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사는 남편과 현실너머에서 사는 아내의 이야기

―백한의 단편소설 「나는 앤디가 아니다」를 읽고

엄정자 약력: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교원, 길림신문사 기자 역임,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에 재직 중. 동북아신문 일본지사 대표.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대표 겸 회장. 연변작가협회 이사, 일본조선학회 회원. 수필집 『금 밖에 나가기』, 평론집 『조선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새로운 엑소더스』. 제9회 『도라지』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제10회 『동포문학』평론부문 대상.
엄정자 약력: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교원, 길림신문사 기자 역임,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에 재직 중. 동북아신문 일본지사 대표.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대표 겸 회장. 연변작가협회 이사, 일본조선학회 회원. 수필집 『금 밖에 나가기』, 평론집 『조선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새로운 엑소더스』. 제9회 『도라지』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제10회 『동포문학』평론부문 대상.

백한의 소설 「나는 앤디가 아니다」는 제목부터 독자들을 끄는 소설이다. “앤디는 누구이지?” “는 앤디가 아니지?”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앤디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부터 풀고 가기로 하자.

앤디는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연출한 1994년에 상영된 미국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이다. 팀 로빈스가 연기한 앤디 듀프레인이 은행 부지점장으로 일하며 승승장구하던 와중에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메인주 주립 교도소 쇼생크(Shawshank)에 갇히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인데 아카데미상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미국 의회도서관의 국립 영화 레지스트리(National Film Registry)에 영구 보존될 정도로 높은 평을 받은 영화이다.

작가 백한은 이 영화를 소설의 기저에 깔고 스토리를 전개하였다. 만약 이 영화에 대한 이해가 없이 소설을 읽는다면 그것은 아내의 가출에 대한 이야기에 그칠 것이나 『쇼생크 탈출』을 의식하면서 이 소설을 읽으면 이 작품은 인간의 실존을 다룬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백한은 고독한 존재인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고 안다고 자처하는 것은 오만이고 착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신적인 뉴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인간은 타인을 이해할 수 없으며 더욱더 고독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래도 인간은 타인과의 연관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소통을 해야 하며 그래야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이다.

작자 백한白漢(본명 곽미란)2014년에 한국에서 에세이집서른아홉 다시 봄” (더클 출판사)을 출간하였고 2019년 시詩 「노르웨이 전나무」로 제6회 중국조선족호미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2019년 연말에는 제1올해의 동포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19년에 「로마로 가는 길」(『장백산』2)로 조선족소설문단에 등단하였는데 그동안 『연변문학』을 비롯한 여러 잡지에 소설을 발표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번에 『연변문학』(2021, 6)에 실린 단편소설 「나는 앤디가 아니다」는 그 내용이나 예술성에서 이제 겨우 3년차 소설가가 쓴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되고 매력적인 작품이다.

필자는 현실적인 다큐를 추구하는 남편과 현실 너머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여주인공의 갈등이 어떻게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의 이미지와 겹치면서 전개되는지를 분석하면서 이 작품이 보여주려는 주제와 예술성에 대해서 풀어보려고 한다.

 

1.다큐를 만드는 남편과 소설을 쓰는 아내가 사는 세상

아내가 사라졌다.” 작품의 제일 첫 구절이다. “바람 좀 쐬고 올게.”란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간 아내는 남편에게 힌트를 제시하였다.

“내가 왜 집을 나갔는지는 영화쇼생크 탈출’을 보면 답이 나올 거야. 아마 한 스무 번 정도는 봐야 될 걸?”

연애 2년에 결혼생활 3차인 남편은 아내와는 알만큼 다 아는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아내는 분수에 넘는 행동을 하지 않는 현명한 여자였다. 수수한 외모어디 가서 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여자가 아니고” “말수 적고 대부분 시간을 책이나 보고 글이나 쓰면서 지내는 작가였다.”

