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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일 약력 : 2016년 ,  수필 등단. 2017년  특별상.2021년 에서 소설 등단.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한중무역.업에 종사
남태일 약력 : 2016년 , 수필 등단. 2017년 특별상.2021년 에서 소설 등단.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한중무역.업에 종사

10년 만에 중국에 와보니 완전히 변해 버린 거리 풍경이 다른 나라처럼 낯설어 보였다. 수림같이 들어선 아파트와 얼굴에 웃음이 있는 행인들의 모습도 생소하게 비쳤다. 중국이 변했다. 정말 변했다. 한국에서 중국 친구들이 지금 중국도 많이 변했다고 했을 때 콧방귀 끼던, 우물안에 개구리 같은 나의 모습이 유치했다. 
한국 가기 전에 길림 이모네 집에 꼭 다녀와야 했다. 원래 내가 살던 곳은 조선족 소학교가 없었다. 어릴 때, 부모님들이 이모네 집에 가서 조선족 소학교를 다니라고 했다. 사실 길림은 나의 두 번째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부러 옛날에 자주 다니던 장춘에서 길림 가는 버스를 탔다. 옛날 비포장도로였던 큰길은 간곳없고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한 고속도로였다. 어릴 때 방학하여 집에 갈 때면, 버스 안에서 우리 아버지 삿갓 같은 나지막한 야산과 길옆에 열병처럼 서 있는 가로수들, 길가에 먼지를 잔뜩 덮어쓴 노란 민들레꽃을 바라보면서도 집에 간다는 하나의 이유로 얼마나 기뻐했던가. 
나는 홀연 나지막한 야산에 고목 한 그루가 긴 팔을 내밀고 서 있는 거를 보고 머릿속에 먹구름이 스치고, 온몸이 섬뜩해지며 소름이 쫙 끼치었다. 저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계곡에서 나의 친구가 ‘강간 살인죄’로 총살당했다. 
그때 친구가 총살당한 거를 직접 목격한 것이 후회되었고, 그 당시 느꼈던 공포증은 무의식 속에 트라우마로 남아, 죽은 사람 시신을 보면 가슴이 떨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감기같이 며칠 앓기까지 했다.
한국어선에서 로무勞務로 갔다가 2년 만기 되어 집에 있을 때였다. 가을 벼 탈곡할 무렵 이모부가 오토바이 사고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방조하러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때 나의 친구인 중서가 한동네에 사는 제일 이쁜 미희를 강간 살인하여 총살당한다고 했다. 그때, 지방신문에도 보도되었다. 살인 범죄자를 총살하는 장면을 현장에 가서 직접 목격하며 법률 교육을 받으라고 선전까지 했다.
중서 어머니는 이미 정신이 잘못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예쁘고 착한 처녀를 죽인 중서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지만, 옛날 어릴 때 같이 놀았던 정을 봐서 마지막으로 시신이나 처리 해주자고 친구들과 약속했다. 우리는 시체를 넣을 비닐봉지, 담요 따위를 준비하여 경운기를 몰고 총살 현장에 갔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산 중턱에는 이미 많은 구경꾼이 서 있고, 완전 무장한 군대들이 총을 들고 구경꾼들 앞에 일정한 간격으로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야산 골짜기의 축구장 절반만 한 공터에는 마른 잡초들이 쓰러져 있고, 아침에 내린 진눈깨비가 마른풀 위에 희끗희끗 덮여 있었다. 남북 방향 일자형으로 항아리만 한 구덩이 일곱 개를 파놓았다. 구덩이에서 오십 미터 떨어진 곳에 큰 참나무 세 그루가 앙상한 가지를 펼쳐있고, 마른 잎 몇 개는 아직도 나뭇가지에 매달려 찬바람에 가냘프게 떨고 있었다. 
잠시 후, 트럭 세 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앞차와 세 번째 차에는 경찰들이 가득 탔다. 가운데 트럭에는 죄수 일곱 명이 두 손에 수갑을 앞으로 채운 채 두 눈을 검은 천으로 가렸다. 앞에는 큰 간판을 목에 걸었는데 살인범 ‘XXX라고 이름을 쓰고, 살인범이라 쓴 글 위에 붉은색으로 큰 X 자형이 그려졌다. 그들은 모두 타인의 귀중한 생명을 잔인하게 앗아 간 악질 살인 범죄자들이었다.
12시쯤 될 무렵 죄인들의 죄목을 한 사람씩 공포했다. 구경꾼들은 시루에 찬 콩나물같이 빽빽했다. 거리가 멀고 모두 죄수복을 입혀서 죄수들의 얼굴을 똑똑히 확인할 수 없었다. 경찰은 죄인들을 하나씩 끌어다가 새로 파놓은 구덩이 앞에 꿇어 앉혔다. 그중에 젊은 여자도 있는데 자기 남편을 농약을 먹여 죽인 살인 범이었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한 경찰 열네 명이 흰 장갑을 낀 손으로 권총을 들고 죄수들의 뒤통수를 겨누고 5m 밖에서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열두 시 정각이 되자 “탕, 탕, 탕!” 소리와 함께 죄수들의 머리에서 붉은 피가 부채모양으로 터져 나와 삽시간에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죄인들은 하나씩 앞으로 고꾸라져 이미 파놓은 구덩이에 머리를 처박았다. 검붉은 피와 하얀 뇌수가 구덩이 안에 점차 차올랐다. 그러나 녀죄수와 중서는 비록 총알이 머리를 관통했어도 꿋꿋하게 꿇어앉아 있었다. 
경찰이 쫓아가서 발로 걷어차자 힘없이 머리를 구덩이에 처박았다. 깨진 항아리 같은 머리통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죄인들이 모두 쓰러지자 하얀 위생복을 입은 경찰 두 명이 죽음을 확인하고 수갑을 푼 다음 사진을 찍었다. 
총소리가 멎고 피비린내가 진동하자 난데없이 까마귀 때가 새카맣게 날아오르더니 사형장 옆에 서 있는 참나무 가지에 앉아 굶주린 눈길로 피가 낭자한 사체들에 곧 덮칠 기세였다. 그때 총살당한 가족들이 피가 낭자한 네 사람 시신을 비닐에 싸서 경운기와 마차에 싣고 떠났다. 
우리는 이철이를 따라 시신 옆으로 다가갔다. 뒤이어 군대들도 철수하였으며 경찰 몇 명만 남았다. 청년 시체와 여인의 시체도 아직 쓰러진 그대로였다. 중서의 시체는 아예 머리통 절반이 날아가고 없었다. 금방 터져 나온 피에서 더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때까지도 몸 전체가 꿈틀거리고, 보이는 등허리 흰 살결은 바르르 떨면서 검푸른 색으로 변해 갔다. 
이때 하얀 위생복을 입은 경찰이 무선 전화를 받고, 옆에 있던 경찰에게 뭐라고 말했다. 경찰이 총알에 얼굴이 다 날아가고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중서와 다른 청년의 시체를 이미 준비한 비닐봉지에 넣은 뒤, 모 병원 구급차에 싣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듣는 말에 환자들에게 장기 이식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흩어지자 느티나무 가지에 앉았던 까마귀 떼들이 까맣게 땅에 내려앉아 서로 싸우며 구덩이에 고인 피를 빨아 먹었다. 조금 뒤 구덩이 속에는 하얀 더운 김이 가느다랗게 피어올랐다. 시신을 모두 싣고 가자, 해는 검은 구름 속에 숨고 하늘에서는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지는 곧 흰색으로 변해 버리고 구덩이 안에는 아주 희미한 핏자국이 흰 눈에 빨갛게 엉켜 들었다. 
달리는 차에 앉은 우리 셋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무거운 침묵에 빠져 있었다. 날씨는 점점 저물어가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의 머릿속에는 눈이 희끗희끗한 잡초 위에 쓰러진 얼굴도 없는 붉은 피가 낭자한 중서의 시체가 자꾸 떠올랐다.
“자쓱 죽어도 싸지, 착하고, 이뿐 미희를 어떻게 잔인하게 죽인 다 말이야. 총살당해도 싸, 싸단말이야.”
혼자 중얼거리는 사이에 머릿속에서 한 이쁜 아가씨의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 아깝다, 아까워, 우리 다 미희를 많이 좋아했는데…….”

이때였다. 나의 옆자리에 한 남자가 앉았다. 얼핏 보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생각이 났다. 나의 입에서 나도 모르게 놀라움과 기쁨에 찬 탄성이 흘러나왔다. 벌떡 일어서면서 오른손을 내밀고 고성으로 말했다.
“야, 너 이철이 아니야.?”
그도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얼굴 표정이 밝아지며 손을 텁석 잡았다.
“아니, 너 수일이 아니야, 한국에서 언제 왔는거야.”
이모네 동네에 사는 어릴 때 딱 친구이자 동창인 이철이었다. 그의 얼굴이 많이 변했다. 눈빛은 온화고 환한 얼굴에 윤기가 돌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은 누구나 같은 시간을 부여받지만 사는 모습은 왜 이렇게 다를까? 나는 그의 관옥같이 흰 얼굴을 바라보니 어쩐지 자존심이 점점 엷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중학교 교사로 있고 학교에서 교도 주임으로 있다고 했다. 
“이번에 와이프하고 같이 중국에 온거야? 엉?”
“아~ 아니, 우리 벌써 이혼했어.”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대답하고 이내 말을 돌리었다.
“너, 지금 어디 갔다 오는 거야? 혹시 회의하러 갔다 오는 거야? 엉.”
“아니야, 너도 알겠구나, 송림에 사는 내 사촌 동생, 도박쟁이 영길이 말이야. 억울하게 살인죄로 사형당할 뻔했제. 그런데 경찰들이 4개월 만에 기적같이 진짜 용의자를 체포하게 되자, 구치소에서 풀려 나왔어. 그래서 연로하신 큰아버지도 가보는 김, 송림에 다녀오는길이야”
“’타짜‘ 영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래, 무슨 일로 사형당할 뻔한 거야? 어서 말해봐. 엉.”
나는 버스 창문 밖으로 잠깐 눈을 도리며 말했다. 전망이 시원하게 전개된 길림 평원에서 농민들이 논갈이가 한창이었다. 이철은 가방에서 볶은 해바라기를 꺼내 먹으라고 했다. 그는 타짜‘ 영길의 얘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이철의 사촌 동생 영길은 마작이나 포커를 10번 놀면 8번이나 돈을 딴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타짜’라고 했고, 마을에서 누구에게나 돈을 빌려 돌라면 두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몇 년 전, 영길은 큰 도박판에서 인민폐 10만원이나 따서 도박장에서 나올 무렵, 현지 파출소 서소장이 큰 도박판이 벌어졌다는 정보를 받고 경찰을 데리고 와서 영길에게 족쇄를 채웠다. 영길이 땄던 돈을 모두 회수하고 구치소에 감금시켰다. 구치소에서 풀려나온 영길은 앙심을 품고 서소장 아버지 집에 불을 질렀다. 영길은 방화범죄로 2년 도형을 받았다. 그 뒤로 영길과 서소장은 앙숙이 되었다. 감옥에서 나오자 ‘배운 것이 도적이라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도박꾼들과 휩쓸리면서 또 옛날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동네 앞에 운동기구를 설치한 공원 모양의 나지막한 야산이 있고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그곳에서 운동을 많이 하였다. 오른쪽으로 더 내려가면 절벽이 있고 절벽 밑에 후미진 곳에 석굴이 있었다. 석굴에는 뱀이 많아 평시에 사람들이 가기를 꺼렸다.
작년 가을, 영길과 외지에서 온 큰 도박꾼과 단둘이서 동굴에서 도박하게 되었다. 결국, 영길은 자기도 딱히 얼마인지 알 수 없는 큰돈을 몽땅 잃게 되었다. 
혼자서 집에 돌아와 ‘얼궈토오’ 한 병을 마시고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데, 경찰 4명이 집에 쳐들어와서 잠을 자는 영길을 살인 용의자로 구치소에 끌고 갔다. 같이 도박했던 사람이 칼에 찔려 죽고, 살인범은 돈을 가지고 도망쳤다. 피살자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러 번 통화 했던 사람은 바로 영길이었다. 

