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작가 문학 특집'으로 채운산의 중편소설 '귀(归)' 와 최민 평론가의 "몸의 은유와 생명의 귀환"이란 평론을 싣는다.

채운산 소설가는 일찍 연변문학 주필 등을 역임해 왔고, 현재는 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부 주임으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왕성한 소설창작을 통해 조선족 소설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선후하여 중단편소설집 “두만강에 살어리랏다” 등을 출판하였고, 연변작가협회 김학철문학상과 동북3성 조선문간행물 우수 주필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으로 당선되어 편집과 창작, 사회적 활동 등을 아우르는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의 소설은 흔히 사회적 문제들을 모티브로 다양한 소설적 기법을 통해 그 답을 찾고자 모지름을 써온 흔적이 역력하다. 중편소설 귀(歸)도 마찬가지로 “몸의 은유와 생명의 귀환(최민 평)”을 통해 “에코페미니즘의 사상(환경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의 사상을 통합한 생태여성론)”을 보여준 역작이라겠다.

따라서 본지는 한국 소설문단과 재한조선족 소설문단 간의 교류에 이바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소설을 싣는다.

이 소설의 중국조선족 조선어문 표기법을 그대로 두었음을 양지 바란다.

편집자 주

채운산 약력 :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선후하여 중공연변주위 《지부생활》잡지사 편집, 《청년생활》 부주필, 《연변문학》 주필 력임. 현재 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부 주임. 중단편소설집 “두만강에 살어리랏다”를 출간. 연변작가협회 “김학철문학상”, 《길림신문》두만강문학상 소설본상, 제5회 중국조선문신문출판문화대상 우수편집상, 제1회 동북3성(북경)조선문간행물 우수 주필(총편집)상 등 수상.
채운산 약력 :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선후하여 중공연변주위 《지부생활》잡지사 편집, 《청년생활》 부주필, 《연변문학》 주필 력임. 현재 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부 주임. 중단편소설집 “두만강에 살어리랏다”를 출간. 연변작가협회 “김학철문학상”, 《길림신문》두만강문학상 소설본상, 제5회 중국조선문신문출판문화대상 우수편집상, 제1회 동북3성(북경)조선문간행물 우수 주필(총편집)상 등 수상.

 

1

 

녀자 나이 사십이면 중년의 문턱에 올라섰다고 할수 있다. 마치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여난 봄을 지나 푸르름이 뚝뚝 흐르는 여름을 거쳐 노랗고 빨간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가을에 들어섰다고나 할가? 세월의 년륜이 다분히 묻어나는 중년의 녀인은 울긋불긋한 빛갈들이 야단스럽게 뒤섞여있는 산야처럼 흐무러지게 농익은 아름다움을 둠뿍 뽐낼 뿐만아니라 중후한 멋도 물씬 풍긴다. 그래서 성숙의 나이인 중년을 일컬어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헌데 공자님의 이 말씀이 누구에게나 다 들어맞는 건 아닌 것 같다.

얼마전에 나와 남편은 리혼하였다. ‘사십이불혹’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그만 “미혹”되고 말았던 것이다. 남편의 리혼사유는 아주 간단하였다. 내가 피부색이 검다는 것이였다. 이른바 “까마귀의 사촌”같다고 한다. 게다가 눈가에 생기기 시작한 주름도 까마귀발 모양같고 말소리도 까마귀가 울어대는 것 같이 징그럽단다. 그래서 싫단다. 덜미가 난단다. 하긴 인젠 까마귀 알 물어다 감추듯 깜박깜박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남편이 나를 내가 제일 싫어하는 까마귀에 비하는 것이 화가 나고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나는 단연히(?) 리혼장에 도장을 찍었다. 물론 남편이 진작 염통에 바람이 들어 다른 녀자의 치마폭에 감싸인 걸 모르는 바는 아니였다. 미운 사람 고운데 없고 고운 사람 미운데 없다고 사람이란 일단 밉게 보이면 발뒤축까지 밉게 보이는 법이다. 나도 남자라는 게 멋대가리없이 배추줄기처럼 하얗고 빨래줄처럼 멀쩡하게 길고 비쩍 마른 데다가 색에까지 밭은 남편이 싫었다. 어차피 둘 사이에는 아이도 없다. 그것이 남편이 외간녀자를 사귀는 데 빌미를 제공하여 주었고 나 또한 녀자로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여 눈을 감아주었다. 사실 남편도 나도 생리적으로 아무런 하자도 없다. 헌데 귀신이 조화인지 아니면 하늘이 린색하여서인지 결혼후 도무지 태기가 없었다. 그래서 남편의 그 리유같지 않은 얼토당토않은 리유를 구태여 트집 잡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주었다. 결국 까마귀 게 발 던지듯 남편한테 보기좋게 채운 셈이였다. 하지만 왠지 속은 편하고 홀가분했다.

나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오래동안 내 몸을 옭아맸던 굴레에서 벗어나니 시나브로 자유를 만긱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직장에 휴가를 냈다. 헌데 정작 홀로 관광이라도 떠나자니 어쩐지 객적고 청승맞아보였다. 구질구질하고 궁상스럽고 볼썽사납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집에만 죽치고 있었다. 매일 TV하고만 씨름하면서 키득거리기도 하고 찔끔찔끔 눈물을 짜기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쏘파에 동그라져 퍼질러 자군 하였다. 문득 잠에서 깨여나보면 머리는 닭둥우리처럼 부시시하고 눈가에는 잠자리가 알을 쓸어놓은 것 같은 누르끼레한 눈곱이 꼬질꼬질하고 입가에는 느침자국이 허옇게 달라붙어있었다. 심지어 며칠 사이에 몸무게도 몇키로그람이나 불어 허리살이 뛰룩뛰룩하고 엉덩이도 부얼부얼 살이 쪄 시골아낙네처럼 덜퍽하였다. ‘홀가분함’과 ‘자유’는 결국 게으름을 불러왔고 그 게으름은 정신을 흐려놓았다.

그 날도 내가 TV를 보다가 리모컨을 손에 잡은 채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이몽가몽간에 핸드폰이 울렸다. 후닥닥 놀라 손등으로 입가에 흐른 느침을 닦으며 핸드폰을 집어들고 확인해보니 오산진(乌山镇)에서 문화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는 대학동창생 허성주였다.

여보세요? 총각 관장님이 어쩐 일이예요? 혹시 결혼식이라도 올리는가요?”

나는 잠이 채 깨지 못해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짝짝 해대면서도 지꿎은 장난을 쳤다. 허성주는 마흔이 되도록 아직 싱글이였던 것이다.

결혼식은 무슨 말라빠진 결혼식이요? 녀자도 없는 놈이.”

이때까지 녀자 하나 꼬시지 못하고 뭘했어요? 혹시 머리 깍고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려는 건 아니지요?”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소. 허허허.”

하긴요. 저도 가끔 비구니가 되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속세의 삶이 신물이 나요.”

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였다.

이거 민간문예가협회에서 일하더니 귀신이 다 되였구만, 싸나락 까먹는 소리만 하는 걸 보니. 그나저나 듣자니 조선족장례문화에 관한 책을 집필한다면서?”

네, 저는 장례문화에 관한 사진을 맡기로 했어요. 글은 다른 분이 쓰구요.”

이번에 문련(文联)에서 성급무형문화재프로젝트로 조선족장례문화에 관한 책을 펴내기로 하였는데 사진작가인 내가 사진재료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그럼 우리 오산진에 한번 내려오오. 내가 관련재료들을 제공할테니. 혹시 직접 현장에서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오.”

좋아요. 그렇잖아도 집에 들어박혀있기가 지긋지긋했는데… 래일 오산으로 내려갈게요.”

전화를 끊기 바쁘게 나는 쏘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치 홍두깨에 꽃이 피기라도 한듯 적막하리만치 가라앉았던 기분이 모름지기 붕- 뜨며 저도 모르게 코노래가 흥얼흥얼 흘러나왔다. 따라서 괴괴한 정적이 감돌던 방안에 들썩들썩 활기가 넘쳤다.

이튿날 나는 차를 몰고 오산으로 향했다. 오산은 내가 몇번 다녀온 터라 길이 별로 낯설지 않았다.

연변과 목단강 접경지대에 자리잡은 오산은 두메산골이였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데다가 돌이 지천에 널려있어 예전에는 돌골(石沟)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처음 이곳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조선에서 월강한 조선인들이였다. 청정부에서 두만강 북부의 광활한 지역에 대한 봉금령(封禁令)을 해제한 뒤인 1920년대 중기 조선의 종성에서 살던 윤씨네 일곱세대가 남부녀대로 두만강을 건너와서 화전을 일구면서 마을이 생겨났다. 그후 월강을 한 조선인들이 목단강 지역으로 가다가 이곳에 들려 하루씩 묵군 하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비록 돌이 많아 한전농사만 짓지만 청정부의 단속이 미치지 못하여 강냉이나 감자라도 배불리 먹을수 있는 돌골에 눌러앉았다. 하여 마을은 점차 커져 20여세대로 불어났다. 그들은 대부분 함경북도에서 온 사람들이였는데 쌀에 뉘처럼 전라도나 충청도에서 온 화전민들도 섞여있었다.

그러다가 “9.18”사변 이후인 1930년 중기의 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는 일본놈 몇이 사닥다리처럼 생긴 이상한 물건을 들고 나타났다.(그것은 사닥다리가 아니라 측량기였다.) 그들은 ‘사닥다리’를 둘러메고 며칠 동안 산속을 쏘다니더니 저마다 배낭에 돌멩이를 가득 짊어지고 사라졌다. 마을사람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불길하기도 하여 마음을 졸였다. “저눔들이 뭘 하려고 돌멩이를 주어가누?”, “이곳도 일본아덜의 천하가 되는 게 아닌겨?”, “그라게 말이우, 웬지 꿈자리가 어수선하더니… 미친 놈들, 돌멩이를 주어다 밥을 해먹으려나?”… 마을사람들은 언거번거 씩뚝거렸다. 과연 그들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한달후, 일본군과 역부들을 꽉 박아실은 군용트럭이 마을에 들이닥쳤다. 이른바 광산을 개발한다고 하였다. 그러고보니 한달전에 마을에 나타났던 일본놈 몇은 광산기술자들인 셈이였다. 일본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곳에 묻혀있는 광석을 략탈하려고 광산개발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그바람에 마을은 아닌게 아니라 “일본아덜의 천하”가 되였고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더욱 끔찍스러운 것은 광산개발에 내몰린 역부들이 갱내에서 작업을 하다가 심심찮게 죽어나갔는데 일본놈들은 잔인하게도 시신을 골짜기에 무더기로 처넣고 그대로 묻어버렸다. 주검이 점차 많아짐에 따라 까마귀떼가 까욱까욱 음울하게 울어대며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일본놈들이 아무리 총을 쏘아 쫒아도 까마귀떼는 좀처럼 물러가지 않았다. 역부들의 주검은 날로 늘어났고 까마귀들은 점점 더욱 성하였다. 그때로부터 이곳은 돌골(石)이 아니라 까마귀 오() ()를 붙여 오산(乌山)으로 불리우기 시작되였다. 즉 까마귀가 많은 고장이라는 뜻이였다.

  • 더불어 오산은 인구가 늘어나고 각가지 시설물들이 들어앉아 자그마한 시가지로 탈바꿈하였다. 광석을 실어나르기 위해 철길이 부설되고 잡화점, 식당, 시장 심지어 기생집까지 생겨났다. 거리는 다부산즈나 치포를 입은 사람들과 기모노를 입고 게다를 딸깍거리니는 사람들, 하얀 두루마기나 치마저고리를 입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왁자지껄 떠들썩하는 소리와 사구려소리가 그칠새없었다. 밤이면 등불을 환히 밝힌 기생집 문앞에서 치포를 입은 녀인들이 허벅지를 훤히 드러내고 요염을 떨며 호객행위를 하였는데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인이였다. 그리하여 두만강을 건너온 조선인들이 첫 괭이를 박았던 땅은 다국인이 공존하는 곳으로 변하였다… 광산은 해방후에도 계속 생산을 유지하다가 지난세기 90년대초에 광맥이 다하는 바람에 페광이 되였다. 지금은 갱을 테마관광동굴로 만들어 오산의 력사를 보여주는 관관명소로 탈바꿈시켰는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꼭 들려보는 관광코스의 하나로 되였다. 인젠 많은 세월이 흘러 광산도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사람들도 바뀌였지만 오산이라는 지명만은 여전히 남아있다.

오산진에 들어서니 시가지도 하늘도 재빛으로 안겨왔다. 아직도 바람이 불면 돌가루가 펄펄 날렸는데 들쭉날쭉한 층집들과 단층집들이 마치 키재기라도 하듯 우중충하게 들어앉은 거리는 먼지를 뽀얗게 들쓰고 있었다. 게다가 전선주나 나무가지, 지붕에 가담가담 까마귀들까지 떼를 지어 앉아 시도때도없이 까욱까욱 울어댔는데 바람에 날려온 검은 비닐쪼각을 방불케하였다. 여기에서는 아직도 모든 걸 까마귀와 련결시키고 있다. 간판도 까마귀 “오()자가 들어간 게 많고 별명도 그렇고 사람을 욕해도 “까마귀같은 놈”, “까마귀 같은 년”, “까마귀 밥”, “까마귀 똥”… 등 까마귀를 곁들인다. 예전에는 사처에 까마귀똥이 널려있어 주민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일이 집앞의 까마귀똥을 쓸어내는 것이였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래서인지 온 시가지에 쿰쿰한 냄새가 진동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비해 까마귀가 많이 적어졌다. 환경오염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에서인지 날따라 감소되고 있는 추세이다.

진문화관 앞에 이르니 허성주가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경적을 빵빵 울려서야 그는 나를 알아보고 피우고 있던 담배를 엄지와 식지로 탁 튕겨 멀리 날려버리고는 차께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내가 차창을 내리자 그는 헤벌쭉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이거 화려한 미녀의 화려한 외출이구만.”

만나자부터 비행기를 태우지 말아요.”

그럼 달구지를 태울가? 덜그덕덜그덕!”

아이참, 얼른 차에 타기나 해요. 그 빤지르르한 입으로 왜 녀자는 꼬시지 못했대요?”

지금 녀자들은 다 백로들이요. 겉만 희고 속은 거멓다오.”

허성주는 차문을 열고 조수석에 타며 실떡거렸다.

그럼 허관장은 까마귀인가요?”

이를데 있소. 난 겉은 까매도 속은 눈덩이같이 하얗다오.”

호호호, 그렇듯한 궤변인데요. 그나저나 려관부터 잡아야지요.”

걱정 붙들어매오. 예로부터 길손들이 묵어가던 곳인데 아무려면 머무를 곳이 없겠소?”

