複合象徵詩 감상과 이해

『詩감상과 이해

종(鐘)

김현순

 

 

억겁 전생이 소리로 응고(凝固) 되어

새벽을 연다, 떨리며 퍼져나가는

어둠의 날개엔

보드라운 아픔의 분말(粉末)

꽃잎에 풀잎에 이슬이 눈 뜬다

허공에 떠있으면서도 지축(地軸) 향하여 입 벌린

침묵의 궤적(軌跡)

기다림 흔들어 깨우는 햇살의 손가락이

이끼 푸른 고요를 더듬는다

사랑과 이별의 무상()함이 아수라의 발목에

파도 되어 감길 때

바람처럼 구름처럼 영() 넘어 떠나가는

의미들의 메시지

기억 건너 멀리서 별 되어 깜박이면서

부서져라 으깨져라 그리고 물이 되어 다시 흘러라

염주(念珠) 굴려 시간 빚는다

나무아미타불, 합장하는 손바닥 틈새에

, 드리워 있고

놋쇠의 역사가 하늘 되어 바다의 사막

잠재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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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의 사명은 소리의 울림이다. 세상 섭리에 대한 울림으로써 잠든 영혼을 일깨워 영겁의 진리를 인지(認知)시키는 거룩한 존재로서의 이 시의 제목은 심오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어찌 보면 삶이란 수 천겁(數千劫)의 윤회(輪回)속에 가장 진실한 오늘과 래일을 열기 위한 모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눈물 어린 사연들이 한데 엉켜 진리의 문을 연다. 이 시의 본문 첫머리에서 억겁 전생이 소리로 응고(凝固) 되어/새벽을 연다는 표현은 그래서 시작된 것이다.

밝음을 찾아가는 길은 고통의 길이며 인내의 길이다. 그러한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흑암이 선물한 까만 두 눈동자로 광명을 찾아가는 인간에겐 그 작업이 떨리며 퍼져나가는 아픔의 분말(粉末)”이지만 그것들은 사금파리마냥 반짝이는 즐거움의 편린으로 자체의 존재에 가격을 매겨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하기에 꽃잎에 풀잎에 이슬이 눈 뜨는깨달음으로 세상은 존재의 가치에 입 맞추며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살다 보면 때로는 이렇게 저렇게 소외되거나 허탈감 또는 좌절의 시련을 겪게 되지만 아무리 어려움에 처해있을지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은 지극히 말없는 집착으로 영혼을 갈고 닦는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화자는 이에 대하여 허공에 떠있으면서도 지축(地軸) 향하여 입 벌린/침묵의 궤적(軌跡)”이라고 상징적 표현을 펼쳐 보이고 있다. 또한 그러한 삶에서 역전(逆轉)의 현실을 맞이해오기 위하여 자아성찰의 경지를 가꾸는 것을 기다림 흔들어 깨우는 햇살의 손가락이/이끼 푸른 고요를 더듬는다는 표현으로 능동적가시화(能動的可視化) 된 이미지변형을 시도하고 있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고 나면 헛것이 되고 그리움과 즐거움과 욕망의 현실은 잠시 들렸다 가는 이 세상에 결국 형체없는 향기로 부서져버리게 된다는 사상이 순간이나마 화자의 내심을 지배하고 있다. 이에 대한 내심발로의 표현을 화자는 사랑과 이별의 무상(無常)함이 아수라의 발목에/파도 되어 감길 때/바람처럼 구름처럼 영() 넘어 떠나가는/의미들의 메시지로 이념의 이미지화 변형을 통한 장면의 흐름으로 펴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간, 그런 실재의 이념에서 새로이 희망과 신념으로 가슴 불태우는 것을 기억 건너 멀리서 별 되어 깜박이면서라고 읊조렸으며 그로부터의 해탈과 그에 상응한 연마의 과정을 “/부서져라 으깨져라 그리고 물이 되어 다시 흘러라/염주(念珠) 굴려 시간 빚는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자세에 순종의 깃발을 높이 추켜올린다.

더욱 큰 그릇으로 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 있다. 하기에 화자는 나무아미타불을 읊조리고 있으며 그런 자세, 그런 노력의 댓가는 필연코 밝은 미래를 맞이해오게 된다는 것을 합장하는 손바닥 틈새에/, 드리워 있는것으로 은유적 표현을 비쳐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은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의 대변적 상관물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인생을 엮어나가려면 화려한 꽃밭 같은 또는 동화적인 아름다움 보다는 상흔으로 얼룩진 삶의 세례(洗禮)는 필연의 산물로 될 것이므로 화자는 <놋쇠의 역사>에 비겨 읊조리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분투의 삶이어야 만이 행복에로의 실천을 이룩할 수 있으므로 역사의 하늘이라는 정의를 최종적으로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을 흔히 달관의 경지라고 일컫기도 한다. 세상의 풍상고초를 다 겪어온 사람만의 정처없은 구름의 속내를 알 수 있듯이, 거대한 그릇의 바다에게도 때로는 존재하는 사막의 삭막하고 피폐함을 무마할 수 있다는 철리적 이념을 화자는 이 시의 마무리 부분에 가서 놋쇠의 역사가 하늘 되어 바다의 사막/잠재워둔다라는 표현으로 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 볼 때 이 시는 읽어볼 의미가 있는 시임에 틀림이 없다.

(해설: 나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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