문창문학상' 수상, 2019년 '시인마을문학상' 수상,  2019년 '한국사회를 빛낸 충효대상 시부문 대상 수상,  2019년 '백두산문학상' 수상, 2020년 ‘새부산시인 작가상’ 수상, 2020년 '대전시장 감사장'(표창장), 송화강 해외문학상 수상.
고아나 약력: 시인, 시낭송가, [시에] 등단, 시집 : 『양파의 눈물』,시낭송집(CD) :『 추억으로 가는 길』、2017년 ‘중국 도라지 해외문학상’ 수상, 2018년 ‘한중 문화예술교류공헌상’ 수상, 2018년 '한국을 빛낸 한국인 대상수상. 시낭송 대상, 2019년 '경기문창문학상' 수상, 2019년 '시인마을문학상' 수상,  2019년 '한국사회를 빛낸 충효대상 시부문 대상 수상,  2019년 '백두산문학상' 수상, 2020년 ‘새부산시인 작가상’ 수상, 2020년 '대전시장 감사장'(표창장), 송화강 해외문학상 수상.

자유를 갈망하는 자아의 외침

고안나 시인은 미인이고 낭송가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녀의 시는 부드럽고 여성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미리 했었다. 그런데 『송화강』잡지 (2020 5) 휴먼문학 시 코너에 실린 고안나 시인의 시는 나의 선입견을 확 깨어버리었다.

그녀의 시는 강렬했고 자유를 갈망하는 자아의 외침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다른 나로 살고 싶은 때

그러나 변할 수 없는 본질과

카멜레온처럼 달라지는

현상은 어쩌란 말인가

 

함께 가는 길이라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알고 보면 언제나 혼자 가는 먼 길인 것을

-「노을빛에 붉어지던」 앞부분

 

이 세상에 자기의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시인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화려하고 부러운 모습이지만 시인 자신에게는 자기의 존재적 의미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으며 그래서 불안하고 그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 즉 시인은 인간의 실존적 불안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실존적 불안은 현실세계와 자아의 불일치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런 선택에 따라 본질이 변하게 된다. 변화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시인은 자기 색깔을 바꿀 줄 아는 카멜레온을 등장시켰을 것이다.

어쩌면 시인의 인생은 줄곧 이런 실존적 불안을 극복해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시인이 50대에 시를 쓰기 시작하고 낭송가로 되어 시를 청각적인 예술로 승화시킨 그 모든 선택의 과정이 바로 다른 나로 살고 싶은”, 즉 현실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표현이었고 자기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쉽게 변할 수 없는 본질때문에 고민하고 힘들어한다. 거기에다가 인간은 이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 이미 고독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시인은 함께 가는 길이라 착각하며 살아가지만/알고 보면 언제나 혼자 가는 먼 길인 것을하고 한탄하기도 한다. 인간은 그렇게 고독하면서도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성기조 시인은 자기의 평설에서 사람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말하지만 혼자서만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로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것을 본성으로 삼고 있다. 그 촉매제가 사랑이다”(「내 것 만들기와 거리 두기」-月汀 金貴姬 시집 『바람과 나무』를 읽고)하고 말하였다.

고안나 시인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꽃들이 진 자리엔/ 사람꽃밭 이더라/ 어깨와 어깨/ 손과 손의 거리가/ 너와 나 우리의 사이였던/ 그 강변의 이야기를 기억하는지하고 어깨를 부딪히며 손을 잡고 걷던 사랑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술렁이던 물살의 주렴을 헤아려 보며 설레고 저 혼자 노을빛에 (얼굴이)붉어지던 그 때”, 사랑으로 부끄러워져 붉어지던 마음은 어디에 숨었는지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 살면서, 몇 번이나 더 붉어질 수 있는지하고 반백이 지난 인생에 앞으로 사랑이 몇 번 더 있을지를 우려하는 센티멘털한 기분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인은 다시 기분을 격양 시켜 물살을 가르는 유람선 위의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가져본다. 빨간 석양빛에 붉게 변한 카멜레온처럼 붉게 (사랑을)속삭이는 그들의 모습을 통하여 사랑의 미래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인의 실존적 불안도 해결하게 된다.

이 시는 「노을빛에 붉어지던」이라는 제목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붉은 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석양빛에 물든 노을의 붉은 색, 그 노을빛에 따라서 붉어지는 카멜레온의 붉은색, 그리고 사랑의 부끄러움에 붉어지는 얼굴색, 사랑의 불길 때문에 붉어지던 마음”, 유람선 위에서 노을빛에 붉게 물든 젋은이들의 모습, 이 모든 것이 붉은색으로 통일되었다. 붉은색은 피나 심장과 결부되어 생명, 정열, 사랑을 상징으로 쓰인다.”(나무위키) 그래서 시인이 고른 붉은색은 시의 주제를 뚜렷하게 해주고 시에 강렬한 이미지를 입힌다.