이번 살인 사건에서 영길은 자기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어떤 증거도 댈 수가 없었다. 그때 서소장이 공원에 진입하는 입구에 설치한 CCTV에서 수상한 젊은 사람을 발견했다. 시간을 따져봐서 그 젊은 사람이 살인자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영상 녹화한 시간이 아주 짧고 영상이 선명하지 않아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였다.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 이 사람이 매우 의심스럽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 만약 서소장이 영길에게 앙심을 품고, 동영상을 시 공안국에 제출하지 않았으면 영길이는 자기가 살인 범죄자가 아니라는 거를 어찌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둘은 어느새 해바라기 한 봉지를 다 까버렸다. 이철은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정리하여 가방에 넣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때부터, 응, 시 공안국에서 경험이 많은 경찰들이 서소장이 제공한 CCTV에 찍힌 동영상을 근거하여 용의자 뒤를 밟기 시작했다 하더라구. 경찰은 3개 성(省)을 걸쳐 현지의 경찰 300백 명을 동원하여 4개월 추적한 끝에 결국 절강성 항주시 이우시에서 체포하게 되었데, 
4개월 구치소에 갇혀 있던 영길은 서소장과 자기는 앙숙이니 무기도형 아니면 사형당할 거로 생각했데, 응, 그런데 생각 밖으로 서소장 덕분에 며칠 전에 무죄로 풀려 나오게 되었제. 영길이는 풀려 나오자 서소장 찾아가서 감사하다며 눈물까지 흘렸다더구나. ” 

이철은 두툼한 안경을 벗어 입김을 불어 닦고 나서 말을 계속하였다.
“옛날에 서소장이 ‘검은 서소장’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지금 서소장은 시(市) 모범 경찰이고 형사나 민원사건을 처리할 때도 공정하게 처리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칭찬하더라. 중국이 개혁 개방 이후, 물질도 풍부해지고 삶의 질이 높아진 동시에 법치 의식도 많이 개선되었어. 이제는 우리 중국도 세상 사람 앞에서 법치의 나라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

버스 정거장에서 내렸을 때는 늦은 오후였다. 우리는 갈림길에서 내일 다시 만나자 약속했다. 이철은 나의 손을 잡고 덧붙여 말했다.
“수일아, 오늘은 이모네 집에 갔다가 내일은 우리 집에 꼭 놀러 와, 응! 미희 여동생이 키우는 토종닭을 사서 푹 삶아 술 한잔하며 얘기하자. 그리고 내가 쓴 실화 소설 읽어보고 많이 수정해줘, 옛날에 너 학교에서 작문 제일 잘 썼잖나. 흐흐흐.”     

 

2

이튿날, 이철이 집에 가기 전에 슈퍼마켓에 물건 사러 들어갔다. 물건을 사 들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렸다. 머리가 허옇고 색동저고리에 고급치마를 입은 할멈이 지팡이를 짚고 옆으로 다가왔다. 할멈의 눈은 변질한 물고기 눈처럼 퀭한데다 툭 불거진 광대뼈는 비바람에 문드러진 바위처럼 유난히 툭 튀어나왔다. 주름살투성인 몹시 창백한 얼굴은 유령 같아, 보기만 해도 무서웠다. 그녀는 무심코 길가는 경찰의 옷깃을 꼭 잡고 악을 쓰며 소리쳤다.
“얏, 이놈들아! 우리 아들을 와 잡아갔노? 빨리 안 데려오면 너도 내 손에 죽을기다.” 
그 할멈은 예상 밖으로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한국말을 했다. 길 가던 경찰은 자기 옷깃을 꼭 움켜쥔 할멈의 손을 뿌리치며 마치 전염병 환자를 피하듯 도망쳤다. 멀어지는 경찰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할멈의 두 눈은 마치 먼지 가득 낀 유리 창문같이 혼탁하고 막연했다.
조금 후 이철이 마중을 나왔다. 그는 색동저고리 입은 할멈을 가리키며 나에게 물었다.
“수일아, 저 미친 할멈 누구인지 알아?”
“알아서 뭘해, 재수 없다. 빨리 가자.”
나는 발걸음을 빨리 옮기며 말했다. 
“수일아, 저 늙은이는 김동형 향장의 마누라, 철우 엄마여, 잉, 많이 변해서 알아볼 수 없을 거야, 흐흐흐”
“엉? 김 동형 향장 마누라? 철우 엄마?”
나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눈이 휘 동그라지고 입이 딱 벌어졌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옳아, 여기서 얘기하지 말고 우리 집에 가서 내가 쓴 소설을 보면 모든 거를 알 수 있을 거야.” 

태평향은 중국에서도 유명한 화강석이 나는 광산지역이고 매장량이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개혁개방 뒤 나라에서 거금을 투자하여 화강석을 채취하여 전국각지로 보내고 외국으로도 수출했다. 옛적엔 농사꾼들만 살던 향정부 소재지였지만, 이제는 성(省)에서도 이름이 있는 건축자재를 판매하는 태평상성(太平商城)이 되었다. 
이철 동네는 태평향과 3리 떨어진 순 조선족만 사는 동네였다. 마을 한가운데 조롱박 모양의 호수가 가로질러 있었다. 가끔 미풍이 불어오면 호수 표면의 하얀 물결은 햇빛을 받아 고기비늘처럼 반짝이었다. 바라보면 마음을 편하게 하는 아름다운 호수였다. 
그때 호숫가 풀숲에서 이름 모를 검은 새 두 마리가 호숫물을 차고 날아올라 검푸른 산을 넘어 아득한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두 마리 새가 하늘 아래로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는데, 괜히 가슴이 뛰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이철이 새로 지은 집은 호수 앞, 한옥을 모방하여 지은 벽돌집이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의 머릿속에는 옛날에 돈과 권세 있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던, 거만하기 짝이 없는 김 향장 마누라가 어찌 저 지경으로 되었는지 호기심이 발작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참다못해 보채듯 성철에게 물었다. 
“아까, 길에서 만났던 철우 엄마가 어찌 저렇게 처참하게 되었는지? 얘기해봐, 알다시피 나는 궁금한 일이 있으면 못 참잖나, 흐흐흐”
이철은 뒷창문을 활짝 열었다. 이철 집과 호수는 50m 남짓이 되었다. 창문으로 바라볼 수 있는 호수는 매우 잔잔하고 이따금 봄바람에 하얀 파도가 돌로 쌓은 언덕을 살짝살짝 때렸다. 
이철은 서랍에서 두툼한 A4 원고지를 나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원고지에 쓴 글은 실화문학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실화문학을 쓰는 데 1년이 걸리고 내가 직접 방문한 사람만 해도 20명이나 되는 거 같아. 이 실화문학은 허구가 거의 없고 모두 사실이야.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문학의 옷을 입혀 줘야 사람들을 감동을 줄 수 있제. 너 옛날에 학교에서 작문 쓰기에 늘 일 등을 했잖나. 한번 읽어보고 고쳐 주면 고맙겠다. 응.”
나는 소설을 읽기 시작하였다. 원고지를 한 장씩 넘기는 순간 아릿한 추억이 다시 살아나고, 등장한 사람들의 슬픔과 괴로움에 찬 목소리가 들려 오는 듯했다. 

 

3

총살당한 조선족 청년 이름은 황중서고 피살당한 아가씨 이름은 강미희였다. 둘은 이웃이고 동기동창이었다. 중서와 미희는 동갑인데 중서가 미희보다 생일이 십 개월 늦었다. 둘은 중학교도 졸업 못 하고 일찍 퇴학하여 집에서 농사를 지었다. 
중서 아버지는 젊을 때, 패기가 강한 청년이었고, 문화혁명 시기에는 잘 나가는 반란파 두목이었다. 모든 홍위병 극좌파들이 그러했듯 중서 아버지도 죄 없는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육체와 정신적으로 핍박하여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 
문화혁명이 끝난 뒤 중서 아버지는 감옥살이했다. 출옥 후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술 중독자로 되어 결국 간경화로 죽었다. 늦둥이 중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자 어머니 슬하에서 농사를 지었다. 
미희 가정도 순탄한 가정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도 중풍으로 화장실에서 쓰러져 고생하다 죽고 말았다. 군대에서 제대한 오빠는 원래 향 기업에서 인기가 많은 자동차 운전기사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이듬해에 채석장에서 돌을 잔뜩 싫고 내리막을 내려오다 자동차가 전복하면서 왼쪽 다리가 절단되었다. 이때부터 미희는 오빠와 여동생까지 돌봐야 하는 한 가정의 가장 일을 떠맡게 되었다.
유년 시절에는 호리호리하고 가냘픈 미희가 낭낭 18세가 되자 활짝 핀 한 떨기 수선화로 피었다. 날씬한 몸매에다 수려한 얼굴은 총각들의 뜨거운 눈길을 받았다. 미희는 가방끈이 짧다는 흉 뿐이지 동네 사람들도 일등 며느릿감이라고 손꼽았다. 중서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미희를 좋아했고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미희는 비록 동갑이지만 생일이 열 달 아래인 중서를 남동생같이 끔찍이 아꼈다.
중국이 개혁개방 후 경제가 고속으로 발전할 시기, 미희와 중서도 이십 대의 처녀, 총각이 되었다. 원래 호수 뒷동네 살던 사람들이 생활형편이 좋아지자 하나둘 호수 앞 동네로 새 벽돌집을 짓고 옮겨갔다. 지금은 모두 이사 가고 호수 뒷동네는 미희와 중서의 거무칙칙한 초가집만 호숫물에 외롭게 비추고 있었다. 

