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감상

미로의 색조(외 1수)

리순

 

내리 꼰지는 빗줄기의 애원도

떠나는 그 발길 잡지 못했다

울대 찢어 그리움 씹는 바람의 입덧에

두견새 울음 애처롭게 달래주었다

귓방울 간질이며 별빛 잘랑대는 소리

오늘도 시간 비틀어

기억 풀어 올리는데

어둠 주름잡는 바람의 구성진 노래

향기 찾아 꿀 빚으면

설산의 설련화, 고비사막에

오아시스 끌어 올리는 펌프 소리도

달콤한 귀맛 돋구어준다

그런데 아아

장미꽃 잎새 짓뭉개며

쏟아져 내리는 이별의 찬 서리

미모사의 혼백 불러 촉수 흔들어대는데

사꾸라꽃 질식하는 내음새도 삭신 녹여주었다

점포 밖 밤 찢는 워낭 소리에

출가하는 두 글자가 패쪽 걸고서

기다림의 언덕에 못 박아둔

이별의 가장자리에

낙엽 한 잎 빛이 되어 아침을

잠재워둔다

 

사랑이 눈 감을 때

 

슬픈 장미 머리맡에

사랑노래 심지 말기를

이슬 젖은 고요의 한숨에는

놀빛도 머물다 간다

 

뻐꾹새 울음소리

남몰래 밤 울 때면

진주 품은 가리비의 전설도

그리움 켜들고

어둠 속에 고독 몇 줄

적어 넣는다

 

선인장 가시 돋친 사막의 끝자락에

오아시스 미소 짓는 메아리여

 

기다림의 별빛으로

하늘은 오늘도 짙푸른 약속

허공에 걸어놓으면

지나가던 구름이 몸 부풀려

가리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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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의 뒤안길에 미소 짓는 이유

이순희 시인의 시집 <밤행열차>의 기적 소리에 귀 대고

 

중국 연변조선족복합상징시동인회 회장

詩夢잡지사 사장 · 발행인

□ 김현순

 

 

시를 쓴다는 것은 마음의 푸른 하늘을 닦는 성스러운 작업이다. 인류는 어데서 왔으며 무엇 때문에 살며 어데로 가야 하는 것인가. 그 해법 속에 시인의 사명이 깃들어 있다.

시란 무엇이며 세상은 왜 시를 수요하며 시인은 왜 시를 써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현실은 각성하고 있다.

시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영혼의 반짝이는 결정체이며 그것은 예술에로의 승화의 모식이기도 하다. 하기에 한 수의 시에서는 그 사람의 영적 경지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타인의 아름다운 영적 경지를 읽는 순간, 인간은 그로부터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시가 수요 되는 세상의 근거로 된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 시인의 영적 경지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낯선 자극에로의 작업을 펼쳐나가는 각고의 진통을 겪게 된다.

시인의 사명이란 바로 자신의 주옥같은 영적 세계를 펼쳐 보임으로써 세상에 감동을 주는 그 자체에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굳이 시를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는 시인이 쓰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몸속에 은거(隱居)해 있는 영혼의 가르침을 시인이 붓을 놀려 글로 적을 뿐이다. 이를 두고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씌어지는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시를 받아 적는 데에는 올바르게 받아 적는 내공이 필요하다. 그것이 시인으로 하여금 표현 기법에 대하여 연구를 지속하게 만드는 것이다.

시를 포함한 모든 예술은 사상과 내용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표현이 적절하고 개성적이지 못하면 세상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때문에 모든 예술은 표현의 예술이라고 한다.

시는 언어로써 내심의 영적 경지를 신묘(神妙)하게 표현하는 고급예술이다. 신묘(神妙)한 표현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신묘(神妙)한 표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새로운 자극을 위해서는 변형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변형은 인간 의식과 무의식 흐름 과정의 가장 본질적인 존재 형태이기도 하다. 변형된 모든 생각들이 세상을 개조하고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되고 있다. 모든 변형은 환각에서 비롯되며 그것들은 다시 환상과 상상을 통한 상징으로 세상과 대화 나누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예술로 승화하는 과정이다.

복합상징시의 멤버로 활약하는 이순희 시인의 시 미로의 색조에서는 상기의 이치들이 여실히 반영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다.

 

(미로의 색조全文 )

 

위 사례의 시에서는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소외된 고독의 신음 속에서 해탈을 갈구하는 화자의 내심 활동을 찬란한 슬픔의 미학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아름다움과의 이별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화자의 애절함은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젖어 시시각각 화자를 회한의 그리움에 젖어들게 한다. 떠나가 버린 것에 대한 만류(挽留)의 애원도 헛짓이 되고 결국 화자는 그 속에서 해탈의 위안을 찾고자 한다.

