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複合象徵詩 감상과 解說】

침묵의 언어(1)

□ 조혜선

 

소리의 부름에

바람은 풀죽어 있고

배신의 발등에도 꽃은 피었다

 

낙엽 잔등엔 이슬이

슬픔뿐이 아님을

향기의 안색이 말해주고 있다

 

쉰내 나는 언덕에 가시 찔린 사연

구름의 귀향길엔 놀빛도

무지개 한 자락 베어내어

소반에 받쳐 올린다

 

잠든 호숫가

물풀의 이야기는 망각의 하늘에

별찌 되어 흐른다

 

인제는 연륜 감아쥐고

춤추는 오로라

아지랑이 산발 넘어

침묵의 바위에 햇살 널어 말린다

 

 

행차(行次)·2

 

똑같이 서있는 두 사람 앞에

앉아있던 노란 옷 아줌마

옆사람 자리 앞에 실실 웃는다

여기 앉으세요

붉은 옷 아줌마가 하는 말

제 앉지...

노란 옷이 눈치를 보며 대답 한다

아줌마가 더 아파보여서

어떻게 아오?

내 심장에 지름대가 말해줍데

노란 옷이 차갑게 묻는다

몇 개 넣엇어요?

붉은 옷이 하나 넣었다고 대답한다

우우~ 나는 두 개나 넣었는데

노란 옷이 하는 말

붉은 옷도 노란 옷도 눈을 맞췄다

침묵...

노란 옷이 피아노 공부 간다는

목소리의 자랑스런 뉘앙스를 싣고

버스는 달린다

지구의 저켠, 기다림 명멸하는

별빛 흔적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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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침묵 움켜쥔 숙녀의 언덕

조혜선 시인의 詩集 묵언(黙言)의 그림자를 벗겨본다

 

중국 연변조선족복합상징시동인회 회장

詩夢잡지사 사장 · 발행인

□ 김현순

 

 

방관자의 시각은 객관적인 경우가 많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바위처럼 묵묵히 관조하는 묵언(黙言)의 침묵에는 우주의 묘리가 슴배어 있다. 풍운조화에 따라 옷 갈아입는 자연의 섭리와는 달리 조용히 심성(心性)을 갈고 닦는 사람은 성인(聖人)의 자세를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가슴에서 슴새어 나오는 빛깔은 세상을 깨달음으로 숙성시킨다. 또한 그것을 시에 담는다면 우주에 넘쳐나 세상을 취하게 하는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잘 익은 포도주가 된다.

한수의 시에서 화자의 내심을 홀딱 벗겨 다 드러내 보이기보담은 더러는 살짝 보일 듯 하면서도 은밀하게 감추어두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직설하지 않고 에두르거나 굴절시킨 역설 또는 다른 방식으로 변형시켜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은유 또는 상징이라고 한다.

상징의 매력은 화자의 뜻을 글속에 용해시켜 화폭내지 스토리 또는 이념과 서정의 퍼즐조합으로 그 위력을 과시하는데, 그것이 새로울수록 흡인력이 강하게 된다. 그 새로운 것은 또한 아름다운 변형으로 승화될 때 새로운 영혼 경지구축에 더욱 확실하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묵묵히 심성을 갈고 닦는 것이 바로 도()라는 설법이 있다. 말이 없다 하여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며 소리 높다 하여 이치가 분명한 것만은 아니다. 소리나는 북은 힘 주어 치지 않는다는 설()도 있듯이, 어디까지나 신사답고 숙녀다운, 여유 있는 아량의 자세가 시인이 갖춰야 할 자세이다.

하지만 시인은 시를 쓰거나 받아 적을 뿐 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시는 시인의 육체에 잠재해 있는 영혼이 계시가 시인의 붓끝을 빌어 펼쳐질 뿐이다.

