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 동옥 씨

 

우리 아버지 동옥 씨
동옥 씨가 돌아가셨다
긴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은 발뒤꿈치로 
어둠을 밟고 가셨다
간다는 인사도 없이 

동옥 씨- 하고 부르면
예끼- 하면서도 싫어하지 않던 아버지
그가 서 있던 창가에 서서
그가 앉던 자리에 앉아서
그가 보았던 것들이 무엇일까 
처음으로 궁금했다

빨강 아니면 흰색 옷이 좋다던 아버지
비가 갠 날이면 뒷산 솔숲으로 버섯을 따러가시던 아버지
넓적한 잎에 빨간 산딸기를 따오는 날이면 
유독 내 이름을 크게 부르시던 아버지
혼내기보다 먼저 눈물을 보이던 아버지
평생을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형을 기다린 아버지
아버지 세 살 때 돌아가셨다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가 그리워 울던 아버지
두 아버지와 두 어머니를 두고도 갑절로 외롭던 아버지
농사꾼답지 않게 아침잠이 많아 핀잔을 듣던 아버지
내가 태어난 게 너무 좋아 뒤꼍에서 춤을 추었다는 아버지
급히 가면서도 나쁜 기억들은 꼼꼼히 다 챙겨 가신 아버지

아버지 돌아가신 날
가슴을 여며주던 단추가 떨어졌다
아버지와 함께 돌던 마루의 시계가 멈추었다
내가 아주 슬플 때 아버지는 가셨다 
마치 미리 알고계신 것처럼
가슴을 풀어헤치고
더 큰 슬픔으로 그깟 것 흘려보내라고
서둘러 떠나셨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복이 많아
주무시듯 조용히 가셨다고 
오복 중에 하나를 타고나셨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아버지가 나 때문에 서둘러 가셨다는 걸
맘껏 울라고
갈라진 발뒤꿈치로 서둘러 떠나셨다는 걸



나는 뱀이 무섭다
흉측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인간의 주변을 맴도는 그 독함이 무섭다
사랑해서 그랬다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나서
이천년을 매달려 내려오지 않고 있는 예수처럼
언제고 희생의 대가를 요구해 올까 무섭다
사랑은 놓아주는 거라고
창조주의 울타리를 넘다가 다리가 잘리고도 
몸뚱이로 기어이 기어 나가버린 
신조차 끝내 복종받기를 포기한 유일한 피조물의 
고독한 자유가 무섭다
적당히 복종하고
적당히 자유롭겠다는 
인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유를 갈망한 원죄 따위 우습게 여기며
천 번을 밟으면 천 번을 물어뜯겠다고
혀를 날름거리는 
살신적 비타협이 무섭다


늙은 나무의 노래


위로 위로만 곧게 곧게 자라고 싶었지만
때로는 휘어서 때로는 굽어서 가야 했어

풍상에 꺾였다기보다 풍상으로 강해지며
그 방향 그 의지 결코 잊은 적이 없었지

곧게 쭉 뻗은 시원한 길들도 아름답지만
난 굽이굽이 걸어온 이 길을 사랑한다오 


밑바닥


바다에 있지만  
물고기도 물풀도 아니다
바다를 받치는 바닥
바닥 중의 바닥 
바다가 바다인 것은
깊어지고 깊어져 모든 걸 품어주는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산에 있지만 
산짐승도 들꽃도 아니다 
산을 받치는 바닥
바닥 중의 바닥
산이 산인 것은
낮아지고 낮아져 모든 걸 받쳐주는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바닥을 사는 일은 
삶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사는 일
벌거숭이로 다시 태어나는 일
바닥이 두려운 것은
바닥을 바닥이게 하는
밑바닥이 없기 때문이다

 

신데렐라와 유리구두


열두 시가 지나고 새날이 시작될 때
가짜로는 내일을 열 수 없기에
마술에 걸렸던 것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유리구두는 그대로 남았다 
가짜가 사라졌을 때 남아있는 것
그것이 진짜다

신발은 바로 그 사람의 발자취
누군가의 등에 업혀오지도 
누군가의 짐에 얹혀오지도 않은
발을 가진 자의 의지로
어제에서 오늘로 걸어온 고난의 기록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기에
유리구두는 아무나의 것이 아닌 
신데렐라만의 맞춤형구두가 되었다

거짓으로 빛나던 것들이 사라지고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때
나는 무엇으로 남아있을까
시계가 자정을 지나가고 있다
열두 번의 종이 다 울릴 때까지 
도망치지 않겠다
삶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가짜로는 내일을 열 수 없기에 

시인 윤서주
시인 윤서주

 

 

 

 

 

□ 프로필 □ 

․ 학력 :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졸업
․ 등단 : 계간 시원   
․ 수상 : MBC청소년문학상 수필부문장려. 제2회 커피문학상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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