어느 날 밤 호수 앞 동네에서 촌민회의가 열렸다. 늦은 밤까지 회의를 마치고 미희와 중서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보라색 달빛이 옅은 구름을 뚫고 오솔길 양쪽 어두운 옥수수밭을 희미하게 비췄다. 축축하고 시원한 밤 공기가 불어오고 미희와 중서는 이슬 내린 잔디를 밟으며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앞에서 길이가 한발 되고 팔뚝만큼 굵은 갈색 뱀이 길을 가로질러 천천히 기어갔다. 원래 이곳에는 돌산이 많다 보니 뱀들이 많았다. 기겁한 미희는 돌아서면서 어아앙! 중서를 꼭 껴안고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중서는 미희를 본능적으로 꼭 껴안았다. 녀인의 급격하고 뜨거운 숨결이 얼굴에 닿았다. 
두 개의 작은 공 같은 미희 앞가슴이 그의 가슴에 부드럽고 따뜻하게 와 닿았다. 중서는 마치 현기증이 날 때처럼 머리가 아찔해지고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곧 터질 거 같았다. 뱀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그들 쪽으로 기어왔다. 중서는 아직도 자기를 안고 있는 미희를 살짝 한쪽으로 밀어놓고 재빠르게 뱀의 꼬리를 덥석 쥐고 획 돌리며 멀리 팽개쳤다. 그리고 미희 손을 잡고 그곳에서 달아났다.
그날 밤 중서는 잠자리에 누워 미희가 자기 품에 안기던 장면을 동영상처럼 반복적으로 되돌리며 음미했다. 그는 처음으로 뭔가 녀체의 향기가 풍기는, 아련하고 신비한 이성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했다. 미희가 일부러 자기를 꼭 껴안은 같기도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그때 일을 회상하면 누를 수 없는 흥분에 휩싸여 잠을 이룰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뱀 사건이 발생한 뒤 중서는 쭉 빠진 미희 몸매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었고, 그녀의 집에 놀러 가서 물건을 건네주다 손가락이라도 살짝 스쳐도 가슴이 뭉클하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어쩌다 미희가 중서를 쳐다보고 한 번만 웃어주면 그 무슨 기쁜 응낙을 받을 때처럼 머릿속으로 미래의 오색찬란한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러나 미희는 밥 짓고 빨래하고 채소밭 가꾸는 일상생활에만 몰두할 뿐 그날 발생한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않는 듯했다. 중서는 녀자 마음은 알 수가 없고, 처녀 마음은 더욱 추측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구십 년대, 중국 농촌에서도 대부분 젊은이가 한국이나, 큰 도시로 돈 벌러 나갈 때였다. 시대의 흐름에 합류할 수 없는 미희는 몹시 안타까워했다. 복실이와 명희는 한국으로 시집가고, 자기보다 조건이 못한 친구나 동창생들도 큰 도시로 돈 벌로 나갔다. 그들은 한국 기업이나 식당에서 일자리를 구해 농촌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월급을 받았다. 친구들이 한 번씩 집에 올 때 자기가 번 돈으로 질 좋은 한국 제품과 예쁜 옷을 잔뜩 사 들고 와서 자랑할 때면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가끔 창문 밖에 창공을 가르며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새들을 바라보며, 자기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말뚝에 매인 암소처럼, 가정에 꼭 묶여 오도가도 못 하는 처지가 되었는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기도 하고 죽은 부모도 원망도 해보았다. 고민 끝에 먼저 오빠의 자립을 돕기 위해 난생처음 향장의 처제(철우 이모) 집을 찾아가서 이자 돈을 빌렸다. 
태평향에 대규모로 석재와 모래를 채굴하자 외지의 민공들이 구름같이 몰려들고 기업, 상점, 식당이 늘어났다. 태평향이 갑자기 흥성해지자 향장 김동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배 속을 채웠다. 얼마 가지 않아 길림시와 장춘시에 아파트를 샀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향장 처제는 공공연하게 농민들에게 30% 이자로 사채를 빌려주기까지 했다. 
미희는 김향장 처제에게 이자돈을 빌린 뒤에 오빠를 시켜 텔레비전 수리하는 기술을 배우게 하고 동시에 수리하는 장비와 공구를 샀다. 오빠가 원래부터 손재주가 좋으니 조그마한 가게를 꾸려 자립시키는 방법이 제일 좋은 아이디어라고 여겼다. 그래야만 자기도 앞으로 차차 집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네에서 한국에 금방 다녀온 박씨 아줌마가 미희를 한국 총각에게 소개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국 총각은 박씨 아줌마 큰집 아들이고 서울에서 큰 식당을 운영하는데 총각이 곧 맞선보러 온다고 했다. 소문을 들은 중서 어머니가 저녁상을 차려 놓고 아들 기색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중서야, 미희가 한국으로 시집간다는 소문 들었느냐?”
“뭐, 미희가 한국으로 시집간다고, 누구에게 들었는데?”
중서는 숟가락을 들다가 놓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어머니만 쳐다보았다.
“온 동네가 다 알고 있다. 방앗간 박씨 아줌마 한국 조카란다. 금방 한국에 다녀 왔잖나,”
그의 얼굴은 백지 같이 창백해졌다. 잔뜩 찌푸린 얼굴에서 마치 누가 칼로 배 속에 장기를 도려낼 때처럼 아파하는 듯했다. 
“이런 날이 돌아올 줄 알았어…….”
중서는 한국이란 부자 나라에서 맞선 보러 온다는 총각을 제치고 미희의 마음을 돌려세운 데는 자신이 없었다. 중서는 미희가 자기 옆을 떠난다는 사실은 하늘이 준 가장 혹독한 처벌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무의식 속에 뿌리박은 미희의 이름은 자기의 생명과 결합이 되어 있고 그 뿌리를 뽑아 버리면 자기의 존재 가치도 따라서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밤, 중서는 미희 녀동생에게 쪽지를 주며 언니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미희는 설거지하다가 화장도 하지 않고 약속 장소로 찾아 왔다. 중서는 미희 앞에서 우물쭈물 말을 꺼내지 못했다. 미희가 무슨 일이 있느냐며 다그쳐 물었다. 그는 긴장한 지 몸을 약간 떨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중서는 지금 답을 번연히 알면서 사랑을 고백한다는 그 자체가 더 고통스러웠다. 미희는 갑자기 밤하늘을 가로질러 떨어지는 유성을 바라보며 결연한 태도로 말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너를 동생으로만 생각해왔어. 만약 결혼한다면 배운 것도 없이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가 어찌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겠나? 엉? 그리고 우리 집의 무거운 짐을 너에게 맡길 수 없어, 나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우리 오빠를 위해서 한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 중서 너, 제발 술을 적게 먹고 연세 많은 어머니 속 썩이지 마, 나는 요즘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우니 또다시 나를 안 불렀으면 좋겠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 총총걸음으로 달빛 속으로 사라졌다. 호수에서 이름 모를 새의 애처로운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 왔다. 중서는 괜히 미희를 불러 놓고 앞에서 말 한마디 못 한 자기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미희에게 혹시나 하던 작은 기대조차 모래더미처럼 무너졌다. 짝사랑이란 얼마나 큰 아픔을 동반하는지 이제야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는 폭주가 일상이 되었다. 폭음이 반복되자 뇌 손상으로 의욕도 없고 누가 무엇을 알려 주어도 금방 잊어버린 건망증까지 앓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중서 어머니가 중서에게 맥 빠진 소리로 말했다.
“이번 돌아오는 공일에 미희가 한국 총각과 읍에 큰 식당에서 상견례한다고 하더라. 그리고 나는 이번 공일에 혼자 있는 너 큰 이모가 몹시 아프다고 하니까, 다녀와야 하겠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이 없던 중서가 볼 부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날 보고 어쩌라고?……”
그리고는 또 술병을 가져 왔다.

 

   4

일요일이 돌아왔다. 일요일은 태평향의 장날인데 부근에서는 가장 큰 장터였다. 어젯밤에 과음한 중서는 아침에 충혈된 눈을 뜨니 머리가 송곳으로 쑤시는 것같이 아팠다. 아침밥을 대충 먹고 장에 갈 채비를 했다. 기실 장날에 가서 딱히 팔고 살 물건도 없었다. 그는 자기가 지금 장날에 무얼 하러 장에 가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미희가 상견례하는 데 끼일 자격도 없고, 한국 총각을 만나야 하는 명분은 더구나 없었다. 한참 망설이다. ‘그래, 오래간만에 친구들 만나 술이나 한잔하고 마음이나 풀자.’라고 생각하며 자전거를 타고 떠났다.
장꾼들이 구름 같이 장터로 몰려들었다. 중서는 목적도 없이 자전거를 밀고 백화점 앞에 왔을 때였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발 놓을 자리조차 없었다. 그는 살 물건도 없고 구경할 재미도 없었다. 그는 백화점 앞 자그마한 호수 옆에 앉아서 담배 피우며, 혹시 술 친구나 만날 수 있을까 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마침, 동창인 김향장 아들 철우가 호숫가에서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예쁘장한 아줌마와 마주 서서 시시덕거리다가 사람들 보는 눈이 많은데도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마구 주물럭대었다. 그때, 그녀의 남편이 찾아와서 자기 마누라를 데리고 가려고 했다. 철우는 눈을 부릅뜨고 다짜고짜 왜소하게 생긴 남편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그 남자는 그 자리에서 꼬꾸라지며 코에서 벌건 코피가 쏟아졌다. 
철우는 소문 난 호색한이었다. 후리후리한 키에 굽실굽실한 까만 머리와 발달한 하체, 그만하면 허우대는 어디 가도 빠지지 않았다. 사춘기가 지나고 청춘기부터 지나치게 녀자를 탐하여 아버지가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진을 받아보았다. 의사 선생은 이런 현상은 남성 호르몬 과다분비 때문에 생긴 병인데, 본인의 의지로 성욕을 자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부분 강간 범죄자들이 이런 발병례가 있지만 자기가 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례도 많다고 했다. 약을 지어주었지만, 철우가 강렬히 거부하기에 부모들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가 향에서 왕 노릇을 하고 생김새도 괜찮고 거기에다 돈까지 물 쓰듯 하여 따르는 녀자도 많았다. 그는 입버릇처럼 친구들 앞에서 어젯밤에는 어떤 아가씨와 놀았다고, 또 어떤 아줌마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며 자기는 녀자들을 다루는 능력자라고 자랑질하곤 했다. 
철우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처럼 담뱃불을 붙이고 있는 중서 곁에 다가와서 웃으며 말을 걸었다.
“중서야, 너 소문 들었제, 오늘 니가, 좋아하던 미희가 한국 총각과 맞선 본다고 하더라, 너 말이야, 미희하고 꼭 살고 싶으면 방법 수단 가리지 말고 하룻밤 데리고 자버려, 응, 이때는 나를 따라 배우라고, 친구야, 알았제! 히히히,”
“야, 이 색마 같은 놈아, 뭐라고 지껄이노? 안 그래도 열불 나서 죽겠는데, 오늘 나한테 죽고 싶나?” 
중서가 호통을 치자 철우는 금방 수그러들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와, 성질을 내노? 동무들끼리 우스개로 말한 것인데, 성질내지 말고 조금 있다가 식당에 가서 술이나 한잔하자, 내가 술 사줄게.”
철우는 나이 많은 아줌마의 손목을 잡고 빼곡히 들어선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중키에 몸집이 다부지게 생긴 중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착하고 내성적인 성질 같지만, 어쩌다 욱하는 성질이 폭발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걸고 싸운다. 중서가 어쩌다 성질을 내면 또래 동무들도 아예 피해버린다. 
곧바로 미희가 한국 총각과 맞선 본다는 황학루 식당으로 갔다. 열한 시가 조금 지났지만, 식당에는 벌써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중서는 어쩔 수 없이 자꾸 특실 쪽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목을 빼고 기웃거리며 살펴보고 있는데 오른쪽 특실 두 번째 문이 약간 열려있었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정면에 하얀 와이셔츠에 연두색 넥타이를 맨 젊은이가 점잖게 앉아있었다. 빛깔 좋은 얼굴과 의젓한 양복 차림은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걸 추측이 갔다. 미희는 그 젊은 한국 남자 옆, 창문가에서 머리를 숙이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요란하게 꾸미지 않고 알맞은 밝은 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얼굴에서 아주 오래 보지 못했던 밝은 빛이 보였다. 
약간 옆으로 고개를 돌릴 때 깔끔한 단발머리 밑에 우윳빛 목덜미가 보이고 목덜미에 보송보송 자란 잔털이 창문에서 비쳐들어 온 햇빛에 반짝이었다. 그 옆에 박씨네 둘 부부가 앉아서 얘기가 한창이었다. 그때, 얼굴에 약간 긴장기가 있는 듯한 미희가 일어서 천천히 문 쪽으로 다가와서 특실 문을 꼭 닫았다. 
미희가 특실 문을 꼭 닫는 순간, 두 사람의 모든 관계가 툭, 하고 절망적인 소리를 내며 완전히 끊어졌다는 사실을 중서는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질투, 안타까움이 마치 곧 분출하려는 화산의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자기가 제일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의 품속에 안긴다는 사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신세가 된 자신이 너무 안타깝고 원통했다. 
그때 마침 중서는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강하가 눈에 띄었다. 강하는 한 동네에서 살다 이 윗동네로 이사 간 소학교 친구인데 술 마시기와 책 읽기를 즐겼다. 서로 만나면 눈빛으로 상대방이 지금 무엇을 요구하는지 서로 감지했다. 이것이 바로 술친구였다. 바로 옆 테이블에 진서와 철우, 그리고 여대생 같은 아가씨가 안주를 잔뜩 사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철우가 중서를 보고 자기네 테이블로 오라고 했다. 중서는 앙숙인 진서를 힐끔 쳐다보고 험악한 얼굴로 거절했다.
“흥, 내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저놈하고는 같이 안 먹을 거야, 츠!”
진서도 중서의 말을 듣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맞받았다.
“나도, 네 놈이 절하며 빌어도 같이 안 먹을 거야. 흥.”
두 사람은 마치 곧 싸우려는 황소같이 으르렁거렸다. 중서는 강하를 대리고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원래 철우, 진서, 중서와 미희는 모두 동창생이고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같이 자랐다. 두 사람이 앙숙이 된 원인은 아버지 세대부터 시작되었다. 문화혁명 시기 진서 아버지가 촌 간부로 있을 때, 중서 아버지는 반란파의 두목이었다. 그때 모든 반란파들이 그랬듯 중서 아버지가 진서 아버지를 ‘력사반혁명’이라 루명을 씌워 결국 자살로 몰아넣었다. 중서 아버지와 진서 아버지, 두 사람이 이미 고인이 되었어도, 두 집은 서로 철천지원수로 생각한다. 
이윽고 술안주와 배갈이 올라왔다. 중서는 말도 없이 계속 잔을 비웠다.
“야, 너 오늘 와 술 그렇게 빨리 마시노? 무슨 일 있는 기가? 응?”
 중서의 빈 술잔을 채우면서 강하가 의아해서 물었다. 중서는 강하가 옆에서 말을 걸어도 자꾸 엉뚱한 대답만 하고 모든 의식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했다. 지금의 중서 머릿속에는 온통 미희와 한국 총각의 그림자만 얼른거렸다. 한국 총각의 불같은 시선으로 미희 온몸을 구석구석 훑어볼 때, 중서의 가슴속에서는 질투와 시기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강하는 중서의 이상한 행동에서 무엇을 알아차린 듯 물었다.
“한 가지 물어보아도 되지, 엉? 너 지금 미희 때문에 괴로워하지?”
중서는 괴로운 표정으로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옳아, 나는 정말 미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어. 만약 이 세상에서 살 수 없으면, 둘이 콱 죽어서 다른 세상에 가서 살고 싶어,”
“너, 정말 미쳤구나”
 중서는 가슴 속에 타오른 불을 끄기라도 하는 듯 연이어 술잔을 비웠다. 괴롭던 마음이 조금 평온 되고 답답하던 가슴도 어느 정도 터인 듯했다. 
“너 오늘 술 이렇게 마시다가 큰일 치겠다, 우리 술 그만하자 나도 많이 취한 것 같다.”
“강하야, 오늘 내 동무하여 한 병만 더 마시자,” 
두 사람은 배갈 세 병을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중서는 밖으로 나왔을 때, 얼굴은 화끈거리고 자전거를 밀고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힘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 같았다. 장꾼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식당 밖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모여서 물건을 놓고 티격태격 가격 흥정하고 있었다.
향 정부 건물을 벗어나 집으로 가는 길 입구에 조선족이 꾸린 한국 슈퍼마켓이 있었다. 중서는 이미 술에 많이 취했지만, 자꾸 술이 더 먹고 싶었고 오직 술을 마셔야만 모든 번뇌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그는 갈증도 해소할 겸 시원한 맥주 마시러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혼자서 맥주 몇 병을 또 마셨다. 정신이 더 또렷한 것 같다. 
그는 언덕 밑에 모레 파는 현장에 산같이 쌓인 모래더미를 넋 없이 바라보며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담배 연기를 깊게 삼켰다가 후 내뿜었다. 공기 속에 떠도는 파란 담배 연기는 갈기갈기 찢어진 대로 무엇을 찾는 듯 헤매다가 가뭇없이 살아졌다.

