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옥란 약력 : 중국 오상현 출생, 연변대학 졸업.  서란시와 장춘시 조선족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퇴직), 현재 재민일보 편집. 수필, 칼럼, 논문 수십 편 발표.
황옥란 약력 : 중국 오상현 출생, 연변대학 졸업. 서란시와 장춘시 조선족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퇴직), 현재 재민일보 편집. 수필, 칼럼, 논문 수십 편 발표.

‘쌀독에서 인심 난다’란 말이 있다. 둘러보면 자신이 넉넉해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신이 넉넉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배려’는 인간의 최고 경지로서 가진 게 많아서도 아니고, 자신이 넉넉해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데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여유’란 물질, 공간, 시간적으로 넉넉해 남음이 있어야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나에게도 필요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필요할 때 내 것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 주는, ‘따뜻함’이 아닐까 싶다. 편견 없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로는 거침없이 내뱉을 수는 있으나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 것이 바로 ‘배려’다. 

언젠가 읽었던 한 단편소설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다. 저자는 남미 브라질에 자원봉사 갔다가 길거리에서 한쪽 다리가 불편한 분이 커피 한잔을 얻어서 마시려다가 자기보다 더 어려운, 두 다리를 다 못 쓰는 분에게 그 커피를 넘겨주는 장면을 봤다. 어렵다 보면 주변을 돌아보기 어려운데 자신의 처지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살피는,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해지는 따뜻함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런 것이 배려다. 

배가 몹시 고팠는데 마침 먹을 것이 생겼을 때, 등에 업혀 빽빽 우는 아기보다 내 입에 먼저 넣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배가 등에 붙었지만 먹을 것을 아기 입에 넣는 엄마라면 그 엄마는 진정 인간다운 엄마인 것이 아닐까. 

하루는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꾹꾹 눌러 담아서 배출시간 맞춰 클린하우스로 갔다. 쓰레기를 정리, 정돈하는 할머니는 묻지도 않는 말에 “아직도 사람들은 쓰레기를 분리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버리니깐 일이 너무 많아요”. 방금 전에 누가 쓰레기를 버리고 간 뒤 그 뒷정리를 하면서 넋두리를 한다. 

클린하우스를 나와 집으로 오는 발길이 무거웠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국제자유도시다. 무비자 입국 정책으로 외국 사람들도 자유롭게 오간다. 경제 활성화 등 여러 이유가 있었다고 들었다. 다만 이를 수용할 자세까지 법이나 제도로 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유롭게 드나드는 세계 각국 나라 사람들이 개개인의 소질 또한 천차만별이다. 잘난 사람은 너무 잘랐고 못난 사람은 너무 못났다. 못난 사람과 부딪쳤을 때 어떤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까? 못난 사람들이 하는 그 언행에 편견을 앞세우지 말고 대화를 해야 한다.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럴 때는 그림, 손짓 등으로 다음번에는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지 못하도록 안내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04만 원이란 월급을 바라보고 6개월 만에 겨우 한 번 차례진 클린하우스 지킴이할머니에게 아직은 그런 여유가 있을까. 

‘글로벌 사회’(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사회)를 강조하고 있지만 진정 글로벌 사회로 들어서기엔 아직 한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서로가 어울려 살아가기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즈음이기는 하지만 코로나19가 하나의 시험대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서로를 살필 거리가 생겼다. 상대의 여하를 막론하고 따뜻함을 갖고 편견 없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상대방의 좋은 점을 알아보고 따뜻하게 받아주고 편견 없이 나의 ‘좋은 방식’으로 상대를 동화시킬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인간들은 서로 어울려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제주에서 예멘 출신 남성과 결혼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난민 신분으로 제주에 와 우여곡절 끝에 자리를 잡은 사람이다 보니 주변의 반응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둘이 좋다는데” “잘 살기만 하면 되지” 누군가는 진심으로, 누군가는 지나가는 좋은 말로 그들을 축복했을 일이다. 그리고 아주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노파심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사회는 그들의 삶처럼 어우러지고 엮일 것이다.  

코로나19가 가로막고 있다고 하지만 인류사회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글로벌 사회를 향해 총알처럼 달려가고 있다. 여하를 불문하고 서로가 서로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직장이나 가정에서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배려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더 따뜻하고, 다채롭고,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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