나는 허성주가 안내하는 대로 차를 몰았다. 진소재지의 중앙을 뀌질러가다가 골목을 꺽어드니 시장이 나타났다. 그 시장 맞은켠으로 뻗은 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니 옛건물들이 오밀조밀 들어앉은 골목이 눈앞에 펼쳐졌다. 청기와를 얹은 조선식 목조건물, 아담한 일본식 다다미방, 솟을 대문을 해세운 중국식 사합원… 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지난 세기 20,30년대로 돌아간 듯하였다. 아직도 이런 옛건물이 남아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였다. 허성주의 말에 의하면 이 거리는 정부에서 오산의 관광코스 하나로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돌담을 둘러친 조선식 한옥 앞에 이르러 허성주가 차를 세우라고 하였다. 내가 차창을 통해 힐끗 대문 이마에 달려있는 간판을 확인하니 “오산식당”이라고 씌여있었다.

여기는 식당이 아닌가요?”

식당과 려관을 겸해서 운영하고 있소. 앞채는 식당이고 뒤채는 려관인 셈이지.”

나는 차에서 내려 허성주의 뒤를 따랐다. 식당을 에돌아 뒤울안에 들어서니 자그마한 뜰이 나타났다. 뜰에는 제법 나무도 심고 화초도 자라고 분수대도 있었다. 그리고 한쪽 옆에 정자가 만들어져있었는데 거기에는 지팽이를 짚은 한 안로인이 우두커니 앉아서 해볕쪼임을 하고 있었다. 한일자로 가리마를 반듯하게 내서 뒤통수에 쪽진 하얀 백발,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말해주듯 바싹 마른 가랑잎처럼 볼품없이 움츠러든 몸, 후들후들 떨고 있는 손과 다리… 보아하니 년세가 퍽 드신 것 같았다.

인기척소리에 안로인은 고개를 들어 우리쪽을 바라보았다. 헌데 갑자기 안로인의 부잇한 눈이 반짝 빛나더니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마치 둥지에 웅그리고 앉아있던 까마귀가 푸드득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어… 엄마, 엄마!…”

안로인은 지팽이를 팽개치고 엎어질듯 우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왔다.(기실 안로인은 달려왔던 것이다.) 나와 허성주는 어마지두 놀라서 그만 어안이 벙벙해졌다.

엄마… 엄마 왜 인제야 왔수?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안로인은 다짜고짜 내 품에 와락 안겼다.

나는 안로인의 생게망게한 행동에 그만 아연실색하여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 어쩔바를 몰랐다. 하지만 안로인은 지꿎게 내 팔을 부여잡고 쪼글쪼글한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채 계속 넉두리를 하였다.

엄마, 어서 날 데리고 가주, 양 엄마!”

허성주가 나서서 나를 가로막으며 안로인을 달랬다.

할머니, 이분은 할머니 엄마가 아니라 연길에서 온 사진작가랍니다.”

하지만 안로인은 막무가내로 내 몸을 어루만지며 고집을 부렸다.

아니우, 우리 엄마요, 우리 엄마라니까.”

내가 한참 진땀을 빼고 있는데 려관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녀인이 득돌같이 뛰여나왔다.

으이구, 이 로인네가 또 발작했군, 어마이, 누굴 보고 엄마람둥? 정신 좀 차립소.”

녀인은 면구스러워하며 얼른 해석했다.

손님, 미안해요. 우리 시어머님인데 치매끼가 있어서 이래요. 량해해주세요.”

그리고는 억지로 안로인을 끌고 려관으로 들어갔다. 안로인은 저춤저춤 걸어가면서 고개를 돌려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 눈빛은 그토록 애절하고 그 부름소리는 그토록 처절하였다. 마치 먼길을 떠나면서 엄마와 헤여지기 아쉬워하는 어린애를 방불케하였다.

엄마, 엄마!…”

혼비백산한 나는 털썩 땅바닥에 쪼크리고 앉았다. 마치 금방 귀신과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등골에서 식은땀이 쫙 흐르며 전신이 후들후들 떨려났다. 허성주가 얼른 나를 부축하여 정자에 데려다 앉혔다. 나는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참 마음을 눅잦히고 나서야 겨우 안정을 찾았다.

이윽고 려관으로 들어가니 아까 할머니를 모셔가던 60대 중반의 녀인이 카운터에 서있었다.

많이 놀랐죠? 우리 시어머님이 가끔 깜박깜박 정신줄을 놓을 때가 있어요.”

아- 네.”

얼이 쑥 빠졌던지라 나는 더 이상 말할 힘마저 없었다. 그저 얼른 방에 가서 눕고싶은 생각뿐이였다.

2층에 있는 방에 들어서니 사맥이 아운하게 풀려 물 먹은 토담처럼 침대에 쓰러졌다. 허성주가 그런 나를 놀려댔다.

대학교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군. 그 새심장은?”

그럼 아까 그 상황에서 안 놀라요? 구신같은 로인네가 막 까마귀처럼 덮쳐드는데…”

허허, 하긴 처음 보는 사람은 간담이 서늘하지.”

이제라도 다른 려관으로 옮기면 안돼요.”

어디로 옮긴다고 그러오. 오산에 려관이라고는 이곳밖에 없소.”

아이참, 또 마주칠가봐 무서워요.”

괜찮소. 그 할머니가 평소에는 아주 정정하고 오새도 말쩡하오. 가끔 치매가 발작할 뿐이요. 한숨 푹 자오. 내 저녁에 식사초대를 하겠으니 기다리고 있소.”

허성주는 나를 안심시켜놓고 자리를 떴다.

허성주가 방을 나가자 코딱지만한 방안에는 적막이 굼실굼실 감돌았다. 마치 천정이나 어느 구석에서 그 안로인이 불쑥 튀여나올 것 같아 나는 문을 꽁꽁 잠그었다. 그리고는 달팽이처럼 몸을 잔뜩 움츠리고 모로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여전히 음산한 기운이 온몸의 모공을 속속 파고 들며 공포가 밀려와 전전긍긍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똑똑똑!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비몽사몽간 어렴풋이 잠을 깬 나는 섬찍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감히 문쪽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이불을 머리 우까지 끌어올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예요?”

화연이, 나 허성주요.”

그제야 나는 안도의 숨이 나왔다.

나는 얼른 침대에서 내려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는 시어미 역정에 개밥 구유 차듯 공연히 허성주한테 화풀이를 하였다.

아이참, 놀랐잖아요. 무슨 사람이 두억시니같이 뜬금없이 들이닥쳐요?”
“아까 말했잖소. 내가 저녁초대를 하겠다고.”

그제야 나는 허성주가 방을 나갈 때 하던 말이 떠올랐다.

아, 맞아요. 내 이 정신을 봐요. 자라를 보고 놀란 사람 솥뚜껑을 보고도 놀란다더니…”

얼른 씻고 내려오오. 내 앞채 식당에서 기다릴게.”

허성주는 말을 남기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내가 부랴부랴 씻고 앞채로 나가가니 구석쪽 식탁에 허성주가 앉았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가 느물거렸다.

화연이는 아직도 여전하구만.”

뭐가요? 피부색이 까만 거요?”

하하하, 화연이는 그 감실감실한 피부색이 매력이요. 건강미가 넘친단 말이요.”

참으로 인간의 심미기준은 천차만별이다. 남편은 내 까만 피부색이 질색이라는데 이 남자는 그게 보기 좋단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미란 절대적이 아닌듯 싶다.

고마워요, 그렇게 봐주니.”

헌데… 듣자니 리혼했다면서?”
“그걸 어떻게 알아요?”

다 아는 수가 있지. 바람이 새지 않는 벽이 없고 담에도 귀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내 이번에 화연이더러 바람도 쏘이고 스트레스도 해소할 겸 이곳으로 부른 거요. 장례문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건 거짓말이였소.”

참, 내가 깜박 속았군요. 능구렁이같으니라구.”

사실 허성주는 대학교 때 나를 좋아했던 남자중의 한사람이였다. 비록 피부색이 까맣긴 해도 나는 대학교 때 꽤나 인기가 있어 퀸카로 불리웠었다. 물론 허성주도 그만하면 사람도 똑똑하고 인물도 훤칠하였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백마왕자’는 아니였다.

료리가 금방 올라 우리가 막 식사를 하려는데 한무리의 손님들이 우르르 쓸어들어왔다. 본능적으로 그들한테 눈길을 돌리던 나는 그만 “헉!” 숨을 들이그으며 섬뜩한 느낌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네명의 손님중에 세명이 남자들이고 한명이 녀자였는데 까만 상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까마귀차림이였다. 그 녀인은 얼굴이 검실검실하고 눈이 살짝 찢어지고 코가 납작하고 입술이 두툼하여 박색이였다. 특히 광대뼈과 툭 튀여나와 어쩐지 살이 낀 느낌을 주었다.

가막귀신이 또 취하게 생겼군.(옛날에 ‘까마귀’를 ‘가막귀’라고도 하였음.)”

가막귀신이라니요?”

저 상복을 입은 녀자 말이요. 진거리에다 수의(寿衣)가게를 차려놓고 전문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주고 렴습을 하는 등 장의사노릇을 하고 있소. 까마귀가 주검을 쪼아먹듯 죽은 사람한테서 돈을 뜯어낸다고 해서 이곳 사람들은 저 녀인을 ‘가막 귀신’이라고 부른다오.”

네?! 나이도 그렇게 많아보이지 않는데요. 저보다 조금 년상인 것 같은데요. 그리고 하필 녀자가 장의사일을?”
“그렇소. 아마 46살쯤 됐을 거요. 사실 3년전에 이곳에 큰물이 졌었는데 아들이 홍수에 밀려가서 죽었소. 그번 홍수에 오산에서 열두명이나 목숨을 잃었소. 아마 그해는 오산에 두번째로 까마귀가 많이 나타난 해였을 거요. 첫번째는 일본놈들이 광산을 개발할 때 역부들이 수없이 죽어나간 해였고. 헌데 아들의 시신도 찾지 못했소. 그때부터 저 녀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상복을 입고 다닌다오. 아들을 잃은 후 장례에 관심을 가지더니 신내림을 받았는지 점술도 조금 알고 있소. 그리하여 수의가게를 꾸리고 장돌뱅이장의사가 되여 주검을 다루면서 돈을 번다오. 헌데 타락했소. 동네의 홀아비나 마누라가 한국에 간 사내들을 꼬셔서 잠자리를 같이 한다오…”

그녀가 장례와 관련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에 나는 부쩍 호기심이 동했다.

이때 그녀가 화장실을 가는지 내 옆을 휙 스쳐지나갔다. 마치 까마귀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덮쳐드는 것 같아 나는 또한번 흠칫 놀랐다. 사실 나는 까만색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까마귀로 인한 것이였다.

 

어릴 때 내 별명이 ‘까마귀’였다. 나한테 이런 별명이 붙게 된 건 나의 피부색이 너무 까매서였다. 까매도 어지간히 까맣지 않았다. 어린시절에는 흔히 겉모양이나 행동거지를 보고 아이들이 별명을 달기 일쑤이다. 아주 단순하고도 직설적이고 순수하다. 그래서 어른들은 “녀자애가 저렇게 까매가지고 시집이나 제대로 가겠나?”하고 롱을 하기도 하였다. 까마귀라면 누구나 질색하였는데 털이 까만데다가 못 생기고 울음소리까지 까욱까욱 징그럽고 소름이 돋아서인지 모른다. 어른들도 까마귀가 울면 재수없다면서 “저놈의 까마귀를 콱… 퉤, 까마귀야, 네 에미 밑구멍에 불이 붙었다. 어서 썩 꺼지거라…”라고 하면서 침을 뱉거나 돌멩이를 쥐여던지군 하였다.

헌데 나를 “까마귀”란다. 나는 억울한 나마지 놀림을 당할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언젠가 이웃집 봉수가 검은 비닐주머니를 뭉그려서 내 뒤잔등에 집어넣는 바람에 나는 기절초풍하였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그냥 별명에 그치지 않았다. 내가 “까마귀”는 물론 모든 검은색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직접적인 리유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비롯되였다.

아버지는 내가 일곱살 때 돌아갔다. 당시 향진기업(乡镇)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우리 향에는 작은 탄광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 탄광에 출근했다. 헌데 어느 날 갱이 무너지는 붕락사고로 아버지는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나를 끌어안고 얼굴에 뽀뽀를 해주던 아버지가 말이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간 나는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내 눈앞에 누워있는 건 아버지가 아니였다. 그냥 시꺼먼 나무토막 같았다. 아버지의 온몸은 석탄가루로 범벅이 되여 까맣게 되여있었다. 얼굴도, 손도, 발도… 다 검은 색이였다.

아버지의 장례식 날, 어머니는 세번이나 까무러쳤다. 관을 부여잡고 꺼이꺼이 통곡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어쩐지 씁쓸했다. 그냥 무덤덤했다. 어려서인지 아니면 너무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어리벙벙해서인지 별로 슬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슬프기보다는 두려웠다. 아버지의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두려웠다. 어머니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삼촌도 고모도… 특히 그날 따라 난데없는 까마귀들이 우리 집 옆에 있는 나무나 전선줄에 줄레줄레 앉아 청승맞게 까욱까욱 울어댔다. 누군가 나서서 비자루를 들고 후여후여 쫒기도 하고 돌멩이를 던지며 위협도 했지만 까마귀들은 푸드득푸드득 날개짓만 할 뿐 도무지 자리를 뜰 념을 하지 않았다.

저 재수없는 까마귀새끼들을 그냥…”

5촌 아즈바이(외종숙)가 씽하니 집으로 뛰여가더니 퉁포(렵총)를 갖고 와서 까마귀들을 향해 탕 한방 쏘았다. 그러자 까마귀들이 화들짝 놀라 푸드득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한마리가 총을 맞고 허공에 내리꼰졌다. 땅에 널부러진 까마귀의 배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와 날개를 질벅히 적시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갑자기 눈앞이 아찔해나고 머리가 뗑해나면서 구역질이 났다. 나는 황급히 구새목으로 달려가 쭈크리고 앉아 왝왝 토했다. 어찌나 구역질이 심했는지 퍼런 열물까지 꾸역꾸역 쏟아져나왔다.

얘가 충격이 너무 컸나 보네, 하긴 생때같은 아버지가 하루아침새에 죽었으니… 흑흑.”

고모가 달려와서 내 잔등을 두드려주며 흐느껴 울었다.

까마귀의 주검을 목격한 탓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죽음으로 생긴 트라우마 때문인지 그 때로부터 나 모든 검은 것과 관련된 사물을 무서워했다. 날이 어두워지면 나는 감히 집 밖에 나서지 못했다. 검정버섯, 검은콩, 검은깨를 먹지 않았고 검은 신발, 검은 양말도 신지 않았다. 검은 , 검은 , 검은 돼지, 검은오리와 마주치면 귀신을 보기라도 한듯 황기(惶气)가 끼여 뒤돌아서 허둥지둥 도망 갔다.