미희는 박씨 아줌마 중매로 한국 총각과 맞선봤다. 처음부터 부자 나라란 이미지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총각 앞에서 위축감을 느꼈다. 고성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중국 사람과 달리 말할 때 늘 목소리를 낮추어 조곤조곤 얘기하는 모습과 허리를 자주 굽실거리며 인사하는 태도는, 중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남자의 패기가 모자라지 않나 싶었지만. 미희는 도리어 총각의 그런 모습은 녀자 마음을 얻는데 더 좋지 않겠나 싶었다. 
맑은 피부와 깔끔한 옷차림과 겸손한 미소도 미희의 마음에 들었다. 불같이 뜨거운 눈길로 자주 자기의 온몸을 구석구석 훑어볼 때도 싫지는 않았다. 총각에게 호감이 갈수록 어쩐지 총각의 존재가 마치 멀고 먼 해안선을 바라보듯, 자꾸 아련해졌다. 해 질 녘 미희는 빨리 집에 가서 눈 빠지게 기다리는 오빠와 여동생에게 소식을 전하고 저녁밥도 차려야 한다고 했다. 총각이 바래다주려는 제안도 거절했다. 당장은 초라한 초가집으로는 데리고 갈 수 없었다. 
총각은 아쉬워하며 택시를 불렀으나 택시는 잡지 못했고 삼륜차를 불러 미희를 태웠다. 총각은 미희의 예쁜 손을 살짝 잡으며 내일 만나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희는 대답 대신 애틋한 표정으로 총각을 바라보았다. 헤어지는 찰나, 어쩐지 마음이 울컥하고 이유 없이 허전하고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한창 달리는 삼륜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삼륜차는 조선족 슈퍼마켓 앞에서 고장이 나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옛날부터 걸어 다니던 길이라서 종종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 호수 뒤에 거무칙칙한 초가집 두 채가 보이고 자기네 집 굴뚝에서는 실타래 같은 파란 연기가 힘없게 하늘을 향해 피어올랐다. 여동생이 서툴게 밥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마침 단풍 들기 시작한 나무 밑을 지날 때, 낙엽 하나가 미희 머리에 사뿐 떨어졌다. 그녀는 동그랗고 빨간 단풍잎을 손바닥에 놓고 입김으로 후 불었다. 뱅글뱅글 돌면서 떨어지던 찰라, 잔뜩 짐 실은 트럭이 지나가면서 떨어지던 낙엽이 바퀴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미희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슈퍼마켓 주인집 식구들은 음식 장만하느라 분주히 돌아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한국에 다녀온 큰 사위와 북경에서 사업하는 둘째 아들이 함께 장춘에서 집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집 식구들이 대통령이라도 모시는 분위기였다. 중서는 은근히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처가에 놀러 오는 사위가 부러웠다.
주인집 아저씨는 뜰 안에서 쪼그리고 앉아 푸른 담배 연기를 굴뚝같이 내뿜으며 칼을 갈고 있었다. 옆에는 사형을 선고받은 암탉과 수탉이 다리가 꽁꽁 묶인 채로 모로 누워서 절망적으로 날개만 퍼덕이고 있었다. 아저씨 얼굴은 절망적으로 발악하는 닭들과 완전히 다른 표정이었다. 아저씨의 벌그스름한 얼굴에 비친 미소와 주황색 석양빛이 기묘하게 어울려 있었다. 
아저씨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수탉의 목을 치자, 닭 목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대의 물줄기같이 뿜어 나왔다. 대가리가 없는 수탉의 몸뚱이는 빙빙 돌며 마지막 피까지 뿜어냈다. 
“피를 다 뽑아내야, 고기가 비린내 나지 않고 맛있는 거야,”
아저씨는 볼이 홀쭉하도록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훅 내뿜으며 허허 웃었다. 암탉은 수탉의 처참한 죽음을 보고 공포에 질려 눈알을 뒤룩거리며 바라보기만 했다. 아저씨는 또 날카로운 칼로 암탉 목을 툭 쳤다. 중서는 야릇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죽음! 강하가 말했듯이 삶과 죽음의 관계는 물이 얼음으로 변하고 얼음이 물로 변한 거 같다고 했잖아?. 
누가 암탉과 수탉처럼 미희와 나를 같이 죽여주면 이렇게 고통스러운 짝사랑은 없지 않겠는가. 미희와 함께 하늘나라에서 훨훨 날며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중서의 머릿속에서 엉뚱하고도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안개처럼 날아다니다 환각으로 변해 갔다.
중서는 슈퍼마켓에서 나왔을 때부터 마음은 끝없이 우울한 늪으로 빠져들어 갔다. 서산에 주홍색 해가 서서히 기울고 하늘은 피 같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두 차례 마신 술이 맑은 정신을 갉아먹으며 감당하기 힘들게 머리로 올랐다. 자전거가 도리어 사람을 타려고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겨우 탔는데 자전거 앞바퀴가 물고기 꼬리같이 흔들어 댔다. 
큰 고개를 넘어서면 스키장 같은 긴 내리막길이 있고, 내리막길 끝자락에 T자형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은 집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모래를 채취하는 현장이었다. 자전거는 고개를 넘어서자 점차 속도가 빨라졌다. 자전거 제동기로 내리막 내려가는 속도를 줄이기는 역부족이었다. 속도가 빨라지면서 얼굴을 스치는 거친 바람이 윙윙 소리를 냈다. 아득한 검푸른 산 너머 붉은 닭 피 같은 노을이 보였다. 
중서는 속도의 스릴감으로 몸 전체가 붕 뜬 것 같았다. 또 머릿속에서 환각이 일어났다. 자기 가슴에 파고들어 꼭 껴안던 미희, 대가리가 없는 수탉 몸뚱이가 빙빙 돌며 마지막 피까지 뿜어내는 장면, 조각난 기억들이 무의식 속에서 벌집 터진 듯 몰려나왔다. 갈수록 속도는 빨라지고 중서는 마치 구름 위에서 날아다니는 듯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괴물과 퍽! 하고 부딪쳤다. 두 눈에서는 수천 개의 불꽃이 튀어나왔다. 밑창도 없는 심연으로 굴러 떨어졌다. 춥고 어둡고 황량한 심연 밑바닥에서 중서는 수탉이 되고 미희는 암탉으로 되어 주검처럼 누워 있다. 미희는 피투성이 되어 흐느낌 같기도 하고 하소연 같기도 한 애처로운 신음을 냈다. 그리고 그녀는 검붉은 피를 흘리며 까만 점이 되어 아득한 하늘 끝으로 날아갔다. 
 
 