 

내리 꼰지는 빗줄기의 애원도

떠나는 그 발길 잡지 못했다

울대 찢어 그리움 씹는 바람의 입덧에

두견새 울음 애처롭게 달래주었다

 

여기에서 화자는 정감 자극의 지대한 효과를 나타내기 위하여 변형의 과감한 시도를 아래와 같이 하고 있다. 즉 떠나보내기 아쉬운 애원은 빗줄기가 되어 사정없이 내리 꼰지며 입덧바람의 입덧”, 진일보로 나아가서 그리움 씹는입덧, 더 나아가서 울대 찢는입덧이라고 환각적 변형을 펼쳐 보이고 있다.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말씀에 빗줄기가

비수처럼 내리 꽂힌다

울대 찢어 그리움 씹는

바람이 입덧

멈추지 못한다

두견새 애처로운 울음이

다가와 위로해준다.

 

위 도표를 보면 장면의 흐름이 보인다. 능동적 가시화된 장면들의 흐름이다. 그것도 일상에서는 도저히 불가사의한 변형의 흐름이다. 상식적으로 기성된 것에 대한 변형이기에, 이는 읽는 이이 가슴에 강렬한 정서의 파동을 불러일으키면서 자극을 낳게 된다. 인간의 흥분 내지 감동은 세상에 대한 자극으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이런 표현은 예술이 짊어진 사명에 이미 충실해진 것으로 된다.

복합구성을 이루는 세상은 상징으로 문명의 문을 열어왔다. 이미지의 변형적 표현은 필연코 상징을 대변하게 된다. 이런 변형된 이미지들의 재조합이 복합상징시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이런 복합구성은 영혼의 새로운 질서를 위하여 봉사하게 된다.

(중략)

 

점포 밖 밤 찢는 워낭 소리에

출가하는 두 글자가 패쪽 걸고서

기다림의 언덕에 못 박아둔

이별의 가장자리에

낙엽 한 잎 빛이 되어 아침을

잠재워둔다

 

위 사례의 결속 부분이 되는 이 시구들을 살펴보자. 이념적인 표현으로 되었지만 환각의 색채와 변형의 흔적은 여전히 우위를 차지한다.

 

1. 밤 찢는 워낭 소리

2. 글자가 패쪽 걸고

3. 기다림의 언덕, 못 박아둔 이별, 이별의 가장자리

4. 낙엽이빛이 되어, 낙엽이아침을 잠재워둔다

 

보다시피 모두가 환각적인 표현이다. 환각을 통한 변형은 원상태의 철저한 파괴를 실현함으로써 상징에로 승화의 날개를 편다.

이순희 시인의 또 다른 시 사랑이 눈 감을 때를 사례로 환각의 변형 흐름과 그 존재의 양상(樣相)에 대하여 진일보로 살펴보기로 하자.

 

(사랑이 눈 감을 때전문 략)

 

이른바 상징에는 종류도 많아 화폭의 상징, 소리의 상징, 이념의 상징등 형태들이 있는바 이런 것들이 유기적으로 한데 어울리면서 복합구성을 이루는 시가 바로 복합상징시이다.

사례의 두 번째 시 사랑이 눈 감을 때에서는 온통 환각덩어리들 흐름의 집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환각들은 세상에 미묘한 자극과 느낌을 안겨주면서 장면적인 화폭들이 계시해주는 그 영적 세계와 가르침에 대하여 재다시 곱씹어 음미해보게 함으로써 점점 깊은 감동의 심연에 빠져들게 한다.

 

장미가 슬프다

장미 밭에 노래를 심다

고요가 이슬에 젖다

이슬의 한숨

놀빛이 머물다 간다

뻐꾹새남몰래운다

가리비 전설이 그리움 켜든다

어둠속에고독을 적어넣는다

가시 돋친 사막

오아시스의 메아리

기다림의 별빛

약속을 허공에 걸어놓으면

구름이 약속 가리워 준다

 

어떠한가. 모두가 환각의 흐름 천지가 아닌가. 화자는 바로 이런 환각의 자연 흐름으로 세상과 대화 나누는 성숙도를 펼쳐 보이고 있으며 삶에 대한 영혼의 승화를 실천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각들은 화자의 내심에서 일어나는 것들이며 절대 객관적 존재가 아니다. 오로지 주관 정서의 팽창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 심리 행위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하기에 상징시는 실재 현실의 이미지를 활용하지만 현실 자체가 아니며, 주관적 내심 활동을 변형된 이미지로 보여줌으로써 화자의 영적 경지를 펼쳐 보이는 것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낯선 자극의 실천, 그것을 위해서는 변형의 이미지를 환각의 장면 흐름으로 조합해나가는 능숙한 솜씨가 이순희 시인의 창작스찔이라고 찍어 말할 수 있다.

복합상징시라는 새로운 유파의 시 영역에서 바야흐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이순희 시인의 금후 창작에 더욱 알찬 돌파작들이 속출하리라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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