까마귀에 대한 공포증 때문인지 밤마다 꿈속에 까마귀가 나타나군 하였다. 까마귀는 무리를 지어 나를 짓쫗기도 하고 등에 태워가지고 날아가다가 낭떠러지에 버리기도 하였다. 심지어 내 시체를 갈갈이 찢어서 심장이며 간이며 창자며를 나무가지에 걸레짝처럼 걸어놓기도 하였다. 그때로부터 까만 것만 눈에 띄이면 다 까마귀로 보였고 오싹오싹 소름이 돋군 하였다. 어느 날 밤, 또 꿈을 꾸다가 놀라서 깨여나니 거쿨진 검은 물체가 눈앞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마치 우람진 까마귀를 방불케하였다. 그 검은 물체는 “휴-”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몸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나는 너무도 놀라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 검은 물체가 허겁지겁 기여와 나를 끌어안고 달래였다.

또 악몽을 꾼 모양이구나. 휴- 어쩌면 좋누?”

할아버지였다. 어둠 속에 앉아있던 우람진 ‘까마귀’는 속이 재가 되여 밤중에 일어나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때로부터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다. 병색을 띠다보니 피부는 더욱 까매지고 몸은 점점 야위여갔다. 그리하여 이런저런 약도 많이 지어서 먹고 일년에 한번씩 병원놀음도 하였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까마귀는 여전히 내 꿈에 나타났고 신경은 점점 더 예민해졌다. 나중에 보다못해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점술가를 찾아갔다. 점술가는 내 사주를 보더니 죽은 아바지가 ‘까마귀귀신’으로 변해 내 몸에 딱 들러붙었다고 하면서 액막이를 하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서른살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한다고 하였다. 하여 할아버지는 점술가가 노란 종이에 그려준 까마귀 그림을 가지고 아버지의 묘소에 찾아가서 태우면서 입속으로 념불을 외우듯 뭐라고 중얼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나를 무덤앞에 꿇어앉히고 절을 하게 하였다. 나는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꾸벅꾸벅 절을 하였다.

이보게 애비, 자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살리려거든 애 몸에서 물러가게. 썩 물러가게… “

그리고는 까마귀그림을 불태운 종이재를 무덤가에 묻고 내 손목을 잡고 산을 내렸다. 할아버지는 나더러 절대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고 하였다. 아직 귀신이 내 몸에서 떠나지 않고 뒤를 쫒아오고 있으니 고개를 돌리면 귀신이 다시 몸에 붙는다고 하면서. 나는 호기심에 자꾸만 고개가 돌려졌지만 할아버지가 아귀가 센 손으로 내 머리를 꼭 잡고 있는 바람에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과연 액막이가 효험을 보았는지 그후부터 다시는 까마귀가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점차 몸에 살도 붙고 정신도 맑아졌다. 하지만 검은색에 대한 트라우마는 여전하였다. 일단 검은색을 보기만 하면 왠지 몸에 닭살 같은 것이 돋아나면서 사위스러운 느낌이 들고 머리가 흐리멍텅하였다. 그리하여 일부러 흰색으로 내 주위를 채웠다.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서부터는 더욱 흰색에 집착하였다. 용돈으로 여러가지 미백크림을 사서 얼굴에 바르고 옷도 말짱 흰색만 골라 입었다. 심지어 신까지 흰색이였다. 침대에 하얀색 모기장을 걸어 병실 같아 보였다. 여름에는 흐린 날이든 개인 날이든 하얀 양산을 들고 다녔다. 당연히 검은 우산은 절대 들지 않았다. 겨울에 북풍이 휘몰아칠 때에는 바람을 맞아 얼굴이 거멓게 될가 하얀 목도리로 얼굴을 꽁꽁싸고 눈만 빠꼼히 내놓고 다녔다.

검은색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시집도 늦게 갔다. 남편은 검은색을 싫어하는 나를 괴벽하다고 하였다…

 

이때 옆상에서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녀인은 이미 취해서 눈이 게게 풀려있었다.

오늘 저녁 너희들중 어느 녀석이 내 잠자리 시중을 들래?”

그러자 사내들의 끈적끈적한 눈길이 그녀의 몸을 음흉하게 훑었다. 비록 그녀는 얼굴은 박색이였지만 젖가슴이며 엉덩이가 흐벅지고 육감미가 넘쳐 무척 글래머하였다. 사내들의 눈길에서는 욕망의 빛이 불찌마냥 탁탁 튕겼다.

나… 나요. 내가 누님의 몸뚱이를 엿가락처럼 늘어지게 만들어주겠소.”

뚱뚱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희떠운 소리를 했다.

넌 안돼, 돼지같이 비둔한 몸으로 그 짓거리를 온전히 할수 있겠어? 그 짓거리는 말이야. 생명의 약동이고 불타는 정열의 폭발이야.”

나 이래뵈두 힘이 장사요. 거시기로 벽돌장도 거뜬히 들수 있소.”

흐흐흐, 빈 수레 소리만 요란하다더니. 넌 됐고, 얘가 힘이 왕성할 것 같애.”

녀인은 옆에 앉은 사내의 어깨를 툭 쳤다. 그 사내는 비록 몸집을 말랐으나 다부지고 강단이 있어보였다.

난 안돼우, 마누라가 눈이 아홉이 되여 내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단 말이요. 공연히 잘못 걸려들었다간… 더구나 누님과 잠자리를 같이했다가 역마살이라도 끼면 큰일 아니요?”

결국 네놈은 비겁쟁이구나, 그래 알았어. 이 ‘가막귀신”은 이만 갈란다.”

녀인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비칠거리며 식당문을 나섰다.

허성주가 녀인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빈죽거렸다.

갈보가 따로 없어. 쥐였다놓은 개떡처럼 생겨가지고 쩍하면 사내들한테 꼬리를 친다니까.”

남편은요?”

저런 녀자한테 어느 밸 빠진 남자가 붙어있겠소? 진작 달아났지. 아들이 물에 빠져죽고나서 남편이 한국으로 갔소. 그후 종무소식이요. 저 녀자만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는다며 홀로 남아있소.”

그렇군요.”

나는 그녀가 비록 잡상스럽긴 해도 어쩐지 가엾어보였다. 비록 까마귀와 같은 상복차림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으나 나처럼 피부색이 검다는 동질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아픔이 엿보여서인지 모름지기 동병상련의 감정이 스멀스멀 가슴 속에서 솟구쳤다.

 

2

 

오산광산테마동굴에 들어서니 광산의 력사가 한눈에 안겨왔다. 동굴벽을 따라 정교하게 만들어놓은 유리박스에는 가는 버들가지를 역어서 만든 안전모, 후레쉬, 녹쓴 곡괭이, 역부들이 입었던 누런 작업복과 신 등이 진렬되여있었고 조금 더 깊숙히 안쪽으로 들어가니 당시의 로동현장을 찍은 흑백사진들이 걸려있었다. 그 사진들 속에서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헐렁한 팬티 차림으로 광석을 캐내고 있는 한 아동공의 모습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온통 광석먼지를 들쓴 왜소한 몸집, 눈만 판들거리는 얼룩덜룩한 얼굴, 갈비뼈가 어룽어룽 드러난 옆구리, 마른 나무가지처럼 앙상한 종아리… 당장 뚤렁! 하고 굴러떨어질 것 같이 눈물이 글썽하게 고인 눈에는 애수가 그들먹히 담겨져있어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일본놈들의 만행을 재현한 모형물들이 나타났다. 채찍을 휘두르며 역부들을 닥달하는 일본인 십장, 어깨에 바줄을 휘감고 광차를 끌고 가는 늙은 역부, 등에 광석을 담은 광주리를 메고 허위허위 오르막을 톺아오르는 젊은 광부… 하나하나가 당시의 정경을 생동하게 그려내여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동굴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온몸에 뾰족뾰족 좁살알같은 소름이 토돌토돌 돋아있었다. 나와 허성주는 입구쪽 란간에 기대여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허성주는 담배 한가치를 입에 물고 연기를 내뿜더니 아래쪽 산비탈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기가 당년에 일본놈들이 역부들의 주검을 묻었던 곳이요.”

허성주의 손끝이 향한 곳을 바라보니 움푹하게 꺼져들어간 골짜기였는데 아직도 들쑹날쑹한 버럭들이 해골바가지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더구나 듬성듬성 이끼가 새파랗게 끼여있는 버럭 우에 까마귀들까지 몰려와 까욱까욱 울어대는 바람에 음산한 기운이 꾸역꾸역 감돌았다. 저도 모르게 섬뜩한 공포가 싸늘하게 엄습하여 마치 등골에서 송충이가 구무럭구무럭 기여다니는 것 같았다.

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줄가?”

허성주는 겁에 질린 나의 마음을 잔주르기라도 하듯 화제를 돌렸다.

무슨 이야기인데요?”

오산광산에 대한 전설이요. 멀고 먼 옛날에 돌골(오산)에 한 총각이 살았다오. 그 총각은 얼굴도 영준하게 생기도 몸집도 우람하였다오.하지만 가난하여 매일 정패천이라고 하는 부자한테 땔나무를 해다주는 것으로 년로한 어머니를 부양하였다오. 어느 해 봄, 총각은 땔나무를 하러 갔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종래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던 곳에 들어서고 말았다오. 그가 나무를 한 등짐 해가지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수림 가장자리에서 청아한 노래소리가 들려오더라오. 그래서 나무잎새 사이로 노래소리가 울려오는 곳을 바라보니 꽃같이 생긴 한 처녀가 강가에 앉아 노래를 부르면서 반짝반짝 오색령롱한 빛을 내뿜는 사발을 씻고 있더라오.총각은 그만 두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오. 헌데 이때 처녀가 그만 손에 들고 있던 사발을 놓쳤는데 몸을 움찔 일으켜 사발을 건지려다가 발이 미끄는 바람에 첨벙 물에 빠지고 말았다오. 처녀가 물속에서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총각은 나무등짐을 팽개치고 진동한동 달려가서 물에 풍덩 뛰여들었다오. 총각은 먼저 처녀를 뭍으로 떠밀어올린 후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사발을 건졌다오. 처녀는 총각에게 자기는 산신령의 딸인데 계모가 그녀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 늘 강가에 나와 사발을 씻게 한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소연하였다오. 총각도 자기의 신세를 고스란히 털어놓았다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다오. 그들은 아쉬운 대로 헤여졌는데 처녀는 총각한테 언젠가는 꼭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하더라오. 그때로부터 총각은 늘 처녀와 만났던 곳에 가서 땔나무를 하였다오. 하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처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오. 어느 날 총각은 땔나무를 하고 나서 또 강가로 갔다오. 그가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등뒤에서 나직히 그를 부르더라오. 총각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꿈에도 그리던 처녀가 오도카니 서있더라오. 처녀는 총각에게 산으로 들어가는 비결을 알려주고는 바람같이 사라지더라오. 이윽고 밀림 속에서 “돌골에는 금과 은이 가득 매장되여있어요. 그대가 뭘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저를 꺼리지 않는다면 탁자 우의 작은 솥을 요구하세요.”라는 처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라오. 이튿날, 총각은 산 남쪽에 있는 청석 옆에 이르러 큰소리로 웨쳤다오. “손님이 왔으니 산문(山门)을 열거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산문이 스르르 열렸는데 안에서 금빛이 발산되여 눈을 뜰수 없었다고 하오. 산신령이 총각에 말하였다오. “내 딸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로구만. 자네 이 안의 물건들을 마음대로 골라가게.” 총각은 금은보화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처녀가 시켜준대로 탁자 우에 놓여있는 솥을 가리키며 말하였다오. “이 솥을 주십시오!” 그건 산신령이 애지중지하는 물건이였다오. 하지만 이미 아무 물건이나 마음대로 고르라고 한 이상 산신령은 신의를 지키지 않을수 없었다오. 그리하여 아쉬운 대로 그 작은 솥을 총각에게 내주었다오. 헌데 총각이 산문을 나서니 그 작은 솥은 간데온데 보이지 않고 처녀가 앞에 떡하니 서있더라오. 그리하여 총각은 처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 날 저녁으로 혼례를 올렸다오. 이 소식은 어느새 부자 정패천의 귀에 들어갔다오. 욕심꾸러기인 부자는 돌골에 금과 은이 가득 묻혀있다는 말을 듣고 갖은 감언리설로 총각을 구슬려 산문을 여는 비결을 알아내였다오. 이튿날 돌골로 들어간 부자가 산 남쪽에 이르러 숨 돌릴새도 없이 산문을 여는 주문을 웨치니 아닌 게 아니라 문이 스르르 열리더라오. 금은보화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진 부자는 데리고 온 사람들을 시켜 수레에 싣게 하였다오. 한참 잠을 자다가 왁자지껄한 소리에 놀라 깨여난 산신령은 금은보화를 훔쳐가는 무리를 보고 대노하여 “감히 내 금은보화를 훔치다니? 고현 놈들같으니라구! 네놈들이 이미 내 산문을 넘어선 이상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웨치더니 손을 휙 내저었다오. 그러자 산문이 스르륵 다시 닫겼다오. 그 바람에 부자를 비롯한 무리들이 안에 갇혀 모두 목숨을 잃었다오. 그후부터 반짝반짝 빛나던 금과 은이 악취와 피로 물들여져 부옇게 색이 바래면서 광택을 잃더니 연과 아연으로 변했다오

오산광산에 그런 신기한 전설이 깃들어있었군요.”

“더 신기한 건 일본놈들이 이 전설을 의거로 삼아 오산광산을 찾아냈다오.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말이요.”

신빙성은 없지만 일본사람들이 머리 하나만은 좋은 것 같아요.”

지독한 족속이지.”

이윽고 나와 허성주는 시가지로 내려와 점심식사를 하였다. 허성주가 하도 지꿎게 권하는 바람에 술을 조금 마셨더니 인차 온몸이 노곤해나고 눈꺼풀이 처져내려왔다. 아무래도 한숨 푹 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자리를 뜨기 못내 아쉬워하는 허성주를 닥달하여 돌려보내고 려관으로 향하였다.

려관 문을 열고 복도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또 한번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문어구에 그 안로인이 지팽이를 짚고 귀신마냥 서있었던 것이다.

아이 깜짝이야?!”

내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안로인은 합죽이 된 입을 조금 벌리고 히죽이 웃었다.

사진쟁이 아재구만. 내 아까부터 여기서 기다렸수.”

전번 날과 달리 안로인은 정신이 말짱해보였다. 헌데 내가 사진작가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가? 아마 내가 목에 카메라를 걸고 려관을 들락날락하는 것을 본 모양이였다. 그제야 나는 안도의 숨이 활 나왔다.