남편이 그녀와 결혼한 원인은 피곤한 객지생활에서 돌아오면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이 날 반겨주고 저녁이면 고생했다며 내 발을 씻어주는 아내가 있는 집을 제공할 수 있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 동안 아내는 내가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집안일을 야무지게 꾸려나갔다. 거실과 서재, 침실과 주방을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닦았고 화장실에도 머리카락 한 올 찾아볼 수 없다. 매번 내가 출장을 떠날 때면 아내는 세심하게 내 짐을 꾸렸다. 양말, 속옷을 여벌로 넣는 것부터 해서 면도기, 비상약, 썬크림, 일회용 밴드, 텀블러…… 나는 일절 신경 쓸 게 없었다. 아내는 동네에 친구도 없어서 기껏해야 마트나 카페에 다니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내는 글을 쓰느라 가끔 밤과 낮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으나 내가 집에 있을 때면 어김없이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아침식탁을 차려주곤 했다.”(「나는 앤디가 아니다」)

남편이 알고 있는 그녀를 요약해보면 첫째, 자기가 가정에서 있어야 할 위치를 잘 아는 현명한 아내이다. 둘째, 남편을 잘 섬기고 집안일을 야무지게 하는 살림꾼이다. 셋째, 조용히 자기 글만 쓰고 웃음을 날리지 않으니 바람 필 우려가 없어 안심할 수 있는 여자이다. 남편에게 있어서 아내는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에 필요한 존재로서 이상적인 아내이다. 그런 그녀가 왜 가출을 하였는지 남편에게는 미스터리이다.

남편이 생각하기에 자기는 아내에게 “돈은 내가 벌 테니 당신은 글만 써.”라고 경제적 보장을 해주었고 아내를 위해서 아늑한 서재와 언제라도 원두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커피머신이 있는집까지 마련해준 좋은 남편이었다. 그의 표준에 의하면 아내는 응당 그런 남편에게 만족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가출했다. “?” 남자가 밖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면 여자는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내조하면 된다는 그런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가정관을 가진 남편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아내가아내’이기 전에 현실에 실존하고 있는 한사람’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아내는 작가이다. 인간심리의 가장 밑부분에 깔린 잠재의식과 정신세계를 파고들어 묘사하는 것이 작가이다. 그런 아내가 진부한 의식을 가진 남편을 참아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남편이 바라는 현처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결혼 당시 노력하겠다고 했던 자기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일 것이었다. 그러니 남편이 이때까지 보아온 아내는 현처라는 인형탈을 쓴 아내의 외적 모습일 뿐이다.

다큐를 만들며 다큐 인생을 살아가는 남편, 그런 남편에게 맞춰주지만 현실보다는 현실 너머에 내재한 본질을 보면서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아내, 이 양자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분기점이 아내의 가출이다. 아내의 가출은 남편에게 충격을 주었고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라는 사람을 다시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아내가 남긴 힌트 『쇼생크 탈출』은 남편이 아내를 이해해 가는 키워드가 된다.

첫날, 아내의 가출 통보를 보고 그는 처음으로 자기가 아내에게 무심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①아내가 재미있는 글이나 사진 같은 걸 보내주기도했지만 일일이 답을 하지 않았다”.

식사하는 동안 그녀가 하는 이야기란 대개 더운 물이 잘 나오지 않아서 수리공을 청해서 고쳤다든가 화분에 꽃이 폈다는 자질구레한 것들이어서” “금세 잊어버린다”.

완벽한 남편이라 자처했던 자신이 기실은 아내에게 관심이 부족한, 무심한 남편이었다. 그러나 이 반성은 단지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무심했다는 표면적인 인식 정도에 그쳤다.

『쇼생크 탈출』에 대한 이해도 그러하다. 그는 아내가 가출하기 전에 이미 그 영화를3번 보았지만 단지 스토리를 이해한 정도였을 뿐이다. “촉망받던 은행 부지점장 앤디는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두 번의 종신형을 선고받아 악명 높은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거기서 그는 모건 프리먼-영화 속 배역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과 친해지며 지혜롭게 감옥을 탈출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대체 뭘 어쩌자는 거지?”- 지혜롭게 감옥을 탈출하는 이야기”, 이것이 그의 이해이다.

이튿날, 남편은 그제야 아내의 가출이 현실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며 처음으로 아내의 내심세계와 연관되는 행동들을 떠올리게 된다.