    5

한국 총각과 맞선보러 간 미희가 밤새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도 자지 않고 미희를 기다리던 미희 오빠(상호)는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 날이 밝아오자 막내 여동생(미옥)을 시켜 박씨 아줌마를 찾아가 보라고 했다. 미옥이 박 씨 아줌마 집 문을 두드렸다.
“엉? 네가 새벽에 왜 우리 집에 왔니?”
박씨 아줌마는 현관문을 열고 하품을 하며 물었다.
“우리 언니 어젯밤에 여기서 잤어요?”
“아니, 어제 오후 삼륜차 타고 집에 갔는데,”
“우리 언니 어젯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게 무슨 소리이고? 다른 친구 집에 가서 잔 거 아니야?”
“친구네 집에 다 가보았어요, 다들 못 봤데요.”
박씨 아줌마는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집안에 들어가서 신랑, 아들, 딸을 깨웠다. 
“여보, 미희가 어젯밤에 집에 안 들어오고 온데간데없데요”
박씨는 촌장 집에 가서 동네 사람들을 불러 미희를 찾아 달라고 부탁하러 갔고, 박 씨 아줌마는 미옥을 보고 물었다.
“중서네 집에 가봤느냐?”
“아니요” 
미옥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박씨 아줌마와 미옥은 중서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집안은 침침하고 지독한 술 냄새가 확 풍겼다. 방에는 얼굴이 피투성이 된 중서가 전혀 무감각한 주검처럼 누워 자고 있었다. 딱히 말할 수 없는 불길한 무엇이 중서 몸에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옆에는 빈 배갈 병 하나가 사람이 누워 있는 방향으로 일자로 넘어져 있었다. 
한쪽 발에는 운동화, 한쪽 발은 맨발이었다. 앞 이마, 입술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콧구멍에는 검은 핏덩어리가 말라붙어 엉켜 있었다. 입고 있는 티셔츠 앞부분에는 검붉은 피가 얼룩지어 원래 무슨 색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박씨 아줌마는 머리털이 곤두서고 몸서리를 쳤다. 미옥이 ‘오빠, 오빠’ 불렀다. 아무 대답이 없다. 입에서 지독한 술 냄새만 없으면 정말 죽은 사람 같았다. 
박씨 아줌마는 미옥을 데리고 집에 와서 아침 밥을 지어서 먹이고 학교에 보냈다. 최 촌장 집 뜰 안에 들어설 때, 모래 파는 공사장에서 한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촌장 집안에 들어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촌, 촌, 촌장님, 큰일 났어요. 응, 아침에 모래 무더기에서 여자의 시신을 발견했어요. 그 죽은 여자가 이 동네 사는 미희예요. 어쩌면 좋아요? 엉?”
한창 미희 찾으려 서두르던 촌장과 박 씨네 식구들은 아저씨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최촌장은 허겁지겁 달려온 아저씨를 도로 나무랐다. 
“자네 어제 마신 술 아직 덜 깬나? 엉, 어제까지 멀쩡한 젊은 사람이 왜? 죽었다고 허튼소리를 치는 거요. 참.”
“정, 정, 정말이에요. 촌장님, 사람 죽었어요, 정말 죽어서 뻣뻣해졌어요…….”
그의 입에서 침방울이 튀어나오고 말까지 더듬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일행은 촌장의 경운기를 타고 모래 채취현장으로 갔다. 이때,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오고 하늘을 쳐다보니 서북쪽에서 검은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곧 큰비가 내릴 것 같았다. 
시신은 모래 더미에서 발견했다. 자동차에 모래 싣는 장비를 운전하던 기사가 모래를 퍼 담으려고 하는데 무슨 물건에 부딪히며 바가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차를 뒤로 후진했다가 엑셀을 끝까지 밟았는데 차는 무엇에 걸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시동이 꺼졌다. 운전기사는 무엇이 걸렸는지 알아보려고 삽으로 모래더미를 팠다. 한창 파던 운전기사는 삽을 집어 던지고 비명을 지르며 모래 무더기에서 뛰어 내려왔다.
“여기 사람 죽은 사체가 있어요, 빨리 여기 와서 봐요, 모래더미 안에 죽은 사람이 있어요.”
비명을 듣고 모래 파는 일꾼들이 모여들었다. 모래더미 위로 내밀은 거는 녀자의 단발머리였다. 모래가 범벅이 된 사람 머리는 모래로 일부러 발라 놓은 것 같았다. 그때, 누구도 겁이 나서 모래더미로 올라가지 못했다. 험상궂게 생긴 공장장이 그들 가운데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를 보고 모래더미에 올라가서 확인하라고 시켰다.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던 아저씨는 모래더미에 올라가서 삽으로 시신 주위의 모래를 파냈다. 확실히 젊은 여인의 시신이고 모래가루가 온몸에 묻어서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금방 모래 푸는 바가지 끝 날에 왼쪽 젖가슴이 깊이 파고 들어가는데 붉은 살코기에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다. 원피스도 찢어지고 천 조각이 젖가슴을 절반 가려져 있었다. 퍼런 멍이 들은 허벅다리에는 모래가 잔뜩 묻은 삼각팬티가 밑 부분만 가려져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남자의 검남색 웃옷이 덮여 있었다. 남자의 웃옷을 비껴내고 모래를 대충 털어 땅바닥에 눕혀놓자 옆에서 구경하던 조선족 아저씨가 질겁하여 소리를 쳤다. 
“아이고, 이거 웬일이고……? 이, 이, 죽은 여자가 우리 동네 사는 미희 처녀이네. 미희가 왜 여기서 죽었는겨. 엉?” 
이때 멀리서부터 몰려오는 빗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이윽고 천둥 번개가 치고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에 씻긴 시신은 완전한 얼굴 모양을 드러냈다. 미희의 시신이 옳았다. 머리 왼쪽 태양혈에 둔기로 맞은 자리가 움푹 들어가고 피가 말라서 검은색으로 변해 흉터에 조금 붙어있었다. 얼굴은 이미 생동감이 사라지고 금방 껍질을 벗긴 창백한 나무토막처럼 무감각이었다. 
조선족 아저씨가 휴식실에서 헌 담요를 들고 와서 비를 맞고 있는 미희 시신을 덮었다. 지나간 소낙비는 금방 거치고 강렬한 가을 햇볕이 시신을 덮은 헌 담요를 비추자 하얀 수증기가 향불 연기같이 헌 담요에서 가냘프게 피어올랐다. 
 향 파출소 경찰들의 지프가 도착했다. 경찰들은 시신 주위에 긴 줄을 쳐놓고 시신 옆에 남자의 웃옷을 나란히 펼쳐 놓았다. 현 공안국 수사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김향장의 아들 철우가 모래 현장에 왔다. 미희 시신 옆에 다가와서 헌 담요를 젖히고 미희 시신을 잠깐 쳐다보고 이내 덮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어떤 몹쓸 놈이 미희 처녀를 죽인 거여, 어제 저녁녘에 술 취한 중서가 여기서 미희랑 다투는 것을 보았는데, 이거 웬일이고, 엉?”
그는 두 눈이 충혈되었고 하얀 붕대로 귀를 처치해 놓았다. 친구같이 지내는 젊은 경찰이 철우를 보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
“하룻밤 사이에 왜 이렇게 초라해졌어, 귀는 왜 다친 거야? 어제 또……엉?” 
철우는 오른손으로 귀를 감은 붕대를 가루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젊은 경찰에게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어제 진서와 향간부 차를 타고 우리 이모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중서가 술에 취해 미희를 끌고 모래 파는 구덩이로 가는 거를 내 눈으로 똑바로 봤어.”
박씨 아줌마도 철우와 맞장구를 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미희 여동생이랑 금방 중서네 집에 갔다 왔어요. 중서가 술에 취해 자는데 온몸이 피투성이에요, 혹시 중서가 미희를……”
이때, 철우가 파출소장 소장과 촌장 옆에 다가가서 모래 취재현장으로 들어오는 길 입구에 넘어져 있는 자전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봐요. 응, 저 모래구덩이 입구에 중서 자전거가 있어요…….”
“어제 중서와 장에서 만나 얘기도 나누고 했는데 시체 옆에 있는 검정 웃옷과 자전거가 확실히 중서의 물건이에요.” 
그때, 박 씨 아줌마도 다가와서 그들의 말에 끼어들었다.
“어제 우리는 미희와 점심은 같이 먹고 오후에 상점에 쇼핑하고 네 시쯤에 서로 갈라졌어요, 참, 미희는 어제 기분이 엄청 좋았어요. 오빠랑 저녁밥 때문에 집에 가야 한다고 했어요, 집에 갈 때 삼륜차 타고 혼자 갔어요.”
파출소 장소장도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보면 중서가 살인 용의자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했다. 장소장은 경찰을 시켜 촌장과 함께 중서네 집에 가서 중서를 체포하게 명령했다. 그리고 다른 경찰을 시켜 어제 오후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모래 현장 주위에 다녀간 모든 사람을 한 명도 빠짐없이 철저히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경찰은 중서네 집에 가서 아직 술에 취해 자는 중서를 다짜고짜 수갑을 채워 차에 태웠다. 그때까지 언니네 집에 갔던 중서 어머니는 집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술에서 깨어나지 못한 중서는 충혈된 눈을 겨우 뜨고 고함만 질렀다. 
“왜? 나를 잡아가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어요? 잉.”라며 발버둥을 쳤다. 누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경찰은 중서를 마치 사냥꾼이 잡은 작은 짐승같이 끌어다가 파출소 음침한 감방에다 가두어 놓았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경찰은 중서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원래 중서를 현공안국에 보내려 했으나, 지금 엄타嚴打 운동이라 현공안국에 체포한 죄인이 많아 현지에서 신문하라고 했다. 경찰은 사진 한 장을 중서 앞에 내밀었다. 책상 위에 있는 사진을 살펴보던 중서는 너무도 놀라 온몸에 식은땀이 돋아났다. 죽은 여자가 미희 아닌가. 그는 사진 속의 두 눈을 꼭 감고 아직 모래가 묻어 있는 창백하고, 목석같이 무표정한 미희 얼굴을 넋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생시인지 꿈인지. 미희가 죽어서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 어슴푸레하게 생각이 났다. 내가 혹시 술에 취해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 내려가다 미희를 깔려 죽였나. 요즘은 술만 마시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으니 정말 미치겠네. 중서는 사진을 꼭 끌어안고 눈물이 가득 고인 두 눈으로 경찰을 바라보며 물었다. 
“엉? 미희를 누가 죽었어요? 이, 여자는 미희가 아닐 거야, 미희가 죽을 수 없어요. 흑, 흑.” 
그는 가슴을 꼭 움켜쥐고 눈물범벅이 되어 절규했다. 경찰은 모래 현장에 수집한 미희 시신을 덮었던 중서의 검은 윗옷과 자전거가 찍힌 사진 두 장을 앞으로 밀면서 큰소리로 물었다.
“이 두 가지 물증은 살인 현장에서 수색해 낸 증거물이야. 황중서! 흥, 빨리 말해봐, 도대체 너의 자전거와 너의 웃옷은 무엇 때문에 미희시신 옆에 있는 거야?”
성질이 난 경찰은 험악한 눈빛으로 중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제 오후에 누구하고 같이 있었고? 누구와 함께 집으로 갔는지 말해봐! 엉?”
이제 술이 조금 깨기 시작한 중서는 어제 발생한 일들과 만난 사람들을 차례로 생각해보았다. 슈퍼에서 술을 마시고 내리막 내려오다 무엇과 부딪친 뒤, 파편처럼 조각난 현실인지 환각인지 분별을 할 수 없는 어슴푸레한 기억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는 하나, 사실이라고 진술할 수 없었다.
“내리막 내려오다 무엇과 부딪친 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미희는 정말 만난 적 없어요.” 
“야, 이놈아,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며? 그렇다면 미희를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기억해! 앞뒤가 맞지 안 잖나? 네가 술에 취해 미희를 모래더미로 끌고 가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있어. 흥!”
“나는 미희를 안 죽였어요, 내가 왜? 미희를 죽이요.”
경찰은 넋 빠진 사람 같이 중얼거리는 중서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황중서, 똑똑히 들어! 너는 엄타(嚴打) 운동 대상이야, 빨리 자백하지 않으면, 총살이야,”
아직 얼굴에 시퍼런 멍이 지도같이 얼룩졌고 마른 핏덩어리가 더덕더덕 붙어있는 중서는 어쩔 수 없는 고통으로 눈물만 흘릴 뿐이다. 중서를 바라보던 파출소 장소장이 화가 나서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호통을 쳤다.
 “안 되겠다. 너, 이놈, 동네에서 제일 예쁜 처녀를 강간하여 죽이기까지 해놓고, 지금 와서 증인도 있는데 시치미를 떼는거야, 꼴통 같은 놈, 오늘은 이만큼 하겠다. 밤에 잘 생각해보고 내일 로실하게 탄백하면 몸덩이가 성할 것이고,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한다는 거 알지. 흥!”
이튿날 아침 출근할 때, 장소장의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입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중서는 로실한 사람이라는 거 잘 알아, 원래, 내 생각에는 몸덩이에 손을 안 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구나. 너희들이 현 공안국에 가기 전에 꼭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말고 살인했다는 손도장을 받아 내야 해, 오늘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지 알겠지. 엉?.” 
중서를 다시 신문하기 시작했다. 부하 경찰은 무엇 때문에, 미희를 죽였냐고 물음에 자기가 미희를 죽이지 않았다고 딱 잡아뗐다. 그러자 부하 경찰은 눈을 부릅뜨고 뺨을 치며 고함을 질렀다. 
“중서, 너 이 자슥, 오늘은 제대로 아픈 맛을 봐야겠다. 가서 어제 잡아 온 도박꾼들 데리고 와! 이놈에게 손맛을 보이야겠다, 로실하게 탄백할 때까지. 흥.”
조금 뒤. 어젯밤에 파출소에 잡아 온 수염도 깎지 않은 험상궂게 생긴 도박꾼 네 명을 데리고 왔다. 
“여기 봐, 이 자식이 지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손맛을 보여 줘, 표현이 좋은 사람은 오늘 밤에 집에 돌려 보낼거야, 흥.”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건장한 도박꾼 네 명은 일제히 달려들어 중서를 개 패듯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피가 말라붙은 얼굴 상처에서는 또 붉은 피가 흘렀다. 도박꾼들도 기진맥진해졌을 때, 중서는 죽은 사람처럼 신음도 없이 정신을 잃고 늘어졌다. 시간이 흘러갔다. 정신을 차린 중서는 역시 자기가 미희를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
“안 되겠다. 이 개자식,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독수리 조련법을 사용해서라도 빨리 자백하도록 해. 흥!.”
중서를 고문 의자에 앉혀 놓고 48시간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다. 지속해서 신문 받는 동안, 강한 직사광 조명 두 개가 그의 얼굴을 내리비췄다. 이틀 동안 독수리 조련을 하자 눈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기력도 급격히 떨어져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그보다 정신이 혼란해지면서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한 환각 증세를 겪게 되었다.
며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가혹한 고문을 받아 온 중서는 들판에 내버린 동물 시신같이 늘어졌다. 눈도 흐릿하고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의욕도 없고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정신마저 곧 붕괴할 직전이었다.
그때, 생각하지도 못했던 동창이자 친구인 철우가 중서 앞에 나타났다. 철우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만신창이 되어 느려져 있는 중서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밖에서 잔뜩 사 들고 온 고급 담배, 사탕, 과자를 중서에 넘겨주며 연민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중서야, 정말 눈뜨고 너를 바라볼 수 없구나. 엉! 너, 이 고생 더 하지 말고 일단 죄를 승인해라구, 우리 정말 짜개바지 친구였는데, 내가 무슨 방법을 구해서라도 이곳에서 풀리어 나오도록 할게, 응. 나를 믿어 줘, 너 엄마도 지금 미쳐버렸는데, 어쨌던 살아나가야지. 쯧쯧.”
콘크리트 바닥에서 몸을 겨우 일으킨 중서는 동창인 철우를 보는 순간,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흑흑 흐느꼈다. 중서는 흐느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철우야, 나를 좀 도와줘, 우리 엄마 정신이 나빠졌다는 말 들었어, 나, 정말 미희를 안 죽였단 말이야. 흑, 흑.”
철우는 눈물을 흘리는 중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사실을 부인하면, 이 구치소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맞아 죽을 수도 있어, 니가 죽은 뒤, 끌어다 병 든 닭새끼처럼 들판에 버리면 끝이야, 누구도 사실 밝힐 사람 없을 꺼다……, 지금 우리 아버지가 중서 너를 아들 친구라고 봐 준거야, 아니면 벌써 현 구치소에 끌려갔제, 내 말 듣고 일단 죄를 승인하고 목숨부터 살려 놓고 보라구, 내가 방법을 구해 여기서 꼭 풀려 나오도록 해줄게. 응.”
중서의 두 눈에서 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들릴락 말락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지금 이 처지에 찬밥 더운밥 가리겠나, 나, 정말 너를 믿을 께, 제발 목숨 살려 줘, 향장님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줘. 흑흑.”
이윽고, 경찰이 중서를 보고 자백서에 사인하고 지장을 찍으라고 했다. 중서는 망설이지도 않고 이내 자백서에 지장을 찍었다. 
“중서야, 좋은 소식 기다리라구, 이제부터 고문은 받지 않을 거야, 그리고 주방장보고 맛있는 음식 많이 해주라고 부탁했어. 응.”
철우는 구치소 대문에 나와 하늘을 쳐다보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휴대전화로 누구와 통화할 때 얼굴에 웃음이 보이었다. 이윽고 20대 되는 이쁜 아가씨 두 명이 택시에 내리자 철우 팔짱을 끼고 술집으로 함께 들어갔다.
철우가 다녀간 뒤, 중서에게 고문도 하지 않고 밥 세 끼도 제대로 챙겨 주었다. 며칠이 지난 뒤, 중서가 경찰에게 물었다.
“철우가 무슨 소식 안 전하던가요?”
“아, 지금 한창 ‘엄타운동’이라 잡혀 온 범죄자들이 워낙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더라, 바빠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려봐. 철우가 꼭 도와줄 거야…….”