또한 카멜레온을 두 번 등장시키고 있는데 첫번째는 사랑에 얼굴과 마음이 붉어지던 과거의 자신을 비유했고 두 번째는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이들을 비유하였다. 그리고 서두와 결말에 그 무렵이다라는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서두와 결말의 조응을 얻었고 이 시의 심볼이라 할 수 있는 붉은색이 제일 강해지는 노을빛에 붉어지던” ‘를 강조할 수 있었다.

 

「포구에서」 역시 속박에 대해서 쓴 시이다. “묶인 배와 묶이지 않은 배박탈당한 자유와 완전한 자유를 의미한다. 이 두가지가 공존하는 그 사이에 개펄이 있는데 이는 마음의 팔은 분명 저만큼 뻗어 몸을 묶고 싶지만/ 무정타 생각 바뀐 포구가 놓아주는 바람에 생긴 완충지緩衝地이다. 시인은 아마 자신을 묶인 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시인이 바라는 것은 저 개펄을 지나서 완전한 자유가 있는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이외에도 시인은 우리의 현실에 많은 속박이 있음을 보고 있다.

습관은 정신을 묶었다/ 목 사슬 묶인 채,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안일한 행동을 묶었다

고삐 묶인 소, 맞다/ 이랴 그러다 말뚝에 묶인 채/ 꼼짝 않고 하염없이 시간의 풀만 뜯는다

나 그대와 묶여 오도 가도 못한다/ 묶인 글에 칭칭 감겨 숨이 찬다/ ()에 연루되어 혐의에 묶인 지 오래다/ 사랑보다 더 질긴 너를 풀까 말까

한 잔의 커피 향에 묶인 시간은/ 가서 돌아오지 않는 바퀴처럼 방향에 묶였다

창밖 수평선에 묶인 하늘과 바다/ 그대와 나를 묶고/ 태양은 또 완벽한 하루를 묵는 중이다

모든 것이 묶이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인생은 확실히 무엇인가에 묶여 있다. 포구는 배를 묶고 습관은 정신을 묶고 있으며 고삐는 소를 묶었다. 시는 를 묶고 한 잔의 커피는 시간을 묶고 방향을 묶었다.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를 묶었고 태양은 하루를 묶는다.

이 세상에서 완전한 자유란 없을지도 모른다. 바다 자체도 결국 육지에 묶인 몸이니 그에게도 절대적인 자유는 없다. 문제는 속박속에서 그것이 속박이라는 것을 모르고 산다면 그것은 노예나 다름없는 자아의 실현이 없는 무미한 삶이 된다는 것이다. 오직 속박을 벗어나려는 부단한 노력 속에서만 인류는 발전하고 자아는 완성될 수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예술적 형상화를 통해서 속박을 묘사하고 있다. ‘개펄을 포구가 생각이 바뀌어서 놓아주었다고 묘사한 것, 소가 시간의 풀을 먹는다고 한 것, 시인을 범죄의 혐의에 묶인 용의자로, 시는 사랑보다 더 질긴것이라고 한 것,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데 걸린 시간을 시간이 커피향에 묶인것으로 본 것, 하늘과 바다가 붙은 수평선을 수평선이 하늘가 바다를 묶은 것으로 본 것, 태양이 뜨고 지고 다시 뜨는 사이가 하루이니 결국 하루를 묶은 것이라 본 것은 시적 상상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묘사이다. 모든 것이 묶여 있어서 그것을 끊어내고 싶은 시인의 갈망이 더 강렬했던 것이다.

 

시인은 이런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갈망을 「씨앗」을 빌어서 표현하였다. 씨앗은 땅속에 묻혔을 때 자유가 없다. 하지만 아직 묻혀 있는 그 씨앗에게서 시인은 어떤 날개로 하늘 날지 몰라/ 어떤 힘과 어떤 기술이/ 심장의 힘줄 비틀 수 있다면/ 움츠린 박동소리 펴질 때/ 그 연약한 손과 발/ 세상 움켜쥘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그래서 종달새 우는 봄이 오면 그 씨앗은 참지 못한 입술벌리고그 여린 혓바닥과 목청으로 사람들의 마음 훔칠것이다.