①산책을 하다가 개미떼를 만나면 쭈크리고 앉아서 한식경씩 관찰한다거나 하늘에서 날아가는 새를 보면 그 새가 하나의 점으로 보일 때까지 까딱 않고 제자리에서 지켜서 본다든가 하는행동이 떠올랐지만 결국 이상한 집착”, “이상한 습관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②아내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면서 처음으로 아내의 이름석산石蒜을 상기하는데 그 전까지 그에게 그녀는 그저 아내였다. 이름을 상기했다는 것은 남편이 그녀를 단지 아내가 아니라 하나의 실존적인 존재로 의식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여전히 이 이름 자체가 아내의 정신세계와 연관되는 키워드라는 것은 깨닫지 못한다. 그 때문에 아무리 머리를 짜봐도 이 강렬한 붉은 꽃과 수채화같이 흐릿한 그녀에게서 연관을 찾을 수가 없었으며 아내는 단지 첫 만남에 나를 오리무중에 빠지게한 여자로 남았다.

③처음으로 아침을 준비하면서 그는 자신이 여태 음식을 만드는 일이 철저히 여자의 영역이라고 간주했고” “설거지 한 번 해준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행위의 원인이 자신의 가부장적인 의식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는 못한다.

의문을 풀기 위해서 그는 저녁에 『쇼생크 탈출』을 다시 본다. 그러나 집 나간 아내 때문에 감정이입이 된 그는 영화를 보면서도 초점을 바람난 앤디의 아내에게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망할년이라며 욕을 하며 화를 내는데 기실 앤디 아내의 불륜 장면은 영화에서 앤디가 감옥에 들어가는 계기를 제공하는 장치가 되었을 뿐 상세하게 나오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장면만 머리에 남았다는 것은 그가 『쇼생크 탈출』을 보라고 한 아내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초점을 앤디에게 맞추지 못했으니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소득이라면 아내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적은 연애시절에 한 번 간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점일 것이다. 자기 반성이 한걸음 더 나아가기는 했지만 문제의 근원에 이르지 못했다.

아내가 사라진 지 닷새째. 그는 아내와 주고받았던 문자를 뒤적이다가 엿새 전에 주고받았던 문자 중 아내가 보내온 사진을 발견한다. “눈도 아프고 손목도 아파서 약방에 가서 안약이랑 손목보호대 샀어.”라는 문자에 그가 답한 문자는 무릎보호대?” 였다. “일이 바쁘다는 구실로 그는 아내가 보내온 사진만 피뜩 보고 무릎보호대로착각했던 것이다.

아내는 글을 많이 쓰다 보니 팔목에 부담이 가서 칼질하는 것도 힘들어 한다. 그런데 그것을 뻔히 보면서도 아내에게 약이나 손목보호대를 사다 줄 생각도 하지 않았고 나를 봐 달라고 내 아픔을 알아 달라고 SOS를 보내는 사진마저 대충 보고 무릎보호대로 착각했으니 그의 무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그에게 있어서 그녀는 자기의 배고픔과 성욕을 해결해주는 대상-아내이기는 했지만 정신적 공감을 하는 마음의 반려는 아니었다. 마음에 담지 않으니 관심도 가지 않은 것이고 관심이 없으니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 이 사건이 아내가 가출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남편에게 맞추려고 애써온 자신의 노력이 남편의 마음에 닿지 않았고 헛수고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현처라는 인형탈을 벗어버리고 가출이라는 선택을 하였다. 자신의 가치가 가정부나 섹스파트너에 지나지 않는다면 아내로서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그녀의 실존적 가치는 말살되고 부정되는 것이다. 남편 때문에 그녀는 인간이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철저히 실감하게 된다. 같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고독을 느낀다면 두 사람의 공동생활에 의미가 없으며 아내로서의 실존적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내를 버리고 작가와 인간으로서 자아실현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면서도 그녀는 남편에게 일루의 희망을 남겼다. 『쇼생크 탈출』을 보라는 것이 그 메시지일 것이다.

