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철(경제학 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교육과학부 자문관)
이남철(경제학 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교육과학부 자문관)

차윤(330~400)은 자가 무자(武子)로 양주 남평 사람으로 중국 동진 때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지런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하였으나, 가난하여 기름을 사지 못해 밤에는 제대로 공부할 수가 없었다. 전기가 없던 시절에는 밤에 등불을 켜고 공부를 하였다. 그는 밤늦도록 책을 읽고 싶었지만, 기름이 없어 등잔이 금방 꺼졌다. 그래서 여름밤이 되면 명주 주머니에 수십 마리의 반딧불을 잡아넣고 그 빛으로 공부를 했다. 여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형설지공(螢雪之功)이다.

차윤과 비슷한 시기의 사람인 손강은 마음이 맑고 깨끗했으며, 독서를 좋아했다. 그 또한 성품이 곧고 어려서부터 배움에 큰 뜻을 두었지만 집이 가난해 기름을 살 돈이 없었다. 그는 겨울밤이면 하얀 눈(雪)에 글을 비추어 책을 읽었다고 한다. 형설설안(螢窓雪案)은 이때 생긴 고사성어이다. 그는 뒤에 벼슬이 대사헌까지 올랐다. 한자를 즐겨 쓰는 사람들이 흔히 책상을 설안(雪案)이라 하는 것은 손강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두 고사성어는 모두 ‘진서’에 전해오고 있으며 어려운 처지에서도 뜻을 꺾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필자는 한국이 지원·설립한 대학평가를 위해 아프리카 서남단 세네갈을 9월말부터 10월 초까지 방문하였다. 이 기간 동안 주세네갈대한민국대사를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대사로부터 감명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세네갈의 젊은 학생들이 가난해 전기를 이용할 수 없어 남의 집 담벼락에 쭈그리고 앉아 전기 등불 아래에서 공부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세네갈은 아프리카 대륙 최서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감비아, 기니, 기니비소, 말리, 모리타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한반도 90퍼센트 면적의 국토와 약 1,722만 명(‘21년 전망치)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세네갈은 농업, 광업 등 1차 산업에 대한 높은 경제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아프리카 주요 땅콩 생산국이다. 땅콩은 ‘세네갈의 황금’으로 불릴 정도로 농업 수출의 2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력, 도로 등의 인프라 부족과 취약한 산업기반을 가진 2021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1,622달러인 후진국이다.

대서양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아프리카 최서단 세네갈 다카에서 대한민국대사의 말을 듣고 순간 필자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아버지와 서당에 대한 일이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 추억이지만 아버지가 지금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1910년 정도 일이니, 거의 110년 전 한국에서 일어난 필자 아버지 이야기이다. 아래 글은 아버지 제자들이 돌아가신 후 ‘공적비’에 기술한 내용이다. “어느덧 선생님께서 저희들의 곁을 떠나신지 22여년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저희들의 삶을 걱정하고 계실 선생님 생전의 모습을 그리며 이제나마 이곳에 글을 새겨 저희들 背恩의 세월을 용서받고자 하오니 인자하시고 그토록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주시기를 간절히 전하옵니다. 어느덧 저희들이 나이를 먹어 인생 황혼기에 접어드는 문턱에 서게 되니 선생님의 그 모습이 눈물겹도록 그리워집니다. 저희들 어린 시절, 청장년 시절, 그 시절 얼마나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까. 배우고 싶어도 가난 때문에 배우지도 못하고 可憐하게 지내던 저희들에게 배움의 길잡이가 되어주신 선생님!

“농촌계몽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요, 교육의 발전이 곧 국가발전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항상 疲弊한 농촌 생활을 걱정하시며 낮이면 面民의 公僕으로, 밤이면 선생님 사랑방을, 동리모정을 야학당으로 삼으시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저희들 곁을 오가시며 배움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한글을 깨우쳐 주시고 천자문, 사자소학, 명심보감 등을 읽히시며 사물의 이치와 저희들이 행하여야할 윤리, 도덕, 특히 효를 강조하셨습니다. 또 그날그날의 국내외 정세, 사건 사고 등 사회 현실을 전해주시며 항상 사회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한편 저희들이 잠든 깊은 밤에는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 마을을 수시로 순시 하시곤 하셨습니다. 생전의 그 모습 지금도 저희들 기억에 생생합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직접 지으신 노랫말에 아리랑 곡을 붙이시어 공부 시작 전에 저희들과 함께 항상 부르시던 노랫말이 생각나 적어봅니다.

「삼천리강토는 무슨 일로 남북 양단이 되었단 말인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말로만 애국 핑계 말고 어서 나와서 글 배우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이토록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절실한 배움의 뜻을 전하시는데 온갖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어찌 선생님의 남다른 공적이 이것뿐이겠습니까. 이루다 말씀 올리지 못하는 아쉬운 저희들의 마음 헤아려 주시기 바라며 생전의 인자하신 모습 그대로 저희들을 지켜보시면서 영원토록 편안히 잠드소서! (2005년 4월 5일).