저를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 뭐더라. 사람이 죽으면 제사상에 올려놓는 사진 말이우.”

영정사진 말인가요?”

내가 얼른 뚱겨주었다.

맞네. 나한테 그 사진을 찍어줄 수 없겠나?”

그래요. 찍어드릴게요.”

나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로인의 부탁을 거절할수 없었다.

자, 그럼 내 방으로 가세.”

안로인은 어정어정 앞에서 걸어갔다. 발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또각또각 마루바닥을 짚는 지팽이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안로인의 방은 제일 끝쪽에 있었다. 아마 주인집에서 로인을 이곳에 따로 모시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면 로인한테는 려관이 양로원이나 다름없었다.

문을 여는 순간 로인들만의 특유한 구리터분한 냄새가 코를 쿡 찔렀다. 나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앉게, 얼른 앉게나.”

안로인은 살뜰하게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나마 안로인의 방은 온돌방이였다. 방은 아주 간소하게 꾸며졌는데 벽쪽에 재래식 이불장과 장농 하나가 달랑 놓여있을 뿐이였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개다리소반이 있었는데 그 우에 타원형 앉은뱅이 거울과 반짇고리 그리고 오래된 듯한 나무빗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보아하니 안로인이 무척 거울을 보기 좋아하는 모양이였다.

안로인은 장농을 열더니 안에서 차곡차곡 포갠 하얀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꺼냈다. 그리고는 옷을 갈아입고 개다리소반에 마주앉아 거울을 보며 나무빗으로 머리를 반듯하게 가리마를 내여 빗었다.

몸단장을 마친 안로인은 나를 향해 돌아앉았다. 살풋이 웃는 모습이 소녀를 방불케하였다. 그 천진한 미소를 보니 나는 더는 안로인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친근감이 들었다.

“할머니, 예쁘세요.”

“내래 곱다구?” ‘

“네, 젊어서는 미인이셨겠어요.”

“하긴 그때는 고왔디. 일본놈덜이 나를 얼매나 탐냈다구? 제놈들끼리 막 쥐여박을래기를 했다니까. 훗훗훗. 헌데 인젠 염라대왕이 데려가려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수.”

뜬금없이 일본놈들이라니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혹시 또 치매가 발작한 게 아닐가?

아무래도 죽기전에 마지막 사진일 것 같수. 그러니 아재, 곱게 찍어주구래.”

네, 할머니.”

나는 찰칵찰칵 샤타를 눌러댔다. 번쩍번쩍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할머니의 웃는 모습이 고스란히 렌즈에 담겼다.

내가 카메라 화면에 뜬 사진을 할머니한테 보여줬더니 아주 만족해하였다.

애썼네. 애썼어.”

그리고는 눈물이 끌썽해서 말했다.

“아재는 우리 엄마를 꼭 빼닮았어. 어쩌면 우리 엄마를 보는 것 같수.”

네? 제가요?!”

기래, 우리 엄마도 아재처럼 고왔수.”

할머니는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쓸었다. 그제야 할머니가 처음 나를 만났을 때 다짜고짜 “엄마”라고 불렀던 연유를 알것 같았다. 비록 그것은 치매로 인한 반상적인 행동이였지만 할머니의 가슴 속에 오래동안 똬리를 틀고 있었던 그리움의 발로였을 것이다.

할머니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난 조선의 금생리라는 곳에서 태여났는데 8살에 엄마와 헤여졌다네. 그해에 나는 두만강을 건너 오산광산 십장으로 있는 일본인 집에 부엌데기로 끌려왔네. 아직도 엄마가 백살구꽃이 하얗게 핀 마을 동구밖에서 나를 바래주던 정경이 눈에 선하다네. 나는 일본인의 손에 끌려가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았지. 엄마는 어깨를 들먹이며 옷고름으로 눈굽을 연신 찍고 있었네. ‘3년후에 꼭 데리러 갈게. 혹 엄마가 데리러 가지 못하더라도 저 앞 다리밑에서 너를 기다릴 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지. 그날 따라 하늘이 찌쁘둥 흐리고 까마귀떼가 내 머리 우를 빙빙 돌며 극성스럽게 울어댔는데 그렇게 얄미울수가 없더군. 엄마는 3년이 지났는데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네. 결국 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네. 내가 14살나던 해에 십장의 마누라가 친정아버지가 세상을 떠서 장례에 참석하러 일본으로 돌아갔네. 헌데 어느날 밤 내가 방에서 함지에 물을 떠놓고 목욕을 하고 있는데 글쎄 십장놈이… ”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되였고 내 눈앞에는 그 장면이 영화마냥 펼쳐졌다.

 

…난데없는 손이 출입문의 문풍지를 뚫고 불쑥 들어오더니 살그머니 안으로 잠겨져있는 문고리를 벗긴다. 일본인 십장놈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소녀는 토실토실 물이 오르기 시작한 알몸을 랑자하게 드러내놓고 부지런히 뜨거운 물을 몸에 끼얹는다. 십장놈은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띠우고 발볌발볌 소녀한테로 다가간다. 난데없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란 소녀는 재빨리 수건으로 젖가슴을 가리며 “악!”하고 새된 소리를 지른다.

“나가요, 그렇잖으면 소리를 지를거예요.”

소녀는 얼른 옆에 놓여있는 부지갱이를 집어든다.

“소리질러봐야 아무 소용없어. 이 집안에는 너와 나뿐이야.”

그제야 소녀는 십장의 마누라가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제발… 제발 이러지 마세요.”

천진하기는? 싱싱한 생선을 앞에 놓고 마다할 고양이가 어디 있어?”

이미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십장놈은 징그럽게 웃으며 겁에 질린 채 함지 안에 달팽이처럼 잔뜩 옹송그리고 있는 소녀한테 와락 덮쳐든다. 소녀는 단말마적으로 발악하며 부지갱이를 휘둘러댄다. 하지만 십장놈의 우악스러운 힘을 당해내기는 역부족이다. 십장놈은 소녀의 뺨을 찰싹찰싹 후려치기도 하고 머리끄댕이를 잡아 휘여잡기도 한다.

곰상스럽게 굴지 못해? 계속 뻗치면 아예 죽여버릴거야.”

소녀는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반항하였지만 결국 기진맥진하여 뜨거운 물에 데친 시래기처럼 축 늘어진다. 십장놈은 흐흐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소녀의 하얀 몸을 란폭하게 탐닉한다…

 

“십장놈은 마누라가 일본에서 돌아온 후에도 틈난 나면 내 몸을 탐하였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지. 결국 십장놈의 마누라한테 들통이 나구 말았수. 십장놈의 마누라는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쬐꼬만 계집애가 못된 짓부터 배웠다면서 나를 흠씬 두들겨패고는 기생집에 팔아버렸다오… 거기서 갖은 고생을 겪다가 일본놈들이 망하자 자유의 몸이 되였수. 하지만 더럽혀진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갈수 없었다우. 엄마를 뵐 낯이 없었다우. 그래서 그냥 오산에 눌러앉았지. 오도가도할 데가 없는 나를 이 려관집 주인이 가엾게 여겨 받아주었다오. 그래서 이곳에서 청소부로 일하다가 려관집아들과 결혼하였지. 후- 말이 결혼이지… 려관집아들, 그러니까 남편이란 남자는 제 앞가림도 못하는 백치였다오. 하지만 나는 아이만 하나 생기면 그 애한테 의탁하여 살려고 맘먹었수. 헌데 몇년이 지나도록 태기가 없더군. 나중에 검사를 해보니 나한테 불임증이 있다는 게 아니겠수. 둘암탉이였지. 그래서 그냥 팔자거니 생각하고 살다가 우연히 아들을 주어다 키웠다오. 지금 저 앞채 식당 주인이 바로 내가 주워다 키운 아들이라오. 어느날 려관청소를 마치고 소피보러 뒤간으로 갔는데 글쎄 그 옆에 포대기에 감싸인 갓난이가 있는 게 아니겠수… 내 나이 인젠 92살인데 이만하면 오래 살았지. 다만 엄마를 못 만난 게 한이우.”

할머니의 신세담을 들으며 나는 비애를 느꼈다. 특히 할머니가 불임증으로 친자식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 어쩐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으면서 가슴에 아릿하게 맞혀왔다. 나도 지금 아이가 없는 녀자가 아닌가? 나도 할머니처럼 되지 않을가? 문득 위기감이 몰려들었다.

헌데 그날 저녁 내가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복도에서 요란스럽게 텅텅거리는 발걸음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그 서슬에 놀라 깨여난 나는 혹시 불이라도 난 게 아닌가싶어 잠옷바람으로 후닥닥 뛰여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마침 려관집아줌마가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 드바삐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아주머니, 무슨 일이예요? 혹시 화재라도…”

아이구, 말도 말아요. 글쎄 우리 시어머니가 잃어졌어요.”

려관집아줌마는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렸다.

네?! 할머니가…”

아까 오후까지 멀쩡했는데… 아무래도 또 치매가 발작한 모양이였다. 헌데 이 밤중에 로인이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밖으로 나갔지? 어디로 갔지?

려관은 발칵 뒤집혔다. 인명이 달린 일이라 투숙객들까지 동원되여 할머니를 찾았다. 여기저기에서 핸드폰 라이트빛이 반디불마냥 반짝이였다. 나도 그들 속에 끼여 잠옷바람으로 우왕좌왕 뛰여다녔다. 화장실이며 창고며 헛간이며 다 샅샅이 훑었지만 할머니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식경 어둠 속에서 헤매고나니 다리맥이 풀려 나는 정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기 있소, 할머니를 찾았소.”

이 때 려관 뒤에 있는 숲속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우르르 그곳으로 몰려갔다. 할머니는 품에 보따리를 꼭 끌어안고 숲속의 아름드리 버드나무아래에 새우처럼 곱송그린 채 앉아있었는데 옆에는 지팽이가 널브러져있었다. 할머니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엄마, 엄마, 내래 엄마를 찾아갈거유. 엄마가 금생리 다리밑에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지 않았수?”

그러고보면 치매가 발작한 할머니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자기 엄마를 찾아서 고향으로 가려고 하였던 것이다. 아마 려관 뒤쪽에 흐르는 강을 두만강으로 착각한 것 같다. 다행히 강에 들어서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트면 익사할번 했다.

아들(앞채 식당주인)이 할머니를 나무랐다.

“이이구, 이 로인네가 로망이 들었구만. 이제와서 어떻게 엄마를 찾는다구? 진작 세상을 떠났을 텐데…”

글쎄 말이예요. 이렇게 사람을 들볶으니 어디 발편잠을 자겠어요? 그렇다고 묶어둘수도 없고…”

며느리인 려관집아줌마가 맞장구를 쳤다.

안되겠소. 이후부터는 려관문 단속을 단단히 해야지.”

그들이 주고 받는 말을 들으며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서 한가닥 찬바람이 감도는 것 같았다.

 

3

 

나는 그냥 빈손으로 돌아갈수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토장을 하지 못하기에 재래식장례를 치르는 걸 볼수 없는 정황에서 그 형식이나마 취하여 사진을 찍으려고 허성주와 함께 ‘가막귀신’이라는 녀인을 찾아갔다.

수의가게에 들어서니 그녀가 먼지털이로 매대 우의 먼지를 쓸어내고 있었다. 유리로 된 매대 안에는 각종 골회함, 싯누런 종이돈, 제기(祭器),향 등이 진렬되여있고 뒤쪽 벽에는 날개를 쫙 편 까마귀의 박제품을 방불케하는 여러가지 수의들이 줄느런히 걸려있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허관장이 우리 가게에까지 발걸음을 했소? 혹시 누가 돌아가기라도…”

허성주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그런 일이 아니라 한가지 상론할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훗훗훗, 나같이 귀신놀음이나 하는 아낙과 뭘 상론하게 있다구?”

허성주는 얼른 나를 녀인한테 소개하였다.

주민간문예가협회에서 내려온 사진작가입니다.”

나는 살짝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녀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 먼지털이로 매대를 쓸어냈다.

허성주가 말에 발을 달았다.

이 사진작가가 재래식 장례에 관한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아주머니가 좀 도와줄 수 없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소?”

그녀는 천천히 담배갑에서 담배 한가치를 꺼내 꼬나물더니 연기를 후- 내뿜었다. 제법이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녀자가 담배를 피우다니?

지금 국가의 규정에 따라 토장을 못하기에 아주머니가 사람들을 동원하여 재래식 장례를 치르는 행사를 진행하면 안될가요?”

녀인은 펄쩍 뛰였다.

“그런 걸 어떻게 가짜로 하오? 내가 아무리 주검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하늘을 노엽히는 일은 못하오. 천벌을 받소.”

내가 쌈바르게 곁을 달았다.

수고비는 섭섭치 않게 드릴게요.”
“이건 돈문제가 아니예요. 주검을 다루는 일에도 법도가 있어요. 그 법도를 어기면 장의사 노릇을 그만둬야 해요. 미안해요. 제 밥그릇을 깰수는 없어요.”

그리고는 마치 우리를 쫒기라도 하듯 먼지털이로 매대를 더욱 세게 탁탁 털어댔다.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코를 떼운 나와 허성주는 밖으로 나왔다. 허성주가 게정스럽게 툴툴거렸다.

씨팔, 그깟 주검이나 다루면서 생색을 내기는?”

어쩌겠어요? 다 자기 사정이 따로 있는 걸.”

나와 허성주는 발 가는 대로 걸었다. 갑자기 욱적북적 떠들어대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로천시장 입구였다. 나는 기분도 꿀꿀한데 시장돌이나 하자고 하였다. 허성주는 “시골시장에 뭘 볼게 있다구…”라고 시들해하면서도 앞장에 서서 나를 안내하였다.

좁고 기다란 골목에 들어앉은 로천시장은 마침 한낮이라 사람들로 붐비였다. 시장에서만 느낄수 있는 시크무레하면서도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였다. 나와 허성주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둘러보고 있는데 한쪽 구석에서 사구려소리가 유난히 높이 들려왔다.

“까마귀조각품이요, 까마귀 조각품이요.”

까마귀’라는 소리에 나는 귀가 번쩍 열렸다. 가끔 꺼려하는 사물일수록 더욱 호기심을 자아내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역반심리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바로 그랬다. 나는 얼른 허성주의 팔을 잡아끌고 소리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까마귀 조각품을 줄느런히 진렬해놓은 죄판대 앞에서 수염이 더부룩한 한 사내가 열심히 사구려를 불러대고 있었는데 달변이였다.

아이구 이쁜 녀사님이시군요. 자, 한번 둘러보십시오. 세상의 까마귀들이 다 여기에 모였습니다. 갈까마귀, 큰부리까마귀, 좁은부리까마귀, 잦까마귀, 바람까마귀, 물고기까마귀… 없는 게 없습니다. 하나 사시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왜 하필 까마귀조각품이예요? 징그럽게?”

