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 소설평 : 아픔으로 커가는자의 쓸쓸함의 두 경우



본지는 ‘한중작가 문학특집’으로 채국범의 중편소설 '노크', '섬 속의 섬' 과, 그에 대한 평을 싣는다.

채국범은 최근에 들어 꽤 많은 중편단 소설들을 발표하였다. 조선족 소설문단의 주목을 끌면서 조선족 문단의, 젊은 세대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 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발표한 두 편의 중편소설을 읽노라면 우리는 기존세대 조선족 소설가들과 다른 소설풍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일단 소설의 서사나 묘사 등 소설기법이 자연스럽고 디테일해서 재미있는 만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일본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사의 방식과 비슷하다. 또, 비교적 엄밀한 구성에 주제를 파고 드는 깊이가 보인다.

김경훈 평론가는 그의 ‘노크’를 평할 때 “(그의 소설은) 젊은이들의 삶 속에서 가장 은밀하면서도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와 이어진 소외화 그에 따른 여러가지 고민들을 다루고 있어서 그동안 외면하고 무관심하기 일수였던 그들의 내밀한 아픔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이해를 가지도록 만들어 한번 정도는 곰곰히 그 가치를 따지도록 촉구하기도 했다”고 했고,,

리태복 평론가는 그의 중편소설 ‘섬속의 섬’을 평할 때 “작품의 전체적 구조가 탄탄하며 사건 서술의 구도에서 저자의 능란한 솜씨가 돋보인다. 또한 사건의 디테일과 거시적 사회변화의 접목이 자연스럽고 언어감각도 뛰여나다. 무엇보다도 스토리의 전개에서 사실성과 개연성을 잘 융합시켰기에 리얼리티와 취미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차원에서 저자의 높은 기량이 잘 드러난다고 하겠다”고 말했다.

채국범의 소설가가 더욱 탄탄한 소설들을 내놓기를 바라면서, 이번에 실린 소설들은 중국조선족 문법대로 두고 게재하였음을 밝히는 바이다.

-편집자-

 

채국범 프로필:
연변대학 일어학부 졸업. 연변작가협회 회원.
2002년《연변문학》 9기에 처녀작 시 <하늘과 바다 사이>를 발표.
2007년 시 <한줄기 향기가>로 제27회《연변문학》윤동주문학상 신인상 수상.
2016년 중국로신문학원 제26기 소수민족문학창작반 수료.
2018년 제8차 전국청년작가창작회의 대표.
2018년 중편소설 <노크>로 제37회 《연변문학》문학상 수상.
그외 소설 <섬속의 섬>, <마지막 퍼즐>, <해나>, <동그라미>, <동행>, <날개 돋친 기린> 등 발표.
현재 연변작가협회에서 근무.

 

중편소설 

 

                                      노크 

 

 

1

나는 다시 그녀의 앞에 서있었다. 상황은 언제나 그랬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머리속에 되살아나면 마지막에 가선 항상 그 아파트가 떠올랐고 이어서 101호라고 표시된 문과 그 앞에 서있는 나 자신의 옆모습이 보였다. 몇번인가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들었다가 번마다 망설이며 다시 내리웠다. 또 한번 천천히 몸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녀에 대한 기억의 엔딩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 엔딩은 나의 눈앞을 무한반복이 되여 끊임없이 지나간다. 나는 끝끝내 노크를 하지 않았다.

 

똑똑똑

이사짐을 넣은 좋이박스를 뜯다가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구지?)

오늘밤은 열시부터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오전내로 집정리를 끝내고 이내 자야 했기에 나는 아닌 노크가 반갑지 않았다.

누구세요?

문을 열고 보니 상대 얼굴보다 시선에 먼저 들어온 눈썹 우까지 눌러쓴 회색 롱비니모자였다.

안녕하세요?  오하라 사크라꼬(大原)예요.

, 안녕하세요. 사이( 일본어발음)라고 불러요.

사이? 외국 분이세요?

, 중국에서 왔어요.

그녀는 집안을 힐끔 곁눈질해보더니 손가락으로 안경테를 춰올리며 호기심이 동한듯 물었다.

금방 이사왔어요? 저는 101호에 살아요.

미안해요. 제가 먼저 인사드려야 하는데...

괜찮아요. 아, 이거 마셔요.

그녀는 록차가 들어있는 페트병을 내밀었다. 예상치 못한 나는 엉겹결에 받아쥐고는 어리둥절해 서있었다.

자판기에서 뽑은 거예요. 시원해요.

, 네, 고마워요.

오늘 날씨 덥죠? 벌써 30도가 넘는데요.

그러게요. 정말 찌는 것 같아요.

덥지 않으세요? 나는 하마트면 물어볼 번했다. 그녀의 비니모자가 참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사 온 내가 먼저 이웃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례의인데 상황은 바뀌였다. 나는 페트병을 손에 쥔 채 속으로 사크라꼬가 그냥 인사하러 온건지, 반가워서 그러는 건지, 호기심 때문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보다 지금도 내 기억에 남는 건 서투른 인사가 아닌 뜻밖의 부탁이였다.

저기, 부탁 하나 있는데요.

? 뭔데요?

부근에 길고양이들이 욱실거려요. 그중 한쪽 눈이 까만 얼룩이가 우리 아파트에 자주 와요. 뭐 큰일은 아니구요, 시간날 여기 접시에 먹이를 없을가요?

그녀는 저가락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문밖에 놓여있는 세탁기 옆을 가리켰다. 나는 머리를 들어 문 옆마다 놓여진 세탁기를 한번 훑고는 그녀한테 눈길을 돌렸다.

새로 세집은 신쥬크구(新宿, 도쿄23구역중 하나)의 다카다노바바(高田马场)역에서 서쪽으로 걸어 십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일본4대명문대학의 하나인 와세다대학교 (早稻田大) 근처에 있어 부근에 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인지 방값도 상대적으로 저렴한편이였다. 기숙사형으로 지은 아파트는 2층으로 되였고 각층에 방이 세개씩 있었다. 사크라꼬는 101호, 나는 103호였다. 방마다 한대씩 배치된 세탁기는 현관문을 열고나면 곧바로 옆에 있었다. 나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자리가 왜 하필 우리 집 문 앞인지 리해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나의 의혹을 눈치 챘는지 인츰 설명을 덧붙였다.

전에 집에 사셨던 분이 고양이를 챙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먹이를 찾으러 올 때마다 이 집 앞에서 울어요. 그분이 간후로 제가 챙기고 있는데 가끔 먹이를 주는 것을 까먹군 해요. 길고양이들이 참 불쌍해요. 그렇죠?

일본사람들은 거지에게 돈을 주지 않을지언정 고양이에게는 먹이를 준다고 한다. 회사의 정사원이 아니더라도 아르바이트로 얼마든지 생계를 유지하고 열심히 일하면 심지어 수입도 일반회사원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하기에 그들은 거지는 게을러서 궁핍하지만 동물들은 인간의 보살핌이 없으면 굶주리게 된다고 여기는 습관이 있다.

그녀는 고양이밥주기에 동참해달라는듯 간절한 눈길로 바라보았고 나는 자신에게 별로 관심 없는 일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거절에 약한 성격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알겠어요. 시간날 때 저도 줄게요.

고마워요.

    

사크라꼬를 만난 6년전 여름이였다.

그해 봄에 일본에서는 기상관측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다. 모멘트 9.0으로 추정되는 이 지진은 미야기현(, 중국의 성에 해당되는 행정급별) 동쪽에 떨어져있는 부근해역에서 발생하였는데 사실상 도쿄에서도 강한 진동이 관측되였다.

지진발생 한달전, 나는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려고 신쥬크의 한 편의점에서 야간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밤 열시부터 이튿날 아침 여덟시까지 일해야 했기에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부엉이처럼 일어나 일만 했다. 내가 살던 세집은 12층이였고 지진은 침대에 누운 지 얼마 안되여 일어났다. 집이 통채로 흔들리며 주방과 욕실에 올려놓은 물건들이 한순간에 바닥에 떨어져 요란을 피우던 소음들이 아직도 내 귀전에 또렷하다. 그 일이 있은후 나는 여기저기 방을 알아보던중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 1층으로 이사를 오게 되였다.

오래동안 나는 가끔 아무 영문도없이 그녀의 모습이 갑작스레 눈앞에 떠오를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자신한테 이런 질문을 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을가?

우리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가?

인간관계의 토대는 어디에 있는가?

 

수많은 질문들은 나로 하여금 당시 자신의 행동의 근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그만큼 그녀와의 만남은 나의 머리속에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을 남겼다. 그중 하나가 회색 롱비니모자를 꾹 눌러쓰고 고양이를 부탁하던 첫 만남이였다.

 

2

이사를 온후에도 나는 줄곧 밤에만 일하러 다녔다. 편의점 일은 쉬운 듯 했으나 세심하고 꼼꼼히 체크할 조목들이 엄청 많았다. 특히 야간작업은 상품수가 상당히 많아 더 번거로웠다. 점원 두명이서 몇백가지 상품들을 종류별로 나누어 하나하나 개수를 체크하고 정리, 정돈, 진렬하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다. 그 와중에 식품폐기물을 찾아내 컴퓨터에 등록하여 재료를 작성하고 신문이나 잡지, 택배업무, 레지점검, 각종 청소, 그리고 아침이면 전체 상품에 관한 재고관리와 발주까지 하고 나면 눈코 뜰 새 없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이상한 손님들을 만나 생각지 못한 트러블이나 클레임이 생기면 잔업하기가 일쑤였다. 잔업비는 지불받기에 손해 보는 건 없지만 밤을 새가며 열시간 일한 뒤 또 잔업을 하자면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편의점에서 일한 반년 됐을 무렵에 바로 그런 일이 한번 생겼다. 8월의 도쿄날씨는 말 그대로 찜통이였다. 청량음료와 맥주는 일년중 최고매출액을 기록하였고 사람들은 고된 하루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두 캔씩 사는 걸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손님들중에는 맥주를 사는 척하면서 점원 몰래 슬쩍 훔쳐 달아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위 좀도둑이라고 보면 되는데 일본말로는 만비키라고 불렀다.

사람은 20대의 남자손님이였다. 그는 맥주코너 앞에서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다른 손님들이 카운터에서 돈계산을 하는 틈을 타서 맥주 두 캔을 스포츠가방에 몰래 집어넣었다. 서너명의 손님들이 카운터에 줄을 서있었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는 또 손을 뻗었다. 서너 캔을 더 훔친후 담이 커졌는지 돌아서서 안주거리까지 쓱 채갔다. 그러면서도 그의 얼굴과 눈길은 카운터 쪽에 고정한 채 한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단지 손만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나는 사무실의 모니터로 낱낱이 감시하고 있었다. 모니터 옆에는 그 남자가 전에 한번 왔을 때의 모습을 프린트해놓은 종이가 붙어져있었고 여백에는 점장이 주의인물이라고 써놓은 글자도 함께 적혀있었다. 그는 아마 상습범인 것 같았다. 작업을 마친 그는 들고있던 가방을 천천히 메더니 별로 살 물건이 없다는듯이 고개를 저었다. 카운터 앞을 지나 능청스레 다른 한 점원인 야마모토(山本)에게 인사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나는 유니폼을 벗고 슬그머니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대여섯발짝을 걸은후 재빨리 달려가 그의 팔을 덥석 잡았다.

