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약력 : 길림성 서란시 출생. 연변대학 조선어문계 졸업. 서란시 진수 민족교원부 근무. 서란시 조선족제1중학교 조선어문 교사. 성급 교학 논문 1등상 3차. 전국 조선어문 연구회 1등상 수상.길림성 우수교학 교사 .시, 수필 수십여 편 발표.
김성기 약력 : 길림성 서란시 출생. 연변대학 조선어문계 졸업. 서란시 진수 민족교원부 연구원. 서란시 조선족제1중학교 조선어문 교사. 성급 교학 논문 1등상 3차, 전국 조선어문 연구회 1등상 1차 수상. 길림성 우수교학 교사. 시, 수필 수십여 편 발표.

10월말, 내륙은 이미 짙은 황금빛과 빨간 단풍이 완연한 가을 풍경으로 탈바꿈하고 있으나 이곳 제주도 서귀포에는 아직도 싱싱한 녹음이 물러설 기미가 안 보이는 듯하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틈 사이에 빠꼼히 선을 보이는 하나 둘 마른 풀대와 변색하는 나뭇잎이 한들거리는 것이 눈에 띄기도 한다. 

서귀포 정방폭포 올레길은 새벽잠에서 깨여난 운동 애호가들의 가벼운 웃음소리와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들이 신선한 아침 공기 속으로 스며나간다. 어린애들도 아빠의 손에 매달려 퐁퐁 뛰며 무어라 끝없이 재잘거린다. 즐거운 모양이다. 

올레길 남쪽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의 가벼운 파도가 화산의 용암으로 만든 검은 돌 자갈을 핥으며 위로 치솟다 다시 여울을 남기며 물러선다.

까마귀 떼의 까욱까욱 울부짖는 소리가 머리 우에서 분잡하게 들려온다. 내가 살던 고장에서는 까마귀 소리를 불길하게 여겨 침을 뱉고 한마디 욕이라도 하군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까마귀가 행운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을 고쳐 다시 들으니 역시 반갑고 그 소리마저 정답게 들린다. 신기하다. 

올레길 양옆에 펼쳐진 노란색, 핑크색, 빨간색, 보라색 키다리 코스모스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소슬한 가을바람에 한들한들 춤을 춘다. 바람결에 나뭇잎 소리와 풀숲소리가 귀맛 좋게 속삭여댄다. 참으로 세상은 새벽 기운을 받으며 참신한 새 삶을 시작한다. 

나는 아름다운 자연세계에 매혹 되었는지 아니면 어머니를 태운 휠체어를 밀고 가는 참신한 기분에 매혹 되었는지 여간만 좋은 기분이 아니다.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의 아흔다섯 세월의 풍상을 겪은 하얀 파마머리가 새벽바람에 흩어지고 있다. 어머니도 청신한 아침 공기 속에서 대자연을 만끽하는 그 기분도 좋지만 아들과 함께 산책하는 그 기분이 더 최고인 듯하다. 그래서인가 어머니는 노래곡도 노래 가사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계속 흥얼거리신다. 어머니의 따뜻한 난류가 내 몸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아들이 있어 좋고 엄마가 있어 좋다. 이외 바랄것이 더 무엇이 있으랴!

어머니의 고향은 경상북도 어선 군이다. 스무 살인 1941년, 일제 식민통치에 시달리다 못해 만주벌에 가면 땅만 뚜져도 먹을 걱정은 없다는 소문을 듣고 중국  길림 서란으로 건너왔다.

긴긴 60성상을 지나다가 2000년 8월에 동포 일세로 뿌리를 찾아 한국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

지금은 제주도 서귀포에서 막내딸과 함께 여유로운 만년을 보내고 있다. 후레자식인 이 외동 아들은 중국에서 드문드문 한 번씩 어머니 뵈러 다닌다.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가 나는 좋다. 구십 고령인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산책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94세의 어머니의 부드럽고 따스한 손을 잡고 산책했는데 그해 음력설 무렵 화장실에서 일보고 나오다 미끄러져 넘어지신 것이 문턱에 부딪혀 갈비뼈 석대나 부러져 석 달이나 고난의 병원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가 병원에 찾아갔을 때 어머니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이젠 너와 바깥구경하기는 다 틀렸다며 어린애마냥 목 놓아 우셨다. 내가 “어머니 치료 잘 받고 빨리 퇴원 해야지요” 하였더니 어머니는 얼굴이 굳어지며 “어머니는 무슨 어머니여, 엄마지.” 

나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94세 노령 어머니의 눈에 이 늙은 아들이 아직도 엄마 치마 자락을 붙들고 따라다니는 어린 아들로 생각되는 것이 분명하셨다. 나는 머리를 연신 끄덕였다. 엄마!~ 나는 눈물을 삼키며 다시 불렀다!