황중서의 살인 안건은 살인 동기, 목격자, 물증이 모두 갖춰졌다. 미희가 죽던 날, 모래 파는 현장 주위에 다녀간 철우와 진서를 포함해서 여섯 사람을 조사한 결과 미희의 죽음과 아무 관련도 없었다.
문청시 검찰기관에서 황중서의 강간살인 범죄 사건을 ‘엄타’ 운동의 명단에 올려서 문청시 중급법원으로 기소했다. 성(省) 중급법원에서는 신속하게 황중서에게 강간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했다. 

 

6

태평향에는 두 미녀가 있었는데 하나는 조선족 미녀 고故 강미희였고, 하나는 한족인 링링이었다. 링링은 조선족 총각 진서와 결혼하였다. 진서는 현재 향 정부에서 간부전용승용차 운전기사로 있고 결혼한 지 일 년 남짓 되었다. 미희는 서시같이 날씬하지만, 링링은 양귀비처럼 약간 풍만형인데 허리가 가늘고 얼굴 피부가 유난히 이뻤다.
봄철이 되면 문청시 기층 간부들은 공산당 당교에서 4~5일 동안 당장교육(党章敎育)을 받는다. 진서는 향장인 철우 아버지와 다른 간부들을 간부전용차에 태워 문청시 당교(党校)에 교육받으러 갔다. 철우는 아버지가 잠시 집에 없는 사이 어머니를 시골 이모네 집으로 보내고, 남녀 또래 친구들을 끌어모아 마작판을 벌였다. 
철우 집에 마작이 하나밖에 없어서 옆 집에 사는 진서 집에 마작을 빌리려고 갔다. 철우는 노크도 하지 않고 무작정 집 안으로 들어갔다. 따사로운 햇볕이 봄기운을 살짝 묻혀 깔끔하게 꾸려놓은 진서네 신혼 방을 따스하게 비췄다.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진서 아내 링링은 대(大)자로 반듯이 누워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돌핀팬츠 아래 기름을 칠한 듯한 미끈하고 허연 허벅다리가 드러나고, 잘 발달 된 흰 젖가슴 윗부분도 노출되었다. 여성미가 뚜렷한 링링이 누워 있는 모습을 게걸스레 쳐다보는 그는 뒷골이 짜릿해지면서 달아오른 변태적 욕정이 온몸으로 번져 나갔다. 심장이 세차게 뛰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듯했다. 침을 꿀꺽 삼키며 링링이 누워 있는 방 위에 올라갔다. 늘 그렇게 해왔던 버릇처럼 철우의 강렬한 욕정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뿐더러 주저하지 않고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철우가 손으로 젖가슴을 만졌지만, 링링은 깊은 잠에 취해 있었다. 철우의 떨린 손이 아랫배를 만지는 순간, 링링은 눈을 떴다. 그녀는 마치 흉기에 가슴이 찔린 듯 앙칼진 비명을 질렀다. 철우가 겁에 질려 뒤로 주춤할 때, 링링은 벌떡 일어나 창문 쪽으로 다가가 큰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색광에게 모욕당한 링링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철우 멱살을 쥐고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조금 뒤에 뒷집에 사는 부녀회장이 쫓아오고 이윽고 철우네 집에 놀러 왔던 친구들도 찾아와서 철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새파랗게 질린 링링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울며 철우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는 울음을 멈추고 문청시에 간 신랑, 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금방 집에서 발생한 사실을 일러바치고, 빨리 철우네 집 옆에서 이사를 옮기자고 졸랐다. 진서는 철우가 다른 아가씨나 유부녀들에게 바람을 피워도 자기 아내만큼은 절대 건들지 않으리라 철석같이 믿어 왔다. 그는 생각할수록 치솟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당장 향파출소 장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얘기를 하고 빨리 구치소에 처넣으라고 했다.
유년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고 동창이었던 철우가 자기가 없는 틈을 타서 집안에까지 침입하여, 갓 임신한 집사람을 희롱하였으니 정말 짐승보다 못하다고 욕설을 퍼부으며 이를 갈았다. 세상 사람 모르는 범죄 행위가 있어도 감추어 주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겠느냐며 펄펄 뛰었다. 
이튿날 아침, 진서는 링링의 전화를 받고 미칠 것 같았다. 새벽에 철우 어머니가 파출소 찾아가서 아무 일도 아닌데 아들을 구치소에 가두었다고 장 소장에게 야단을 쳤단다. 그리고 곧바로 파출소에 갇힌 철우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에 보기만 해도 진저리치는 철우가 자기네 담장 밑에서 링링을 쳐다보고 얼굴을 씰룩거리며 징그럽게 웃더라고 했다. 철우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 아랫배가 더 아팠고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며 링링은 엉엉 울었다.
“철우 이 자식 너, 나도 무시한다는 말이지, 이번에 정말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흥.”
그는 점심시간에 김향장을 찾아가서 철우가 자기 아내를 성희롱했던 사실과 링링이 놀란 뒤부터 아랫배가 계속 아프다고 얘기했다. 듣고 난 김 향장은 얼굴이 백지장같이 창백해지고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듣고 나서 긴 한숨을 내쉬며 침통하게 말하였다.
“어제저녁에 너의 삼촌 류 부검찰장과 잠깐 만났던 거야, 회의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 너랑 같이 식사하자고 하더라, 철우 이놈, 큰일 쳤구먼, 조만간에 우리 집이 아들놈 때문에 풍비박산이 날 거야…….”
김향장은 현 공안국 형사과에 전화하여 태평향에 가서 철우를 체포하여 구치소에 처넣으라고 했다. 회의가 폐막하고 김향장은 바쁘다는 핑계로 류 검찰장을 만나지 않았다. 진서는 향간부전용차를 운전하기 때문에 김향장, 그리고 다른 간부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진서는 집에 돌아오자 링링을 큰 병원으로 이동하여 입원시켰다. 큰 병원에서도 치료했지만, 작년에 유산했던 사례가 있어 사흘 만에 유산하고 말았다. 
진서는 철우가 이틀 만에 현 구치소에서 또 풀려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진서는 주방에서 식칼을 뽑아 들고 철우를 죽이겠다고 소리를 칠 때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마음을 진정하고, 빨리 문청시 부 검찰장인 삼촌을 찾아가라고 했다. 한참 후 진서는 썰물같이 격앙된 감정에서 잠시 수그러들었다. 그는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했다.
“철우 이 짐승만도 못한 놈, 내가 너를 꼭 총살당하게 할 거야. 너는 죽었어. 흥!”
진서는 그날 저녁으로 문청시 부 검찰장인 삼촌을 찾아갔다. 삼촌을 찾아갔던 진서는 이틀 후에 집에 돌아왔다. 삼 일째 되는 날, 시 공안국의 경찰차가 곧바로 철우네 집 앞에서 차를 멈추고, 완전무장한 경찰 네 명이 철우네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 철우네 집 식구와 일가친척들이 모여 풍성한 밥상을 차려 놓고 식사할 때였다. 철우의 생일이었다. 경찰 네 명이 밥상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쌌다. 경찰은 닭 다리를 한창 뜯고 있는 철우의 손목을 끌어당겨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살인 용의자 김철우를 체포한다.”
“뭐라고요? 살인 용의자라고요?”
옆에 누군가 물었다. 경찰은 대답도 하지 않고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철우를 강제로 끌고 경찰차에 태웠다. 놀란 철우 어머니는 울며불며, 
“우리 아들은 살인한 적 없어요.”
라며 미친 듯 넋두리를 하고 김향장은 담배를 피우며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혼자 말을 했다. “류 부검찰장이 화가 많이 나꾸만. 어휴.”

 

