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권 시인
김정권 시인

사람들은 꽃에게

얼마만큼의 물이 들었기에

꽃이란 이름만 불러도

그 꽃이 웃는다고 하는가

 

꽃이야 웃어서 이쁘고

나비야 울어서 슬프다면

꽃은 나비의 슬픔에 젖어

얼마만큼의 눈물로

바람의 때를 씻었을까

 

해서 나는 저 꽃을 때꽃이라 부른다

 

이슬 묻고

풀때 묻고

노을때 묻어 꽃답게 꽃무릇 함함한

너의 향기를

어느 도공의 손으로 만져

살내음 빚어 만든 한다발의 꽃다발을

이제 먼 나라 너의 하늘에 올린다

 

*           *           *

 

1

 

태평양 남쪽의 어느 한 섬에

유난히 목이 긴 여인이 있다

매일 북녘의 하늘을 바라보다

목이 두루미 목처럼

길어진 여인, 

 

살그니 불어오는 바람에도

그리움 가득 실고 

달빛에라도 묻어가

나를 낳아준

부모님 산소에 엎드려

별같은 눈물 펑펑- 쏟고 싶은

여인은

오늘도 날개 없는 옆구리가

울림통 넣은

첼로의 갈비뼈로 시리다

 

2

 

너를 처음 만날을 때

나는 옆구리에서 넋이 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 바람같은 소리를 잡아

나는 끝내 그 우에 한 수의 시를 얹었다

 

어느 왕조의 진품인가

 

저 하늘 하얀 구름

곱게 이개서 바람의 손으로

빚어올린 백자

 

백설 녹인 유약 발라

아침노을에 구웠는가

 

기-인 목에 흘러내린 빛부심에

하늘 나는 백학도 목을 돌리네

 

오, 섬녀여,

그리하여

나 오늘 널 지구반대편에 세운채

조심스럽게 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건드려야 하는

나의 이 무딘 필의 날침을 용서해다오

 

3

 

저 머리카락은 왜 북향으로 날리는가

 

“꽁꽁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그 옛날 붉은 댕기 매여졌던

노을 물든 머리카락

 

떨어지는 해를

등뒤에 밀쳐놓고

머얼리 북국의 하늘 바라보는 섬녀야,

 

달은 어느 쯤에 이우느냐

 

가을은 그리움의

건널목 지나

마음 먼저 흩어진

머리결 휘날리는데

 

어즈버, 

타는 가슴 까만 마음

어찌 알고 머리카락은

발길 앞서 제 먼저 갈개느냐

 

4

 

보름날 밤이면

눈섭이 흴까봐

창 넘어 달거울만 비쳐보던 이마아래

4월의 물 오른 한 쌍의 버들잎,

 

갈매기야,

너의 날개 닮았다고

시샘하지 말라

 

은하수에 몸을 씻고

조각달로 다듬었다

 

흑진주를 별로 갈아

밤이슬에 반죽하여

두 날개를 섬하늘에

내여준 하늘새

 

펄럭임이 없이도

노을속을 나는 듯

 

5

 

앞내가 시내물이 찰랑대고

뒷동산 살구꽃이 들어와 놀던

 

저 깊은 눈망울 호수에

지금은 무엇이 잠겨있는가 

 

바다가 비치는 물비늘 속에

어찌 모아산이 젖어 우는가

 

보는 이도 듣는 이도 없건만

울려거든 소리나 치며 울것이지

 

언제적 넣어 둔 진달래가

아리랑으로 젖어나오는가

 

6

 

태여나 울어젖히면서

제일 처음 젖꼭지를 물어

엄마를 만들어주었던 꽃말의 문턱,

 

그대, 입술 닫지 마시라

그대 입술은 달빛이슬이

별의 떨림 넣고 찾아오는 집

그 집에서 사는

하얀 치아 사이에 머문

이슬의 언어는

풀꽃의 고운 몸짓으로

그대 가슴에 고인 향기를

안개꽃으로 피우나니

그대,

귀하디 귀한 그 꿀빛미소

너무 아까워 하지 마시라

 

7

 

때까치도 적잖이 욕심내고

바람이 련꽃물 들이던 볼

 

운무가 백설을 입에 물고

입김을 불어넣어 빚은 볼,

반달의 릉선을

백조의 깃털로 쓸었다

 

쳐다보던 백합도

하도나 부셔 아미를 숙이고

허둥대며 달려오던 노을이

부끄런듯 벌겋게 얼굴 붉힌다

 

8

 

별빛이 부딫쳐 짤랑거리는

저 볼우물 속에 과연 누가 사나

 

하늘새 허리 굽혀 들여보다가

아차, 그만 빠지고 말았네

 

심연의 깊이에 침몰된 배

달이랑 별이랑 같이 놀다보니

배는 그만 닻을 잃었네

 

9

 

저 치아에 스쳐 나오는 소리는

과연 어떤 소리일까

 

이슬과 진주가 만나

차분히 젖어가는 꽃바람이 귀에 감겨

가슴 한복판에 스며드는 젖빛음악

 

저기에 시를 스쳐 한 수 젖히면

 