시인은 이런 씨앗을 타임캡슐에 비유하였다. 누군가 파내어 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타임캡슐처럼 봄이 안 오고 비가 안 내리면 씨앗은 싹을 틔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씨앗의 처지에 시인은 자신을 은유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이 어둡고 좁은 세상/ 웅얼거리는 소리 억제하며” “스스로 일어 설 수 없는” “단 하나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땅 위로 솟아날 그날을 기다리며 어둠과 나만이 남아/ 바깥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아직은 고독한 현실이다.

 

고독한 인간이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사랑이란 촉매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시인은 「은행나무 연서」를 쓴다. ‘은행나무 연서하면 괴테의 연시를 떠올리게 된다. 괴테는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하던 1814 8, 은행가 야콥 폰 빌레머의 집에서 마리안네 융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그들은 하피스(14세기 페르시아의 전설적 시인)의 시로 암호를 만들어 편지를 주고받는가 하면 자기들이 쓴 시도 교환했다고 한다. 그때 보낸 시중에 「은행나무」(Gingo Bilo)가 있는데 잎이 두 쪽으로 나뉘어진 은행나무 잎의 모양에 두 사람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노래하였다.

고안나 시인은 자기의 연서를 붉은 혀의 유희보다/ 검정 펜의 글씨보다/ 가슴 깊숙이 각인되는 연서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붉은 혀는 그림동화(Grimm 童話)의 「충신 요하네스」에서 젊은 왕이 황금나라공주의 초상화를 보고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이 너무나 커서 (저 여름의 무성한) 나뭇잎이 모두 다 혀가 된다 하여도 그 사랑을 다 말하지 못하리 하는 말에서 기인된 것 같다. ‘검정 펜의 글씨는 괴테의 연서를 말할 것이고, 그러니 시인의 사랑은 고전古典에 나오는 사랑에 못지않게 깊은 사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지워지기 싫은 단어들이/ 꼼짝달싹도 않은 채/ 엎드려 있습니다하고 단어를 의인화하여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 그려냈다.

 

가슴속에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고 사랑이 있으니 시인은 그것을 토로하고 싶다. 그래서 시인은 가야금이 되었다.

 

하고 싶은 말 너무 많아

열두 개 입 가졌지

한 개의 공명통

오동나무 심장에는

소리들 숨어있어

열두 줄로 말하지

희미한 기억 깨우며

공명통 열고 나오는 소리들

-「가야금」 앞부분

 

하나의 심장에 열두개의 입을 가졌다.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12줄이 그렇게 각기 떨리며 소리를 쏟아내겠는가? 그 소리가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어 허공 뚫고 올랐다가/ , 황급히 날아 사막 넘다가/ 뜨거운 모래바닥 추락하다가/ 당신 손에 잡혀/ 나 목청 가늘어졌지/ 무엇 때문 우는지/ 무슨 일로 웃는지/ 아슬아슬한 줄에 잡혀 생각 중이야/ 여전히 뜨거운 피/ 당신 마음 훔치고 있지/ 열두 줄 떨림 위/ 위태위태 꽃 피우는 현의 말/ 팽팽한 긴장감 쥐었다 놓았다/ 기러기 발 가진, 나는그렇게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은은히 흐르다가 급격히 고조에 올랐다가 다시 낮아져 가늘게 이어지는 가야금의 소리에 따라 시인의 격정도 격한 기복을 이룬다. 사랑이 깊어 움직이지 못하는 기러기발을 가진 는 그렇게 울고 웃고 있다.

이같이 맺힌 감정을 쏟아내고 싶은 시인과 소리로 감정을 표현하는 가야금을 잘 매치해서 시인과 가야금의 일체화를 이루었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글자로 된 시에서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를 타고 감정이 전달되고 있다.

 

인생은 되돌아갈 수 없는 외길이다. 그래서 시인은 「역류할 수 없는 길에서」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고집 속에 갇혔다가”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세월 앞에 덥석 주저앉은 앉은뱅이걸음하다가도, “가고 또 가고그렇게 바다로 간다. ‘비바람 천둥번개땡볕도 시인이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다. 자유로운 바다를 향해 나아가려는 시인의 의지가 보인다.