  7

서산에 곧 넘어가려는 빨간 해를 바라보며 미희는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해 걷고 있었다. 미희는 한국 총각이 술과 인연이 없다고 하니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안정되었다. 자기 아버지, 오빠, 중서네 아버지, 중서까지, 지나치게 술 마시는 남자들은 마음속에서부터 거부감을 느꼈다. 
한국 총각과 결혼만 하면 이미 준비해놓은 아파트에서 딴 살림을 하고 앞으로 식당에서 좀 익숙해지면 계산대를 넘겨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타국에 시집가서 일가친척이 옆에 없고 생활 반경이 좁아져도 신랑만 자기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면 무슨 힘든 일도 이겨 나가고, 누구보다 더 잘살 수 있는 신심이 생겼다. 그녀는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에 도취 되었지만, 웬일인지 말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자꾸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쓸쓸해졌다. 
모래 채취현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도착했을 때였다. 옆으로 지나가던 향간부전용차가 멈추어 서면서 술기운이 잔뜩 올라 얼굴이 지지 벌건 철우가 승용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미희 앞을 가로막았다. 그때 중서가 자전거와 웃옷을 모래 채취현장에다 버리고 떠난 지 불과 십여 분 뒤였다. 
향간부전용차를 운전하던 진서는 철우를 차에서 내려놓고, 차를 운전하며 가다가 장삼 아저씨가 술에 몹시 취한 중서를 당나귀 차에 힘겹게 끌어 올리는 것을 보고 본체만체하며 마른 먼지를 자욱하게 날리며 지나쳐버렸다. 
승용차에서 내린 철우는 걸어가는 미희 앞을 가로막고 바싹 다가서면서 물었다. 
“미희, 너 오늘 한국 총각 냄새를 맡아 보니까, 어때? 우리 중국 총각 냄새보다 더 향기로운 거야, 엉?”
입에서 풍겨 나온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미희는 앞을 막고 있는 철우를 옆으로 밀어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저리 비켜, 집에 오빠랑 동생이 날 기다리고 있어, 너하고 말장난할 시간이 없단 말이야.”
철우는 벌건 잇몸을 드러내고 징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에 너에게 보낸 편지 받고 왜? 회답 안 했어, 엉? 내가 몇 번이나 편지를 썼는데 한번도 회답 안 했잖아? 나, 정말 너를 좋아한다는 말이야. 흐.”
미희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증오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야! 내가 너에게 시집가면 몇 번째 색시야? 열 번째, 아니면 서른 번째? 내가 왜 색시도 아니고 첩도 아닌 짓거리를 하냐? 바람둥이 같은 것, 흥, 저기로 비켜. 빨리!”
철우는 히죽히죽 웃으며 미희의 얼굴과 몸매를 훑어보며 말했다.
“야, 너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인다, 정말 우리 향에 일등 미녀이네, 히히히”
 밝은 색 원피스를 입은 미희의 균형 잡힌 몸매는 오늘따라 더 매력적이었다. 철우는 마치 피에 주린 모기처럼 끈질기게 미희에게 접근했다. 
“내 말 좀 들어봐, 너를 한 번만 끌어안게 하면 우리 이모가 너에게 빌려준 돈 안 받을 게, 이른 장사할 만하는 거 아니야!”
미희는 철우의 모욕적인 요구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야, 이 미친 색광 같은 놈아, 내가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네놈에게 안기지는 않을 거다, 저리 비켜, 너 이모에게 빌린 돈은 갚을 날짜가 아직 멀어서, 어서 비켜!”
달아오른 욕정이 온몸으로 뻗쳐 나간 철우가 또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는 무작정 미희를 껴안으려고 했다. 그녀는 몸을 피하며 뺨을 철석 갈겼다. 철우는 왼손으로 벌겋게 된 뺨을 만지다가 눈을 부릅뜨고 오른 주먹으로 미희 태양혈을 사정없이 쳤다. 나약한 여자들이 어찌 젊은 남자의 센 주먹을 당할 수 있으랴, 미희는 휘청거리며 제자리에 펄썩 주저앉고 정신을 잃었다. 
철우는 혼미한 미희를 질질 끌고 사람이 없는 산더미 같이 쌓인 모래더미 뒤로 갔다. 이때, 날은 저물어가고 모래더미 뒤에서 굿을 한다 해도 길가는 행인들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혼미하여 반드시 누워있는 미희 아랫배에 걸터앉았다. 찢어진 옅은 원피스 속으로 손을 넣어 앞가슴을 거칠게 만졌다. 
그는 꽃잎같이 부드러운 미희 입술을 보고 강한 충동을 느끼며 뽀뽀하려고 순간, 미희는 두 눈을 번쩍 떴다. 미희는 입을 살짝 돌리며 철우의 왼쪽 귀를 이발로 꼭 물었다. 철우는 큰 소리칠 수 없고 미희 머리카락을 마구 잡아당겼다. 귀에서 흐르는 검붉은 피가 미희 얼굴에 떨어졌다. 철우가 아프다고 난리 칠수록 붉은 피가 귀에서 더욱 많이 흘러나왔다. 
철우는 미희 머리카락을 잡았던 오른손으로 미희 왼쪽 머리 옆에 놓여있는 주먹만 한 검은 돌을 꼭 쥐었다. 미희는 억세게 귀를 물고 흔들었다. 다급한 비명을 지르던 철우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은 돌로 퍽 소리 나도록 미희 머리를 쳤다. 미희는 헉헉 흐느끼며 이빨로 꼭 물었던 철우의 귀를 풀어 주었다. 미희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머리카락을 적셨다. 철우는 얼굴이 일그러뜨리고 꼼짝도 하지 않는 미희를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미희를 죽였구나……, 어쩌면 좋아?”
철우의 머릿속에 불현듯 모래 채취현장 입구에 헌 자전거와 자전거에 걸린 웃옷이 생각났다. 그는 다가가서 자전거를 보니 오전에 보았던 중서의 헌 자전거였고 자전거에 걸려 있는 옷도 중서의 웃옷이었다. 그는 얼굴에서 음침한 웃음이 보였다. 중서의 헌 옷을 들고 미희의 시신 옆으로 다가갔다. 
마지막 한 가닥 남은 석양빛이 모래더미 뒤에 앉아 있는 검은 물체를 어슴푸레 비추고 있었다. 이상했다. 가까이 가보니 죽은 줄 알았던 미희가 얼굴에 피투성이 되어 흙으로 만든 인형처럼 앉아있는데 검은 머리카락에는 노랗고 빨간 낙엽 몇 개가 붙어있었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지 않고 사람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었다. 너무 놀란 철우는 뒷걸음치다가 벌렁 넘어졌다. 이때, 가만히 앉아 있던 미희가 눈을 깜박이더니,
“난 죽기 싫어, 날 좀 살려 줘, 나는 한국 갈 거야…….” 
미희는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눈빛에는 삶의 욕망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철우는 두 무릎을 꿇고 기어서 미희 앞으로 다가갔다. 이때, 이상하게도 무리에서 쫓겨났는지 까마귀 한 마리가 머리 위에서 원을 그으며 ‘깍, 깍’ 짖다가 날아 가버렸다. 철우는 온몸이 으쓱 진저리쳤다. 미희와 철우의 얼굴은 붉은색을 칠한 듯 피범벅이 돼 있었다. 목석처럼 앉아 있는 미희의 앞가슴 오른쪽 유방이 허옇게 나와 있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때, 철우는 미희의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피하며 왼손으로 봉긋이 밖으로 내민 미희 유방을 만지려고 했다. 미희는 점차 얼굴색이 흙빛으로 변하고 온몸이 세차게 경련을 일으키면서 “날 좀 살려줘!”라며 미약한 목소리로 애원하는 듯 말했다. 그녀는 갑자기 울컥하다가 입을 벌리고 붉은 피를 철우 얼굴에다 뿜어댔다. 그녀는 온몸이 모래더미같이 무너지더니 눈이 멍하게 허공에 못 박혀 있었다.
방금까지 매력에 넘치던 얼굴 모양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싸늘하게 굳어가는 미희를 보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는 중서의 잠바 웃옷으로 미희 머리에서 흘러나온 아직 따스한 피를 적셨다. 그리고 웃옷으로 미희 얼굴을 덮은 후 옆에 놓인 삽으로 모래더미 속에 묻었다.  

철우는 오솔길로 돌아 집에 돌아오니 다행히 부모가 집에 없었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집에 있던 약으로 귀의 상처를 치료하고 나서, 혼자 가만히 앉아 금방 발생한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옛날에 많이 목격한 죄인들을 총살하던 끔찍한 장면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기가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고 곧 총살당하겠다는 공포감을 느꼈다. 몹시 후회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는 생각 끝에 오직 진서가 자기와 함께 장에서 시골 이모네 집에 같이 갔다 왔다는 것을 증명해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중서는 살인 용의자가 되고 자기는 안전하게 살인 사건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서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금방 발생한 일들을 얘기했다. 듣고 난 진서는 펄쩍 뛰며 자기가 증명할 수 없다고 딱 잡아뗐다. 철우는 진서 앞에 두 무릎을 꿇으며 사정했다. 
“너, 아버지 목 매어 죽은 사실 잊지 않았지? 나는 비록 어렸지만, 너의 아버지가 처참하게 죽은 장면을 똑똑히 보았어. 그 당시 너 아버지는 자살이 아니고 중서 아버지가 자기가 촌 간부 되려고 너의 아버지 목을 졸라 죽였다는 소문도 돌아서……, 이 기회에 복수하지 않고 언제 복수하려고 그래, 엉?”
철우가 격한 어조로 말할 때 목소리도 떨렸다. 가만 듣고 있던 진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는 거실에 왔다 갔다 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직접 철우에게 대답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오늘 중서가 술이 많이 취하였는데 장삼이 당나귀 차에 중서를 싣고 집에 데려다주었어. 장삼이 술에 취한 중서를 집에 데려다주었다고 증명하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될 수 있어, 돈 좀 써야 하겠다. 장삼 마누라가 지금 폐암에 걸렸는데 많은 돈이 필요할 거야, 알겠지. 엉?”
철우는 진서의 도움으로 살인 사건에서 빠져나오고, 대신 중서는 억울하게 총살당하게 되었다. 

 문청시 공안국에 잡혀간 철우는 자기는 살인한 적이 없다고, 강렬히 부인했다. 진서가 자기 마누라를 희롱했다고, 없는 사실을 꾸며 자기를 모함했다고 했다. 미희를 살해한 사실 증거를 내놓으라고 배짱을 부리며, 자기도 변호사를 불러 법원에 소송하겠다고 했다. 한동안 진서도 확실한 증거를 내놓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고민하던 중 한 사람을 생각해냈다. 미희가 피살당하던 날 술에 취한 중서를 당나귀 차에 싣고, 중서네 집에 데려다준 장삼이 생각났다. 

진서는 장삼을 찾아갔다. 매우 가난한 집이었다. 장삼은 갑자기 진서가 자기네 집을 찾아오니 당황해하였다. 진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미희가 살해당한 당일, 장삼이 당나귀 차에 중서를 싣고 가는 것을 향간부전용차에서 직접 보았다고 말했다. 
자기가 철우를 시켜 장삼에게 돈을 주면서 입을 막게 했다고 덧붙여 말하였다. 듣고 난 장삼은 이마에서 식은땀이 돋아났다. 그는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눈물을 흘리며 그날 발생한 일들을 말했다. 
“진서 너도 알다시피, 그 무렵, 마누라가 폐암 판정받았잖나, 장날에 당나귀 차로 쌀 팔고 오는 길에 중서가 술에 취해 나무에 기대여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더라. 자전거 타고 내리막 내려오다 엎어져 입술, 코, 이마가 피투성이 되었어. 나는 원래부터 중서와 괜찮은 관계라서 술 취한 그를 당나귀 차에 싣고 집까지 데려다주었던 거야……. 아, 차라리 그날 술 취한 중서를 가만 놔두었으면 혹시 죽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인데. 헉, 헉.”
그의 충혈된 두 눈은 피곤해 보였고 담배를 피우며 담뱃재를 아무 데나 털었다.
“그 이튿날, 난데없이 철우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돈 한 뭉치 준 거야, 모두 새 돈이었어, 그때, 내가 마누라 수술비 구하러 온 동네에 다닌 거를 알았던 것 같아. 철우 말로는 다른 도움은 필요 없고, 응, 경찰이 물으면,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중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만 증명하면 된다고 했어. 나중에 중서가 미희를 죽이었다는 소문을 듣고 난 뒤에야, 철우가 무엇 때문에 내게 돈을 준 원인을 알게 되었어…….”
그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괴로운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중서가 총살당하고 난 후, 죄책감으로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고 악몽에 시달리었어! 내가 거짓 진술만 하지 않았으면 착한 중서가 억울하게 죽지 않을 건데. 친구를 죽여가며 마누라 살리려고 했지만, 결국 마누라도 중서가 총살당한 뒤 얼마 가지 않아 죽게 된거야……. 흑흑.”
 장삼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진서의 두 눈도 촉촉이 젖어 있었다. 진서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천장을 쳐다보며 침통하게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나도 중서에게 복수하려고 거짓 증명까지 했지만, 결국 배 속에 새 생명까지 죽이게 되었어. 그래, 우리 지금도 늦지 않았어. 어서 공안국에 가서 철우가 저지른 죄를 낱낱이 폭로하고 동시에 우리가 철우의 범죄행위를 은닉한 죄를 자수하고 마땅한 죗값을 받자…….”
장삼은 무엇이 생각난 듯 진서에게 다가앉으며 말했다.
“중서가 총살당한다는 소문 듣고, 시신이라도 처리해주려고 동생 경운기를 빌려 총살하는 장소에 갔던 거야, 총살이 끝난 뒤, 병원 구급차가 오더니 다짜고짜 중서와 다른 청년 시신을 싣고 가버렸어, 차에 쓰인 병원 이름을 보니 우리 이모부가 있는 병원이었어.”
“의사인 이모부를 찾아갔더니 수술을 마치고 지금 시신을 싣고 화장터로 간다고 했어. 나는 유골함을 사서 중서 유골을 담아, 중서네 채소밭 언 땅을 파고 임시로 묻어 놓았어. 중서가 무죄로 판결되었으니 정부에 시신 안장 비용을 청구하여 미희 옆에 함께 안치하면 좋을 듯한데. 니, 생각은 어때?”
며칠 뒤 향민정과에서 청구서에 동의했다. 그들은 중서 유골함을 파내어 미희 묘지 옆에 매장했다. 미희와 중서 묘지에서 바라보면 아름다운 호수도 바라볼 수 있었고 멀리 안개 덮인 모래더미도 어슴푸레 보였다. 
이튿날, 진서는 장삼과 함께 공안국에 찾아가서 철우의 살인죄를 덮어 감추고 은닉한 범죄사실을 자수하고, 철우의 범죄 행위를 낱낱이 폭로하였다.