까마귀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나는 의아해서 허성주에게 물었다.

“여기 지명이 오산(乌山)이 아니오? 지방특색을 살린 관광제품을 개발하는 일환으로 까마귀조각품을 만들어서 팔고 있다오. 이른바 테마관광상품인 셈이지.”

“오, 그렇군요. 하지만 누가 까마귀를 사겠어요?”

“모르는 소리요. 사람들이 흔히 까마귀를 흉조로 여기는 데 기실 길조라오. 칠월칠석에 견우와 직녀한테 다리를 놓아준 오작교만 보아도 알수 있지 않소. 까마귀 () 까치 (鹊)으로 되여있지 않소. 그리고 까마귀는 효도의 상징이기도 하지. 그래서 반포지효(反哺之孝) 말도 생겨나지 않았소.”

허성주가 아무리 까마귀의 좋은 점에 대해 력설하였지만 내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허성주까지 얄미웠다.

“아무리 오산 사람이라고 해도 너무 까마귀를 비약해서 포장하는 거 아니예요. 아무튼 저는 어쩐지 사위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허허, 난 까마귀가 싫지 않은데… 까마귀는 오산의 하나의 풍경이오. 까마귀가 없으면 아마 오산은 적막하기 그지없을 거요. 이곳 사람들에겐 까마귀가 인젠 친근한 존재로 각인되였소. 한국의 한 시인이 까마귀를 노래한 이런 시도 있소. …나는 죽은 것들의 령혼을 씻기려고/ 목울대를 밀고 또 밀어 곡()을 내뿜고 싶어/ 아무도 나무랄수 없는 까마귀 귀신이고 싶어…”

“혹시 까마귀 귀신이라도 붙은 게 아니예요?”

“그러게… 허허허.

허성주는 느물거리며 내 약을 올렸다.

나는 허성주와 헤여져 려관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낮잠이나 한숨 자려고 하다가 문득 허성주가 까마귀에 대해 력설하던 말이 떠올라 인터넛으로 까마귀를 검색해보았다.

 

까마귀는가마리’, ‘가막귀라고도 하는데 한자어로는 자오() 표준이고 오(), 자아(慈鸦), 효조(孝鸟), 한아(寒鸦), 로아(老鸦), 오아(鸦)라고도 한다. 학명은 Corvus corone orientalis EVERSMANN이다. 까마귀과에는 전세계에 100종이 있다. 까마귀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주검을 쪼아먹기도 하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흉하지만 기실 령물이다. 한국에서는 까마귀가 예언을 한다고 믿고 있는데삼국유사사금갑조(射琴匣條)〉 이르기를, 488(신라 소지왕 10) 까마귀가 왕을 인도하여 궁주(宮主) 내전에서 향을 사르는 중이 간통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 처단하였다. 이로부터까마귀날까마귀밥 관습이 생겼으며 정월 대보름 행사는 까마귀가 궁중의 변괴를 예고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삼족오(三足; 달린 까마귀)라고 해서 태양의 정기가 뭉쳐서 생긴 신비한 새로도 알려져있다. 연오랑세오녀설화(郞细女说话)〉 태양신화라 할수 있는데 주인공 이름에 까마귀 ()자가 들어있다. 삼족오(三足) 태양에 살면서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련결해주는 신성한 상상의 길조() 동시에 동아시아에서는 태양신으로 불리며 달린 검은 또는 까마귀로 금오(), 준오(), 흑오(), 적오()라고도 부른다. 삼족오의乌’에는 두가지 뜻이 담겨져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까마귀', 다른 하나는 검다' 의미이다. 오랜 세월동안 우리민족과 함께해온 자연물중 형상화한, 하늘을 향한 인간의 꿈이 세발 달린 까마귀이다. 중국의 태양신화에도 태양의 정기가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三足乌) 형상화되여있으며 고분벽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이처럼 까마귀는 예로부터 신이한 능력이 있는 새로 알려졌다. 누르하치가 어렸을 누군가에게 추격을 당해서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어느 구덩이에 숨었는데 어디선가 까마귀떼가 날아와 그를 가려줘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날 청나라를 세운 후 누르하치가 까마귀를 잡지 말고 숭배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길조로 전해졌다고 한다. 해의 운세를 보는 까마귀를 사용한 례도 있다. 아랍인은 까마귀를예언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오른쪽으로 나는 것을 길조(吉鸟), 왼쪽으로 나는 것을 흉조(凶鸟) 믿었다. 유럽에서도 까마귀는 일반적으로 불길한 새로 여겨지고 있으나 북유럽 신화에서는 최고신 오딘의 상징으로 지혜와 기억을 상징한다고 한다. 북태평양 지역에서는 까마귀가 신화적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시베리아의 투크치족, 코랴크족과 북아메리카의 북서 태평양 연안 아메리카인디언들 사이에서 까마귀는 창세신(创世神) 변한 모습이라 하여 창세신화의 주역으로 삼는다고 한다

 

갑자지 “꽈르릉!”하고 천둥이 울어대는 소리에 나는 파들짝 놀랐다. 이윽고 밖에서 장대같은 비줄기가 쏟아졌다. 좌르르, 좌르르… 비소리는 아이러니하게 나의 창자를 훑어대며 허기를 불러왔다. 그제야 점심을 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늦은 점심이라도 먹으려고 옷을 걸치고 앞채 식당으로 갔다. 국밥을 시켜놓고 막 한술 뜨려는데 갑자기 밖에서 한 녀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이 구멍이 났어? 왜 비를 퍼붓고 지랄이야? 또 무슨 날벼락을 떨구려고 이러는가 말이야? 나까지 잡아가, 나까지 잡아가라구!”

내가 무슨 감투끈인지 몰라 벌떡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가막귀신’, 즉 그녀가 길복판에 장승처럼 뻗치고 서서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비에 옷이 흠뻑 젖은 그녀는 초절임을 한 배추줄기처럼 후줄근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목이 터지도록 바락바락 웨쳐댔다. 그 모습이 마치 까마귀가 청승맞게 “까욱, 까욱” 울어대는 것 같다.

“그래 콱 퍼부어라. 큰물이 지여 이 세상 인간들을 다 쓸어가거라.”

그녀는 비칠거리다가 거리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꺼이꺼이 통곡하였다.

카운터에 서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인아저씨가 혀를 끌끌 찼다.

“또 발작하는군. 비만 내리면 저렇게 미친년 달밤에 널뛰듯 하니 원, 흉한 벌레 모로 간다더니 젊은 녀자가 저게 무슨 꼴이람?”
내가 호기심이 동해서 물었다.

“왜 저런대요?”

“글쎄요. 3년전에 아들을 큰물에 잃고나서부터 비만 오면 저렇게 지랄발광 네굽질이라니까요. 미꾸라지 한마리가 개울을 흐린다고 이거 원 동네가 부산해서.”

결국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고 홍수에 대한 저주였다. 나는 그녀가 무척 안쓰러웠다.

나는 식당주인아저씨한테서 우산을 빌려가지고 밖으로 뛰여나갔다. 오지랖이 넓어 가끔 열두폭 치마를 둘렀다는 말을 듣는 나였다. 거퍼 20,30메테밖에 안되는 거리였지만 어느새 내 바지가랭이는 비물에 흠씬 젖어 종아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는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그녀의 몸에서는 역한 술냄새가 확 풍겼다.

“이봐요, 이러다가 감기에라도 걸리면 어쩌려구요? 얼른 집으로 가요.”

그녀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왁살스럽게 콱 밀쳤다. 그바람에 나는 비물이 흥건한 거리바닥에 허수아비처럼 볼썽사납게 나동그라졌다.

“싫어, 그녁이 뭔데 함부로 끼여들어 재를 뿌려? 난 집에 안가. 여기서 끝까지 버틸거야. 어디 하늘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생사결판을 할 거야.”

그녀는 으드득으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그래도 이건…”

썩 꺼져, 꺼지라구!”

녀인은 손으로 비물이 고인 거리바닥을 철썩철썩 내리치며 그악스럽게 고함을 질러댔다. 히스테리적이였다. 실성한 것 같았다.

나는 도저히 그녀의 고집을 당해낼수 없어 도로 식당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르자 대지를 삼킬듯이 억수로 퍼붓던 비가 마침내 그쳤다. 먹장구름이 서서히 밀려가더니 해가 얼굴을 내밀며 서쪽하늘가에 오색찬연한 무지개가 비꼈다. 결국 그녀가 이겼다. 그제야 그녀는 기진맥진한 몸을 끌고 비트적거리며 집으로 걸어갔다.

이튿날 늦은 오후, 내가 그동안 찍은 풍경사진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똑똑 가볍게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허성주가 찾아온 줄 알고 끌신을 잘잘 끌며 뛰여가서 문을 열었다. 헌데 뜻밖에 그녀가 문가에 서있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들어가도 돼요?”

나는 얼른 대답하였다.

“네, 들어오세요.”

그녀는 방안에 들어서서 두리번거리더니 게면쩍어하며 한마디 던졌다.

“어제는 미안했어요.”

“아니, 괜찮아요. 사람마다 다 괴로움이 있는 법이지요.”

“외람되지만 저의 집에 모셔 식사초대를 하고 싶은데요?”

“저를요?!”

“네, 어제의 미안함을 사과드고싶어서요.”

의외였다. 그녀한테도 이런 인지상정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전혀 어제 야기부리던 녀인같지 않고 다소곳하였다. 그렇잖아도 그녀의 신상이 궁금했던지라 나는 인차 응낙하였다.

“그럼 제가 먼저 돌아가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을 게요. 천천히 오세요. 저의 수의가게를 알지요? 거기로 오면 돼요.”

그녀는 말을 마치기 바쁘게 방문을 나섰다.

나는 한참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문득 꿈속에서 죽은 까마귀를 보면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오거나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을 암시하는 길몽이라고 하였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 내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까마귀 꿈을 꾼 것이 아닐가?

나는 서둘러 준비하여 가지고 수의가게로 향하였다. 도중에 슈퍼에 들려 그녀가 좋아하는 술과 쏘세지, 마른 명태, 통졸임 등 안주감을 샀다.

수의가게에 들어서니 그녀가 반겨맞았다. 그녀의 살림집은 수의가게 뒤울안에 있었다. 집안은 별로 크지 않았으나 아주 깔끔하게 거두어져있었다. 여느 가정처럼 거실과 침실로 나뉘여져있고 가구들도 평범하였다. 하지만 유난히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텔레비죤 탁자 우에 놓여있는 한 소년의 사진이였다. 사진 속에서 애된 소년이 빙그레 웃고 있었는데 덧이가 난 것이 무척 귀여워보였다. 아마 몇년전 홍수에 잃어버렸다는 그녀의 아들인 것 같았다.

문득 창문쪽 빨래줄에 웬 남자의 팬티가 걸려있는 것이 눈에 띄였다. 금방 빨았는지 물기가 축축하게 남아있는 팬티는 원모양 그대로 집게로 집어서 널어놓은 바람에 마치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서있는 것만 같아 보기 무척 민망하였다. 그녀는 게면쩍어하며 얼른 그 팬티를 거두어서 옷장에 던져넣었다.

그녀와 나는 상에 마주앉았다.

“사진작가라고 하였지요?”

“네.”

“다시 한번 감사를 드려요. 큰비가 내릴 때마다 나는 잃어버린 아들생각이 나서 밖에 나서서 비를 맞으며 고함을 질러대군 해요. 하지만 여직껏 누구 하나 나를 걱정해준 사람이 없어요. 다들 건너 마을 불구경하듯 하면서 미쳤다고만 했지…”

그녀는 내 의사를 묻지도 않고 술잔에 술을 따랐다.

“이름이 뭐죠?”

“화연이라고 해요.”

“참 예쁜 이름이군요. 나보다 어린 것 같으니 그냥 화연이라고 부를게요. 그쪽도 저를 언니라고 부르면 되요.”

성격이 자못 통쾌하였다.

“보아하니 화연이도 역마살이 끼였소.”

“네?!”

나는 흠칫 놀랐다.

이때 느닷없이 노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리더니 웬 낯선 사내가 불쑥 들어왔다. 손에 술이며 안주거리며를 넣은 꾸레미를 든 사내는 나를 발견하고 어색해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사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미구에 밖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요, 집안의 녀자는?”
“연길에서 온 사진작가예요.”
“사진작가가 왜 임자 집에…”

“그런 일이 있어요.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래일 다시 오세요.”

“에잇, 몸을 좀 풀려했더니… 똥을 밟았어.”

자빡을 맞고 코가 닷발이나 나온 남자를 돌려보내고나서 그녀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그녀는 얼굴이 발가우리하게 상기되여있었다.

알고 지내는 사람이요. 그냥 술친구요.”

그래요?”

그녀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화연이 혼자 몸이지?”
“그걸 어떻게?…”

“얼굴에 다 쓰여있소. 내가 점술을 좀 본다오.”

사실 얼마전에 남편과 리혼하였어요. 다 팔자겠지요.”

맞소. 팔자도망은 못하오. 나도 홍수에 아들을 잃고 남편까지 사라져버렸소. 그래서 지금 내 가슴 속에는 한만 가득 들어차있다오.”

그녀는 천정이 내려앚도록 깊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어릴 때 아버지가 탄광사고로 일찍 돌아갔는데 장례식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죽은 까마귀를 보고나서부터 검은색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그때로부터 검은색은 늘 저를 괴롭혔어요.”

“어쩌면 화연이도 나도 가련한 녀인들이구만. 그래도 화연이는 사진작가로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이게 무슨 꼴이요? 난 타락했소. 방종해졌소. 나한테는 술, 남자, 주검 밖에 없소. 술은 내 슬픔을 달래주고 남자는 내가 살아있음을 나타내고 주검은 내 생계수단이라오. 염라대왕도 돈 앞에서는 한쪽 눈을 감는다고 하지 않소.”

제 설음에 겨워 그녀도 울고 나도 울었다.

자, 거북한 녀인끼리 오늘 코가 비뚤어지게 술이나 콱 마시기오.”

그녀는 단숨에 굽을 냈다. 그리고는 술잔을 머리 우에 꺼꾸로 쳐들고 나를 재촉하였다.

나도 그녀가 하는 대로 술잔을 들어 단모금에 비웠다.

두 녀자는 신세타령을 하며 권커니작커니하였다.