손님, 가방 안을 한번 봅시다!

뭐야? 내가 도둑질했다는 거야?!

흠칫 놀라는 그의 표정과 흔들리는 눈빛을 읽을 있었다. 그는 가방을 품속에 끌어안으며 나의 제안을 거부했다. 나는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멱살을 잡아 다짜고짜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가 사무실에 가두어놓았다. 가방 안에서 캔맥주 다섯개, 아몬도 두봉지, 오징어, 포테토칩 등등이 나왔다. 전화 받고 달려 온 경찰도 도리머리 흔들더니 코웃음을 쳤다.

, 한잔 톡톡히 하려고 작정했군. 이 안주를 고른거봐.

도둑질한 아니예요. 돈 내려고 했단 말이예요.

남자는 부끄러운 내색도 없이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내뱉었다. 전혀 반성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신쥬크경찰서로 끌고 갔다. 뜻밖에 나도 함께 가야했다. 도둑을 붙잡아 신고한 사람이 나였기에 같이 가서 조사에 협조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어쩔수 없이 야마모토한테 가게를 맡기고 경찰차에 합승했다.

조사 금방 끝나죠?

가게납품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한 목소리로 경찰에게 물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처럼 빨리 돌아가지 않았다. 그 남자는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승인하지 않았다. 돈을 계산할 생각이 있었지만 한순간 깜빡했다고 억지를 부렸다. 경찰들도 편하게 업무를 끝내기 위해 자기절로 죄를 승인하라고 유도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다른 독방에 들어가 여러가지 질문에 대답하며 당시 상황들을 하나하나 설명하였고 경찰은 내말을 문자로 작성하여 컴퓨터에 입력하였다.

벌써 한시간이 지났다. 결국 형사가 직접 나섰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십분도 안돼 그는 순순히 자기 범행을 승인했다. 마지막으로 경찰이 나에게 한마디 물었다.

합의 보시겠습니까? 기소하시겠습니까?

태도를 보니 안되겠어요, 기소하겠습니다.

내가 가게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벽 두시가 넘은 뒤였다. 경찰서에 족히 두시간은 있은 것 같았다. 그사이 상품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야마모토는 손님이 올 때마다 카운터에서 돈을 계산할라니 혼자서 품목을 체크할라니 해일처럼 밀려드는 일거리에 팽이처럼 돌아치고 있었다.

나는 야마모토한테 경찰서에서 있을 일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나서 들어가 쉬라고 하였다.

쓸데없는 일에 끼여들어?

왜라니?

, 경찰 부르니까 얼마나 시끄러운가. 주말이라 손님도 많은데... 아침에 또 잔업하게 생겼잖아.

그래서 척하라고? 그놈 한두번도 아닌데...

물건만 되찾으면 됐지. 시끄럽게, 에이 정말!

야마모토는 퉁명스레 둬마디 하고는 사무실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자기 리익에 손해 보는 일이 없기에 그냥 강건너 불 구경하듯 대충 넘어가도 된다는 태도에 나는 그닥 놀라지 않았다. 야마모토랑 처음 야근을 했던 그날의 대화가 생각났던 것이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막 나가려는 나를 그가 불러세웠다

그리 급해? 아직 오분 남았잖아.

먼저 나가 준비하면 좋잖아?

먼저 나간다고 누가 고마워하지않아. 자기 시간만 지키고 자기 일만 하면 돼. 알았지?

뒤로 나는 야마모토와 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않았다. 가까이하기엔 메마르고 딱딱한 느낌이 들었고 멀리하기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필요한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는 항상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수온을 유지했다.

 

3

나는 가게에서 일하면서 모두 두명의 도둑을 붙잡았다. 다른 한 사람이 훔친 물건 값은 겨우 200엔 밖에 안되였다. 그건 아사히표 캔맥주 하나 값에 불과하였다. 전에 그 남자가 훔친 4000엔어치의 물건값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어이없었다. 나는 하도 한심해서 이 정도 훔치고 붙잡힐 거면 차라리 사는 게 낫겠다고 푸념했다. 아직도 그 사람의 모습을 눈앞에 보는 것 같다. 사무실에 끌리워가서도 어떤 후과가 초래될지 전혀 관심이 없다는듯 담담하던 그 얼굴을 말이다.

이젠 마스크를 벗죠?!

화분증이 심해서...

화분증(꽃가루가 점막을 자극함으로써 일어나는 알레르기. 결막염, 비염, 천식 따위의 증상이 나타난다.)은 일본사람들의 국민병이기도 하다. 네명중에 한명이 이 병으로 시달리고 있을 만큼  4, 5월이 되면 환자들이 부쩍 늘어난다. 그런데 지금은 여름도 거의다 지나가는 계절이 아닌가!

나는 화가나서 손을 뻗쳐 마스크를 벗겼다. 곧 당황했다. 그 사람은 바로 사크라꼬였던 것이다. 그제야 빼앗은 물건을 다시한번 확인해보니200엔 밖에 안되는 고양이 먹이감이였다. 그녀는 나를 알아보고도 얼굴색 한번 바뀌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목석마냥 서있었다.

순간 망설여졌다. 경찰서에 전화해야 할 타이밍에 나와 그녀 사이에는 찜통같이 견디기 힘든 침묵이 흘렀다. 야마모토는 마침 휴식시간이여서 밥 먹으러 가고 가게에 없었다.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올리다보며 야마모토가 돌아올 시간을 체크했다. 그가 돌아오면 또 뭐라 투정질 할 게 뻔하였다. 모름지기 저번에 도적사건 때문에 잠이 꼴똑 찬 두눈을 집어 뜯으며 아침까지 세시간이나 잔업하던 일이 눈 앞에 떠올랐다. 나는 어느새 이 일이 나에게 미치는 불리한 상황들을 찾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아마 그 어떤 핑게를 찾고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경찰서에 보내지 않고 그냥 돌려보낼, 자신을 설득할수 있는 그럴듯한 핑게를 찾고 있었다.

차라리 그녀가 보내달라고 애원하길 바랐다. 나 절로 보내주기엔 그런 자신이 납득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그녀가 바보처럼 여겨졌고 오히려 더 화가 났다.

시간은 일분일초 흘렀다. 갑자기 모니터에 야마모토의 얼굴이 언뜰거리더니 익숙한 몸집이 눈에 띄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부랴부랴 그녀를 사무실에서 끌고 나왔다. 야마모토는 스마트폰을 훑어보다가 카운터로 향하는 우리와 시선이 마주쳤다.다행이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그냥 사무실로 들어갔다.

카운터에서 상품을 등록하고 값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애써 서로의 눈길을 피했고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다가 그만 바닥에 떨구고 말았다. 급히 주어 500엔짜리 동전을 카운터에 올려놓고는 거스름돈도 받지 않은 채 총망히 그 자리를 떴다.

일로 우리는 당황한 이웃이 되었다. 어색한 건 물론 이제 우연히라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그녀는 어떤 심정일가? 나처럼 놀랐을가? 부끄러웠을가? 고마워하든 미워하든 나는 우리 사이에서 오래동안 그 당황이란 글자를 빼지 않았다.

비슷한 상황이 나에게도 없었던 아니다.

학교 다닐 적에 싫어하는 과목을 시험 때마 머리가 복잡해나군 하였다. 그때 어느 과목을 시험보고 있었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평소에 대충대충 공부를 했던 나는 손바닥보다 더 작은 종이에 깨알 만한 글자를 빼곡이 적은 답안지를 작성해가지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운 좋게 답안지에 있는 문제가 나올 때마다 속으로 환성을 질렀다. 그 기쁨은 아주 묘한거였다. 긴장과 흥분과 자극이 한데 어우러져 짜릿함이 전신에 감돌았다. 시험장에는 감독선생님과 밖에서 돌아다니는 순시원선생님이 계셨다. 순시원선생님은 학교의 령도자들이였기에 그들이 시험장에 들어올 때마다 감독선생님들도 긴장해하군 했다. 그런 가운데 나의 부정행위가 그만 감독선생님한테 들키고 말았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모닥불을 뒤집어쓴 듯했다. 손에는 땀이 바질바질 났고 쥐고 있는 연필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뜻밖에 감독선생님은 깨알같은 글자가 가득 적힌 답안지를 재빠르게 자기 손 안에 움켜쥐고는 모르는척 돌아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듯이 서너발작 떨어져있는 순시원선생님과 별로 요긴치 않은 얘기들을 나누며 그들의 주의력을 흐트려놓았다.

그후로 나는 아무리 싫은 과목이라 해도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특히 그 감독선생님의 과목에는 더 많은 정력을 몰부었다. 하지만 매번 그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때면 나의 눈길은 더 이상 앞을 응시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미리 예습을 해둠으로써 언젠가 나에게 어떠한 질문을 던져도 완벽하게 대답할 수 있게끔 자신을 몰아세웠다. 그러나 선생님은 한번도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는 후회스러웠다. 더욱 고통스러운 건 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 선생님과의 불편한 관계였다. 졸업할 때까지 우리는 한번도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심지어 시험장의 부정행위에 관련해서도. 우리는 사생관계에 무슨 색감을 더 섞었을가?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여러가지로 분석해보군 한다. 자기의 학생이 순시원선생님한테 들키는 것을 원치 않아서, 내가 불쌍하여 측은지심 때문이라고 추측을 하는 한편 반대로 나의 부정행위로 자신의 감독직책이 제대로 리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발각될가 봐 책임회피를 하려고 막아준거라고 나는 나의 수치심을 잠재우려 하였다. 하지만 내가 그 사실에 혼자만의 리유를 붙여놓는다는 자체가 벌써 수치심이 깨여나있다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어떠할가? 수업중에 항상 준비하고 있는 자신에게 질문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녀도 내가 그 어떤 방식으로 다가감으로써 당황한 이웃에서 그 당황이란 두글자를 빼려고 하는 걸가? 그렇다고 그것이 지워질 수 있는걸가? 나는 아직도 시험장사건이 머리속에 생생한데...

 

4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나는 자전거를 타지 않고 밀고 갔다. 가게도 집도 모두 신쥬크구역에 있었다. 골목길에 들어서서 집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질수록 그녀와 마주치지 말기를 바랬다. 내가 살고 있는 103호는 아파트 안쪽에 위치해 있기에 반드시 그녀의 집앞을 지나야만 했다. 작고 아담한 유럽풍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전거를 세우는 곳이다. 열쇠를 다 잠글 때까지 될수록 소리를 작게 내느라 조심스럽게 행동하였다.

지은 오래된 아파트는 방음처리가 잘되지 않았다. 벽을 사이에 두고 들리는 티비소리, 주방에서 반찬을 볶는 소리, 욕실에서 샤와하는 소리들은 옆집사람의 생활을 고스란히 전해주었고 때로는 소음으로 때로는 리듬감 넘치는 음악소리로 이 아파트에 나 아닌 다른 사람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중에 샤와소리를 나는 지금 듣고 있다. 그건 102호에 사는 사람의 하루일과의 시작이다. 누구나 모두 자기만의 생활패턴이 있기 마련이기에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 순간 어색한 건 분명했다. 제 집이 아닌 사크라꼬의 집에서 들리는 옆집 샤와소리는 엊저녁 나와 그녀사이에 흐르던 찜통같은 침묵처럼 견디기 힘들었다.

