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생가 탐방기
박영진 수필가

박영진 약력 :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연변대학 물리학부 졸업.1989년 대학생예술절 글짓기응모, 수필조 1등상 수상. 2018년 법무부 세계인의 날 수기공모 특등상 1등 수상. 한반도문학 신인상 수상, 동포문학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 KBS한민족방송 우수상 15회 수상, 중국동포역사교육문화탐방 후기상(2) 수상
박영진 약력 :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연변대학 물리학부 졸업.1989년 대학생예술절 글짓기응모, 수필조 1등상 수상. 2018년 법무부 세계인의 날 수기공모 특등상 1등 수상. 한반도문학 신인상 수상, 동포문학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 KBS한민족방송 우수상 15회 수상, 중국동포역사교육문화탐방 후기상(2) 수상

그곳에 가면 노란 리본으로 물든 아담한 마을을 만날 있다. 마을로 뻗은 길가에 노란색 바람개비들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사시장철 노란 나비들이 춤을 추고 있는 봄날일 것만 같은, ‘사람 사는 세상’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알려준다.

2019년 10월 12일(토), 나는 중국동포역사교육문화탐방 가족들과 함께 10여 년간 오매불망 그리던 봉하마을, 고 노무현대통령 생가를 탐방하게 됐다. 봉화산 봉우리의 봉수대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봉하마을, 노란 리본으로 물든 마을로 들어서는 길부터 노란색 바람개비들이 반갑게 반겨주고 곳곳에 노무현 전대통령을 기억하는 노란색 쪽지들이 산들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대통령님이 살아 계실 찾아 뵙지 못하고 이제야 오다니, 너무도 큰 자책감에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파났다. 천국이라 믿고 찾아온, 한국의 푸른 하늘아래서 같은 동포라고 좀 봐주겠지, 하고 철석같이 믿으며 억울하게 불법체류자신세가 되어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국동포들로 하여금 어두운 음지에서 햇볕 따사로운 양지로 나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고마운 대통령이셨다.

서울조선족교회에서 불법체류자인 중국동포들이 한국정부의 부당한 동포정책에 대하여 항의하는 단식농성을 벌였을 비정한 한국여론의 거센 반발과 참모진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이는 귀하신 시간을 내어 동포들을 따뜻이 찾아주셨다. 그날 방명록에 이렇게 쓰셨다. "중국동포 여러분. 힘내세요. 국경과 법제도가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의 믿음은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건강 잘 돌보십시오. 2003. 11. 29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대통령은 법무부와 노동부를 비롯한 정부의 여러 유관부처에 지시하여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동포정책을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하여 것을 지시하였다. 하여 2007년에 방문취업제도(H-2)가 도입되고 2008년에 재외동포비자(F-4)가 나와 동포들도 한국에서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되었다.

마실 우물 잊지 말라고 했다. 지금 우리 동포들이 아름답고 살기 좋은 이 한국 땅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잘 살게 된 것도 다 그 분의 은덕이라고 하겠다.

봉하마을은 별로 그리 편은 아니다. 현재 약 50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한국의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어 마을 주변으로 정비정돈이 아주 잘된 편이었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후 나는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큰 킬을 따라 둘러보기 시작했다.

노무현대통령이 태어나 자란 고향집이 나타났다. 집 어귀에 세워진 안내판을 읽어보았다. 그중 대통령의 생전에 써놓은 자필 메모가 굉장히 재미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를 둘러보며 나는 이렇게 허술하고 누추한 작은 초가집에서 5명의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1946년 9월 1일(음력 8월 6일), 아버지 노판석, 어머니 이순례 씨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노 전 대통령은 2002년에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가난을 딛고 선 소년의 꿈, 대한민국 최초의 평민대통령의 탄생,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속담이 저절로 떠오른다.

생가를 복원할 봉하마을에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생각하여 노대통령께서는 무척 많은 심혈을 기울려 주셨다. 설계과정에, 그이는 직접 차례 걸친 자문과 협의, 꼼꼼한 메모를 통해 의견을 제기해 주셨다. 그이는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되, 생가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기를" 희망했다.

생가 바로 뒤쪽에 마을길 하나를 두고 대통령 사저가 있다. 국민들을 생각해 집의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신 그이의 세심함과 진심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흙, 나무 등 자연재료를 사용하여 산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지붕을 낮고 평평하게 지어 ‘지붕 낮은 집’으로 불리게 했다.

생가와 사저의 중간에 만남의 광장이 있다. 만남의 광장은 봉하마을을 방문한 시민들이 ‘대통령님, 나와 주세요!’를 외치면 밀짚모자를 쓴 대통령이 나와 시민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기념공간인데 현재는 야외 영상관으로 조성하여 대통령이 흔들던 그날의 기억들을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밀짚모자를 쓰고 나와서 한 시간이상 이야기를 하고 노래도 불러 주었다는 그이의 소탈한 모습이 그리웠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소박한 권위적인 이런 대통령님을, 또 그가 살았던 지붕 낮은 이 작은 사저를 진시황과 아방궁에 빗대고 막말과 망언을 거리낌 없이 했던 저질 정치인들이 얄미워 났다.

만남의 광장에서 대통령의 묘역으로 가는 길에 야외전시대가 있다. 생태문화공원 잔디광장에 설치된 야외전시대는 노 전 대통령의 연보와 삶의 자취를 기록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이의 삶을 따라 걷다 보면, ‘운명’처럼 다가온 시대와, 그 시대가 부여한 과제를 회피하지 않고 살아간 인간 노무현의 발자취, 그리고 그의 가치와 철학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봉화산으로 오르는 길이 길게 뻗어 있었다. ‘봉화산 숲길’은 노대통령이 손님이 오는 날이면 늘 함께 거닐었던 길이다. 소박하고 평범해 여느 길 걷듯 걸어지는 길이지만, 그이의 추억과 기억이 기록돼 있고, 아름다운 농촌에 대한 꿈이 서려있으며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인간 노무현의 고뇌가 깃들어 있었다.

어느덧 봉하마을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서민으로 권력을 잡았다가 다시 서민으로 돌아간 대통령, 역대로 가장 청렴한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대통령, 여느 대통령들과는 달리 대통령의 재량권으로 사용할 수 있는 6조원(탕어금)을 국고에 반환한 ‘바보’대통령, 기득권 카르텔를 건드리는 개혁을 했다고 피비린 보복에 걸려 억울하게 세상을 하직한 불쌍한 대통령, 존경하고 사랑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이 이곳에서 고이 잠드시기를,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기도하면서 우리는 아쉬운 심정으로 봉하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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