나는 그만 술에 곤죽이 되였다. 머리가 뗑해나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온몸이 엿가락처럼 녹작지근해졌다. 게다가 속에서 음식물이 역류하면서 자꾸만 목구멍으로 치솟았다. 결국 나는 웩웩 토하고 말았다…

새벽녁에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깬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다. 헌데 려관방이 아니라 낯선 집이였다. 술에 억병이 되여 그녀 집에 꼬꾸라졌던 것이다. 어느새 그녀는 가게로 나갔는지 없고 내 옷들이 차곡차곡 개여진 채 침대머리에 놓여있었다. 어제 분명 옷을 입고 잤는데 달랑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치고 있었다. 그녀가 내 옷을 벗긴 게 틀림없었다. 그제야 술에 취해서 토했던 일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마 그녀가 어지러워진 내 옷을 깨끗이 빨아서 다림질까지 해놓은 모양이였다. 보아하니 내가 아침에 일어나 부끄러워할가봐 그녀가 일찌감치 일어나 자리를 피한 것 같았다. 나는 주먹으로 머리를 쿡 쥐여박았다.

“이런 개꼴망신라구야.”

나는 민망하여 슬그머니 그녀의 집을 빠져나와 려관으로 돌아왔다.

헌데 이튿날에도 여전히 속이 메슥거리며 자꾸 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는 음식에 체한 것이 아닌가싶어 병원으로 찾아갔다. 헌데 의사는 진찰해보고 나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하였다.

“축하해요, 임신이예요.”

“네?! 임신이라니요?”

나는 깜짝 놀랐다.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찝찝하기도 하였다. 하필 이때 임신이라니? 여직껏 태기가 없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것도 그 가증스러운 인간의 아이를!

사실 나는 석달째 달거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냥 그렇거니 생각했다. 별로 신경쓰지도 않았다. 더구나 임신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다.

나는 류산할 것이인가 아니면 그냥 아이를 낳을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류산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벌렁벌렁 떨렸다. 어떻게 생긴 아이인데? 나이 사십을 먹도록 잉태하지 못해 은근히 남모르게 얼마나 속을 끓였던가? 그렇다고 이대로 아이를 낳자니 눈앞이 캄캄하였다.

내가 복도의 장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건드렸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였다.

“여기 멍청히 앉아서 뭐하오? 망부석처럼.”

“언니는 병원에 어쩐 일이예요?”

“전번에 비를 흠뻑 맞았더니 고뿔이 들었나보오. 주사나 좀 맞으려구.”

그러면서 “에취!”하고 요란하게 재채기를 하였다.

언니, 난 어쩌면 좋아요?…”

무슨 일인데?”

그게…”

뜸을 들이지 말고 얼른 말하오.”

글쎄 내가…”

나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펄쩍 뛰였다.

“류산을 하다니? 말도 안되오. 생명을 함부로 버리면 천벌을 받소. 그 아이는 하늘이 화연이한테 내려준 축복이요.”

“그러나… 아버지가 없는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

“다 부질없는 생각이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든, 또한 아이에게 아버지가 있든없든 다 상관없소. 중요한 건 새 생명의 탄생이요… 하늘이 나에게서 아들을 빼앗아가더니 화연이한테는 새 생명을 점지해주었네. 얼마나 좋은 일이요.”

그녀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빛이 력력히 어려있었다.

“저는 아직 뭐가 뭔지 어리벙벙해요. 제가 임신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도 않거니와 믿어지지도 않아요.”

못난 소리, 인젠 진정한 녀인으로 거듭나는 거요.”

나는 오리무중에 빠졌다. 도대체 복인지 화인지?

 

4

 

한밤중에 할머니는 치매가 발작하여 또 사라졌다. 하지만 전번의 경험이 있는지라 이번에는 쉽게 할머니를 찾아내였다. 할머니는 려관 뒤쪽 강의 얕은 물에 쓰러져있었는데 이미 인사불성이였다. 아마 강을 건느려고 무작정 들어섰다가 물살에 떠밀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진 것 같았다. 다행히 몸만 물에 잠기고 얼굴은 밖에 드러났기에 익사하지는 않았다. 아들인 식당주인아저씨가 물참봉이 된 할머니를 둘쳐업고 려관으로 돌아왔다.

할머니한테 옷을 갈아입히고 구들에 눕혔다. 할머니는 간헐적으로 숨을 몰아쉬며 연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 엄마!…”

가늘고 힘없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바르르 떨렸다.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길 것 같지 못하구만. 여보, 어서 가서 ‘가막귀신’을 불러오오.”

식장주인아저씨는 마누라한테 그녀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한식경이 지나서 그녀가 헐레벌떡 방안에 들어섰다. 그녀는 할머니의 상태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할머니는 계속 애타게 “엄마”를 불러댔다. 심지어 손까지 허우적거렸다. 옆에서 보기 무척 애처로웠다.

나는 슬그머니 복도로 나왔다. 그냥 방안에 있다가는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녀도 인차 따라나왔다.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요.”

림종을 앞두고 가슴 속에 맺힌 한이 풀리지 않아서 저렇게 눈을 감지 못하고 있소.”

그럼 얼른 그 한을 풀어드려야지요. 언니가 무슨 방법이든 대봐요.”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며 한숨을 토해냈다.

나도 속수무책이오. 그 한을 풀어드릴 사람은 오직 할머니의 어머니뿐이오. 헌데 이미 고인이 된 그 어머니를 어디에 가서 찾는단 말이요?”

문득 나는 할머니가 나를 자기 엄마를 닮았다던 말이 떠올랐다. 순간 무언가 번개같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홱 돌아서서 발부리에 불이 나게 다시 할머니 방으로 뛰여갔다. 내 뒤를 그녀가 충충거리며 따랐다.

할머니는 여전히 애타게 엄마를 찾고 있었다. 그 옆에는 사람들이 둘레둘레 모여서서 복닥거리고 식당주인아저씨는 할머니의 손을 주물러드리며 푸념을 하고 있었다.

어마이, 그만 고정합소. 죽은지 석삼년이 되는 엄마를 어디에 가서 찾는다구 그럼둥?”

그러게 말이꾸마. 가실 거면 얼시덩 가지 왜 산사람을 들볶는지 원.”

며느리가 빈죽거렸다. 식당주인아저씨가 도끼눈을 짓부릅뜨고 마누라를 찔러보았다.

왜 내가 못할 말을 했슴둥? 수양아들이 아흔이 넘도록 모셨으면 자식 노릇을 무던히 잘했지 뭐가 서러워서 마지막까지 애를 먹인담둥?”

그 입 다물지 못할가? 돼먹지 못하게스리.”

식당주인아저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아줌마는 대뜸 달팽이 뚜껑 덮듯 움츠러들었다.

잠간만요.”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할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할머니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다만 밋밋한 가슴만 간헐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할 뿐이였다. 바싹 마른 몸은 삭정이처럼 진이 다 빠져 살짝만 건드려도 우두둑 부서질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 저 왔어요.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내 목소리에 할머니는 기적같이 눈을 번쩍 떴다. 그 눈빛에는 갈망과 희열이 섞여있었다.

어… 엄마!”

할머니는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어루쓸더니 입술을 실룩거리며 간신히 불렀다. 주위에 몰려선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엄마… 엄마! 왜 인제야 날 데리로 왔수?”

원망과 한이 서린 할머니의 목소리는 바람에 펄럭이는 나무잎사귀처럼 파르르 떨렸다.

할머니…”

나는 그만 울컥해났다.

엄마, 우리 집으로 가, 집으로 가자구, 응?…”

드디여 할머니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래, 가요. 제가 모셔다드릴 게요.”

엄마, 우리 집 마당의 백살구나무가 아직도 그대로 있수? 나 그걸 먹구싶수.”

있구말구, 이제 집에 가면 실컷 드실수 있어요.”

할머니는 마치 그 살구를 맛보기라도 한듯 나무주걱처럼 오목한 입을 합죽합죽 다시였다. 심지어 얼굴에 느긋한 미소까지 어렸다.

이윽고 할머니의 숨소리가 가빠졌다. 할머니는 들숨만 푸럭푸럭 내쉬며 허공에 대고 손을 허우적거렸다.

엄마… 엄마…”

나는 할머니가 너무 애처로워 꼭 끌어안았다. 그제야 할머니는 안도의 숨을 후- 내쉬며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내 손을 꼭 잡은 채 놓지 않고 있었다…

가족에서는 그녀에게 할머니의 운명여부를 확인해달라고 하였다. 그녀는 할머니의 인중에 새 솜을 엽전처럼 괴여올려놓고 그것의 움직임을 살펴보더니 머리를 가로저었다.

들숨이 멎은 걸 보니 이미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내 품에 안긴 채 조용히 운명하였다. 마치 엄마의 품으로 돌아간듯이.

할머니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하지만 눈가에 대롱대롱 매달린 눈물만은 여전히 마르지 않았는데 마치 떼질을 쓰다가 지쳐서 혼곤히 잠든 천진한 아이같았다.

이어서 그녀는 초혼을 하였다. 그녀는 할머니가 생시에 입던 웃옷을 갖고 마당에 나가더니 왼손으로는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의 허리 부분을 잡은 북쪽을 향하여 중얼거렸다.

오산의 김삼녀 (), 오산의 김삼녀 (), 오산의 김삼녀 ()!”

이렇게 세번 혼을 불렀다. 이것은 복, 호복이라고도 하는데 허공에서 헤매는 망자의 혼을 불러들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흔히 “혼을 부른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그녀는 () 하였다. 그녀는 우선 깨끗한 수건을 물에 적셔 망자의 얼굴과 손발을 닦은 후 나무숟가락으로 물에 불린 쌀을 세번 떠서 입에 넣으면서 “백석이요, 천석이요, 만석이요.”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동전을 함께 입에 물렸다. 이를 “반함(含)”이라고 하는데 사망자가 저승에 가서 소비할 식량과 용돈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설전(奠)을 하였다. 그녀는 시신의 머리맡휘장밖에 상식상(上食床)을 차렸는데 상에는 밥과 국을 각기 한그릇, 남새반찬 두세가지가 올려져있었다. 맏상제인 식당주인아저씨가 밥그릇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꽂고 참대저가락 한쌍을 반찬을 담은 접시에 놓으며 술을 한잔 따라올렸다.

그녀가 려관집아줌마한테 부탁하였다.

발인하기전까지 끼니마다 음식을 새 것으로 바꾸세요.”

그리고는 서둘러 소렴(小)을 하였다. 즉 망인한테 수의를 입혔다.

이로써 상례가 끝났다. 나는 주인아저씨의 허락을 받고 이 모든 걸 카메라에 담았다.

그녀는 나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지금은 토장을 못하기에 치관(治棺: 망자가 운명한지 3일되는 날에 관을 짜는 )이나 대렴(: 시신을 입관하는 것을 말하며 초상 3일만에 진행한다.), 매장(埋葬: 미리 풍수선생을 청하여 묘지를 선택하고 령구를 묻을 구뎅이를 파는데 이를 굴심이라고 한다. 장례식날 령구를 메여다가 매장하고 봉분과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낸다.), 묘비(墓碑: 봉분을 만든 제단웃쪽에다 나무판이나 돌로 만든 묘비를 세운다. 정면에다 아래와 같은 글자를 새기는데 남자일 경우에는 生(某)公之墓라고 쓰고 녀자일 경우에는 孺人(某)氏之墓랃고 쓴다.) 같은 절차는 생략할 수밖에 없소. 다만 성복(成服: 상제들이 정식으로 상복차림을 하는 것을 말하며 성복이 끝나면 성복제사를 지낸다.) 천구(: 령구를 집안에서 밖으로 들어내가는 것을 천구 혹은 천관, 출관이라 한다.) 발인(: 상여가 집을 떠난다는 것을 말하는데 (靷) 옛날에 상여에 동여맸던 가죽끈을 가리킨다. 발인직전에 발인제를 지낸다.) 할수 있소.”

그녀는 내가 재래식장례를 치르는 행사를 부탁한 거절한 것이 미안했던지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이튿날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렀다. 조상객들은 손가락을 꼽을 만큼 적었다. 려관집 주인내외와 나, 그녀 그리고 허성주와 지인들 몇몇뿐이였다. 하긴 할머니가 일가친척이 없는 고아이고 또 시골인데다가 외국이나 타지로 나간 사람들이 많다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별식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나는 하늘을 찌를 듯 높다랗게 솟은 굴뚝을 쳐다보았다. 하얀 연기가 타래치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 그 어떤 미련이 남은듯, 그 어떤 한을 풀어내는듯 하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울컥해나며 눈물이 쏟아졌다.

지금쯤 할머니가 오매불망 그리던 엄마를 만났겠지요?”

나는 옆에 있는 그녀에게 넌시지 물었다.

아마 그랬을 거요. 백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핀다는 고향에 도착하였을 것이요.”

엄마를 만나 뭘하고 있을가요?”

응석도 부리고 가끔 앵돌아지기도 하겠지. 혹시 엄마 품에 안겨 젖가슴을 쥐고 혼곤히 잠들었을지도 모르오.”

그래요. 할머니가 영원히 그렇게 행복하게 잠들었으면 좋겠어요.”

“비록 할머니가 한줌의 재로 변했지만 령혼만은 고히 잠들었을 거요.”

그녀는 나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주었다.

할머니가 살아온 삶을 보면 참 인생이라는 게 덧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왕후장상이든 쪽박을 들고 동냥을 하는 거지든 죽는 순간에는 다 허무한 법이라오. 나는 이번에 화연이가 잉태하고 할머니가 저세상의 고혼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깨달은바가 크오. 새 생명의 탄생과 죽음, 인간의 삶이란 결국 륜회이요. 나는 이때까지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 힘들게 살았소. 마음이 번뇌로 가득차있어 지옥이였고 탐욕으로 가득차있어 아귀였소. 게다가 방종하기까지 했으니… 결국 타락이였지. 나는 삶에 대한 일심(一心)이 없었소. 사람이란 일심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해탈할수 있다고 했거늘…”

그녀는 한탄하며 고개를 들어 먼곳을 바라보았다.

이튿날 아침, 나는 여느 때와 달리 일찍 일어났다. 까닭없이 온몸이 욱신거리고 기분이 울울하였다. 어제 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나니 마음이 공허해서일가? 할머니를 알게 된지 며칠밖에 안되지만 왠지 혈육처럼 친근하게 느껴졌었다. 특히 나를 자신의 엄마를 닮았다고 하면서 내 품에 안겨 운명하는 순간까지 처절하게 “엄마”라고 부르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게 가슴에 맞혀와 잊혀지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식히려고 산책하러 려관 뒤 강뚝으로 나갔다. 장바 두 기장쯤 되는, 그닥 크지는 않은 강은 마치 시골아낙이 포달스럽게 푸념을 늘어놓듯 주절주절 흐르고 있었다. 뚝을 따라 스적스적 걷노라니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무척 상쾌한 감이 들었다. 헌데 내가 한밤중에 할머니가 강을 거느려다가 쓰러졌던 곳에 다달으니 한 녀인 거기서 무언가를 불태우고 있었다. 다름아닌 려관집아줌마였다.