자전거키를 잠그고 돌아서는 나를 기다렸다는듯이 그녀는 문밖에 기대여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귀를 덮은 회색 롱비니모자는 그대로였는데 모양이 불룩한 걸로 보아 머리가 긴것 같았다. 갸름한 얼굴을 가진 그녀는 작은 코에 해리포터 안경이 걸려있었고 두눈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똘망똘망하였다. 할 얘기가 있다는 말에 피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느끼며 할수없이 안내하는 대로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옆집엔 와세다에 다니는 학생이 살고 있어요.

나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으며 집안을 둘러보았다. 현관문 량쪽에 각각 주방과 욕실, 화장실이 붙어있다는 건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기숙사형 아파트의 집안구조는 모두 똑같다. 나를 놀래운건 27평메터 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방에 창문을 마주해 꽤 넓어 보이는 책상이 놓여있고 그 량쪽에 각기 빨간색 바탕에 노란 쿠션을 맞춘 소파와 나무침대가 갖추어져 있다는 점이였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놀라운 건 지금 나와 그녀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소파에 앉아 방안에 가득 쌓여있는 만화책에 눈길을 던지며 넌지시 물었다.

만화 좋아해요?

일본사람이라면 좋아하죠.

듣고 보니 물어본 내가 바보 같았다. 그녀랑 눈길이 마주치기 어색하여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다가 책상 우에 놓여있는 두툼한 종이들을 발견했다. 그 우에 그려진 수많은 그림들을 보는 순간 나는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 번 했다. 그녀는 만화를 즐겨보는 독자가 아니라 만화가였던 것이다.

문득 초중, 고중을 다니는 동안 만화에 푹 빠져 살던 학교시절이 떠올랐다. 예측불허의 상상과 뛰여난 실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토리와 그림에 매료돼 같이 나도 만화를 그려보겠노라며 똑같은 얼굴을 열두번씩 그렸던 열정들, 비록 나중에 자신의 능력부족을 한탄하며 포기는 했었지만 만화는 내가 일본을 리해하는 계기가 되였고 류학을 오게 된 여러가지 리유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솔찍히 그녀가 만화가란 사실에 나는 모름지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 뭐라고요?

, 아니예요.

사크라꼬는 멋적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가 뭔가 말한 것 같았는데 나의 정신은 죄다 만화에 쏠려있었다.

만화 그리세요? 

, 저의 직업이예요.

호기심이 부쩍 동안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만화가의 초고를 직접 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녀의 만화는 기상천외한 상상을 포인트로 하는 원피스(海, 인기만화)나 탄탄한 이야기줄거리를 기반으로 하는 나르토(火影忍者, 인기만화)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현실에 아주 가까웠다. 만화의 종류를 구분할 줄은 잘 모르지만 나름 대로 그런 풍격을 사실주의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난 이런 풍격의 만화가 인기가 있을지 궁금했다.

이거, 언제 완성돼요?

글쎄요. 아마 반년정도? 출판사에서 내줄지 걱정이예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야웅-

    갑자기 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 그녀가 말했던 얼룩이인 것 같았다. 그녀는 먹이감을 들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한쪽 눈이 참대곰처럼 까만 얼룩이가 나의 집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녀는 먹이감을 접시에 쏟아주고는 가릉거리며 먹고 있는 얼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그녀의 얄팍한 등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일어나 내 쪽으로 돌아서던 그녀와 나는 서로 눈길이 마주쳤다. 그녀의 손에는 고양이 먹이감이 쥐여져있었고 두사람의 머리속에는 아마도 똑같은 일을 회상하는듯 싶었다.

으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도 이내 머리 숙여 잔걸음으로 총총히 내 옆을 지나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냠냠 걸탐스럽게 먹어대는 얼룩이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결국 할 얘기가 있다던 그녀는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가? 비밀로 해달라고? 고맙다고? 그 후 이 일은 나와 그녀사이의 묵인 된 비밀이 돼버렸고 또 만화로 인해 우리는 공동한 취미도 생겼다. 비밀로 동질감을 느끼고 만화로 뉴대가 생겼다는 것이 이상해났다. 나는 이런 이상한 관계가 호의적인지, 배타적인지 항상 두리뭉실하게 느껴졌다.

    시험장에서 부정행위를 하다가 발각된후 감독선생님과의 관계에서도 이와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내가 어색해할가 봐 일부러 외면했을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선생님의 마음속에 나는 주의해야 할 인물이라는 락인이 찍혔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바르지 못한 행위만 부정한 걸가 아니면 그런 행위를 한 나란 사람자체를 부정한 걸가? 마찬가지로 그 당시 나는 그녀의 행위를 그리고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가?

 

 

5

사크라꼬를 다시 만난 그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중턱에 들어선 어느 휴식일이였다. 매일 야간작업을 하는 나와 집에 박혀 만화만 그리는 그녀의 생활패턴은 정반대여서 한달이 더 지나도록 얼굴 한번 마주치기 어려웠다. 어쩌다 돌아오는 휴식일도 생물종이 뒤죽박죽이 되는 바람에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아 나는 해질녘에 츄하이(소주에 약간의 탄산과 과일즙을 썩은 술)사러 마트로 갔다. 안주까지 골라가지고 카운터 앞에 이르러서야 갑자기 돈지갑을 집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점원의 눈빛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 이거 정말 미안해요, 먼저 여기 놔둬요. 인츰 갔다 올 게요.

    함께 계산해요.

목소리따라 뒤를 돌아다보니 그녀가 바구니를 카운터에 올려놓으며 나한테 웃어보였다. 나는 뭔가 말하려고 하다가 그냥 꾹 참았다.

    미안해요, 폐를 끼쳐서.

    괜찮아요, 갔다오기 시끄럽잖아요.

    고마워요. 

    뭘요, 그나저나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벌써 가을이네요.

    점원이 상품을 등록하는 사이 우리는 날씨를 핑게로 상투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이윽고 계산이 끝나 마트에서 나온 나는 그녀의 비닐주머니를 들어주면서 돈은 집에 가서 주겠다고 하였다.

    츄하이 좋아해요?

    잠이 와서요.

    벌써 자려구요? 여섯시인데?

    하루종일 자고 싶어요.

    많이 피곤한가보네요.

    .

    녀자친구는 돌아갔어요? 아까 마트에 올 때 봤거든요.

    , 갔어요.

    우리는 다리를 건너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강변을 따라 걸으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아파트 옆에는 서너메터 너비의 길을 사이 두고 이름 모를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강을 따라 조금 걸으면 아파트로 들어가는 철문이 보였고 그 앞에는 높다란 벚꽃나무 한그루와 다리쉼을 할 수 있는 벤치도 있었다. 벤치 우에서 우리는 얼룩이를 발견했다. 그녀는 쪼르르 달려가서 얼룩이 앞에 쪼크리고 앉아 물었다.

    여기서 ? 

야웅-

얼룩이는 웅크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먹이를 자주 챙겨줘서인지 그녀에 대해 별다른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벤치에 앉아 쪼크린 그녀와 웅크린 얼룩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줄기 가을바람이 불어와 귓볼을 간지럽히더니 얼룩이 몸 우에 꽃잎 하나가 하늘하늘 춤을 추며 떨어졌다. 그녀는 꽃잎이 떨어진 포물선을 따라 머리 우를 쳐다보더니 어린소녀마냥 환성을 질렀다.

     봐요, 사크라예요!

    그녀는 벌떡 일어나 팔을 높이 치켜들며 손가락으로 나무 가지를 가리켰다. 나도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새끼손가락 만한 가지 끝에 한두송이밖에 안되는 벚꽃이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다.

    사크라? 어떻게 가을에 피지?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때론 가을에도 핀다고!

    그녀는 벚꽃을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았다. 노을빛에 노랗게 물든 벚꽃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녀, 그 아래 벤치에 앉은 나와 얼룩이, 조잘조잘 흐르며 멈출 줄 모르던 강... 그건 기억 속의 그녀와 만날 때마다 꼭 떠오르는 풍경이기도 했다.

    그녀도 벤치에 앉았다. 얼룩이의 보드러운 털을 어루만지며 스쳐지나듯 말을 건넸다.

    아까 녀자친구랑 다퉜죠?

, 조금요.

있다 찾아가봐요.

래일 가려구요.

오늘 가요. 래일이면 늦어요.

왜요?

사이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아요.

...

그런데 다툰 같지 않았어요. 뒤에서 봤거든요. 어깨를 꼭 붙이고 걷는 모습을요. 다정해 보였어요.

    그래요?

    , 사랑하니까 그런 거죠.

    그녀는 사랑을 굳게 믿는 천진란만한 소녀처럼 목소리에 힘까지 주었다. 금방 삽심대에 들어선 나는 나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아보이는 사크라꼬의 눈빛이 천진란만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남자친구 있어요?

    아뇨, 없어요.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요.

많이 좋아해요?

, 나를 버릴 만큼.

    ? 음, 혹시...

    나는 잠간 뜸을 들였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유부남이세요?

...

    그건 자신도 모를 직감이였다. 정곡을 찌른 것 같았다. 무슨 생각에 그런 질문을 했는지 스스로도 리해가 안되였다. 그녀는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한참 뭔가 생각하더니 .하고 짧게 대답했다.

후에 질문의 본질을 생각해보았지만 결코 호기심이 빚은 무례인 같지는 않아보였다.그건 꼬리를 잡은자의 오만이였다. 유부남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앞에서, 그것도 그다지 친하지도 않는 이웃 앞에서 인정한다는 것이 예상 밖이였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그렇게 당당했을가? 아니면 어차피 나도 모르는 사람이기에 말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가? 혼자 마음속으로 사랑하기에 답답해서였을가? 지금까지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 없기에 단지 묻지 않은 질문에 대답을 안했을 뿐인가?

    ... 참 어렵네요.

    찾아갈가요?

    나는 머리를 뒤로 젖혀 다시 가을벚꽃을 바라보았다.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였다. 다음번에 또 피여날지, 그리고 그것이 언제일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계절따라 봄에 피는 것이 섭리라면 계절을 거슬러 가을에 피는 건 어떤 의미가 숨겨져있을가? 찾아갈가요?라고 말하던 그녀의 사랑은 마치 계절을 빗나간 가을벚꽃처럼 느껴졌다.

    어디를 찾아간단 말인가? 나는 사크라꼬가 굳게 믿고 있던 사랑이 그녀에게로 다가오는 걸 보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런 감정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지 않았다. 유부남을 선택했다는 리유 때문이 아니였다. 사랑은 선택권을 갖고 있다. 허나 선택한 결과에 따라 본인의 신분도, 립장도, 관계도, 같이 달라진다. 제3자의 신분은 그녀로 하여금 피동적인 립장에 처하게 하였고 그런 관계 속에서 원하던 결과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그 위험성과 후과를 미리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바보가 아니였다.  

유부남한테서 무엇을 원했을가? 그것이 자신을 버릴 만큼 가치가 있는 걸가? 혹시 아무 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을 수도 있다. 단순히 지금까지 자신이 믿고 생각하고 지켜왔던 이른바 사랑이나 감정 같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고 나는 자신을 달랬다.

 

 

6

내가 그녀의 사랑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그녀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런 편견은 비교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녀자친구 히토미와 사크라꼬를 대비해본 적이 있다.