때문에 한 사람의 시를 분석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분석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영혼경지를 헤쳐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침묵의 멋스러움으로 세상달관의 경지에로 박차를 가하는 조혜선 시인의 시 묵언(黙言)의 그림자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앞에 다가설 것인지 이제 그 베일을 벗겨보도록 한다.

이 시에서는 세월의 세례 속에 상처 입은 마음들이 성숙으로 침묵하는 화자 마음 경지를 그려 보이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세파에 시달리며 소외 되어있는 사래 긴 상처의 이랑마다엔 소금꽃 허옇게 피어오르겠지만, 화자에게는 그냥 묵언(黙言)의 화폭으로 그 아픔과 힐링의 공간 여백을 제시해주는 것으로서 마음 그릇의 크기와 느긋한 성품의 폭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직설을 떠나 은유적 표현으로 우아하고 멋스러운 숙녀의 향기를 남김없이 과시하고 있다.

살다 보면 배신당하고 소외당하는 나날들이 많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한 각자의 수용정도는 각이할 수밖에 없다. 화자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모든 것에 대하여 너그럽게 관용하는 보귀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심성이 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소리의 부름에/ 바람은 풀죽어 있고이 대목은 소외된 삶의 저락된 나날들을 뜻하는데 바람이 풀죽어 있는형상으로 대변시켜 보여주고 있으며 배신의 발등에도 꽃은 피었다는 이 시구(詩句)는 삶의 질고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배신의 발등에도 꽃이 피었다는 표현은 잘된 해학적 변형 사례라고 할수 있다.

 

보기:

 

직설의 경우소외당하고 배신당한 삶이지만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상징의 경우배신의 발등에도 꽃은 피었다

 

윗 보기사례에서 우리는 두가지 경우의 차이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직설의 경우는 용속한 일상적 표현이지만 상징의 경우는 신사적 스타일의 표현이다.

복합상징시에서는 신사, 숙녀다운 스타일의 표현을 고집하므로 직설의 경우는 배척받게 되는데 막 말 해서 센스 넘치는 예술적 표현을 하라는 것이다.

조혜선 시인은 바로 이 점을 잘 포착하여 능숙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 고요로운 침묵 심처에는 표면에 머무르는 슬픔내지 상처 이상으로 큰 고통이 웅크리고 있음을 화자는 역시 화폭의 언어로 대변하고 있다.

낙엽 잔등엔 이슬이

슬픔뿐이 아님을

향기의 안색이 말해주고 있다

 

쉰내 나는 언덕에 가시 찔린 사연

윗 구절에서 낙엽 잔등엔 이슬이 슬픔뿐이 아니라는 것은 상징의 직설로 된 이념의 발로이지만 화자는 그것을 향기의 안색이라는 것으로 교묘하게 대변하여 보여주었다.

구름의 귀향길엔 놀빛도

무지개 한 자락 베어내어

소반에 받쳐 올린다

 

잠든 호숫가

물풀의 이야기는 망각의 하늘에

별찌 되어 흐른다

이 구절에서는 세상의 모든 욕망(慾望)과 회한(悔恨)의 정을 비워버리고 홀가분한 심정으로 삶 앞에 마주 서며 느껴지는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무지개 한자락 베어내어 소반에 받쳐 올린다거나 망각의 하늘에 별찌 되어 흐른다는 것은 삶에 대한 화자의 아름다운 극성과 성품의 표현이며 그것을 위하여 상기의 이미지를 창출해낸 것은 화자의 심후한 내공이 극점에로 치닫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제는 연륜 감아쥐고

춤추는 오로라

아지랑이 산발 넘어

침묵의 바위에 햇살 널어 말린다

 

종결부분으로 되고 있는 이 시구(詩句)에서도 삶을 갈무리 하는 화자의 득도(得道)의 경지를 변인화(變人化)의 능동적가시화(能動的可視化) 작업으로 실현하고 있다.

오로라가 산발 넘어서 사람처럼 침묵의 바위에 햇살 널어 말린다.

눈앞에 보는 듯이 생생한 영상(影像)이다. 화자는 이런 영상의 나열로써 화자 사상의 내함을 용해시켜 암시하여준다.