아주머니, 여기서 뭘해요?”

려관집아줌마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미처 버리지 못한 로인네(할머니)의 유품을 태우고 있어요.”

려관집아줌마는 눈을 찡그린 채 손을 휙휙 저어 지꿎게 얼굴에 다라붙는 연기를 쫒더니 유품을 꿍져넣은 꾸레미에서 오래된 흑백사진 한장을 꺼냈다. 려관집아줌마가 그 사진을 불속에 던져넣으려는 순간 나는 새된 소리를 질렀다.

잠간만요.”

나는 마치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듯 홱 나꿔챘다.

이 사진은?…”

로인네 방 비닐장판밑에서 발견하였어요. 어찌나 꼼꼼하게 숨겨두었는지… 로인네가 어릴 때 친정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라나요. 예전에 한번 본 적이 있어요.”

사진은 색이 바래여 바탕에 동전 만큼한 하얀 점이 버짐처럼 피여있고 가장자리가 누렇게 뜨기까지 하였다. 사진 속에서 마흔살쯤 되여보이는 녀인은 손을 포갠 채 앞에 앉고 단발머리를 한 어린 소녀는 뒤에 서있었다. 둘다 흰저고리에 깜장치마를 입고 있는데다가 생김새가 비슷하여 얼핏 보아도 모녀 사이임을 알수 있었다. 소녀는 비록 몸이 깡마르기는 했으나 얼굴이 도리암직하고 눈이 어글어글하고 코가 당실하고 입술이 도톰하여 전형적인 미인상이였다. 특히 아래턱이 계란처럼 타원형인데다가 왼쪽에 팥알만한 기미까지 앙증스럽게 박혀있어 더욱 예쁨이 돋보였다.

아주머니. 아 사진을 저한테 주면 안돼요?”
“아니, 죽은 사람의 사진을 해서 뭘하려구요? 더구나 혈육도 아닌데…”

그냥요.”

려관집 아줌마는 의아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별 희한한 사람을 다 보겠다는 표정이였다.

좋도록 하세요. 어차피 태워버릴 건데…”

고마워요.”

사실 나는 사진작가로서 사진을 함부로 버린다는 것이 아까웠고 또 유일하게 이 세상에 남은 할머니의 모습을 지워버린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을 뿐이다. 어쩌면 직업적인 습관이였다. 나는 사진이 구겨질세라 조심스럽게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마치 보배라도 얻은듯 기분이 둥둥 떠서 그 자리를 떴다. 뒤를 돌아보니 려관집 아줌마가 마치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멍하니 선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흘후 할머니가 생전에 고향으로 어머니를 찾아가고 싶어했던 마음을 헤아려 식당주인아저씨는 두만강에 골회를 띄워보내려고 차를 가지고 두만강 상류인 숭선으로 떠났다. 나와 그녀 그리고 허성주가 그를 동행하였다. 나는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고 그녀는 자기도 따로 볼일이 있다고 하였다. 무슨 일인지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나도 구태여 캐여묻지 않았다. 허성주는 할머니의 일대기를 글로 쓰겠다며 따라나섰는데 기실 내 카메라도 들어주고 배낭도 챙기면서 “둘러리”를 서기 위해서였다.

헌데 차가 시장입구를 지날 때 그녀가 갑자기 웨쳤다.

잠간만 차를 세워줘요. 시장에 들려 필요한 물건을 좀 사야겠어요.”

운전수가 차를 길옆에 갖다대자 그녀는 얼른 뛰여내려 시장 안으로 사라졌다.

허성주가 입을 삐죽거리며 나직히 투덜거렸다.

점심전에 숭선까지 가닿으려면 시간이 삐듯한데… 헌데 왜 하필이면 그 먼데까지 가야 하지? 두만강이 뭐 거기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숭선은 두만강 상류가 아니요? 물도 맑고. 남평 아래쪽 중하류는 무산광산에서 광석을 씻은 물이 두만강으로 흘러들어 오염이 심하오. 자고로 망자의 령혼은 맑은 물에 띄워보내는 법이라오. 그래야 망자가 생전에 바라던 소망을 이룰수 있다오.”

식당주인아저씨가 은근히 면박을 주었다.

참, 지금 세월에 뭘 그런 걸 다 따진대요?”

그게 다 웃어른에 대한 효도라오.”

나는 부질없이 나대는 허성주의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그제야 허성주는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그녀는 검은색 비닐주머니를 손에 들고 헐레벌떡 뛰여왔다.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비닐주머니의 옆구리가 쀼죽하니 들쳐져있었다.

3시간쯤 달려 드디여 숭선에 이르렀다. 숭선은 두만강기슭에 잡리잡고 있는 자그마한 진()인데 예전에는 주로 조선족들이 모여 살았었다. 해관까지 끼고 있어 한때는 인적교류와 무역이 활발하게 진행되였었다. 그러다가 새 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경제침체로 점차 래왕이 썰렁해지고 아울러 출국붐과 더불어 조선족들이 썰물 빠져나가듯 한국으로 진출하다보니 지금은 조선족 인구가 대폭 줄고 타민족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홍기하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두만강 상류가 나타났다. 여기서 장백산풍경구가 코앞이였다. 멀지 않은 곳에 락타등같은 산들이 들쑹날쑹 솟아있었는데 그 웅장함과 호매로움에서 남다른 기운이 뿜겨져나왔다. 상류는 중류나 하류와 달리 폭이 좁고 얕았다. 장바 한 기장이 됨즉한 너비밖에 안되여 어른들은 훌쩍 뛰여넘 건너도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물이 어찌나 맑은지 강바닥의 자갈들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푸른색까지 띄여 청정하기 그지없었다.

식장주인아저씨가 납골함에 정히 담은 할머니의 골회를 들고 두만강가로 걸어갔다. 그 뒤를 나와 그녀, 허성주가 따랐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갈을 밟는 소리가 발밑에서 자박자박 들려왔다. 빨래돌같이 생긴 반듯한 돌 앞에서 식당주인아저씨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돌 우에 납골함을 내려놓고 뚜껑을 열더니 하얀 회가루를 방불케하는 할머니의 골회를 두손에 받쳐들었다. 식장주인아저씨의 손가락 틈새로 눈가루가 날리듯 하얀 분말이 흩날렸다. 그 분말은 서서히 강물에 내려앉더니 출렁이는 물결에 실려 아래로 떠내려갔다. 마치 하얀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넘노는 것 같았다.

 

엥 엥 엥요

어이 갈고 에헤요

저승길이 멀다 해도

대문밖이 저승일세

 

엥 엥 엥요

어이 갈고 에헤요

인제 가면 언제 오나

다시 오지는 못하리

… …

 

갑자기 그녀가 상여소리를 먹이였다. 이것은 망자에 대한 마지막 바람이였다. 처량하게 울려퍼지는 그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려는듯 난데없이 까마귀 한마리가 상공을 날아지나가며 까욱까욱 울어댔다.

할머니, 저 까마귀가 할머니의 령혼을 고향으로 모셔갈 거예요.”

녀는 나직히 중얼거렸다.

식당주인아저씨가 골회를 강에 다 뿌리자 그녀는 품속에서 액자를 하나 꺼냈다. 그것은 아들의 사진이였다. 그녀는 강가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뜯어 정성껏 ‘쪽배’를 만들었다. 여러가지 풀로 얼기설기 엮은 ‘쪽배’는 마치 아늑한 새둥지를 방불케하였다. 그녀는 아들의 사진을 정히 ‘쪽배’에 얹더니 조심스럽게 강에 띄워보냈다.

“아들아, 인젠 엄마도 너를 놓아보내련다. 아마 네가 갈 곳은 따로 있나봐… ”

그녀는 ‘쪽배’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러는 그녀의 볼을 타고 이슬방울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언니…”

나는 딱히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그녀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그녀의 몸이 내 품에서 바들바들 떨리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3년이나 상복을 입고 다시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였던 아들을 그녀는 결국 이렇게 떠나보냈다. 그 비애와 슬픔이 얼마나 큰지는 아무도 알수 없었다.

화연이, 이걸 받소.”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가방에서 검은색 비닐주머니를 꺼내 나에게 쑥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나는 얼떠름해졌다.

풀어보오.”

나는 검은색 비닐주머니를 받아 아구리를 헤쳤다. 놀랍게도 안에 까마귀조각품이 들어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그녀가 도중에 차를 멈춰세우고 시장에 들려서 사온 것이 바로 이 까마귀조각품이였다.

아니, 이건?…”

“이걸 강에 뜨워보내오. 그러면 까마귀로 인해 받았던 상처와 검은색에 대한 공포가 사라질거요. 까마귀는 길조요. 까마귀는 화연이를 보우해줄거요…”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름지기 가슴이 뭉클해나며 코마루가 저려왔다.

나는 그녀가 시켜준 대로 풀로 ‘쪽배’를 만들어 그 우에 까마귀조각품을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강물에 띄웠다. 나는 속으로 뇌까렸다.

잘 가거라, 나의 과거여!’

물결을 따라 넘실대며 쪽배는 아래로 흘러갔다. 마치 거센 풍랑을 헤치고 나아가듯 기우뚱기우뚱 위태로웠지만 결코 물결에 휘감기거나 물속에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듯 도고하고 기백이 넘쳤다. 나중에 해빛에 반사되여 까마귀조각품은 하얀 점으로 보였다. 미구에 하늘로 훨훨 나래를 치려는듯 날개를 활짝 펼쳤다. 드디여 ‘까마귀’는 푸드득 힘차게 날개짓을 하며 ‘태양’을 향해 화려하게 비상하였다…

이듬해 봄 나는 아이를 낳았다. 떡돌같은 아들이였다. 아들은 감실감실한 피부색만 나를 닮고 생김새는 (전)남편을 쏙 빼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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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평>

몸의 은유와 생명의 귀환
최민


1.들어가며
문학은 시대의 또 다른 자아이며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의 문제점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 때로는 친절한 가이드로 해결책을 제안하기도 한다. 필자는 많은 작품을 읽고 평을 쓰면서 늘 현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생활문화와 사회구조에서 점차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고민은 무분별한 과학의 범람으로 인해 대중생활이 점차 우리가 알고 있는 생활에서부터 탈리하고 사람의 수요와는 련관되지 않은 대량적인 생산과 양적으로 무자비하게 성장해나가고 있는 물질들로 인해 인간의 가지고 있는 내면적인 가치와 기준, 성격과 성향, 그리고 기본적인 생명생성에 대한 욕구의 변화와 더 나아가서는 모체 안에 있는 생명체와 여성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주는데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생명체와 모체, 여성과 자연, 어찌보면 가장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나타나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점차 발전해나가고 있는 과학기술과 금지되어야 하는 지식들(시험관 영아, 복제인간, 인간계놈 계획 등)은 자연에 대한 존중과 죽음으로 표현되는 자연회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사라지게 하고 있다. 물론 과학기술이 우리한테 가져다주는 편리는 긍정적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소실되고 있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군형과 조화에 대해 멸시하여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채운산 작가의 “귀(归)”를 본다면 현 사회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들의 문제점과 여성, 생명이라는 에코페미니즘적인 상상력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에코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현대 과학기술과 가부장제를 생태 문제의 근본적인 원동력으로 간주한다. 이 전에 첫 번째 질문은 신체에 파괴 끼치는 방법이다. 환경 오염 및 파괴와 같은 심리적 오염뿐만 아니라 생태계 파괴의 근본 원인을 인식한다는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또한 에코페미니즘 소설은 신체의 억압과 파괴를 통해 여성을 인식하여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생명의식에 대한 리해를 향상시킨다.  

중편소설 “귀”에서의 남성은 욕망으로 여성과 자연을 다스리고자 하는 형상으로 나타나고 여성과 자연은 별개의 개체로 묘사되지 않으며 여성은 자연을 지배하거나 억압하는 주체가 아닌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동화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자연을 이루는 단순한 사물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길을 찾을 때 인간의 삶은 자유로워 진다.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개발이거나 파괴, 여성을 착취하여 남성적인 욕구를 만족하는 부정적인 측면의 부각보다, 여성의 자연에 대한 원숙하고 동등한 생명력을 잉태한 채로 적응해 가는 에코페미니즘의 사상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2. 남성의 욕망과 파괴-오산과 안로인(김삼녀)
소설의 초반부에는 사십이 된 화자 “나”와 남편의 리혼하는 일을 자세히 말하고 있다. 이 내용에서 남편의 리혼하고자 하는 원인을 모두 알고 있지만 “아이를 못 낳는다”는 원인만으로 남편의 리유같지 않는 리유를 받아드릴 수밖에 없는 여성을 그리고 있다. 이 장면에서 나타난 여성과 남성이 관계는 아이라는 요소로 인해 불확실해 졌고 출산이라는 자연의 능력은 숨막히게 여성을 속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자연의 능력은 여성의 삶을 조율하고, 여성을 억압하기도 하고,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의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남성과 동일한 인간인 여성과 자연 중 어느 것이 더 유리한가 보다 여성과 자연이 가져야 하는 상호작용이 중요하게 다루어질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여성은 이러한 자연에 출산이라는 흔적을 남기고, 그들의 가치가 증명되고, 시대의 흐름과 세속적인 문제성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소설속 등장하게 되는 주요인물과 그들 사이에서 발생하게 되는 사건들은 모두 오산진이라는 곳에서 발생하는데 조선인 이주, 9.18사변, 광산 개발과 같은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삶을 영위하기 시작한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매 단계마다 보여주고 있는 자연의 모습은 서로 부동한 모습이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데다가 돌이 지천에 널려있어 예전에는 돌골石沟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처음 이곳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조선에서 월강한 조선인들이였다...(중략)...1920년대 중기 조선의 종성에서 살던 윤씨네 일곱세대가 남부녀대로 두만강을 건너와서 화전을 일구면서 마을이 생겨났다. 그 후 월강을 한 조선인들이 목단강 지역으로 가다가 이곳에 들려 하루씩 묵군 하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비록 돌이 많아 밭농사만 짓지만 청정부의 단속이 미치지 못하여 강냉이나 감자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돌골에 눌러앉았다. 하여 마을은 점차 커져 20여세대로 불어났다. 그들은 대부분 함경북도에서 온 사람들이였는데 쌀에 뉘처럼 전라도나 충청도에서 온 화전민들도 섞여있었다. 