11월의 마지막 날

나는 그대를 알았습니다

나의 시를 랑송하는 그대의 젖은 목소리는

열 띤 내 가슴을 촉촉히 적시기에는

너무나 충분했습니다

그대의 이름을 아직 알기도 전에

나는 그만 그대를 알아버렸습니다

이름보다 더 먼저 내안에 들어온

그대는 내안에서 또다른 시를 잉태시켜

나를 가난한 시인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대가 처음으로 나에게 다가올 즈음,

술잔 속에다 그대의 붉은 볼도 함께

담고 왔습니다

“시가 참 좋던데요. 선생님의 팬입니다”

바로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대와의 만남이라고 할가

인연이라고 할가

나에게 있어서 그대는 언제나 태양의

남쪽이였고

나는 동북쪽에서, 불어오는 남동풍을

그대의 향기로 착각하는 “정신병자”로

되여버렸습니다

어느 날, 눈이 많이 내리였습니다

나는 늘 다니는 서쪽언덕을 올랐습니다

세상은 온통 백설이 뒤덮혀 거대한

백지로 펼쳐져 내 손을 잡아 끌어

시를 쓰게 하였습니다

나는 시를 썼습니다

쓰고 또 쓰며 한수도 지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단숨에 수십수를 쓰고보니

시라는 것이 짜장 세글자인

그대의 이름뿐이였습니다

나는 그대야말로 한수의 시라고 봅니다

눈 위에 쓴 이름은 급방 녹아 없어졌지만

내안의 시는 아직 녹아지지를 않았습니다

당신은 눈이 아니였습니다

자고로 시인은 정신이 나가야 된다는데

나야말로

이제 정말 시인이 돼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를 쓰면서

이처럼 길게 써보기는 처음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어쩌면 윗채에서 붉은 봉투를 받고

이몸 벌겋게 내놓고 웃는 사람들보다

몇줄의 짧은 시에라도 젖어주고

사색을 해주는 사람이 나는 좋은가 봅니다

그대여, 우리는 영원히 만나지 못할수도

있음을 나는 잘 압니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그대를 생각하며

시를 쓴다는 것만이라도 행운인줄 알겠습니다

그대여, 이제 알았습니다

시는 젊음의 것만이 아니라는것을,

그대가 있어 나에게도 시가 있음에,

 

10

 

백조도 부러워 목을 움추린다

 

해빛도 감길 데가 없어

왔다가 조용히 부서진다

 

꾀꼴의 노래도 걸릴 데 없어

사르르 미끌어져 내린다

 

저기 입히는 건 안개꽃 향기

저기에 감겨질 스카프는

오로지 영롱한 오로라뿐,

 

11 

 

영겁의 물이 흘러

다슬고 다듬어진 어깨는

유백색의 대리석 징검돌 하나,

 

손도 없는 물이

어찌 저리 령험할까

 

안개가 은빛망사 드리우면

내물 속에 비친

천연수석이 푸른하늘 떠올린다

 

단풍잎 떠내려가다 스쳐서

얼굴 붉히는 저 물빛언어,

 

해빛이 부서지는 쇄골우로

두만강노을이 치마를 걷어올리고

찰방찰방 걸어간다

 

12

 

꿈의 꽃망울이 부풀어

버들개지 잠자던 별무덤

 

내두산을 넣고

두만강 저고리로

고름을 매였다

 

고름은 항시 부픈 꿈 동여

태양의 북쪽으로 날렸다

 

달 밝은 밤, 달빛아래

달맞이 꽃밭에서

살며시 저고리고름 풀면

저 멀리 북쪽하늘로부터

아기별들 오구구 모여와

젖을 달라 입 다신다

 

13

 

저 젖어요

젖으면 이쁘지 않잖아요

젖힐려면

저의 안면만을 젖히세요

 

저 아파요

아프면 이쁘지 않잖아요

씹을려면

절 골고루 씹어주세요

 

눈물에 절은 저예요

이빨에 아픈 저예요

 

그리고

가슴이 우는 소리를

알겠거든

저하고 물어보세요

 

14

 

고름이 긴 것은

님의 사랑 매기 위함이요

 

소매가 긴 것은

님의 정을 감싸기 위함이요

 

앞섶이 부푼 것은

님의 마음 담기 위함이라

 

고리 고리 저고리

님고리 내고리 내고리 님고리

매고 풀고 풀고 매는 사랑일세

 

15

 

딱 그저 모아산처럼 솟은

하얀 브래지어 옆에다

흰 팔을 가볍게 놓으면

백사장의 쪽빛파도

베개인줄 알고 할딱이며 오다가

한발 빠른 흰구름에 밀리여

어푸러진다

 

저기에 닿으면 구름도 집을 짓고

돌고래도 잠들어

코릉코릉 코를 곤다

 

16

 

스므세해전 엄마의 손을 떠나

매일 가슴에 올려 기도하던 손,

 

그런 두 손을 모아 대비면

하늘 몇점 담긴다

 

어느 사이

갈매기 한마리 날아와

조약돌같은 알을 부화한다

 

