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당께 보내는 편지

- 정암나루 -

 

오늘은 당신께서 임진란의 도가니 속에서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막아 경상우도를 지켜내는 데 큰 자리매김을 한 전투가 있었던 정암나루로 가려 합니다. 6월의 초순이었습니다. 그날 그곳으로 시간을 거슬러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남해고속도로에서 군북 IC를 통과하여 색 고운 새털 모양의 향 짙은 자귀나무 꽃이 핀 길을 잠시 달리면 전통 한옥 모양의 늠름한 의령관문을 만납니다. 진주에서 흘러온 남강 위로 현대식 다리와 오래된 철교가 함께 있어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저는 멋진 관문보다 붉은 옷을 입고 흰 백마를 탄 당신의 모습이 먼저 보였습니다. 관문 옆으로 성벽이 있고 언덕에 정암루가 강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당신의 눈길을 따라 정암루에 올라 늙은 바위를 휘감고 흐르는 젊은 강을 보았습니다. 저곳은 임진란 가장 뜨겁고 강한 의병들의 싸움터가 있었던 정암나루입니다.

정암진 전투는 왜의 수군이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에게 옥포 등에서 대패하자 공격로를 변경하여 전라로 가기 위해 5월 하순경에 함안군에 집결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의 수장은 소조천윤경의 심복인 안국사 혜윤의 부대였습니다.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당신은 왜가 강을 건너기 위해 미리 마른 땅 얕은 곳에 세워 둔 기를 뽑아 진창과 깊은 곳으로 유인하여 복병으로 공격하였다고 《망우당집》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붉은 철릭을 입은 당신의 모습은 참으로 신출귀몰(神出鬼沒)하였습니다. 이 전투는 왜가 전라도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그들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임진란 전투에서 최고로 평가받습니다. 남강은 도도히 흐르고 그 위에 우뚝 선 정암을 바라보니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당신의 모습과 행동에는 남명 조식 선생의 마음이 함께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남명 선생께서 손수 고른 외손서이자 아끼던 제자로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당시 도덕적 수양을 중시하는 성리학 체계 내에서 의(義)의 입지는 경(敬)에 비해 축소되었지만, 남명 선생께서는 경과 의를 동시에 중요시하셨습니다. 남명의 문시는 “경을 함양하고 의로서 단제(斷制)하셨다”라고 한 데서 알 수 있습니다. 남명은 마음 안에서는 경으로써 존양(存養)하고 밖에서는 의로써 성찰(省察)하여 사욕(私慾)을 제거하는 성리학의 수양론을 제시하는 가운데 의(義)의 의미를 규정하셨습니다. 결국 성리학에서의 격물치지(格物致知)는 단순한 지식 습득의 과정이 아니라 실천을 전제로 한 의리규명의 작업으로서 실천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실천성을 중시한 남명 선생의 제자들은 임진란이 발발하자 의병장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 당신께 당시 조선의 성리학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조선 건국의 중심이었던 성리학은 초심을 잃어 일반 백성이 일용할 수 있는 학문이 되지 못하고 소수 지식인에 의한 지식의 독점, 그 지식의 독점으로 인해 민심이 이탈하였습니다. 엘리트 계급은 국제관계나 이웃나라의 정세변동을 파악하는 데 소홀하였고 국가적 위기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재야의 학자 남명 선생은 현실을 바탕으로 유교적 눈을 통해 조선의 길을 찾으려 하였습니다. 그런 남명 선생의 현실 인식이 당신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벗과 이웃이 사는 이 땅을 유린하는 왜적의 분탕질을 용서할 수 없었겠지요. 바른 삶을 살기 위해 아는 것을 실천하는 올곧은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당신이 저는 존경스럽습니다. 저 역시 학문의 길에 마음을 둔 사람으로 앎과 삶의 일치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은 공자와 맹자가 주창한 백성이 하늘인 나라가 아니라 국가권력과 학문이 백성을 지배하고 사대부만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기에 백성들은 나라를 버린 임금을 향해 돌팔매질을 한 것이 아닐까요? 이런 시기에 전 재산을 의병을 봉기하는 데 사용하였던 당신을 생각하면 깊은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는 것을 행하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 이 시대가 바라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입니다.

얼마 전 우리 역사의 슬픈 장면을 보았습니다. 우리 손으로 뽑았던 대통령이 촛불 민심에 쫓겨  스로 지도자의 자리에서 내려왔으며 측근들은 자신만을 위해 힘을 휘둘렀습니다. 이들이 연약하고 힘없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모습은 임란이 터지자 백성을 외면하고 도망간 사대부들과 과연 다른 점이 있을까요? 당신이 이 시대에 계신다면 준엄한 호통을 치실 것입니다. 그 호통 소리가 그립습니다.

당신의 붉은 옷자락이 보이는 정암나루에 섰습니다. 강가에는 도라지꽃이 여름 화단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 아래 작은 꽃잎 한 장이 떨어져 있습니다. 손으로 주우려니 팔랑 흰나비가 되어 날아갑니다. 당신께서 보내신 답장 한 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이 글을 맺습니다. 먼 곳에서 늘 건강하십시오.