아내가 사라진 지 일주일. 시어머니로부터 남편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닦달을 하는 전화가 왔다. 이는 시어머니가 남편에게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그동안 많은 압력을 가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자를 단지 대를 잇는 도구로 생각하는 그런 시어머니의 구시대적인 의식 때문에 그녀가 고민하였을 것은 명백한 일이다. 부동한 가치관의 갈등은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것이며 아무리 남편이 괜찮다고 해도 현실에서 그녀는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 문제가 가출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겠지만 원인의 하나였을 것인데 남편은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이 일 때문에 그는 아내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을 첨으로 해봤다.” 아내와의 감정적 거리를 처음으로 느낀 것이다.

섹스동영상을 찍은 다음 아내가 “자기야, 이거 잘 저장해뒀다가 나중에 나 생각나면 이 동영상 보면서 마스터베이션 해, 알았지?”라고 말할 때 그녀는 자기의 가출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집을 나간 지 한 달째. 그는 아내 생일선물을 찾는 동료를 보면서 자기가 아내의 생일을 챙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아내가 여태 생일 한 번 제대로 쇤 적 없다며 올해는 생일파티를 해달라고할 때도 파티는 무슨? 애도 아니고.”하고 거절했었다. “아내의 생일날 내가 축하문자를 보냈던가? 아내는 그날 어떻게 생일을 쇴을까? 미역국은 끓여먹었을까? 누가 케익을 사주긴 했었나?” 자기가 전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런데도 그동안 아내는 남편과 시부모의 생일을 챙겼으니 아내는 책임을 다한 것이다. 그러나 한쪽의 노력만으로 원만한 가정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노력하는 쪽이 지치기 마련이다.

친구와 싸우고 돌아와 집에서 또 『쇼생크 탈출』을 보면서 남편은 점점 앤디라는 인물에 이입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초점을 앤디에게 맞췄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앤디의 본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앤디가 해들리의 증여세를 해결해주고 그 대가로작업 동료들’에게 맥주를 제공해주는 딜을 성사한 걸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쇼생크 탈출』에서 이 장면은 앤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부분이다. 그전까지는 감옥의 폭력과 어둠에 휘둘리며 피동적으로 살아가던 앤디가 이 일을 계기로 변호사였던 자기 능력을 발휘해서 감옥장과 간수들의 경제문제를 해결해주고 그 대가로 자신의 삶과 죄수들의 생활을 바꿔간다. 정부에 편지를 써서 지원금을 받고 헌책을 기증 받아 도서관을 확장하고 학력이 낮은 죄수들을 가르쳐 검정고시에 합격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정신세계를 추구하며 자기의 실존적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앤디에게 이입된다는 것은 남편의 정신세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동안 그는 아내와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며 부부생활에서 자기가 아내에게 무심한 남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현상이었지 문제의 핵심을 본 것은 아니었다. 아내가 가출한지 한달이 되고 앤디에게 초점을 맞추고 앤데에게 감정이입 하면서 자신과 아내 석산石蒜의 부동한 정신세계와 정신적인 거리를 실감하게 된다.

아내는 석산石蒜(꽃무릇)을 “내 꽃”이라 부르면서 무려 다섯개나 키웠다. 작자는 이 석산에 대한 아내와 남편의 서로 다른 이해와 태도를 통해서 두 사람의 부동한 정신세계를 보여주었다. ①아내는 석산이 가지는 그 내면적 이미지가 자신을 닮았기 때문에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남편은 석산이 절에서 피는 꽃이라는 표면적인 현상만 보며 내다버린다. ②아내는 꽃과 잎이 서로 따로 피어서 서로 절대 만날 수 없는 석산의 모습에서 자기의 정신세계를 이해 못하는 남편과의 관계를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는데 남편은 아내의 마음도 모르고 착각하지 마, 이름이 같다고 당신이 진짜 꽃이라도 되는 줄 알아? 저건 그냥 식물이야. 당신은 사람이고.”하고 화를 낸다. 현상 너머의 본질적인 것을 보는 아내와 표면적인 현상만 보는 남편의 서로 다른 시각이 보여지는 부분이다.