우리 셋은 부근의 작은 공원에서 만났었다. 늦가을의 어느 날, 히토미랑 산책하러 나왔다가 벤치에 앉아 해볕쪼임을 하고 있는 그녀와 마주치게 되였다.붉은색과 하얀색 체크패턴에 앞뒤가 모두V넥라인의 롱남방을 입은 그녀는 깔깔거리며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야 서로 알아본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하라씨, 안녕하세요.

사이씨, 안녕하세요. 산책 나왔나 봐요.

, 날씨 참 좋아요.

그래요, 여기 앉으세요.

그녀는 일어난 자세로 허리를 굽힌 벤치 끝으로 옮겨앉으며 우리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비니모자는 쓰지 않았다. 긴 머리가 모두 한쪽으로 쏠려 어깨 앞에 미끌어져 내리며 V넥라인으로 그녀의 하얀 목덜미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스즈키 히토미( )예요.

안녕하세요, 오하라 사크라꼬예요.

저는 사이씨의 녀자친구예요.

히토미는 내가 소개하기도전에 자처해서 인사했다.

이웃이야,  101호에 살고 있어.

, 그렇구나.

히토미는 그녀 옆에 앉아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애들이 신났네요. 어느 아이가 오하라씨 애예요?

?! 아, 전 아직 결혼 안했어요.

, 죄송해요. 제가 괜히...

괜찮아요. 아이들을 좋아해서 아까부터 보고 있었어요.

남자애 좋아해요? 녀자애 좋아해요?

둘다요. 스즈키씨는요?

녀자애요. 사이쨩은요?( 같은 말로 친근, 친밀함을 나타낸다.)

히토미는 평소에도 잘하지 않던 질문을 던졌다.

... 말 잘 듣는 놈?

둘은 재미 있는 대답이라며 싱긋 웃어보였다.

두분 언제 결혼해요?

래년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그렇죠? 사이쨩.

, 래년 이때 쯤.

우리 결혼식에 참가해주세요.

, 때가 되면 알려주세요.

고마워요. 사이쨩, 우리 이젠 밥 먹으러 가요.

히토미는 나의 팔짱을 끼며 일어나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공원을 거의 벗어날 쯤 나직이 물었다.

녀자 뭐하는 사람이야?

?

남자라면 몰라도 나이에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없이...  다들 출근하는 시간에 공원에서 해볕이나 쪼이고. 이상하잖아?

너도 놀고 있잖아.

오늘 사이쨩 위해 휴가냈거든.

만화가래.

만화가? 어떻게 알어?

얘기 나누다가 알았지.

벌써 그런 사이야?

넘겨짚지 말고.

넘겨짚을 없어. 나랑 상대가 안돼.

말에 나는 히토미를 다시한번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내 눈길을 의식했는지 그녀는 보란듯이 왼쪽다리를 곧게 펴고 오른쪽다리를 한발 옆으로 기대워 세웠다. 그리고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올린후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는 머리결과 함께 다시 두손을 내리워 허리를 짚고 서서 우아한 포즈를 취하며 윙크했다.

그녀는 예뻤다.

히토미는 지금까지 내가 첫눈에 반한 유일한 녀자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난 그런 말을 믿지 않았다. 한때는 모델회사의 스카우트까지 받은 그녀, 이제 겨우26살 나이에 젊고 예쁘고 밝고 열정적인 히토미는 아련하고 조용하고 내면적이고 그녀보다 열살도 더 이상인 사크라꼬에 비해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도 아까 공원에서 사크라꼬에게 경계심을 보이며 시키지도 않은 소개를 자처해서 녀자친구라고 어필하였다. 그것이 본능에서 나오는 경계심이라면 나이에 결혼도 안하고 애도 없는 것이 이상하다. 나랑 상대가 안돼.라고 말한 과도한 자신감일가, 아니면 그렇게 살아가는 사크라꼬의 인생에 대한 우월자로서 자기만의 가치판단일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다가가 히토미를 살짝 안아주며 어깨너머로 공원을 바라보았다. 사크라꼬도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7

도쿄는 겨울이라 해봤자 기온이 령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선지 고향의 눈이 많이 그리웠다. 일년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고향에 폭설이 내렸다. 아버지는 봄에 간암진단을 받고 겨울에 떠나셨다. 나는 봄의 소망이 생명이라면 겨울의 사념은 하얀색이라고 생각했다.

눈은 이듬해 1월이 되여서야 내렸다. 야간작업을 나가려고 전등을 끄고 문을 열던 나는 푸실푸실 흩날리는 하얀 눈에 그만 멈칫했다. 그리고 한두메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담장 우의 시커먼 물건에 또 한번 흠칫했다.

(뭐, 뭐지?)

어둠에 묻혀 희미하게 보이는 가운데 두개의 새파란 유리알이 나를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었다. 순간 문고리를 잡은 채 제 자리에 못 박힌듯 굳어져 버렸다.

야웅-

(이런 씨, 고내새끼!)

다시 전등을 켜보니 얼룩이였다. 그제서야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얼룩이는 세탁기 우에 폴짝 뛰여내려 머리를 갸우뚱한 채 나를 쳐다보았다. 배가 홀쭉해진 걸 보아 요즘 많이 굶은 것 같았다. 그녀도 먹이를 주는 걸 까먹었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이사 온 지 거의 반년이 지났건만 한번도 먹이를 준 적이 없었다. 간혹 접시에 가득 놓여있는 먹이감을 볼 때마다 사크라꼬가 줬구나.하고 생각할 뿐이였다. 언젠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고양이가 점점 싫어지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외식하기에 집에는 마땅히 줄 음식도 없었다. 나는 거지에게 돈을 줘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 적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두손을 바지호주머니에 찔러넣고 얼룩이를 무심코 내려보다가 발끝으로 접시를 툭 찼다. 딸그락!하는 소리와 함께 사기접시는 한켠으로 밀려나갔다.

나가세요!

조용히해!

갑자기 사크라꼬의 거친 목소가 들려오더니  50대의 한 남자가 그녀에게 등을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다신 오지마세요!

생각해봐.

그럴 필요 없어요!

, 너 정말...  후회하게 될 거야!

!

남자의 말이 떨어지기도전에 문이 거세게 닫혔다.

중년남자는 뒤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화가 났는지 발로 아파트의 철문을 걷어차고는 씩씩거리며 멀리 가버렸다.

앞에서 목격했던 것들이 아침에 일이 끝나서도 신경이 쓰이였다. 무슨 일이 터진 건 분명한데 또 그렇다고 무턱대고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건 례의가 아니였다. 집으로 돌아와 철문 앞에서 사크라꼬가 자판기 옆에 쪼크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 유난히 짙어진 다크서클이 엊저녁에 한잠도 못 잤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 마신 캔커피에 재를 털면서 그녀가 인사를 보냈다.

오하요? (아침 인사, 안녕?이라는 )

오하요 고자이마스. (아침 인사, 안녕하세요.라는 )

만화 완성됐어요. 한번 보실래요?

정말요?

, 근데 아직은 초고예요.

출판전에 제가 먼저 보는 거예요?

그런 셈이죠. 문 앞에 갖다놨어요.

고마워요, 잘 볼게요.

그럼 이만.

그녀는 초고를 완성하느라 엊저녁부터 한끼도 먹었다며 마츠야(松屋, 요시노야, 스키야와 함께 일본의 소고기덮밥 3대 체인점의 하나)에 간다고 했다. 나는 감사의 뜻으로 계산은 내가 할테니 같이 가자고 하였다. 그녀가 괜찮다고 하였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왠지 그녀한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마트에서처럼.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초고를 한장한장 읽어보았다. 그녀의 만화소재는 그녀 자신이였다. 이야기는 소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되였다. 어머니 손을 잡고 첫 등교하는 모습, 단짝친구 후지하라 리에(藤原里惠)와 함께 바다가에서 조개를 줏는 모습, 그림을 잘 그려 칭찬받는 모습 등 일상 속에서 평범하면서도 작은 행복들로 가득한 동년시절을 그렸다. 그 중에 인상적인 장면이 두곳 있었다.

 

그녀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며 묻는다.

엄마, 아빠는 어디 갔어요?

바다로 나갔지. 고기 잡으러.

언제 돌아와요?

글쎄, 좀 더 기다리자꾸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어른이 되여서도.

 

다른 한장은 그녀가 소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할아버지랑 같이 산에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였다.

 

할아버지, 왜 또 여기에 온 거예요?

벚꽃 보러.

지금 가을이예요.

때론 가을에도 피는 거야.

, 거짓말. 바다 보러 온 거잖아요.

그녀는 할아버지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만화에는 그녀의 학창시절과 첫사랑이야기도 담겨져있었다.

 

그녀의 중학교시절도 고중시절도 별로 특별한 이야기가 없었다. 누구나 모두 거쳐가는 사춘기시절의 방황과 한번 쯤은 해보았을 짝사랑이야기, 대학입시를 앞둔 고민과 미래에 대한 동경, 불안, 희망이 때로는 사념에 사로잡힌 하얀색으로, 때로는 행복이 피는 핑크색으로, 때로는 그리움이 묻은 푸른색으로 그녀의 소녀시절을 구성하였다.

그녀는 대학에 입학하여 마지막 학생시절을 보냈다. 그 과정에 만화써클에서 그녀의 선배이자 첫사랑인 나카무라 료(中村 亮)를 만났다. 료는 그녀랑 한고향이였다. 둘은 누가 누구에게 먼저 다가간 것이 아니라 만화에 대한 느낌과 생각들을 교류하는 과정에 아주 자연스레 감정이 싹텄다. 다정하게 손잡고 캠퍼스를 걷는 모습, 여름방학에 고향의 바닷가에서 단짝친구랑 셋이서 바베큐파티를 여는 모습, 떨리는 첫 키스를 하다가 그만 료의 혀를 물어놓아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 두 사람 사이는 별로 큰 모순 없이 순조로웠고 알콩달콩 하였다.

나는 한참 읽어보다가 결국 종이박스에 다시 집어넣고 말았다. 소재가 아무리 자신의 생활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허구를 통해 두 사람의 의견분기라든가 모순 같은 것들을 곁들이면 스토리가 한결 더 재미 있을 텐데 그녀의 만화는 예전에 한번 피뜩 봤던 대로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지루하고 따분했다. 주류(主流)가 아닌 그림풍격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신 그림은 아주 섬세하고 생동했다. 선 하나하나에도 많은 신경을 쓰며 모든 정력을 쏟아부은 듯했고 재현된 만화는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이야기를 책 속에 락인해둔것처럼 보였다. 만화도 컴퓨터로 그리는 시대에 왜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할가? 한동안 나는 그녀의 만화를 들여다보지 않았고 그녀 또한 찾아가지 않았다. 만화에 관하여 동문서답을 할가 봐 선뜻 돌려주지도 못했다.

새해도 지나 이듬해 3월의 어느 봄날, 새벽에 집 부근의 마츠야에서 우연히 그녀와 만났을 때도 나는 만화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덮밥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나누었던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녀가 건넨 롱담 반 진담 반의 말이 아직도 마음에 걸릴 뿐이다.

결혼준비는 잘돼가요?

돈이 문제죠, 아르바이트를 두개 뛰고 있어요.

많이 모았겠네요.

얼마 안돼요.

저한테 조금 빌려주세요.

?!

    그녀의 뜻밖의 말에 제자리에 멈춰서며 망설였다. 5년전, 친구한테 빌려준 돈도 결혼소식을 핑게로 이제야 겨우 다 받아냈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혹시 장난인가? 나는 이 세상에는 백프로의 순수한 롱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속에는 설령 본인이 모르더라도 무의식 속에 본능적으로 원하는 진지한 성분이 섞여있다고 믿어왔다.