 

오이 맛을 알고 싶으면 오이를 먹어 보아야 한다

 

서늘한 새벽공기에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운동장 위로 하늘이 조금씩 높아갑니다. 여행 짐을 싸고 싶고, 시집(詩集)을 사고 싶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그런 계절입니다. 자주 웃고, 자주 고민하고, 더 자주 무엇인가 잊어버리며 강마을의 작은 시골 중학교에서 참으로 어여쁜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가을을 또 맞이합니다. 그는 저에게 서먹한 인사를 나누고 옆자리에 앉아 버립니다. 잊음이 잦은 나이가 되고 보니 곁에 있는 것에 대한 감각이 자꾸만 무디어집니다. 눈 내리는 어느 아침, 지난 계절을 후회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온몸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내 몸의 땀구멍을 열어 두고 솜털 하나하나를 세우며 느껴 보리라 하고 등교를 하니,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학교 운동장 축구골대에 매달려 있습니다. 어젯밤 혼자서 축구 연습을 하였나 봅니다. 가을운동회 준비를 위해 폭풍 드리블로 골대를 향해 달렸나 봅니다. 축구골대 줄에 온몸이 얽매어 있는 것을 행정실장님께서 발견하셨습니다. 학생과 선생님 모두 출동하였습니다. 힘들게 매달려 있는 수리부엉이를 위해 가위를 가지고 줄을 끊어서 자유롭게 운동장에 놓아 주었습니다. 어리벙벙한 녀석은 날개가 상한 모양인지 날아가지 않고 운동장을 배회합니다. 그러니 까치들이 자기 영역을 침입한 부엉이를 향해 뭐라고 항의를 합니다. 한 시간이 지나도 날아가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다친 듯하여 다시 잡아두고 군청에 연락을 하였습니다. 눈썹이 멋진 부엉이에게 반한 학생들은 저희가 키우겠다고 선생님들을 졸라 댑니다.

“수리부엉이는 천연기념물이데이.”

“잡아서 키우몬 벌금이 엄청나데이. 큰일 난데이.”

군청에서 수리부엉이를 데려가고 난 뒤 내내 섭섭하였습니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반가운 손님이 그냥 보낸 듯 아쉽습니다.

학교는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그리스에서는 부엉이를 아테네 여신의 사자로 생각하며 부와 지혜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동전에 부엉이를 새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테네 여신이 데리고 다닌 부엉이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이들은 그 근거로 독일 철학자 헤겔의 《법철학》 서문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아테네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부엉이는 야행성 조류입니다. 이 글에서 아테네 여신의 부엉이가 날아다니는 때인 ‘황혼녘’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황혼은 하루가 끝나가는 시점입니다. 낮 동안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왕성한 움직임이 마감되는 시간입니다. 부엉이는 이때 날아다니며 세상일을 살피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하루 동안 어떠한 사건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부엉이의 역할입니다. 이처럼 지혜란 현실을 꼼꼼하게 살필 때 얻어지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테네가 지혜의 여신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엉이의 역할 때문입니다. 이처럼 지혜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온 감각을 열고 꼼꼼하고 세심하게 바라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세상의 날들은 가을로 접어들고, 그 세상을 사는 저의 시절도 가을입니다. 빳빳하고 물기 많은 푸른 잎은 벌써 황금빛 테두리로 앙상하게 벼리고, 안으로 묵혀야 할 것들이 보입니다. 옆자리 선 짙푸른 신갈나무의 꼿꼿한 줄기가 부럽기도 합니다. 그 마음밭 한 자락을 다독이며 ‘미발지중(未發之中)’이라는 말을 생각하였습니다. 왕양명의 《전습록》을 읽으며 제 마음에 가을햇살처럼 쏟아진 내용입니다. 유관시와 서애 등 여러 제자들이 양명 선생을 모시고 미발지중(未發之中)에 대해 이야기한 일화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양명은 말합니다. “그대가 만일 다른 사람이 보든 안 보든 스스로 몸가짐을 삼가고, 듣든 못 듣든 조심한다면 마음은 순수한 천리(天理)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벙어리는 쓴 오이를 먹어도 그 맛을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다. 그대가 그 쓴맛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스스로 오이를 먹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제자 서애는 스스로 오이를 먹어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앎이자 그 자체로 실천인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인식합니다.

오이 맛을 알고 싶으면 오이를 먹어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지혜도 결국은 그것을 직접 내 몸으로 내 마음으로 느껴야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을 맛을 알려면 그 앞에 내 마음과 몸과 감각을 열고 직접 느껴야 할 것입니다. 저도 오이 맛을 알기 위해 그저 인사치레가 아닌 온전히 온 마음을 다해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의 가을 속으로 나아가는 날로 살아가겠습니다.

지난여름 편지를 반쯤 써 두고 부치지 못하였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소식 한 자락을 전해 보려 합니다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강마을에서 가을 소식을 전합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가을 되시기 바랍니다.

 

수필가 이선애
수필가 이선애

 

 

 

 

 

 

 

 

 

■ 프로필 ■

‧ 등단 : 계간 에세이문예 수필 
‧ 저서 : 강마을 편지 (세종 문학나눔 우수도서), 강마을에서 책읽기
‧ 수상 : 민들레 수필문학상), 문학신문사 작가상 외 다수
‧ 현) 본격문학가협회 남부지회장, 한국문학세계화위원회 경상지부장,
      경남 의령 지정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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