길상사에서의 장면도 이런 엇갈림을 보여준다. 하늘을 향해 빨간 불꽃을 태우고 있는꽃무릇에 취해서 아내는 “봤지? 꽃무릇은 꽃과 잎이 절대로 만날 수 없어. 잎이 지고 나면 꽃대가 나오고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나오거든.” 하면서 꽃의 속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남편은 “어? 그러네. 그래서 꽃이 특별히 빨갛게 보이는군.” 하면서 꽃의 색깔-겉모습을 말한다. ②아내는 “꽃말도 나라별로 다양하게 해석되는데슬픈 기억’, ‘환생’, ‘재회’……”하고 꽃의 이미지를 빌어 인생의 진의眞意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남편은 채 듣지도 않고 “여기구나, 법정스님을 모셔둔 곳” 하면서 법정스님 유물을 보러 간다. ③아내는 “그깟 천억 원,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한 자야, 김영한 여사의 말을 읊으며 백석 시에서 정신적인 공감을 느끼고 83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백석 한 남자만을 사랑한 자야의 마음을 애달파 하는데 남편은 “뭐라는 거야?” 하고 아내의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여기저기 보이는 법정스님의 글귀에 정신을 빼앗겼다.” ④석산이 백석의 시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나직하게 읊는 모습은 그런 정신적 공감대를 가진 사랑에 대한 염원과 갈망을 보여주고 있는데 남편은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같은 곳에 있으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지 못하고 같은 것을 공감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이별은 필연이 될 수밖에 없었다.

뱀을 보는 그들의 반응도 달랐다. 석산은 뱀을 보면서 뱀이 불사의 존재라는 내적 이미지를 말한다. “뱀은 허물을 벗잖아. 그래야 살거든. 뱀은 아홉 번 죽었다가 열 번 살아나.” “뱀처럼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면 외로움이란 걸 못 느낄까?” 하고 자기의 정신적인 외로움을 표현하고 있는데 남편은 뱀의 징그러운 외면만 보면서 아내가 산속에 눌러앉아 뱀과 친구하며 살겠다고 할까봐 더럭 겁이나 한다.

이 두가지 사건에서 석산과 남편의 완전히 다른 정신세계가 표현된다. 석산은 인간의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공감이라고 보기 때문에 현상보다 본질을 보려 하는데 남편은 현실적인 것만 보고 실질적인 것만 인정하려 한다.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었으며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집을 나가고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그동안 남편은 아내의 말 그대로 『쇼생크 탈출』을 스무 번도 넘게 보았다. 드디어 남편은 앤디의 정신세계에 시선을 주게 된다.

어느 날 우연히 간수의 방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LP판을 발견한 앤디는 문을 걸어 잠그고 음반을 틀어 스피커를 통해 교도소에 음악이 흘러 나가도록 한다. 이때 튼 곡이 바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3막에 나오는 아리아 편지2중창「저녁 산들바람 부드럽게」이다. 갑자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에 죄수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그 자리에 멈춰서 버린다. 이때 음악소리와 함께 레드의 독백이 흘러나온다. “난 지금도 이탈리아 여자들이 뭐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사실은 알고 싶지 않다…… 난 그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얘기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그 짧은 한 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이발사인 피가로가 권력을 상징하는 백작에게 창피를 주고 수잔나와의 결혼을 지켜내는 이야기를 그린 오페라이다. 백한은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느끼는 자유라는 감정과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석산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중첩했다. 남편이 레드의 이 말을 따라할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가 소설가로서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가진 아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처음에는 그저 “지혜롭게 감옥을 탈출하는 이야기”라고 이해했던 남편이 이제는 앤디가 왜 자기가 아내를 죽였다고 자책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새들은 새장에 가둬 둬선 안 된다고 여겨진다. 그들의 날개는 너무 빛나니까.” 앤디가 탈출에 성공한 후 레드가 앤디를 떠올리며 한 이 말은 남편의 뇌리에 박혔다”. 이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새장 같은 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아내를 가두어 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나는 여전히 아내를 알 수 없었으나 더 이상 아내를 원망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내가 절대 바람을 피진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다.”

남편은 마지막까지 아내가 왜 가출했는지 그 원인을 확실하게는 모른다. 하지만 『쇼생크 탈출』을 보면서 그는 아내의 표면적인 외적인 모습만 보던 데로부터 점차 아내의 정신세계에 접근해가면서 아내에 대해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점차 깨닫게 된다.