원시적 자연이 보여주는 엄숙하고 변화를 쉽게 할 수 없는 모습에서 인간이라는 작은 단체는 크든 작든 자연을 개조하여 리용하고자 하지만 자연이 가지고 있는 모습에 압도당하여 자연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기 이전의 상태, 즉 원시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분리가 이루어지기 전의 자연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서, 생산력과 인간의 모든 생명력에 무한한 가능성과 원천적이고도 근원적인 힘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이러한 속성으로 생명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를 제시하고, 발전이 필요하다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하게 할 수있다. 자연에 친근하고 생태와 환경에 적합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9.18사변과 “일본놈”들이 들이닥쳐 광산으로 개발하면서 자연에 도태되어 참혹하게 생을 마감하는 개척자들이 시체와 그 위에 내려앉는 까마귀떼로 인해 변화하게 된다. 이렇게 소설의 배경으로 되는 오산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오산진에 들어서니 시가지도 하늘도 재빛으로 안겨왔다. 아직도 바람이 불면 돌가루가 펄펄 날렸는데 들쭉날쭉한 층집들과 단층집들이 마치 키재기라도 하듯 우중충하게 들어앉은 거리는 먼지를 뽀얗게 들쓰고 있었다. 게다가 전선주나 나무가지, 지붕에 가담가담 까마귀들까지 떼를 지어 앉아 시도 때도 없이 까욱까욱 울어댔는데 바람에 날려온 검은 비닐쪼각을 방불케 하였다. 여기에서는 아직도 모든 걸 까마귀와 련결시키고 있다. 간판도 까마귀 “오乌”자가 들어간 게 많고 별명도 그렇고 사람을 욕해도 “까마귀 같은 놈”, “까마귀 같은 년”, “까마귀 밥”, “까마귀 똥”… 등 까마귀를 곁들인다. 예전에는 사처에 까마귀 똥이 널려있어 주민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일이 집앞의 까마귀 똥을 쓸어내는 것이였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래서인지 온 시가지에 쿰쿰한 냄새가 진동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비해 까마귀가 많이 적어졌다. 환경오염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에서인지 날따라 감소되고 있는 추세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화자 “나”의 견해는 이처럼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다. 구 세대들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이 곳으로 오게 된 소설 속 화자 “나”는 불가항력적인 자연과 무참하게 짓밟힌 자연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의 운명을 통감한다. 하지만 여기서 구 세대의 욕망으로 파괴된 것은 자연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써의 안로인도 있었다. 안로인은 조선의 금생리라는 곳에서 태여났지만 8살에 어미니와 헤여져 오산광산 십장으로 있는 일본인 집에 부엌데기로 끌려간 인물이다. 하지만 안로인의 운명은 단지 부엌데기만이 아니였다. 14살 되던해부터 일하고 있는 집주인한테 강간당하였고 이 일을 알게 된 녀 주인은 도리여 안로인을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쬐꼬만 계집애가 못된 짓부터 배웠다면서 두들겨패고는 기생집에 팔아버린다. 거기서 갖은 고생을 겪다가 일본놈들이 망하자 자유의 몸이 되였지만 더럽혀진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안로인은 그냥 오산에 눌러앉게 된다. 오도 가도 할 데가 없는 안로인을 오산에 있는 려관집 주인이 가엾게 여겨 받아주고 청소부로 일하다가 려관집아들과 결혼한다. 하지만 안로인한테는 불임증이 있는 관계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고 방법없이 아들을 주어다 키운다. 이처럼 소설속의 남성들은 자연에 도전하여 정복하려한 반면 여성인 안로인은 모성의 생명력으로 자연을 동반자로 여겨 동화된다. 그는 남성적 욕망으로 인한 파괴를 받으면서도 인간의 원시적 본능인 모성회귀본능, 생육본능을 추구하는가 하면 치매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연회귀(화자 “나”를 찾아 영정사진을 찍고자 한다)본능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여성이다. 즉 안로인은 자연과 자신의 관계, 또 주변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자연본능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안로인과 자연을 련결하여 본다면 모두 생명에 대한 회귀를 보여주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즉 구 세대의 실리적인 욕망으로 인해 파괴된 오산은 소설에서 재생을 상징하고 있는 까마귀의 량적 변화로 오산이 다시금 생기를 띠는 것을 암시하고 있고 남성의 욕망으로 인해 파괴된 안로인은 죽음을 받아드리는 모습을 통해 자연이 부여한 생명과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인간의 생명본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의 후반에서 안로인의 마지막을 묘사하는 장면을 본다고 하여도 자연의 본능에 의지하고 사모할 때 안로인은 고통이 아닌 기쁨을 느끼게 된다. 자연은 인간의 의지에 우호적이며 안로인은 자연(흙)과 하나가 될 준비가 되면서 더 이상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 웃음을 띠게 된다. 이처럼 자연은 망가지지도 않고 길들여지지도 않는 야생마와 같아서 남성의 욕망으로 나타나는 무모한 열정도 이루어낼 수 없었던 자연과의 동화를 사랑과 흠모로서 헌신하고 대지에 자신을 던진 여성에게 드디어 머리를 숙인 것이다. 안로인은 바로 이러한 생명본능이라는 자연적인 현상에서 마지막의 웃음을 보일 수 있는 것이고 소설의 제목과 같이 다시금 자연으로 돌아가는 “귀”를 한 것이다.

3. 생명의 재생과 탄생-가막귀신, 화자 “화연”과 까마귀
“귀” 에서는 또 다른 중요인물로 부각되는 것은 “가막귀신”으로 불리우는 그녀였다. 화자 “나”가 오산에 오기 3년전 큰물이 졌었는데 그녀의 아들이 홍수에 밀려가서 죽게 된다. 그번 홍수에 오산에서 열두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화자 “나”를 오산으로 데려간 허씨의 말에 따르면 아마 그해는 오산에 두번째로 까마귀가 많이 나타난 해였을 것이다. 첫번째는 일본놈들이 광산을 개발할 때 역부들이 수없이 죽어나간 해였다. 하지만 그녀 아들의 시신은 현재까지 찾지 못하였다. 그때부터 그 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상복을 입고 다녔다. 그리고 아들을 잃은 후 장례에 관심을 가지더니 신내림을 받았는지 점술도 조금 알고 있는 인물이였다. 하지만 동네의 홀아비나 마누라가 한국에 간 사내들을 꼬셔서 잠자리를 같이 하는 남근본능과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여성으로 소설초반에는 부각되는데 이는 그가 가지고 있는 애미니즘적 형상에도 련결된다. 에코페미니즘과 심층생태론은 자연을 신체로 인식함으로써 자연을 능동적 주체로 인식한다. 자연의 존재는 인적 도구 자원이 아닌 인간처럼 내재적 가치를 지닌 생물이다. 이것은 “생체 중심의 평등”으로 모든 생물을 동등한 관계에 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녀의 남근본능적인 욕구는 자연의 원시적인 본능에 충실하는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원시적이란 말은 가장 처음, 최초, 원래와 기본적이라는 뜻을 가리킨다. 력사적으로 보면 문명이전, 즉 국가라는 문명체가 나타나기 이전의 생활 양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 경우 본질은 우리가 원하는 온전한 인간성, 본성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시적인 본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템과 같은 세계관을 만들게 된다. 원시적인 종교와 같은 형태인 애니미즘의 세계관이 바로 이러하다. 애니미즘은 자연과 인간의 련결성을 믿고 있다. 인간과는 별개의 대상이지만, 인간은 자신의 의식과 몸을 자연에 직접 묻고 자연과 마음과 물질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에서 어떠한 신적인 령감을 받거나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신내림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즉 자연이 신격화된 것이다. 소설속 그녀도 신내림을 받고 있고 화자 “나”와의 대화에서도 그의 신적 능력을 감안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재례식 장례를 추구하고 모든 절차를 엄격히 준수하고자 하는 행동에서도 그녀가 애니미즘적인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소설속 남성들은 그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 심지어 허씨는 자연을 신으로 믿고 있는 그녀한테 가짜로 장례를 하자고 하는데 이에 분노한 그녀는 “천벌을 받는다”며 거절한다. 이는 위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오늘날 자연은 신성하게 보존되여야 할 공간이라는 인식이 희박해지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자연에 대한 경의로움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즉 소설속 남성들이 보여주는 것은 현 시대 과학기술로 인해 소실되고 있는 자연과 생명에대한 경의로움이라면 소설속 세명의 여성은 이와 반대되는 형상인 것이다. 하지만 소설속의 그녀는 애니미즘적인 형상이면서도 자연과의 모순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아들의 죽음과 련결된다. 소설속에서 그녀는 큰 비가 오는 날이면 길 복판에 장승처럼 뻗치고 서서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붓는다. 이는 그녀가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서 나오는 분노보다는 애원에 가까운 고함이다. 

“하늘이 구멍이 났어? 왜 비를 퍼붓고 지랄이야? 또 무슨 날벼락을 떨구려고 이러는가 말이야? 나까지 잡아가, 나까지 잡아가라구!” 

이는 원시성을 지닌 여성과 자연의 대화인 것이다. 인간으로써 원시적인 모성성을 드러내고 있는 그녀인 것이다. 하지만 옆에서 보는 남성은 이를 “지랄발광”이라고 언급하면서 죽은자에 대한 그리움과 자식에 대한 원시적 모성성을 보여주고 있는 그녀를 모욕하곤 한다. 애니미즘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여성의 몸 밖에 존재하는 자연도 또 다른 몸이다. 인간이 자연에 뿌리를 내리고 신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자연에 도움의 손길을 계속 보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도움의 손길”은 그와 련결되는 자연을 거슬러 가는 선택이다. 죽은자에 대한 호소나 자연과 동일시 되는 여성을 죽음으로 호소하는 행동이니 말이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해 가막귀신으로 불리는 그녀한테 남근욕구가 나타나게 되고 자신을 타락으로 몰고가는 방식으로 자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녀도 소설의 결말에 들어서면서 안로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소설속 화자로 나타나고 있는 “화연”은 어릴적부터 검은색에 대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화연은 자신의 트라우마는 어릴적 아버지의 장례식 날 유난히 많이 내려앉았던 까마귀떼를 날리기 위해 5촌 아주바이가 쏜 총에 맞아 배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와 날개를 질벅히 적시고 있는 까마귀를 보면서 나타난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매일저녁 꿈에서 나타나고 있는 까마귀들은 그를 늘 괴롭혔다. 그렇다, 화연의 검은색 트라우마는 사실상 꿈에서 나타나는 까마귀에 대한 트라우마 였다. 따라서 꿈 속에서 나타나는 까마귀의 모습과 실제적인 까마귀의 모습은 완전히 부동한 두 생명체이다. 이는 허씨가 화연한테 알려준 것과 화연이가 자기절로 네이버를 검색하여 얻은 답에서 알 수 있다. 문학에서 “꿈”은 흔히 정신적 외상이나 억압된 “실재”를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되는데 화연의 꿈 역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장면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자신을 낭떠러지에 버리는 까마귀들이나 시체를 갈갈이 찢어서 심장이며 간이며 창자며 나무가지에 걸레짝처럼 걸어놓기도 하는 꿈은 죽음이 가져온 처참한 흔적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화연이가 이러한 악몽에 시달리게 되고 검은색이라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 원인으로 바로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어린 시절 5촌 아즈바이가 까마귀에 대한 폭력은 화연에게 트라우마가 되고, 그녀의 의지와 관계없이 남성주체에 의해 자연에 대한 폭력을 강요받게 되는 그녀는 결국 이러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화연은 자신에게 닥치는 피해를 제거함으로써 앞으로 계속될 피해를 제가하려고 노력한다. 화연은 이러한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한 검은색은 전부 배제하고 하얀색만 추구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그의 남편은 이러한 행동을 리해하지 못하고 괴벽하다고 말하기까지 하는데 이는 그녀를 남성의 시각에서 보는 정상적단체의 타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화연의 남편이 규정한 타자에는 검은색을 싫어하는 화연이의 모습을 제외하고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자연적 능력에 대한 불구와 다른 여성에 대한 욕구를 방해하는 자라는 내용도 포함되고 있다. 즉 화연 남편이 규정한 타자에는 여성뿐 아니라 자연, 그리고 남성주체가 수요로하고 있는 요소들도 존재한 것이다. 남편으로 인해 타자화된 화연과 마찬가지로 까마귀란 존재도 남성에 의해 타자화되어 폭력을 당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화연이가 남편과의 리혼을 선택한 것은 남성주체가 가득찬 이미 타자화된 몸의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동일하게 남성주체로 인해 타자화된 안로인의 죽음을 직면하면서 느끼게 되는 여성의 원시적인 본능은 모성성을 느끼게 되면서 변화하게 된다. 

안로인의 죽음은 가막귀신은 아들의 마지막을 같이 해주지 못한 아쉬움을 풀어주고 화연한테는 여성으로써 느껴여 하는 모성애를 느끼게 해주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잠겨 있던 삶에 대한 원동력을 다시금 불러일으킨다. 즉 안로인의 죽음은 가막귀신인 그녀와 화연이의 마음속에 잠겨있던 주체성을 해방해준 것이다. 여성과 자연은 새로운 모습과 삶을 창조 할만큼 강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새로운 삶을 키울 수 있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새로운 삶의 탄생은 사람들의 삶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변화하는 삶의 원동력으로 된다. 그러므로 가막귀신인 그녀와 화연은 안로인의 죽음과 같이 여성의 원시적인 본능에 대한 만족으로 인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이고 작품의 제목과 같이 자연속으로 “귀”한 것이다. 

4. 나가며
채운산 작가의 “귀”, 어찌보면 조선족 문학에서 찾아보기 힘든 에코페미니즘과 그 작품적 상상력에 초점을 맞추어 볼 수 있는 작품이다.다시 말해 현시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점차 소실되고 있는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생명본능에 대한 멸시를 꼬집고 있는 작품이고 여성과 생태라는 구조를 리용해 생명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을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문단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던 한강의 “채식주의자”거나 윌라 캐더의 “아, 개척자들” 처럼 남성성과 여성성의 모순점을 작품에서 강하게 언급하지는 않은 것은 평을 쓰고 있는 필자한테는 조금 아쉬운 부분으로 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귀”가 보여주는 생명이라는, 인간 원초적인 요소를 상대로 표현하고 있는 작가의 경의로움과 새로운 세계관은 독자들한테 큰 경종을 일으켜주는 요소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귀”에서 생명의 의미는 “몸”의 의미와 다르다. 어찌보면 작가가 말하려는 생명은 단지 “몸” 뿐만이 아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사고를 통해 생명, 본능, 원시 세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자연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여성의 몸은 일종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자연과 함께 전체를 이루고, 지속적인 생명력과 자연 순환의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여성성이 가지는 포용과 사랑의 정신은 현시기 생명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들을 극복할 수 있는 자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복원의 의미도 담고 있다. 

이상 채운산 작가의 “귀”에 대한 필자의 짧은 평이다. 그동안 과학기술의 발전에만 집중되여 있던 우리들한테 현재까지 홀시되여 왔던 원초적인 문제에 대해 다시금 의론점을 뿌려준 작품이라는데 그 의의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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