필자 마을에는 전기가 1972년, 중학교 1학년 입학했을 때 들어왔다. 아버지는 전기가 없던 상황에서 석유를 이용한 호롱불을 켜고 한학을 공부하였다. 아버지는 서당 훈장의 허락을 받지 않고 밤에 서당에 가서 도둑 공부를 하였다. 서당 내부로 들어갈 수 없으니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방안에서 공부하는 소리를 듣고 아버지는 공부하였다. 배움에 대한 열망은 컸지만 돈이 없어 서당에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두려움이 컸을까! 이 모습을 상상하면 필자는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당시 서당에 가서 공부하려면 일정한 월사금(月謝金)을 다달이 냈다. 지금처럼 돈이 아닌 보리나 쌀 등 곡식으로 훈장께 납부하였다.

공복에 시원한 물 한잔이 건강에 좋다고 하면서 아버지는 어릴 적 필자에게 항상 우물에서 퍼온 냉수를 마시도록 하셨다. 언제나 방안 모퉁이에는 물통이 있었다. 최근 의사들이 공복에 찬물을 먹는 것에 대해서 건강에 좋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과 나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필자는 아침마다 찬물을 한 컵 씩 어릴 적부터 습관적으로 마시고 있다. 물과 관련하여 기억나는 일화로 아버지는 건강과 관계없이 저녁 식사 후 많은 물을 마셨다. 소변을 보기 위해 새벽에 눈을 뜨면 일어나서 공부를 하였다. 1900년 태생이니 일제의 탄압과 얼마나 가난에 시달리면서 살았던 시대인가! 그렇지만 아버지가 공부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다.

필자는 최근 페루, 우간다, 알제리, 팔레스타인, 우즈베키스탄, 네팔, 아제르바이잔 등 개발도상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국경제 발전 경험’에 대한 강의와 토론을 하였다. 다양한 대륙,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이들에게 한 국가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 과학, 기술 등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적자본, 즉 교육, 훈련, 건강 등 요소라고 수없이 강조하였다. 거의 모든 참여 공무원들은 필자의 주장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래전 한국에서 필자의 경험이 되살아나 걱정도 하였다. 1996년 필자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오자마자 대통령직속 교육개혁심의회 주관으로 강의 할 기회가 있었다. 주요 수강자는 전국의 중고등학교 교장선생들이었다. 강의 주제는 ‘인적자본과 경제발전’이었다. 강의 중간 휴식 시간에 여기저기서 사람을 자본이라고 하는 경제학자가 있으니 큰일이라고 웅성웅성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인적자본’ 이야기는 1960년 초 미국 경제학자가 사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생성된 선진국에서는 통용되는 개념이었다.

아마 지금 대한민국에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곳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책을 읽고 싶고, 공부하고 싶으면 언제, 어디서라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물질적으로 선진국이 된 것이다. 요즘 언론에 좋은 대학에는 ‘금수저’들이 많다고 난리이다. 그러나 10여 년 전 일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이 ‘사회적 배경의 극복(Overcoming Social Background)’ 보고서를 통해 회원국 가운데 집안형편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가난할수록 질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어 성적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한국 학생은 열악한 환경을 다른 나라 학생에 비해 더 잘 이겨냈다는 뜻이다.

세네갈은 아프리카에서 작은 편에 속하는 국가로 석유나 천연가스, 다이아몬드나 우라늄 같은 천연자원이 전무한 형편이지만 서부 아프리카, 더 나아가 전 아프리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지도자 국가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대선 전후 소요사태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네갈은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안정적으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모범 국으로 평가되고 있다.

1948년 정부수립 후 대한민국은 매일 밤 전력난을 겪고, 국민 반 이상이 끼니를 걱정하는 지구상의 최빈국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50달러로 미국의 식량 원조를 받는 원조 수원국가였다. 2021년 현재 세계 194개국 중 가장 국민소득이 낮은 소말리아가 104달러이니 어느 정도 가난한 나라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신생 대한민국에게 1950년 6.25전쟁은 가장 큰 시련이었다. 잿더미에서 산업화를 이룩한 나라 대한민국이다. 이는 성공적인 인적자원개발정책이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어릴 때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호롱으로 불을 밝혔다. 초는 행사가 있을 때나 제사를 지낼 때 썼다. 50년 전 이런 대한민국이 2021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명목 국내 총생산(GDP) 규모에서 10위를 차지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돈이 없어 전등을 켤 수 없는 세네갈 젊은이가 남의 집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형설지공(螢雪之功)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까운 미래에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세네갈 국민들은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잘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열심히 공부하는 세네갈 젊은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고 큰 결실을 이루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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