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 다


서랍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웃음, 울부짖지도, 꺼내달라고도 말하지
못하는 사진 한 장
심장과 심장은 정지를 아는 사이

 유리창 밖에는 흰국화 한 송이 입말을 흘리고, 검은 액자 속의 눈빛은
공원을 훓는다

 싸한 네모방의 문이 열리고. 데우지 못하는 냉기가 흐른다 겹겹이 줄지은 국화가
향기 없는 아침을 발하는 날, 이 흰꽃들이 고요로운 정지의 한 점에서 숨을 죽인다
그녀는 육지에서 떨어지고,

 버리고 떠나는 그녀의 모습이 위험하다 큰 폭의 물줄기가 가르면
이 골 깊은 날은
눈에서 멀어지고 마지막 나들이가 된다

공원 벤취에는 받침 없는 말들이 살점 먹힌 초승달처럼 흐른다

 흩어진 진주알을 하나씩 꿰어도 목걸이가 되지 못한다, 그런 날은 공원 한쪽에서
흰 빙인이 걸어나온다


서쪽으로 기운 나무


당신의 웃음소리가 멀리서도 가까이 들려
인파들 속에서 찾았어요

자잘한 얼굴들 사이에서 당신은
왼쪽으로 자꾸 방향을 트네요

두 걸음만 걸어도 
눈은 소 말뚝처럼 또 한 곳에서 멈칫하네요

구골나무 눈시린 흰꽃이 먼저 말을 걸었나요?
당신이 먼저였을까요

꽃은 꽃일 뿐 대기의 흐름을 모르죠

당신없는 구글나무 흰꽃은 
단지 흰꽃이죠

방향을 잊기위해,
하나는 한 방향으로 쓰러졌죠

어둠과 절망이
빛을 얻기 위해 두 손으로 하루를 받아요

구글나무 아래서 이제 달떴던 가슴을
목욕합니다


우울 종자
 

언제부터 일까
세상에 없는 그 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성층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뭉게구름 덩어리이고 꽃받침 없는 수국이
받침대를 들고 서 있다

생각 속에 든다
그놈이 더 깊이 미끄러져 들어온다

사과를 먹고 수박을 덮어쓰고
길쭉한 오이는 빗자루다, 마법사 복장으로 내려다본다
회색구름이 올려다보며 깔깔

면도칼에 베인 살점처럼 두통이 붓는 시간

그놈은 일상을 뒤집어버리고
태울 것도 없는 몸을 굴속으로
끌어들여 안다가 입 맞추다가 밖으로 밀어낸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
햇살이 창에 걸린 구름을 걷어 갈 때야
휩싸여 올라가고 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티브이 볼륨을 키운다

밤새 난행은 한 줄도 없이
미나리꽝에 병아리가 봄을 따먹었다고 이봄 기자가
전.하.고.있.다.

그 구름이 태양 가까이 올라가고 있다


파일 C-19
          

땅의 환부에서부터 올라온 봄이 사람을 보고 웃는다

북쪽대륙에서 막 배달된 상자에는
검은 가루가 도시를 마구 흩뿌림과 같은 
지옥의 발목을 보았다

회색바람이 촉수로 나불대고
기록되지 않은 일지들이 광풍을 휘몰아
짙은 가루는 사람의 얼굴을 병색으로 몰아간다

참자,
忍만 이끌고 걸어가야 하는 부은 목울음이
어디든 나갈 수 없는 한숨이 
뻑뻑하다

어쩌다 지구인의 터에 주인이 불청객이 되었을까

사람을 창살에 가두고, 그립게 하는구나
찐득한 한숨에 꽃이 피면 모란이겠지

밝음과 어둠의 숙제를 
감히 네가?

이곳은 신의 눈만이 막을 수 있는 피조물의 땅이다


화가의 구성법


많은 생각이 오가는 날
운무의 싸인 능선의 끝은 보이지 않고
마산 앞바다가 돗섬을 끌어안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이는 영토일까

섬에서 일어서는 봄동의 여린 잎 숨결이 거칠게 들린다
탁자에 앉아 심호흡을 한다, 허리춤에 드러난 은밀한 사랑놀이
희야와 뛰어놀던 바닷가의 저녁답
소금기에 파닥이는 슬픔처럼 하나 둘 널브러져있다

수레바퀴 속 기억들
어린소녀들이 땅따먹기를 한다. 머리에 얹힌 돌멩이는
내려앉을 곳을 잃어 허공에서 맴돌다 고꾸라진다
그녀는 돌멩이가 떨어진 자리를 자기 땅이라 우기며 그곳에
여러개 방을 그리곤 했다. 여긴 내방, 부엌 옆 큰방은 엄마방

화가가 되고 싶은 소녀, 바랜 물감을 풀어 파도가 내 쉬는 호흡으로 
땅따먹기를 계속한다. 노을이 물던 바닷가에서 소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금기에 절여진 글자들을 헹구어본다

그리움의 이름 석자 ‘김 말희’
나는 지금도 그 바닷가에 쓴 글자를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가만히 되내어 본다

그 날밤 신문에 난 소녀의 이름을 보았다

시인 조갑조의 시 5편
시인 조갑조의 시 5편

 

 

 

 

 

 

 

□ 프로필 □   

․ 부산대 가정과졸
․ 등단 :  문예운동신인상
․ 저서 : 시집 달개비 보랏빛도 그리웠다. 까만 창틀의 선물
․ 수상 : 제1회 고마노시문학상 외
․ 현)한국문인협회, 시인협회, 카톨릭문인협회 회원. 茶강사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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