이른 새벽길에는 우리 밖에 없었다. 그녀는 몇발작 걷다가 뒤돌아보더니 손등을 이마에 갖다대며 밝아오는 새벽빛을 막았다. 그리고는 롱담이라며 깔깔 웃었다. 아침해살에 해맑게 웃던 그녀, 그 역시 사크라꼬에 대한 기억의 한조각이다.

 

뒤로 부동산업체 사람들이 그녀 집에 여러번 다녀갔다. 사크라꼬가 어디 갔는지 모르느냐고 묻는 말에 집에 며칠씩 없는 걸 봐서 려행갔을 수도 있다고 두리뭉실하게 대답했다. 부동산업체사람은 세집값도 구좌에 입금되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려행이 아니라 달아난 게 틀림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후로 그녀는 아파트에 살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가? 야반도주를 한 걸가? 고작 세집값 때문에? 그렇다고 자신을 신용불량자로까지 만들 필요가 있을가? 설마 그 유부남이랑 같이 떠난 건가? 정말 돈이 필요했을가? 나는 그 당시 매일과 같이 이런 질문들을 자신한테 했었다. 새벽의 만남과 마지막 대화는 뭔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처럼 나를 괴롭혔고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사라졌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철저히 보이지 않았다.

 

 

8

봄기운이 완연하게 대지를 감싸안았고 날씨도 많이 풀려 제법 따뜻해졌다. 나는 밖에 나와 옷과 바지들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문뜩 사크라꼬네 집앞의 세탁기호스가 배수로에 꽂혀있는 게 보였다.

(음? 언제 돌아왔지?)

줄곧 밤에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나는 언제부터 호스가 배수구에 내려져있었던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서 세탁기 안을 들여다 보았다. 빨래는 끝났으나 세탁물은 그대로 있었다.

(오긴 왔구나.)

갑자기 잔바람이 불어오더니 어디선가 코를 찌르는 역겨운 냄새가 났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이마살을 찌프렸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구역질이 났다. 배수구에서 나는 냄새인 것 같았다. 돌아서서 뽀얗게 먼지가 낀 빈 접시도 보았다. 그녀가 사라진후로 얼룩이한테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고양이가 뭐길래? 참!)

 

요즘따라 부쩍 늘어난 벚꽃뉴스는 3월이 거의다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티비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보도하였고 다음주면 도쿄에서도 꽃구경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히토미는 벌써부터 뜰떠서 미리 휴식일을 잡으라고 매일같이 문자를 보내왔다.

사이쨩, 장소는 어디로 할가?

멀리 가지말자.

그럼, 도심으로 하자

, 좋아.

도쿄도심에는 벚꽃구경 만한 유명한 장소가 세곳이 있다. 많은 꽃을 다종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신쥬크교엔(新宿御苑), 미술관이나 박물관 동물원도 함께 있어 남녀로소가 모두 잘 찾는 우에노공원(上野公), 강 량편 천메터에 걸쳐 벚꽃길이 쭉 뻗은 스미다공원(隅田公), 저마다 특색이 분명하다. 우리는 제일 가까운 신쥬크교엔으로 정했다. 스미다공원은 여름에 가서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우에노는 사람이 많아 피하기로 하였다.

벚꽃잎이 한들한들 떨어지는 나무 아래서 가족이나 련인, 친구들과 함께 봄의 정취를 즐기는 건 아주 시적인 일인것 같다. 히토미는 아이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술 한잔 부었다. 건배를 하고 나서 나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화사하게 피여난 벚꽃들을 바라보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이쁘다. 그치?

.

그런데 짧게 핀다.

이쁘니까 그런거야.

벚꽃의 생명주기는 겨우 일주일에 불과하다.

한번 핀후 여름무더위와 겨울추위를 견디는 혹독한 시련을 겪고 나서야 이듬해 봄에 다시 피여난다. 그 제한된 생명 속에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벚꽃의 미는 창조 속에 존재하는 동시에 훼멸 속에도 존재한다. 그래서 벚꽃은 짧지만 기억 속에 오래 남아 그 생명을 또 다른 방식으로 연장한다.

우린 손잡고 한참 꽃길을 산책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쓰레기 회수일이 아니여서인지 아파트철문에 까마귀 한마리가 앉아있었다. 내가 앞장서서 손을 휙휙 저어 쫓아버리자 멀리 가기는커녕 자판기 바로 옆에 내려앉아 뾰족한 부리로 비닐주머니를 쪼아댔다. 무척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일본에 와서 인상에 남는 것중의 하나가 바로 고양이와 까마귀가 엄청 많다는 점이다. 도쿄는 완전히 고양이와 까마귀 천국이나 다름없다. 길옆에, 골목에, 담장 우에, 전기줄에, 쓰레기장에, 길고양이들이 너무 많아 정부에서는 붙잡아서 거세를 하여 번식능력을 없앤다. 그런 길고양들의 꼬리는 모두 절반 잘리워져있다. 일종의 표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까마귀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쫓으면 훨훨 날아가버리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비닐주머니를 부리로 찢어서 먹이를 찾다보니 때론 쓰레기를 모아놓는 곳이 아수라장이 되군한다. 심지어 어떤 까마귀는 사람을 공격한다고 뉴스에서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리해가 안 가는 건 다른 나라와 달리 까마귀를 길조(吉)라고 여기는 일본사람들의 풍습이다.

까마귀를 길조라고 생각해?

반포지효는 옛날 얘기지. (反哺之孝, 까마귀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효라는 뜻으로 자식이 자란후에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 효성을 이르는 말)

그래? 

, 지금은 아냐.

우리는 반갑잖은 손님을 만난듯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히토미는 세탁기 옆을 지나가다 손으로 코를 싸쥐였다.

, 구려! 이거 무슨 냄새야?

배수로가 막혔어.

관리원 불렀어?

오늘 전화할 거야.

급급히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히토미는 이튿날 출장을 가야 하기에 저녁식사만 하고 이내 돌아갔다. 아쉬워하는 그녀를 달래여 여름 불꽃놀이철에 려행을 떠나자고 약속했다.

 

 

9

나는 다시 그녀의 앞에 서있었다. 상황은 언제나 그랬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머리속에 되살아나면 마지막에 가선 항상 그 아파트가 떠올랐고 이어서 101호라고 표시된 문과 그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의 옆모습이 보였다. 몇번인가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들었다가 번마다 망설이며 다시 내리웠다. 또 한번 천천히 몸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녀에 대한 기억의 엔딩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 엔딩은 나의 눈앞을 무한반복이 되여 끊임없이 지나간다. 나는 끝끝내 노크를 하지 않았다.

 

똑똑똑

안녕하세요. 다카하시(高)예요.

    다카하시는 와세다대학에 다니는 학생인데 바로 옆집 102호에 살고 있었다. 이사 온 지 거의 일년됐지만 워낙 생활패턴이 다른지라 그녀랑은 딱 두번 인사를 나누었다.

, 잠깐만요.

시계는 아홉시 반을 가리켰고 마침 전날이 휴식일이여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늦은 밤에.

괜찮아요.

저기, 지금 시간 괜찮아요?

.

요즘 오하라씨를 적이 있어요?

아뇨, 없는데요. 왜요?

집이 너무 조용해서요.

아마 집에 없을걸요.

그래요?

, 부동산업체에서도 찾아왔었어요. 이달초에.

어디로 간거예요?

글쎄요.

이상하네, 분명 빨래를 돌리는 소리 들었거든요.

진짜요? 근데 세탁물은 그대로던데.

, 저도 봤어요.

왔다가 어딜 아닐가요?

글쎄요. 사이씨는 오하라씨랑 가까워요?

그렇게까진...  다카하시씨는요?

저도 별로 얘기 못해봤어요. 그냥 인사나 나눌 정도예요. 사실 이 아파트에 제가 제일 먼저 입주했거든요. 오하라씨는 작년 4월에 이사왔고. 

작년 여름에 입주한 나는 사크라꼬가 먼저 알게 다카하시보다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것도 같은 일본사람이 아닌 외국인하고 말이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사크라꼬와의 대화, 편의점에서의 우연한 만남, 그녀의 집을 방문한 사실, 벚꽃나무 아래에서, 마츠야에서, 한 박스 받은 만화도, 생각보다 우리 사이는 다카하시에 비해 련결점들이 꽤 많았다.

한번 노크해볼가요?

다카하시가 물었다. 노크? 어떡하지? 나는 눈을 내리깔고 빈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웬지 이 상황이 싫었다. 제안 자체도 그 제안을 한 다카하시도 모두 싫어졌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수 없는 데다가 만에 하나 원치않은 상황들과 맞띄운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긴 더욱 싫었다. 그러면 또 경찰서에 가서 지루한 조사에 협조를 해야 한다. 야근은 어떡하고? 나는 선택공포증에 걸린 사람처럼 노크할지 말지를 두고 그것이 정확한지 않는지를 판단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렇다고 우리의 생활이나 인생이 객관식 문제처럼 꼭 들어맞는 표준답안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이 결정을 피하려고 했다. 책임회피인가? 무슨 책임인가? 가족이나 련인, 친구와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책임이나 의무 같은 것들을 나와 사크라꼬사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사크라꼬의 생활에 참여할 리유를 찾지 못했다.

죄송해요.

나는 거절했고 다카하시는 없다는 눈빛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도 쉽게 노크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우두커니 서서 한참 동안 사크라꼬의 집문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호주머니 안에 손을 넣어 자전거키를 만지작거렸다.

설마요?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설마요.

저기, 전 야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어요.

, 그럼, 수고하세요.

나는 문을 닫고 그녀를 피해 사크라꼬 집앞을 지나 자전거를 세워두는 곳으로 갔다.

똑똑똑

노크소리가 나의 등에 꽂혔다.

머리를 돌렸다. 다카하시가 다시한번 사크라꼬의 집문을 두드리더니 오하라씨!하고 불렀다. 나는 목석처럼 굳어져 꼼짝하지 않았다. 그녀가 혼자서 문을 두드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도리 대로라면 사크라꼬와의 련결고리가 더 많고 대화도 더 잦게 나누고 사이도 더 가까운 내가 노크하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왜서 그녀였을가? 금방 옆집이여서? 같은 일본사람이여서? 나는 뭔가 한방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험장사건 때처럼 저도 모르게 갑자기 긴장해나며 심장이 쿵쿵 뛰였다. 두손으로 자전거핸들을 꼭 잡은 채 숨죽이고 노크하는 그녀와 문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날 근무시간에 나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적게 찾아주어 배상청구가 들어왔는가 하면 페기날자를 잘못 체크하여 레지등록에 지장이 생겼고 상품 발주도 제시간에 맞추지 못했다. 이상하게 의욕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자꾸 짜증이 났다. 그런 불안은 야간작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와서야 가뭇없이 사라졌다.

사크라꼬 집문이 열려져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죽었다.

밖에는 경찰차 두대와 구급차 한대가 와있었고 마스크를 경찰들과 구급대원들이 그녀의 집을 들락거렸다. 엊저녁, 다카하시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아침까지 뒤척이다가 날이 밝는 대로 경찰서에 전화해서 신고를 하였고 득돌같이 달려온 경찰들이 몇번이나 이름을 부르고 노크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자 열쇠를 부수고 강제침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단다. 사크라꼬가 목을 맨 모습을.