기적이라 할까 운명이라 할까, 엄마의 상처는 호전되기 시작했고 조심스레 바깥출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마냥 좋았다. 엄마와 동행하면서 세상을 구경할 수 있게 되였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아침마다 엄마를 휠체어에 모시고 산책하는 것이 그때의 나의 변함없는 일과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집중되었다. 아침 인사 하시는 분들로 효자라고 극찬하시는 분들로 복 많이 받으시라는 분들로 인사는 여러 가지다. 참 고마운 분들이다. 그런 아침 인사들이 엄마에게는 보약인 것 같다. 엄마의 얼굴엔 환한 꽃이 만발 하신다.

하루는 아빠와 함께 걷기 운동을 하던 일곱 살 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제 아빠를 쳐다보며
“저 할머닌 좋겠다. 유모차도 타고”한다. 
“이 아빠도 늙으면 유모차에 태우고 다닐 거니?”
“그야 당연하지, 그런데 아빠는 늙으면 안 돼”
큰 용기를 내여 장담하던 애의 얼굴은 바짝 우려와 두려움에 긴장해 진다.
그 아빠도 웃고 나도 웃고 엄마도 웃었다.

휠체어를 타는 엄마의 기분이나 휠체어를 미는 나의 기분이나 똑 같은 행복감이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부자처럼 가득 차 있다. 바람결에 하느작거리는 엄마 목에 걸친 노란 스카프와 하얀 파마머리는 내 눈에 가을나무의 단풍잎처럼 아름답다. 그 노란 스카프는 작년에 내가 엄마에게 선물로 사 드린 것이다. 유달리 노란색을 좋아하시는 엄마는 산책할 때면 꼭 그 스카프를 목에 두르신다.

엄마가 일찍 남편을 잃고 젊은 날에 힘든 일 궂은 일 가리지 않고 나를 업고 기음을 메며 벼 가을을 하셨다는 고난의 이야기들은 내 가슴속에 깊이깊이 새겨져 있다. 그렇게 나를 소학교, 중학교, 대학교까지 공부를 시켜 사회의 떳떳한 아들로 키워주시지 않았는가! 이제 와서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엄마가 문득 길섶의 코스모스를 보시며 한마디 하신다.
“ 저 꺽다리 꽃은 바람 불어도 넘어지지 않고 서리 맞아도 꽃이 피어있네.”
“엄마, 옆에 새끼 코스모스가 함께 있잖아요. 그러니 든든해서 넘어지지 않아요”
내 말에 나를 한번 바라보시며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분명 엄마는 내 말뜻을 잘 이해를 하신 것이다.

깊은 가을은 아니나 가을은 가을인가 부다. 심심찮게 한 두잎 낙엽이 떨어진다. 노란 단풍 하나가 엄마 가슴에 떨어져 자리를 잡으려는 듯 가벼운 추풍에 흐느적거린다. 가슴을 잡고 빛을 내며 붙어 있더니 끝내는  휘청이며 떨어지고 만다. 단풍의 움직임에 눈길을 모으던 어머니가 문득 의미 있는 말 한마디를 하신다. 
“세월을 이긴 자는 없단다. 저 나무 잎을 보아라. ”
“세월을 이긴 자는 없어도 오래 견디는 자는 있거든요. 엄마처럼.”
“늙으면 죽어야 해, 자식 고생 시키지 말고 ”
“엄마는 왜 그런 말을 자꾸 해요? 난 엄마가 늙어도 좋은데.”
“자식을 옆에 두고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오복 중에 첫 복이란다.”
 
엄마는 아들자식하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고 아들 품에 안겨 죽을 때가 오복 중의 첫째가는 사복(死福)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긴긴 세월 파아란 청춘을 다 바치며 폭염과 폭우와 광풍을 헤치며 꿋꿋이 살아오신 엄마는 그 긴 수난의 여정을 넘기시고 이제는 저 힘없는 단풍같이 서서히 본체를 떠나시려 한다. 엄마가 하루라도 더 살아 계셔야 아들인 내가 한 점의 효성이라도 더 할 수 있고 그래야 가슴 아픈 후회를 덜 할 수 있잖은가!  올리미는 마음의 소리가 목구멍을 꽉 막히게 하였다.
 
가을은 아름답다. 꽃도 숲도 나무도 우짖는 까마귀 소리도 모두 정답고 아름답다. 그러나 푸르싱싱한 생명은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한 잎의 낙엽으로 떨어진다.

엄마가 가을 낙엽이 되어 저 세상으로 날아 가신지도 어언간 2년이 된다.

그 한잎 두잎 떨어지는 낙엽은 마음 한 구석에 아픈 상처를 남긴다. 노란 단풍잎을 보느라니 노란 스카프를 목에 걸친,  미풍에 흩어진 하얀 파마머리 엄마가 떠오른다. 아, 다 하지못한 엄마와의 이야기여!...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