바위는 왜 침묵하며 오로라는 왜 산발 넘어서 올 것인가. 그리고 햇살은 왜 널어 말리우는가, 햇살은 젖어있거나 좀이 나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왜서 젖었거나 좀나 있을 것인가.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화자는 묵언의 화폭에 그 해답을 감추어두고 있다. 굳이 그에 대하여 해석, 설명 하지 않아도 눈앞에 전시되어있는 이미지들의 변형된 화폭을 통하여서도 세상은 얼마든지 짐작, 파악할 수 있다는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수의 작은 시이지만 그 속엔 화자의 인생을 담고 있으며 세상의 섭리와 삶의 자세를 펼쳐 보이는, 우주와 세상을 담는 놀라운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수작(秀作)이라고 할 수 있다.

조혜선 시인의 시작품들은 이렇게 명징(明淨)한 시어들의 조합으로써 화자(話者)의 삶의 철학내지 주장, 관점을 내재적 정서의 흐름선()에 따라 이미지변형의 조합으로 펼쳐 보이는 것이 특색이다.

구태어 목청을 높이고 손발 놀릴 필요 없이 그냥 바라보고 경청하기만 하여도 그 진가를 가려낼 수 있는 것은 삶의 지혜이다. 산에 오르지 않아도 산의 풍요로우을 알수 있고 바다에 내려가지 않아도 바다의 설렘을 알수 있다는 말은 이와 같이 능자(能者)의 달관한 경지라고 정의(定義)를 내릴수 있다.

소요스런 삶의 현장에서 관조와 성찰의 지혜는 찬란한 예술창출의 발단으로 된다.

 

조혜선시인의 두 번째 시 <행차(行次)·2>를 마저 살펴보기로 하자.

이 시는 시내 공공버스에서 목격한 삶의 한 장면에 대한 묘술의 형식으로 된 스토리식 복합상징시에 속한다.

그냥 일상의 한 장면을 썼음에도 불과하고 그것이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 까닭은 일상의 작은 편린(片鱗)들을 통찰과 조화의 감정선에 따라 그것을 목걸이, 팔걸이와 같은 아름다운 장신구로 도배해놓았기 때무이다. 여기에서 생활의 퍼즐조합을 그대로 원시상태 그대로 진열해놓는다면 예술로 되기 어렵다. 이런 경우엔 반드시 일상의 재연(再演)으로부터 환각의 변형을 거친 승화에로 갈무리를 해야 하는데 화자는 이 점을 잘 포착, 완수하였기에 크게 점수를 매겨줄 수 있다.

시에서 등장하는 두 아낙의 주고받는 대화는 서로 비겨보고 대조해보는 인간 삶의 본능적 참 모습을 그려내고 있으나 화자는 종결부분에 가서 그러한 삶의 향기를 싣고 버스는 기다림 명멸하는 별빛 흔적을 따라달린다고 하였다.

기실 누구든 기다림 명멸하는 별빛 흔적을 따라내처 달리고 있는 것이다. “기다림 명멸하는 별빛 흔적을 따라가는 곳은 현실보다 훨씬 더 월등한 세계임에는 의심할 나위가 없다.

화자는 이처럼 지극히 익숙한 일상의 한 쪼박에 포인트를 정하고 렌즈의 초점을 맞춘면서 영혼의 경지를 차원 높이 끌어올리고 있다.

여기에서도 화자는 함께 참여하여 궁싯대지 않고, 그냥 차분히, 침묵하는 바위처럼 묵언의 정화(淨化)를 실현하고 있다. 말은 않았지만 기실 주옥같은 말을 환각의 하늘에 뭇별로 박아넣은 것이다.

시영역의 새로운 유파로 꽃펴나는 복합상징시의 멤버로 활약하는 조혜선, 숙녀(淑女) 시인의 언덕에 더욱 알찬 열매들 영그는 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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