경찰이 우리한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사는 다카하시가 했다.

몇가지 물어볼 있어요. 상황을 보면 죽은 지 보름정도 된 것 같은데 그사이 이상한 점 같은 거 없었어요?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부검결과를 기다려봐야 해요.

(보름? 어떻게 보름씩이나?)

문뜩 배수구가 생각났다. 잇따라 그 냄새도 기억났다. 코를 찌르는듯한 역겨운,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구역질이 나는 난생처음 맡아본 그 냄새말이다. 그제야 그것이 배수구 냄새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 다음 아파트철문에 앉아있던 까마귀도 결국 죽은 사람의 썩은 냄새를 맡고 날아왔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였다. 그러나 나는 아무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대답하기 싫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벚꽃계절은 죄다 지나갔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영원히 살고 있다. 사크라꼬에 대한 기억도 그러하다. 마지막일 것 같지 않던 순간이 마지막이 되고 끝났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끝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

나와 다카하시는 벚꽃나무 아래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분주히 움직이는 경찰들과 구급대원들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사크라꼬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었고 그 어떤 숙연함을 느꼈다. 엊저녁, 나는 무슨 일을 저질렀던가? 사람이 잘못됐을 수도 있는 상황에 노크할지 말지를 토론했으며 지금과 같은 현실의 가능성을 예상하면서도 설마?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그건 한 생명과 그 가치에 대한 선의(善意)적인 행동을 회피하고 도피한 거나 다름없었다. 만약 노크를 한 다카하시의 행동이 도덕적 의미를 가진 선(善)에서 출발한 거라면 같이 망설였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노크를 거부한 나의 행동의 근원은 무엇일가? 심지어 지금 사크라꼬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왜 아직도 노크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걸가? 대체 왜? 왜서이지? 나란 사람이 지금까지 그 정도로 도의에 어긋나게 살아왔던가? 내 마음은 그토록 가난하고 궁핍했던가?

나는 문제의 답을 단순히 도덕적 차원에서 찾기 너무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 차원에서 벗어나 배후에 또 다른 무언가가 나의 그런 행동을 지배했음을 모호하게 감지했다. 그건 도대체 무엇일가? 나는 그것이 알고 싶었다.

 

10

만화를 끝까지 읽은 벚꽃계절이 지나가고 나서였다. 억지로 본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만화를 다 읽고 나서 그 러브스토리가 단순히 만화가로서의 작품이 아니라 인생과 첫사랑에 관한 기록이자 회억이며 한차례 의식()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다시 책을 펼쳤다.

 

밝고 명랑하던 그녀의 이야기는 선배인 료가2년 먼저 졸업하면서부터 색상이 점점 어두워져갔다. 두 사람은 졸업후의 진로를 놓고 의견분기가 생기게 되였다. 료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고 반대로 그녀는 도쿄에 남을 것을 원했다. 서로 맞지 않는 생각과 주장 때문에 가끔 말다툼이 벌어졌는데 그때마다 짧으면 사나흘, 길면 보름씩 랭전상태였다. 동거를 시작한 련인들 치고는 보름은 좀 길어보였다.

료는 끝내 고향으로 돌아갔다. 만화 속에는 멀어져가는 료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독백하는 장면도 있었다.

,

등을 보이지마

    돌아서서 이름을 불러줘

우린 끝난 아니야

잠시 떨어져있을 뿐이야

그녀는 어쩔 없는 현실과 화해를 거지 헤여진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일정한 기간을 두고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해보려고 료와 그리고 현실과 화해한거라고 하였다.

그녀는 도쿄에 계속 남아 만화가의 꿈을 키워갔다. 남들이 하는 취직활동도 죄다 생략한 채 매일같이 만화실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자신만의 만화에 깊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화풍(画风)은 투시, 원근, 색채, 명암이 률동적인 립시체와 해당 사물을 자세히 따라 그리는 소묘가 결합된 풍격이였다. 립시체는 움직이는 듯한 자세로 굳어버린 같다 혹평을 듣기도 하기에 상업 쪽에선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지만 그림기술이 뛰여난 그녀는 오히려 그것을 기반으로 립시체와 소묘를 고집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처음에 고집이란 단어를 썼다가 나중에 신념으로 바꾸었다.

료와의 만남은 계절마다 한번 페이스로 만나다가 점차 회수가 줄어들어 반년에 한번, 나중에는 설을 쇨 때나 보군 하였다. 그래도 그녀는 어떡하나 견지해보려는 마음인 것 같았다. 그녀의 사랑은 의외로 깊었다. 료와 8년이란 마라톤사랑을 달려왔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먼거리련애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28살 되던 해에 료한테서 일방적인 리별통보와 함께 돌연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상대는 그녀의 단짝친구 후지하라 리에였다. 그녀는 료와 리에를 놓고 사랑과 우정을 저울질해보았다고 자백하였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축복을 빌어주기 싫었다고 한다. 또한 료의 일방적인 리별통보와 결혼에 대하여 끝까지 배신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고 리별원인에 관해서도 말을 몹시 아꼈다. 그건 료에 대한 보호이자 그들의 사랑에 대한 존중이였다.

그후 3년간 그녀는 미친 사람마냥 만화에 몰두하였다. 그동안 키워왔던 탄탄한 그림실력으로 점차 팀에서 따로 독립하여 자신의 만화실도 차렸다. 그 과정에 나이 어린 한 남자와 오랜 선배하고 각각 짧은 애인관계도 가져보았다. 후에 이 부분을 그녀는 몰두가 아닌 도피라고 정의를 내렸다. 료와 리에의 결혼에 대한 부인, 그런 현실을 대면하고 싶지 않아 자신을 다른 것에 몰아세우는 것으로 그것을 피하려 하였다.

인생의 굽인돌이는 료가 결혼해서 4년째 되던 해에 발생했다. 어느 날 밤, 료가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둘이 동거하며 보냈던 그 집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출장으로 도쿄에 온 료는 술에 많이 취해있었다. 그녀는 료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료는 보고싶었다 했고 그녀는 듣고만 있었다.

료에게는 사리가 밝으신 부모님과 귀여운 녀동생이 있었다. 그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료가 졸업한 지 얼만 안돼 부모님들이 차사고가 생겼는데 어머니는 병원으로 호송하는 도중에 죽고 아버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녀동생을 돌보면서 아버지를 간호했으나 사크라꼬에겐 잠시 비밀로 하고 빨리 취직하여 모든 것이 안정되면 그녀에게 말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도쿄에서의 취직경쟁은 너무나 치렬했다. 한시가 급했던 료는 차라리 고향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라고 판단하였다. 고향에서 어렵게 취직한 회사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집에는 녀동생이 있었고 또 병원에는 아버지가 누워계셨다. 회사와 가족의 압력은 그로 하여금 숨도 제대로 못 쉬게 하였고 무정한 세월은 어느덧 8년이나 훌쩍 흘렀다. 료와 리에의 결혼생활은 순조롭지 못했다. 비록 결혼하여 딸이 인츰 태여났지만 리에는 줄곧 료의 마음속에 사크라꼬가 살고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날 저녁, 료와 사크라꼬의 대화를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료가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용서해줘.

바라는 그거야?

미안해, 바랄 자격도 없겠지.

다른 거는 없어?

...

아직도 사랑하는데...

그녀는 다가가 료를 품에 안았다.

그림 아래부분에는 이런 구절도 씌여져있었다.

-- 우리는 오랜만에 섹스를 했다.

-- 우리의 사랑은 한번도 끊긴 적이 없었다.

 

그후로 기나긴 기다림이 시작되였다. 료는 출장으로 도쿄에 올 때마다 그녀의 집에 머물렀다. 료와 리에는 별거중이였지만 리혼은 하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7년동안 지속되였고 그 사이에 년로하신 사크라꼬의 할아버지와 병마에 시달리던 료의 아버지가 선후로 이 세상을 떠났다. 료의 딸애는 소학교 4학년이 되였고 녀동생도 시집을 갔다. 그리고 겨울이 다 지난 어느 봄날, 리에가 료를 찾아와서 딸애의 양육권을 자기가 가진다는 조건으로 리혼서류에 싸인을 했다. 료는 전화로 그 사실을 사크라꼬에게 전했다. 그 날은 목요일이였다.

리에가 싸인했어! 

진짜? 믿기지 않네.

나도 그래.

래일 있어?

, 주말을 함께 보내자.

먹고싶어?

카레.

이것은 그들의 마지막 대화였다.

만화의 제일 마지막 페지에는 어떤 인물도 등장하지 않았다. 이튿날 둘이 서로 만났는지, 주말은 어떻게 보냈는지, 무슨 대화를 나누었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지, 심지어 둘의 사랑의 결말에 대해서도 그 어떤 문구도 남기지 않았다. 종이에는 오직 땅에 떨어진 벽시계가 덩그러니, 그것도 온 종이를 다 차지할 만큼 커다랗게 그려져있었다. 시침은 2시를 가리켰고 분침은46분을 가리켰으며 초침은 떨어진 벽돌에 짓눌리워 휘여진 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밑에는 날자가 적혀있었다.

-- 2011년3월11일, 오후 2시46분, 금요일. --

그건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날자였다.

 

11

경찰이 사크라꼬의 죽음을 타살이 아닌 자살로 최종확정을 지은후 부동산업체와 청소업체, 인테리어업체 사람들이 선후하여 다녀갔다. 그녀의 물건들을 정리하여 없애기 시작했고 냄새를 제거하고 바닥도 다시 깔고 벽지도 새것으로 바꾸었다.

나는 그녀 집앞을 지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머리를 돌려 문을 바라보군 하였다. 일하러 나갈 때도, 마트에 갈 때도, 산책을 할 때도 쓰레기를 던지러 갈 때도 빠짐없이 눈길을 돌렸다.

오래동안 나는 가끔 아무 영문도 없이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갑작스레 떠오를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자신한테 이런 질문을 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을가?

우리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가?

인간관계의 토대는 어디에 있는가?

 

원하던 답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다.

어느 파지(废纸)를 회수하는 날, 낡은 잡지들을 버리러 갔다가 청소업체 사람들이 페기한 책들 속에서 그녀의 다른 한 작품을 발견하게 되였다. 그건 지진이 일어난후의 생활을 그린 것이였다. 나는 보물을 얻은듯 그 초고들을 죄다 찾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숨 죽이고 조용히 읽어보았다. 아니, 귀를 기울여 그녀의 속심말을 들었다.

    

지진 당일, 나는 지하만화실에서 작업을 하다가 진동과 더불어 밖으로 뛰쳐나왔다. 인츰 료한테 전화를 하였다. 도쿄에 지진이 발생하여 위험하니까 오지 말라고 전하고 싶었지만 그는 부재중이였다. 급급히 보낸 문자도 줄곧 발송중으로 나타났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진원(震源)이 도쿄가 아니라 고향인 미야기현 나도리(名取)시 부근 해역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고향에는 9메터 높이의 쓰나미가 들이닥쳤다. 3층 건물 높이, 말 그대로 집채같은 파도였다. 어머니도 료도 리에도 모두 그 쓰나미에 휩쓸려 바다로 갔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달이 지난 4월11일, 나는 고향에서 열린 추도회에 참가하였다. 행사내내 울지 않았다. 공포도 불안도 슬픔도 그리움도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나는 이름모를 마비상태에 빠졌다. 유리아게 히요리야마(上日和山)에서 목격한 정경은 어릴 때 할아버지랑 함께 보았던 풍경하고 전혀 달랐다. 헤아릴 수 없는 집들은 형체도 없이 떠밀려갔고 나무널판자와 양철판, 각이 떨어져나간 가구, 흙이 가득 들어찬 랭장고와 세탁기들이 변형된 채 마구 흘어져있었다. 그건 마치 하늘에서 쓰레기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 심지어 겨우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버스가 간신히 남겨진 한 건물2층에 곤두박혀있었다.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 건물기초인 차디 찬 콩트리트 뿐이였다.