해살이 젖은 털 말리워주면

하얀 날개 퍼덕이다

저 멀리 북쪽바다로 날아간다

 

아기갈매기는 섬녀의 온기를

날개우에 싣고 바다를 마신다

 

17

 

바람의 혀가 다듬어놓은

사하라 사막의

은빛 언덕아래 작은 홈,

 

날아가던 금빛봉황이

진주를 물고 가다

톡- 하고 떨군 자리

 

저녁이 노을 먹은 이슬 굴리면

똑또르르 들어가 잠자는 곳

 

풀잎 한잎 떨어져

광환의 기둥우에 이영 얹는다

 

18

 

미리내서 목욕한 보름달이

구을러 갔는가

 

아니면 청라의 언덕에서

흰구름 놀다 사라졌는가

 

우유병 쏟아져 등곬 흘러

슬며시 기대 앉으면 

흰 벽에 그려지던 꽃나무,

하얗게 줄기되고 꽃이되여

호랑나비를 부르누나

 

19

 

여기까지 내려 오면서

필이 잠깐 멈춰지는 까닭은

함부로 속옷까지 벗기야 하는

나의 상상의 무례함이 아닐까

하다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모든 그리움은

겉이 아닌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만

 

그러므로 이 글의 주인이신

먼 곳의 섬녀여,

그대 허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숨은 령혼을 끄집어내려는

나의 무모한 짓거리를 용서하지 말라

 

 

아직 씨 뿌리지 않은

황토 더기밭,

칠성별 가대기에

누가 은보습 끌고 내려갔나

 

씨붙임이 되지 않는 땅이지만

비물이 흘러 내려가는 곬은

만물의 성장에 뒷받침의 저장고

 

달의 릉선을 닮아

언제나 어두운 뒤골목에서

커다란 달항아리로 서있다

 

20

 

태양도 쉽사리

오지 못하는 불멸의 언덕

그 곳엔 비옥한 옥토가 있어

숲은 어둠의 진실을 먹고

푸른 욕망의 그믈을 짠다

 

그 그믈에 걸려

새들의 노래가 할딱이는 날이면

한껏 부픈 꽃이 가슴 열어

우주의 빅뱅을 몰아온다

 

계곡에 내린 노을은

입었던 안개구름 다 벗어

천혜의 빛고을에

칠색의 무지개를 피워올린다

 

21

 

신비한 궁, 오묘한 집,

 

그리움의 옆구리

허전하기도 하다

 

아무에게나 선뜻

열어주지 않는

철옹성의 성문은 함구무언,

 

붉은 신호등 아래

바람은 입술 말린다

 

툭툭툭

심장을 두드리는

범나비가 문을 노크해야만

빗장이 열리는 지하벙커

 

그 속엔 불 달린 작약(꽃)이 있어

팡 - 터진다  

 

아, 두고 온 꽃잎이여! 고향이여!

 

22

 

자작나무의 꽃말이

“당신을 기다릴게요” 라면

나는 자작나무 될 게요

 

누구도 보지 않는

섬나라 심산 속에서

바람에 그 어떤 슬픔이

묻어오더라도

나는 맑은 이슬로 몸을 씯고

구름저고리를 입고서

안개치마를 들고서

쏟아지는 햇살에

다리를 하얗게 말리울 거예요

 

23

 

로댕의 손에 다듬어진

쌍둥이 봇나무 다리에

아침안개 사르르 치마를 입힌다

 

가만히 서있으면 고운 결따라

바람의 이쁜 음악이 살랑이고

걸으면 무지개빛 사이로

잿빛두루미 리륙을 시도한다

 

해빛도 자주는 놀러오지 못한

저기에 소곡(小谷) 하나 있어

푸른 이끼를 젖히는

신천(神川)이 꿈의 향연 심는다

 

24

 

발아, 물어보자

 

몸이 먼저 오자했나

네가 먼저 오자했나

 

마음 먼저

앞선 네가 아니라면

널 탓해 뭣하랴

 

오늘도 발톱눈은

북녘땅 보고 있구나

 

25

 

이제 가라 하면 못가겠고

살라 하면 더욱 못살겠고

 

타향도 오래 살면 고향이라

이젠 하늘도 내 하늘

땅도 내 땅이라

 

신고 왔던 코신만에다

고향 그리는 마음 담아

태평양에 띄우노라

 

26

 

벗어놓으면 밤안개가

창호지구멍을 비집고 들어와

시린 잠을 자고

신으면 아침햇살이

흰토끼인양 뛰여와서 기댄다

 

꿈결에는 목을 열고

이쁜 새끼도야지가 걸어나와

이불속을 파고들어 선홍빛혀끝으로

발바닥을 간질이면

양산을 쳐들고 나간 섬집녀인

버선발로 구름위를 사뿐사뿐 걷는다

 

그러다 꿈을 깨면 고향의

그리운 님 오신줄 알고서

시비랄 열다 문턱 걷어찬다

 

  *            *          *

 

동백은 피고

구름은 높고

 

배고동 울고

갈매기 울고

 

비행기 날고

하현달 뜨고

 

섬이 울면

나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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