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3-12-17

최근 중국은 고구려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작업인 소위 동북공정(東北工程)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는 당시 고구려가 고대 중국민족 가운데 하나의 소수민족이라는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구체화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하지만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 공작"을 한국 대 중국이라는 역사관과 이해의 대립으로만 보는 것은 곤란하다.

국제사회에서의 세력균형의 거시적인 틀 속에서 중국이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세계 문화다양성운동을 적극 지지하며 세계문화협정 체결에 적극적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문화다양성(cultural diversity)"운동은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해 문화분야의 주요 이슈로 자리잡고 있다.

이 "문화다양성 운동"은 현재 정부 차원에서는 "문화정책국제네트워크(INCP)"를 통한 세계 문화장관회의의 개최, 비정부기구(NGO) 차원에서는 "문화다양성 국제네트워크(INCD)"와 유네스코 등을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이들 단체는 "문화적 예외"를 인정하며 문화유산.예술.문화산업 등 문화 콘텐츠와 "문화적 표현"의 전 분야를 포괄하는 문화다양성협정의 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내년도 INCP 세계문화장관회의와 INCD회의 개최를 준비하며 그동안 서방권 국가들의 주도로 진행된 이 운동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아래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고자 하는 중국이 문화분야에서 기울이는 노력 가운데 하나다.

유럽 등 서구 주도하의 협정체결을 견제하고 미래의 문화유산을 포함한 문화 콘텐츠 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의도다.

이렇게 볼 때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시도가 중국의 왜곡된 역사관에서 비롯된 문제라고만 판단하거나, 동북아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위한 것이라는 식의 국가 혹은 지역 차원으로만 접근한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의 더 큰 흐름을 놓치게 될 것이다.

한민족은 한반도라는 고대로부터의 독립된 민족역사의 영역에서뿐 아니라 주변 다민족 국가의 역사 속에서도 소수민족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불행히도 현재 반도가 동강나고, 발해의 영역이 러시아와 중국에 포함되고, 많은 역사적 유산이 이들의 의도적 왜곡과 무관심.말살로 위기를 맞고 있지만 우리 민족의 활동영역에 대한 역사는 결코 말살되게 해서는 안 된다.

지난 수년 동안 역사학의 분야를 넘어 경제.인류.정치사회학을 전공한 몇몇 학자.연구가들이 이르쿠츠크의 바이칼 지역, 투바 공화국 지역의 탐사 및 인류학적 조사를 벌여온 것도 문화다양성의 측면에서 한민족의 뿌리와 문화 지키기의 한 여정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문화 정체성이나 다양성에 큰 관심이 없었다.

최근 들어 외국인노동자.중국동포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며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5백여만명 우리 동포의 우리 말과 문화 지키기 등에도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문화 관련 부서는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 실태파악에 이제서야 나서는 등 늑장대응을 반복하고 있다.

세계문화다양성운동에도 올해 들어서야 관심을 보여 INCP 회원국으로 가입했을 정도다.

세계적 문화전쟁의 흐름과 국제정치에서의 주도권 쟁탈전은 21세기 지식경쟁시대에 놓쳐서는 안 될 주요한 기류다.

우리가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발해사가 사라지고 이르쿠츠크 한인독립운동사가 사라지는 등 제2, 제3의 고구려사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바이칼을 중심으로 한 시베리아 지역과 중국 및 해외동포에 대한 관심도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권원순 한국외국어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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