아내 석산은 남편이 『쇼생크 탈출』을 보면서 아내를 미워하고 증오하던 데로부터 결국에는 아내의 외도에 책임감을 느끼며 이해하려 하는 그런 앤디의 심경의 변화에 공감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앤디를 이해하면 남편의 자신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앤디에게 있어서 모차르트의 음악은 희망을 의미했다. 앤디를 계속 이용하기 위해서 노튼 소장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앤디를 2달 동안이나 독방에 감금한다. 겨우 풀려나온 앤데에게 다른 죄수가독방 힘들었지?”하고 물었을 때아뇨, 순식간이었습니다. 모차르트랑 있었거든요.” 하면서 “(자기 머리를 가리킨다) 이 안에 있어요. (자기 가슴을 가리킨다) 이 안에도 있죠. 그게 음악의 아름다움이에요. 이걸 뺏어갈 수는 없어요.” “세상엔 돌로 만들어지지 않은 곳들이 있어요. 거기엔… 놈들이 들어갈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게 있어요. 당신 것이죠.… 희망이요.”

이같이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앤디에게 모차르트음악이라는 희망을 주었다면 작가 백한은 소통과 이해의 결핍으로 고독한 존재가 되어버린 두 사람에게 꽃무릇이라는 희망을 주었다. 아내가 사라지고 연락이 끊어져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쇼생크 탈출』을 통해서 소통의 길을 열었으며 아내의 이름을 가진 꽃무릇(석산石蒜) 한 송이를 피워 줌으로써 희망을 제시해주었다.

출장 가기 전에 봉오리가 맺혀있던 꽃대에서 어느새 꽃 한 송이가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속을 활짝 열어 보이는 꽃무릇을 보는 순간, 희열과 함께 가벼운 통증이 지그시 내 가슴을 눌렀다.”

이렇게 희망을 주면서 소설이 끝난다.

 

2. 「나는 앤디가 아니다」와 『쇼생크 탈출』의 비교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점은 『쇼생크 탈출』을 기저에 깔면서 스토리를 풀어나갔다는 점이다.

⑴우선 작자는 가출탈출이란 공통한 이미지를 이용하였다. 아내에게 무심하고 아내의 마음을 보려 하지 않는 남편에게 실망하고 자신의 자아를 찾아서 에서 탈출하는 석산과 자유를 찾아서 쇼생크라는 생지옥에서 탈출하는 앤디는 둘 다 현실에서 탈출하는 인물이다.

⑵다음 두 작품 다 제3자의 서술을 통해서 주인공을 보여주고 있다. 『쇼생크 탈출』에서 레드가 화자話者로 되어 제3자의 시선으로 주인공 앤디에 대해서 서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앤디가 아니다」도 남편의 서술을 통해서 남편의 시선으로 아내 석산을 묘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내와 남편, 앤디와 레드 사이의 거리감을 잘 표현할 수 있었다. 일인칭 심리묘사가 아니고 눈에 보이는 현상을 통해서 추측하며 인물의 본질에 접근해 가도록 설정했기 때문에 남편도 레드도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앤디를 좋아하는 레드이지만 폭력이 일체를 지배하는 곳에서 문명을 만들어가고 자유가 없는 곳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가지고 사는 앤디의 정신세계를 다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것만 보는 다큐의 삶을 사는 남편이 현실 너머에 있는 본질을 보면서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며 사는 아내를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서술방법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고독한 존재인 인간을 묘사함에 있어서 아주 적절한 방법이었다.

⑶이 소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본 구성을 짰는데 그 사이사이에 과거에 대한 회상을 끼워 넣었다. 작자는 이 시간의 흐름속에 『쇼생크 탈출』이란 복선을 깔고 남편의 아내에 대한 의식의 변화과정을 보여주었다.

①아내가 가출하는 날까지 남편의 아내에 대한 이해는 현명하고 살림꾼이고 믿을 수 있는 여자였다. 『쇼생크 탈출』에 대한 이해는 스토리를 아는 정도이다.