추도회에서 돌아왔으나 지하수가 터지는 바람에 만화실에 물이 가득차있어 재개업을 단념했다. 료랑 오래동안 동거했던 집도 떠나 현재 아파트에 이사를 왔고 한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이상한 취미가 생겼다. 친구랑 함께 어쩌다 나가 놀 때면 디즈니랜드보다 디즈니씨를 더 선호하였다. 리유는 놀이시설중에 시속이 가장 빠른 센터 오브 아스 타기 위해서였다. 허나 쥘 베른의 지저세계려행 테마를 감수한다기 보다 놀이시설의 속도에 관심이 컸다. 화산구를 뛰쳐나올 때의 풍경은 나에게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했지만 하이라이트에서 붙는 가속도와 직후 락하할 때의 순간적 흥분은 일상에 돌아와서도 자주 그리웠다. 그외에도 번지점프를 류달리 즐겼고 또 골든위크(五一)에 후지산야생동물원으로 가다가 차가 막혀 열두시간 지체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도착해서 호랑이를 보았을 때는 얼룩이를 본 것처럼 반가워서 차문을 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그러나 그런 이상한 취미도 오래가지 못했다. 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마트나 편의점 같은 곳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이였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가만히 행동할 때의 긴장감과 짜릿함은 나더러 멈출 수 없는 성취감을 갖게 하였다. 그런 느낌들 가운데는 수치심도 있었다. 그건 우연하게 한 남자를 만나서부터였다.

나는 사이와의 만남을 인생의 마지막 인간관계라고 생각했다. 얼룩이를 부탁하기 위해 음료를 선물로 사들고 갔지만 그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였다. 주류(主流)매체에서 늘 부정적으로 다루는 중국뉴스 때문에 약간의 선입견은 갖고 있었지만 첫인상 치고는 괜찮은 이웃 같았다.

편의점에서 붙잡힌 유일한 실수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수치심을 느꼈다. 하지만 마비되였던 마음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어 환호를 지르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났다. 그건 이 모든 감정들은 내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차라리 절차 대로 경찰에 신고할 거지. 구류소에 한번 쯤 가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사이는 경찰을 부르지 않았고 그래서 의문이 생겼다. 그런 행동이 궁금하는 한편 이런 결과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아 참 혼란스러웠다.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용기를 내여 사이를 불렀다. 그런데 그의 주의력은 온통 만화에만 집중돼있어 고맙다는 내 말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만화를 보면서 올라가는 그의 입고리와 왼쪽 볼에 패인 보조개도 나는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만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나중에 완성되면 보여주고 의견도 들어봐야겠다.

언젠가 한번 돈지갑을 두고 사이를 속으로 바보라고 놀린 적이 있다. 사정이 딱해보여서 함께 계산해주었다. 또 그가 남자친구에게 대해 눈치없이 유부남이죠? 라고 묻는 말에 너무 직설적이여서 놀란 사실이지만 라고 대답할 때는 반대로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리고 당당하게 나의 사랑을 승인할 있어서 기뻤다. 나는 료를 사랑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그한테 답답할 정도로 지극히 열중한 것 같다. 그 마음이 너무 커져버려 나중에는 가슴 속에 자신에게 남겨 줄 자리가 없었다. 19년동안 료를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할수록 자신을 더 많이, 더 깊게 버렸다. 그런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사랑할 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가?  나는 료를 사랑했을가 아니면 료를 사랑하는 그 느낌을 원한 걸가? 이제는 그를 백프로로 사랑한다고 자신할 수 있는 지금에 나는 왜 이 사랑에 도리여 물음표를 다는 걸가?

사이에게는 모델급 수준의 녀자친구가 있다. 이십대 중반 쯤 돼보이는 그녀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 그녀가 공원에서 왜 나를 경계했는지 리해가 안되였다. 대화중에 결혼얘기가 나왔을 때 그녀의 미소에서 행복감을, 나를 보는 눈빛에서 우월감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 속에는 곧 마흔을 바라보는 한 녀자가 담겨져있었다. 히토미와 마주하는 동안 나는 마치 현실이란 거울을 마주한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자신감을 상실했다.

사이에게 정말로 고마운 것이 하나 있다. 계약을 맺은 출판사와 트러블이 생겨 사장이 집까지 찾아온 적이 있었다. 나의 만화는 사실상 큰 인기를 모으지 못했고 잘 팔리지도 않았다. 사장이 시대주류가 아닌 화풍을 바꾸어보든지 원피스나 나르토의 풍격을 본따서 그려보라고 제안하였으나 나는 거절했다. 화가 난 사장은 출판사의 경제적 손해도 만만치 않다며 계약해제까지 들먹였다. 그는 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이어온 인연을 감안하여 합의를 보자고 한발 물러섰다. 대신 요구가 있었다. 자기와 애인이 돼달라는것결국 사장이 집까지 찾아온 진정한 리유였다. 그때 마침 밖에서 딸그락거리는 접시소리가 났다. 아마 사이가 얼룩이한테 먹이를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담이 커져서 집에서 버티고 나가지 않는 사장을 향해 꽥 소리를 질렀다.

사이한테 고마운 것도 있지만 몹시 화난 적도 있었다. 수많은 밤을 새가며 고생스럽게 완성한 만화를 보라고 줬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볼 만한지, 어떠한지 의견이라도 준다면 다시 수정해볼 턴데 한달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반응이 없다는건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모욕과도 같았다. 어쩌면 그는 나의 만화를 인정해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도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고민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렇게 화가 나면서도 새벽에 마츠야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는 도리여 마음이 차분해졌다. 독자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따로 있는 만큼 그 정도는 리해하며 거기에 연연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롱담도 건네봤다. 사이한테서 정말로 돈 빌리려고 한 건 아니지만 그의 눈빛에서 순간적인 망설임을 보았다. 나는 웬지 씁쓸했다.

우린 무슨 관계일가? 그냥 이웃일가? 친구일가? 왜서 사이한테 여러가지 감정을 느낄가? 부끄러움도 고마움도 원망도 씁쓸함도... 그러고 보면 그는 나와 이웃이란 관계를 벗어나 이젠 친구정도로 된 것 같다. 그는 나의 비밀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한테 말해준 적이 거의 없다.

또다시 봄이 찾아왔다. 나는 고향이 그리웠다.

일단은 나도리시문화회관을 찾아갔다. 거기에서 열리는 동일본대지진1주년 합동제사에 참가했다. 행사가 끝나 일년 만에 유리아게 히요리야마를 다시 찾았다. 쓰나미가 남긴 손톱자국은 아직도 력력하였으나 시가지는 새롭게 복구되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도토리어린이도서실이 세워졌고 유리아게 사이카이시장은 한달 전에 오픈되였다. 모든 것이 다시 찾아온 봄마냥 생기가 띄고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나는 의외로 버림받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더없이 낯설기만 하였고 예전의 정취를 느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가 없는 고향은 나에게 아무런 삶의 의미도 부여하지 못했다. 나는 현실 속의 고향에도, 마음속의 고향도 돌아갈 수 없었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이 곳에서, 이 세상에서 소외된 듯했고 여기로 온 것을 후회하였다. 혼자만 남았다는 사실이 더 절실히, 뼈아프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나의 삶을 구성했던 부분들이 죄다 몸에서 빠져나간 껍데기만 남았다. 그렇게 그리웠던 고향에서 나는 길을 잃었고 뿌리를 잃었고 심지어 나자신도 잃어버렸다.

    도쿄로 돌아오는 안에서 눈앞의 길이 지평선을 따라 멀리멀리 뻗어 하늘과 맞닿은 것을 보았다. 집 문 앞에 얼룩이가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주인집을 떠나 길고양이신세가 된 얼룩이는 언제부턴가 이 아파트에 머물렀다. 나도 한동안 여기에서 살았다. 우린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얼룩아.

    야웅

이젠 떠날 시간이야.

나는 얼룩이한테 먹이를 듬뿍 주었다.

그리고 어느 화창한 날에는 빨래도 하였다.

 

 

12

그녀의 의식()은 끝났다.

나는 책을 덮었다. 아홉번째였다. 열한번째로 다시 그 책을 펼쳤을 때는 이미 매우(梅雨)계절이 걷힌 다음이였다. 나에게 페트병을 쑥 내밀던 여름이 지나가고 사크라예요!하고 소리치던 가을이 돌아왔다. 그해 가을,  벚꽃은 피지 않았다.

거의 반년 동안 비워두었던 사크라꼬 집에 이웃이 이사 왔다. 20대의 남자였는데 복싱선수였다. 대머리인 그의 팔에는 해골과 복싱글러브 문신이 새겨져있었다. 다카하시는 사크라꼬의 일도 그렇고 새로 온 이웃도 마음에 들지 않아 찜찜하다며 집터를 흉보더니 얼마후 이사를 가버렸다. 프로데뷔전을 끝낸 그 남자는 이틀째 세탁물을 꺼내지 않았다.

    (이겼나? 졌나? 혹시 상했나?)

나는 다시 그녀의 앞에 서있었다. 상황은 언제나 그랬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머리속에 되살아나면 마지막에 가선 항상 그 아파트가 떠올랐고 이어서 101호라고 표시된 문과 그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의 옆모습이 보였다. 몇번인가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들었다가 번마다 망설이며 다시 내리웠다. 또 한번 천천히 몸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녀에 대한 기억의 엔딩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 엔딩은 나의 눈앞을 무한반복이 되여 끊임없이 지나간다.

    똑똑똑

    문이 열렸다. 대머리남자가 나왔다. 다카하시가 말하던 타투가 눈에 띄였고 옆이마에는 밴드에이드가 붙어져있었다.

    안녕하세요? 사이예요. 103호에 살아요.

안녕하세요. 와타나베 유스케(渡边祐介)예요.

다름아니라 부탁이 있어서요.

? 뭔데요?

부근에 길고양들이 많이 살아요. 그중에 한쪽눈이 까만 얼룩이가 우리 아파트에 자주 와요. 뭐 큰 일은 아니구요, 시간날 때 저기 접시에 먹이를 좀 줄 수 없을가요? 제가 야간작업 하기에 저녁에 시간이 없어서요. 길고양이들이 참 불쌍해요. 그렇죠?

와타나베는 내가 가리키는 방향따라 세탁기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얼룩이가 웅크리고 앉아 가릉거리며 먹이를 먹고 있었다.

귀엽네요. 이름이 뭐얘요?

사크라예요.

그는 알았다며 흔쾌히 응낙하였다. 겉인상과 달리 꽤 괜찮은 이웃 같았다. 사크라꼬도 이런 느낌이였을가? 나와의 만남을 인생의 마지막 인간관계라고 하던 그녀의 말은 나에게 사고적 가치를 남겨주었다.