 

앞으로만 나아가는 인생에서 요즘 시인은 꽃을 피우고 싶어한다. 세상에 꽃이 많지만 시인은 자기에게 어울리는 꽃으로 국화를 골랐다. 그래서 시인은 석대화훼단지 들러/ 노란 국화 화분 하나/ 덥석 안고 돌아오는뭐가 그리 좋은지 오므렸던 작은 입들/ 일제히 벌린다/ 닫혀있던 내 입도 한 몫 거든다” (「국화꽃 피우기」) 그사이를 못 참고 꽃을 피우는 꽃과 함께 시인의 마음도 꽃핀다. “함께 정 붙이고 살아보자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본 정경은 시인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차보다 더 빨리 달아나는

산은 어디로 가는지

엉덩이 들썩이며 줄줄이 따라가는 가로수

목줄 매인 채 끌려가는 전봇대

저들은 또 어디까지 가는지

물끄러미 쳐다보는 초승달

엉겁결에 놓쳐버린 석양 탓하며

잡지 못한 그 무엇 생각하는지

-「국화꽃 피우기」 중간부분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산, 가로수, 전봇대, 초승달, 모든 것이 어찌 빨리 지나가는지 붙잡을 수 없고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걷잡을 수 없이 흘러 지나가는 인생에 대한 시인의 느낌이다. 그렇게 빠르게 흐르는 세월 속에서 시인은 다시 한번 자신의 실존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다. “나는, 피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시인은 이 시에서 자신을 국화꽃에 비유하였다. 반백이 지나 인생의 성숙기에 들어선 시인은 가을에 피는 국화꽃을 닮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답은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것이 된다. 그냥 피고만 있으면 그것은 조화造花이지 생화生花가 아니다. 생명을 가진 생화는 피었다가 지고 또다시 피고 그러면서 서리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 겨울이 올 때까지 줄곧 꽃을 피우는 것이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깜짝 놀란 밤하늘/ 노란 국화꽃 피우기에 한창이다”. 시인은 불빛에 놀라는 밤하늘의 모습에다가 국화를 통해서 자신의 실존적 가치를 깨달은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추운 겨울이 오는 그날까지 노란 국화꽃 피우기에 한창인 모습이 곧 자신의 실존적 모습인 것이었다.

이 시에서 의인화수법은 아주 기발하면서도 적절하게 쓰이었다. “달아나는 산뒤로 엉덩이 들썩이며 줄줄이 따라가는 가로수/ 목줄 매인 채 끌려가는 전봇대물끄러미 쳐다보는 초승달엉겁결에 놓쳐버린 석양 탓하며/ 잡지 못한 그 무엇 생각하면서 따라간다.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인 것 같다. 사물 하나하나가 살아서 움직이며 인생무상人生無常의 무가내無可奈함과 그러면서도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자아에만 빠져 있는 것이 아니고 주위 사람들의 인생에도 눈을 돌린다. 그러자 그의 눈에는 더 큰 힘에 밀려 실직失職하고 빈주먹으로 서서/ 황량한 들판처럼 무너지는 사람의 모습이 들어온다. “채워주고 싶은 입들 주렁주렁 거느린/ 가장의 한숨 소리/ 넘어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바람과/ 비밀스럽게 사투중인/ 저 무거운 빈손”, 참담한 현실에 마음이 아프지만 시인은 힘든 사람에게 해줄 것이 없다. 단지 그런 암울한 현실을 시로 승화시켜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런 현실을 직시할 것을 호소할 뿐이다.

 

시인의 시선은 좀 더 멀리 한국 최남단의 섬 가파도에도 머문다.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가파도는 아름다움보다 아픔을 담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떨어져 나간 살점

쳐다보기조차 시린데

살아보지도 않고

못 살겠다고 울먹이는 여자 보란 듯

바다는 흰 피를 토하며 울어 샀는다

-「가파도를 지나며」 앞부분

 

제주도 본도本島에서 떨어져 나간 살점인 가파도에 부딪히는 파도가 만들어내는 흰거품, 시인의 눈에는 그것이 가파도가 피를 토하며우는 모습으로 보인다. 유구한 세월 가파도는 자주 단절되는 수난의 역사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왜구들의 약탈이 빈번하여 제주도 주민들은 어장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가파도 어장 침탈은 계속되어 전복과 소라 등 풍부한 해산물을 빼앗겨야 했다.

18세기 19세기에는 소와 말도 방목했지만 그 역시 외래의 약탈을 피할 수 없었는데 영국의 사마랑호가 1840년에 가파도에 무단 침입하여 소를 강탈당해 갔다는 기록도 있다. 해상 방위 목적으로 아예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 정책을 실시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강제로 쫓겨나기도 했지만 반대로 섬을 탈출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도록 하는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이주의 자유가 제한된 사람들은 자유를 빼앗기고 살아야만 했다. 그런 역사를 돌이키며 누가 살자 한 것도/ 누가 살아보라 한 것도 아니라고호소하고 있다.