②아내가 탈출한 이튿날 남편은 아내의 가출이 사실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아내는 이상한 집착이 있는 여자라는 것을, 아내의 이름이 석산石蒜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이때 『쇼생크 탈출』을 보는 초점은 외도를 한 앤디의 아내에게 맞춰져 있다.

③아내가 사라진 지 닷새째. 손목보호대를 무릎보호대로 착각한 사실을 떠올려 아내가 가출한 직접적 원인을 제시했다. 『쇼생크 탈출』을 세 번 봤으나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④아내가 집을 나간 지 한 달째. 처음으로 『쇼생크 탈출』을 보는 초점이 앤디에게 맞춰진다. 앤디가 해들리의 증여세를 해결해주고 그 대가로작업 동료들’에게 맥주를 제공해주는 사건은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의 생활이 변하는 터닝포인트적 사건이었고 남편에게도 아내의 정신세계에 다가가는 터닝 포인트적인 계기가 된다. 이를 계기로 꽃무릇 사건과 뱀 사건을 떠올리게 되며 자신과 아내의 거리감과 서로 다른 정신세계를 의식하게 되었다.

⑤아내가 집을 나가고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쇼생크 탈출』을 그동안 스무 번도 넘게 봤다. 드디어 남편은 앤디의 정신세계에 시선을 돌리게 되며 외도한 아내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끼는 앤디를 이해하게 되는 동시에 아내를 이해하게 된다. 아내의 정신세계에 가까워지면서 희망이 생긴다.

⑷「나는 앤디가 아니다」『쇼생크 탈출』의 주요인물들은 서로 이미지가 겹친다. 앤디는 비록 몸은 감옥에 갇혀 있지만 자유와 희망을 갈망하며 그래서 도서관을 확장하고 모차르트를 틀어주며 공부를 배워주는, 타인의 보기에는 무모한 일들을 한다. 석산도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생활속에서도 개미떼나 새 한 마리에도 시선을 멈추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꽃무릇 때문에 아파하고 불사不死적인 존재인 뱀에게서 영혼의 불멸을 감지한다. 두 사람 다 현실보다는 현실 너머에 있는 인생의 본질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레드나 남편은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레드는 감옥에서 밀수업을 하면서 모든 것을 돈과 물질로 해결하려고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편한 집을 마련해주고 커피머신을 사주면서 물질적인 편함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레드는 독방에 2달간 감금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모차르트로 절망을 이겨내는 앤디를 이해하지는 못하나 그에 대한 믿음이 있다. 때문에 가석방 후 앤디가 남긴 힌트대로 묻어 놓은 돈과 편지를 찾을 수 있었고 앤디를 찾아서 멕시코로 갈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남편은 가출한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내가 자기에게 쇼생크 탈출이라는 힌트를 남겼다는 것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 때문에 계절이 두 번 바뀌는 긴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아내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다. 흔들릴 때도 있지만 아내와 정신적으로 가까워지면서 아내에 대한 믿음이 커진다. 남편의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장면은 바로 아내는 육체적 외도는 물론 정신적인 외도도 하지 않으리라는 그런 믿음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⑸두 작품 다 자유와 믿음, 희망에 대해서 쓰고 있다. 작자 백한은 『쇼생크 탈출』의 희망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소통의 부재로 이별에 이른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작자는 작품 속에서 희망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쓰지 않았지만 『쇼생크 탈출』이라는 복선을 깖으로써 희망을 제시할 수 있었다.

⑹이 작품의 제목은 「나는 앤디가 아니다」이다. ‘남편은 아무리 노력해도 앤디-아내가 될 수 없다. 아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는 있어도 타인인 아내를 백퍼센트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작자가 남편의 직업을 다큐 감독으로 하고 아내의 직업을 소설가로 만든 것도 인간은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본질을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백한은 제목을 「나는 앤디가 아니다」라고 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이면서도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믿음이 생기며 믿음이 있는 곳에는 희망이 있으며 희망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살아 갈 수 있다. 이것이 작가 백한이 이 소설에서 보여주려는 주제이다.

기억해요, 레드. 희망은 좋은 거예요. 아마 가장 좋은 것일 거예요. 그리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쇼생크 탈출』에서)

글 출처 연변문학 2021년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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