오래동안 나는 가끔 아무 영문도없이 그녀의 모습이 앞에 갑작스레 떠오를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자신한테 이런 질문을 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을가?

우리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가?

인간관계의 토대는 어디에 있는가?

 

그녀가 죽은후 우리 사이도 이로써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그녀는 또 기억이란 이름으로 현재의 나를 방문하였다.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 선명한 모습에 나는 시달리군 했다. 그러면서 과거에 노크하지 않았던 행동과 뿌리치려 했던 순간들, 그녀가 부탁하던 얼룩이도, 당황이란 글자도, 첫사랑도, 이 세상을 향해 노크하던 만화도... 모든 것들이 더 이상은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존재할 때 그것들은 점차 나의 생활과 삶의 일부를 구성하기 시작하였다. 그것들은 내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문이 되였고 세상은 그 틀에 끼워진 조그마한 그림과도 같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도 인간관계를 벗어날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그 속에 존재하며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간다.

승인과 존중은 엄연히 다르다.

인간관계의 토대는 자아가치에 대한 상호승인에 있지 않을가?

나아가서 나는 세상에 부재(不在)하는 그녀에 대한 기억의 존재를, 또 그녀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고향에 대한 현실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와 인생과 삶에 어떤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걸가?

나는 얼룩이 앞에 쪼크리고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사크라쨩, 맛 있어?

얼룩이는 대답 대신 부스러기가 묻은 나의 손가락을 가볍게 핥아주었다.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에 고이며 점차 올라와 목구멍을 막아버렸다. 나는 목이 메여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2017년 5월 봄 

2017년 <연변문학> 제7기 발표

 

 

소설평 

아픔으로 커가는 자의 쓸쓸함의 경우

-<노크>와 <그 여름의 매미>를 읽으면서     

 

김경훈

 

요즘은 읽은 소설 가운데서 매우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을 련이어 두편을 읽고 나니 새롭게 다가오는 삶의 양상들과 내면의 아픔들이 뭔가를 끄적거리지 않고는 견디게 만들었다. 바로 채국범의 중편소설 <노크>와 조은경의 단편소설 <그 여름의 매미>가 그러했다.

소설들은 모두 젊은이들의 속에서 가장 은밀하면서도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와 이어진 소외화 그에 따른 여러가지 고민들을 다루고 있어서 그동안 외면하고 무관심하기 일쑤였던 그들의 내밀한 아픔에 대해 좀더 폭넓은 리해를 가지도록 만들어 한번 정도는 곰곰히 가치를 따지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노크하기가 너무 힘든 공간

중편소설 <노크>는 일인칭의 시점으로 사크라꼬라고 하는 일본 녀자와의 일상적인 관계를 다루면서 이야기를 펼쳐간다. 도꾜에서도 유명한 신쥬꾸에 새로 든 집에서 이웃하고 있는 일본녀자와 중국에서 건너간 자질구레한 에피소드들이 작품 이곳저곳에서 무시로 튕겨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자질구레한 사건들은 사실 잡다한 데 그치지 않는다. 그 하나하나가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주제를 표현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먼저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좀도적을 잡다가 나중에 사크라꼬까지 잡게 사연을 보자. 일본말로 만비키라고 부르는 좀도적의 마스크를 벗기는 순간 상대가 사크라꼬임을 알고 깜짝 놀란다.

그제야 빼앗은 물건을 다시한번 확인해보니 200엔 밖에 안되는 고양이 먹이감이였다. 그녀는 나를 알아보고도 얼굴색 한번 바뀌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목석마냥 서있었다.

사실 주인공이 세방에 들어와서부터 사크라꼬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도록 부탁한 적이 있었다. 고양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쏟아왔던 그녀가 고양이 먹이감을 도덕질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200엔 밖에 안되는 그 먹이감을 훔친다는 것은 일종의 도벽에 가까운 행위였음을 주인공인 학생시절 컨닝을 하면서 느꼈던 짜릿함과 련관시킴으로써 해명하려고 한다.

하나의 사건은 처음으로 그녀의 집을 들어가보면서 그녀가 만화가라는 사실을 알게 부분이다. 그런데 그녀는 기상천외한 상상을 포인트로 하는 원피스(海, 인기만화)나 탄탄한 이야기줄거리를 기반으로 하는 나르토(火影忍者, 인기만화)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현실에 아주 가까운 리얼리즘적 화가라는 점에 주인공은 인기가 얼마나 있을지 의심스러워한다. 그런데 실지로 사크라꼬는 마음이 따뜻한 녀자이다. 도적질한 적도 있지만 슈퍼에서 미처 지갑을 챙기지 못한 주인공에게 선불해주기도 하고 결과에 대한 보상이 없이 유부남을 사랑한 그녀지만 주인공의 녀자친구 등 일상에 대한 관심도 보여준다. 마치 보기 힘든 가을 벚꽃처럼 말이다.

오히려 주인공인 그녀에 비해 메마르고 종잡을 없는 마음과 자세로 일관되여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떠돌이 고양이 얼룩이에게 종래로 먹이감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크라꼬의 여러번의 부탁이 있었음에도 주인공은 하나같이 등한시하며 밤중에 집앞에서 맞띄웠을 때는 놀란 김에 욕설을 내뱉고 고양이 먹이를 담는 접시를 발로 차버리기까지 한다. 이러한 행동에는 외국인으로서의 경계나 부적응의 심리가 작용하기도 하겠지만 사크라꼬와 같은 지극히 개성적인 일본인에 대한 몰리해가 그러한 소극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들지 않나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의 그러한 막히고 답답한 태도는 그로써 그치는 아니다. 제 나름 대로 노력하고 새롭게 세상을 보고저 하는 긍정적인 모습도 어느 정도 엿보인다. 사크라꼬한테서 그녀가 그린 만화를 갖고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자세가 바로 그러한 긍정적인 새 출발이라 하겠다.

집에 돌아와 샤와하고 초고를 한장한장 읽어보았다. 그녀의 만화소재는 그녀 자신이였다. 이야기는 소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되였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첫 등교하는 모습, 단짝친구 후지하라 리에(藤原里惠)와 함께 바다가에서 조개를 줏는 모습, 그림을 잘 그려 칭찬받는 모습 등 일상 속에서 평범하면서도 작은 행복으로 가득한 동년시절을 그렸다.

만화는 이어서 그녀의 사춘기시절의 방황과 짝사랑이야기, 대학입시를 앞둔 고민과 미래에 대한 동경, 불안, 희망을 때로는 사념에 사로잡힌 하얀색으로, 때로는 행복이 피는 핑크색으로, 때로는 그리움이 묻은 푸른색으로 그녀의 소녀시절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작가가 말하다싶이 별로 특별한 이야기 아닐지 모르지만 주인공이 들여다본 만화에서 그나마 만화가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면 그녀의 대학교 마지막 시절에 만화써클에서 만난 선배이자 첫사랑인 나카무라 (中村亮)와의 관계이다. 료는 그녀와 한고향이였는데 만화에 대한 느낌과 생각들을 나누면서 자연스레 좋아하게 되였다고 한다. 만화에는 다정하게 손잡고 캠퍼스를 걷는 모습, 여름방학에 고향의 바다가에서 단짝친구랑 셋이서 바비큐파티를 여는 모습, 떨리는 첫 키스를 하다가 그만 료의 혀를 물어놓아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 두 사람 사이는 별로 큰 모순 없이 순조로웠고 알콩달콩하였다.

만화에는 특별한 충격이 없이 일상의 사소하고 자잘한 이야기들로 가득하였고 더우기 화법이 예전에 한번 피뜩 봤던 대로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지루하고 따분하여 주인공의 사크라꼬에 대한 리해의 노력을 어느 정도 무의미하게 하는 듯했다.

주류(主流)가 아닌 그림풍격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신 그림은 아주 섬세하고 생동했다. 선 하나하나에도 많은 신경을 쓰며 모든 정력을 쏟아부은 듯했고 재현된 만화는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이야기를 책 속에 락인해둔 것처럼 보였다. 만화도 컴퓨터로 그리는 시대에 돼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할가?

주인공은 사크라꼬의 만화에 별다른 호기심을 품지 못하며 이듬해 봄이 되여 함께 우연히 만나 덮밥을 같이 먹으면서도 만화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그러다 그후 사크라꼬가 문득 동네에서 사라진다.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그로부터 또 한참 흘러 주인공은 녀자친구인 히토미와 함께 벚꽃구경을 하면서 겨우 일주일 밖에 피지 않는 벚꽃의 개화를 두고 짧은 만큼 아름다운 그 극치를 음미한다. 제한된 생명 속에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벚꽃의 미는 창조 속에 존재하는 동시에 훼멸 속에도 존재한다. 그래서 벚꽃은 짧지만 기억 속에 오래 남아 그 생명을 또 다른 방식으로 연장한다.

한시적인 생명력에 대한 이러한 표현은 사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하는데 그것은 바로 소설의 녀자주인공이라고 있는 사크라꼬의 외로운 죽음이다.

사크라꼬는 사실 어디로 사라졌거나 실종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방에서 쓸쓸히 목을 매고 자살하고 것이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어디선가 고약한 냄새가 풍겨왔다거나 고양이의 그릇에 오래동아 먼지가 쌓여있다거나 한 묘사들이 복선의 역할을 하는데 새로 이사 온 다카하시라는 일본인 녀대학생이 노크에 거의 본능적인 거부반응을 보이는 남주인공과 달리 사크라꼬의 출입문을 노크하면서 결국 경찰에 의해 사크라꼬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사클꼬는 일주일 밖에 피지 않는 벚꽃처럼 잠시 동네에 살았던 것이며 주인공의 마음을 두드리다가 말없이 가버린 것이다. 특별히 주인공과 련애와 같은 미묘한 관계를 이루려고 한 것도 아니지만 주인공의 무덤덤함과 알수 없는 경계심에 의해 그 마음의 문을 노크하다가 가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바꾸어보면 주인공은 사크라꼬의 그러한 노크에 일종의 거부감을 느꼈고 그녀의 출입문을 노크하려고 몇번이고 앞에 섰지만 두드리지 못한 것은 어딘가 주인공의 마음의 깊숙한 곳에 사크라꼬와 그녀를 둘러 싼 장소와 공간에 대해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녀가 세상에서 떠나가버린 , 주인공은 그녀의 만화를 마저 읽고나서 그 속의 러브스토리가 그녀의 인생과 첫사랑에 대한 기록이자 회억이며 한차례 의식(仪式)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해 가을에는 벚꽃이 피지 않았다는 것과 사크라꼬가 살던 집에 새로 온 사람에게 얼룩이 사크라라고 소개하는데 이러한 여러가지 상징적인 장면들은 주인공의 마음의 문이 서서히 열려진다는 점과 노크에 그토록 린색했던 마음의 장벽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음을 엿보이게 해준다.

소설의 마감에 사크라라고 개명한 얼룩이 쓰다듬으며 울컥해하는 장면은 단편영화의 결말처럼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처리되였는데 다만 사이에 감추어도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해버린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 하지 않을 없다.

인간관계의 토대는 자아가치에 대한 상호승인에 있지 않을가? 더 나아가서 나는 이 세상에 부재(不在)하는 그녀에 대한 기억의 존재를, 또 그녀는 마음 속에 존재하는 고향에 대한 현실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와 인생과 삶에 어떤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걸가?

 

 

2017년 <연변문학> 제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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