이제는 방목하던 소떼들 보이지 않고/ 야성을 잃은 목 쉰 갈매기떼/ 목장의 노래도 잊었다”. 하지만 시인은 그렇게 아픈 역사를 가진 가파도에서도 사랑을 본다. “너 또한 누구의 사랑이더냐… 마주 선 눈빛 또한 사랑이어라”. 몇 번이나 떨어져 나가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가파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떨어진 살점 위로 청보리가 피겠지하고 시인은 희망을 본다. 가파도의 명물인 청보리는 그 푸른빛으로 가파도에 생명을 심어줄 것이다.

 

가파도의 푸른 청보리의 색을 닮은 것이 제주도의 애월涯月의 바다이다. 시인은 애월涯月의 바다의 녹색은 그리움의 빛깔이다/ 애월의 바다는 풀냄새가 난다하고 첫 구절을 쓰고 있다.

우리가 보는 바다 색의 진실은 무엇일까? 물은 무색 · 무미 · 무취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순수한 물은 빛을 모두 흡수하기 때문에 색을 띄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파란 바다’는 환상일까? 원리를 따진다면 물은 투명하지만, 바다가 푸른색을 갖는 것은 빛의 마법 덕분이다. (「쪽빛바다 - 그 환상의 바다는 없다! KISTI의 과학향기 칼럼)

바다는 하늘의 색을 담아 푸르다고 한다. 그래서 그 푸름은 남색에 가깝다. 우리 흔히 알고 있는 바다색이다. 그런데 애월涯月의 바다는 녹색에 가까운 푸름이다. 시인은 누군가 쉴 새 없이 밀어 보내는/ 녹색의 잠언들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시인다운 해석이다. ‘잠언가르쳐서 훈계하는 말이다.” 그래서 난해한 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 사랑에 대해 어렵게 해석한 잠언은 많지만 사랑은 더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물가에 앉아 푹 젖어 살자/ 달의 입장이고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물에 빠진 달이 되거나/ 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마음을 긁어 본 사람은 안다고 답을 주고 있다. 즉 상대방의 입장이 돼서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사랑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시인은 사랑이 어렵다고 피할 것이 아니라 사랑에 먼저 빠지라고 호소하였다.

 

내가 먼저 푹 빠져

심장 깊숙이 한 문장 한 문장 새기다 보면

덩달아 초승달도 파도소리에

흠칫흠칫 놀라며

바다 속으로 긴긴 연서를 띄울까

침묵의 소리까지 깨우고 싶어서

내 발목이 젖는다

어두움이 채 오기도 전에

애월이다

가슴 한 쪽이 아릿한

에메랄드 빛 그리움이다

-「애월」 마지막 부분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심장 깊숙이 한 문장 한 문장 새기다 보면초승달이 파도소리에 놀라듯 상대방도 감동되어 연서’-사랑의 마음을 보내줄 것이라고 시인은 믿는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시인은 스스로 바다에 들어간다. ‘내 발목이 젖는다”.

최고의 바다는 색깔로 결정된다고 한다. 애월의 바다는 에메랄드색이다. 에메랄드는 귀중한 보석이다. 그만큼 사랑은 귀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사랑의 그리움을 가슴 한 쪽이 아릿한/ 에메랄드 빛 그리움이다고 말한다.

 

시인 고안나는 위의 시들을 통해서 자신의 실존적 의미에 대해서 사색하였다. 시인을 속박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삶을 위해서 자유를 갈망하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시인은 자신이 갈망하는 자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자유는 어찌보면 더 강한 속박이겠지요.” 그러면서도 자아에서, 본능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충동은 또 다른 탈출이겠지요. 속박을 벗어나려는…

시인 고안나의 자아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곳은 사랑일 것이다.

 

글 출처 송화강』 2021년 3호

 

엄정자 약력: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교원, 길림신문사 기자 역임,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에 재직 중. 동북아신문 일본지사 대표.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대표 겸 회장. 연변작가협회 이사, 일본조선학회 회원. 수필집 『금 밖에 나가기』, 평론집 『조선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새로운 엑소더스』. 제9회 『도라지』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제10회 『동포문학』평론부문 대상.
엄정자 약력: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교원, 길림신문사 기자 역임,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에 재직 중. 동북아신문 일본지사 대표.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대표 겸 회장. 연변작가협회 이사, 일본조선학회 회원. 수필집 『금 밖에 나가기』, 평론집 『조선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새로운 엑소더스』. 제9회 『도라지』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제10회 『동포문학』평론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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