 

   8

모든 증거 앞에서 철우는 자기가 미희를 살해했다고 승인했다. 살인자인 철우는 우리나라의 법률을 따르면 응당 총살해야 한다. 중국의 구십 년대만 해도 부정부패가 당정 기관에 만연할 때였다. 비록 법률은 살인자에게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지만, 돈과 권력의 힘으로 사형을 면할 수도 있었다. ‘
김향장은 조금 전만 해도 앙숙이었던 진서 삼촌을 찾아갔다. 사실 진서 삼촌은 김향장과 한 학교에서 졸업한 동창이었다.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라는 거를 잘 아는 그들은 다시 만났다. 김향장은 결국 ‘돈’으로 두 집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진서 삼촌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게 했다. 한 달 뒤, 철우의 최종 판결이 나왔다. 15년 징역형에 처했다.

어느 하루 저녁, 김 향장이 태평향에 볼일 보러 온 류 부검찰장을 ‘황학루’로 단독 초대했다. 두 사람은 특실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밖으로 나올 때 연인처럼 손을 잡고 비칠거리며 나왔다. 그날따라 밤에 먹장구름이 밤하늘을 뒤덮고 천둥 번개가 쳤다. 캄캄한 밤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김 향장은 택시에서 내려 비칠거리며 집 대문 문고리를 잡아당기려 하는데 흰옷을 입은 한 사람이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의아한 김 향장은 가까이 다가가서 그 사람의 얼굴을 바싹 맞대고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칠흑 같은 밤하늘에 번갯불이 번쩍였다. 고막이 터질 듯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앗!’ 김 향장은 머리카락이 쭈뼛 일어섰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을 쳤다. 시퍼런 번갯불이 또 번쩍이었다. 퍼런빛 속에서 흰머리에 하얀 옷을 입은 흉물스럽게 생긴 여인이 벌건 혀를 길게 빼물고 목에 밧줄을 걸고 서 있었다. 
헌 버선같이 축 처진 여인의 몸에서 냉기가 확 풍겨 나왔다. 기절초풍한 김향장은 혼미하여 쓰러졌다. 한참 후에 차가운 비를 맞고 혼자 기여 일어서서 사람들을 불렀다. 김향장 집 대문에서 목을 매 죽은 늙은 녀자는 중서 어머니였다. 
중서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자 정부에서 중서 어머니를 성(省)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했다. 제정신이 들어오고 중서가 억울하게 죽은 거를 알게 된 중서 어머니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희망도 없이 살 바엔 차라리 옛날 같이 미쳐버리면 더 낫다고 했다. 그녀는 병원에서 도망쳐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식음을 전폐하고 삼 일을 울다가 비 내리려는 캄캄한 밤에 김향장 집 대문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김향장은 중서 어머니가 목매어 죽은 시신을 본 후부터 심장병을 앓게 되었고, 좋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었다.

 

9

 

15년 징역형을 받은 철우는 흑룡강성 북대황 허허벌판에 한가운데 덩그렇게 서 있는 감옥에 감금되었다. 죄수들이 탈옥하다가 늑대 무리의 먹이로 된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일망무제한 들판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눈도 떨 수 없었다. 감옥에서 범인들은 주요로 농사일을 하는데 날이 밝기 바쁘게 들판에 나가 일을 시작하면 저녁녘 어두워야 일을 마친다. 
철우는 비록 농촌에서 자랐지만, 할 줄 아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나간 그가 살아왔던 호화로운 생활은 그를 남달리 불행하게 만들었다. 일할 줄 모르니 욕먹고 맞는 거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같이 일하는 죄수들 대부분 말이 거칠고 행동이 난폭했다. ‘향장 아들’은 그들에게 담배 한 갑보다도 가치가 없었다. 
철우에게 더욱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체포 직전에 감염된 성병 때문이다. 체포 전날 도시에서 친구네 집에 놀러 온 영화배우 같은 미모를 가진 젊은 여성을 꾀어 하룻밤을 같이 잔 것이 화근이 되었다. 체포되어 구치소에서 며칠이 지난 뒤, 소변을 볼 때 불타는 듯한 통증으로 참을 수가 없었다. 
성병이란 진단이 나오자 의사들까지도 멀리했다. 주위에 죄수들도 모두 자기 옆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밥도 같이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나마 구치소에서 노동하지 않으니 성병이 치료된 듯하였으나 가려움은 여전하였다. 
15년 도형을 받고 환경이 열악한 북대황 감옥에 갇힌 뒤부터, 하루도 농사일을 해보지 못한 그는 중노동을 하루에 열두 시간씩, 때로는 야간작업까지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욕먹고 맞아 피가 터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선천적인 남성 호르몬의 과다분비로 화장실에서 더러운 손으로 자위행위를 하고 나면 또 성기가 감염되었다. 때로는 너무 고통스러워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려 물에서 금방 나온 것처럼 흠뻑 젖었다. 그는 종종 알지 못할 분노를 느끼며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다가 눈보라 날리는 밤에 혼자 밖에 나와서 엉엉 울었다. 그 모습은 마치 상처 입은 짐승이 깊은 밤중에 광야에서 애처롭게 우는 소리 같았다. 그는 극심한 우울증과 광장공포증 등 심리적 압박감이 심해지면서 자살할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른 나무꼬챙이처럼 야위어 몸이 극도로 허약해졌다. 그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드러누웠다. 감옥 책임자는 철우 아버지에게 아들의 병이 위중하다는 사실을 전보로 알리었다. 그리고 개인이 의료비를 내어 병원에 입원시켰다.
철우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은 갈고리로 긁은 것같이 아팠고, 이 고통은 잠깐 끝나는 거가 아니라 평생 후회를 동반하며 살아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철우는 한 달 남짓이 입원하고 나서 예전처럼 육체 회복이 되었다. 감옥에 다시 들어가서 15년의 감방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푸줏간에 들어가는 소처럼 진저리를 쳤다. 비록 몸에 병은 들었지만, 한 달간의 감옥 밖의 생활은 옛날 20여 년의 감옥 밖에서의 생활보다, 자유의 가치를 더욱 깊이 감수하게 되었다. 그는 감옥에 다시 들어갈 시간이 가까울수록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그른 행복이 더 부러웠고, 옛날에 녀인들과 놀던 기억들이 다시 새록새록 떠올랐다. 
녀자들을 생각하게 되자 감옥에서 도주하려는 생각이 강력해졌다. 이 허약한 체력으로 병원에서는 도주할 수 없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가면 도주할 기회가 많고 성공할 희망도 크다고, 그는 생각했다. 옛날에 죄인이 감옥에서 도주하다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사례가 있었다고 하니 두렵기는 하였지만, 그 무서움도 잠시였다.
혼자서 도주는 불가능하고 반드시 한 사람을 더 찾고, 늑대를 대처할 무기를 준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방에 다시 들어오자 그는 어느 군부대 간부의 아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왕소군과 가까이했다. 입원하기 전에 왕소군이 도주해서라도 밖에 나가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던 적이 있었다. 
철우가 왕소군에게 자기 생각과 탈옥할 계획을 얘기하자 왕소군도 동의하였다. 먼저 감옥 주위의 지리조건을 알아야 했다. 감옥에서 제일 가까운 인가는 40km이다. 감옥만 나서면 눈으로 끝을 볼 수 없는 갈대와 억새가 자란 허허벌판과 거대하고 음울한 늪지대이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없고 짐승들이 다니는 발자국밖에 없었다. 다른 거는 모두 극복할 수 있지만, 무리를 지어 다니는 늑대와 들개가 가장 두려웠다. 
 초겨울 얼음이 얼기 시작할 때 도주 하기로 계획하였다. 감옥의 경계는 매우 허술하였다. 지금까지 탈옥을 성공한 사람은 없고 대부분 탈옥하다가 중도에서 되돌아오는 실례가 많았다. 그들은 이미 감옥 담장에 개구부를 찾아 놓고 밤이 되어 경찰과 죄인들이 잠이 들었을 때 한 사람에게 도끼와 식칼 하나씩 들고 개구부로 빠져나갔다.
이튿날 조회할 때야 두 범인이 도주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주했던 개구부를 찾았고 경찰 8명이 전신무장하여 군견 두 마리를 데리고 도주한 범인을 잡으러 떠났다. 경찰은 얼마 가지 않아 되돌아오는 그들을 만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경찰은 자기들의 경험으로 힘들지 않게 그들의 흔적을 찾았고 도주한 방향으로 뒤따랐다. 
반나절쯤 뒤를 밟고 따라갔을 때 갈대밭에서 마른풀과 갈대가 넘어지고, 쓰러진 풀 위에 피 흔적이 있었다. 늑대와 격투했던 흔적이 력력했고 새끼 늑대 한 마리가 머리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 죽은 시신을 발견했다. 사체 위에는 까마귀 떼가 까맣게 붙어서 고기를 뜯어 먹고 있었다.
두 시간쯤 흔적을 따라갔을 때였다. 검은 날짐승들이 하늘에서 깃을 퍼덕이며 맴도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까마귀들이 싸우는 괴이한 소리가 들리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야트막한 언덕에 참혹한 광경이 벌어졌다. 듬성듬성 갈대가 자란 잔디밭에 늑대 두 마리가 피범벅이 되어 쓰러져 죽어 있었고, 사체에는 까마귀가 서로 싸우며 피 묻은 살코기를 뜯어 먹고 있었다. 그 옆에는 사람의 두개골 두 개가 있었고 살찐 쥐와 이름 모를 새들이 머리 주위에서 서로 싸우고 있었다. 좀 멀리 떨어진 곳에는 앙상한 갈비뼈와 벌건 살코기가 조금씩 붙어있는 하얀 뼈, 그리고 피가 묻은 도끼와 식칼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늘려 있었다. 격투 흔적을 보아 엄청 많은 늑대 무리와 인간과의 처절한 격투가 벌어졌다는 거를 알 수 있었다.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던 경찰들은 머리를 돌리며 진저리를 쳤다. 범죄자에게 피살당한 시체나 총살당한 시신은 많이 보았지만, 늑대와 짐승들에게 잡아 먹히는 비참하고 끔찍한 광경은 처음으로 보았다…….

 

10

철우가 탈옥하다가 늑대에게 처참하게 물려 죽은 뒤에 김동형 향장은 이틀이 멀다 하게 심장병이 발작하여 쓰러졌다. 철우가 탈옥하다 죽은 소식은 그때까지도 누구도 몰랐다. 김동형 향장은 아들 문제로 향장직에서 물러났지만, 능력이 검정 된 간부라며 ‘향기업판공실’ 주임직을 맡게 되었다. 그의 끝없는 탐욕은 멈출 줄 몰랐다. 석산(石山) 하나를 개광(開鑛)하도록 허가를 내어주면, 뒷거래로 거액의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인들과 주민들의 공분이 커졌다. 많은 주민이 문청시 규률검찰 위원회에 김동형이 직위를 리용하여 금품을 수수한 뢰물죄를 여러 번 고발하였다. 
문청시 검찰청에서 김동형의 재산을 동결하고 재산 래원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조사 결과 검찰관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그마한 향에서 얼마나 많은 뢰물을 받았길래? 장춘시와 길림시에 처제, 처남, 집식구들의 명의로 아파트 6채나 샀다. 문청시 정부에서는 김동형의 모든 직무를 해고하고 공산당 조직에서 출당시켰다. 문청시 검찰청과 법원에서는 불법으로 수수한 뇌물과 금품을 모두 억류, 회수한 동시에 김동형에게 8년 도형을 처했다. 철우 어머니도 정신병자가 되어 고급 옷을 걸치고 온 거리를 다니며 경찰을 만나면 욕하고 난동을 부렸다. 김동형은 감옥에 감금된 지 반년 후, 추운 겨울에 음침한 감옥에서 심장병으로 생을 마감했고 한 줌의 재로 되어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졌다...

원고를 다 읽고 난 나는 전신에 소름이 죽 끼치었다. 어릴 때, 철우는 착실하고 과묵한 아이였다. 돈과 권력은 그를 죄악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을 뿐만 아니라, ‘미꾸라지 한 리가 온 강물을 흐리게 한다.’고 철우 하나 때문에, 무고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가정이 파탄되고 억울하게 생죽음을 당했다. 자기 가족과 친척도 끝내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무엇 때문에 이런 비극이 벌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원인을 소상하게 밝히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책을 꼭 출판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철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이철아, 중심사상이 돌출하고 문장도 세련되게 잘 썼는 것 같아, 조금만 수정하면 교육 가치가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나 정말 읽어 내려가면서 분노했고 슬퍼하고 안타가 왔어. 그보다 책 속에서 담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사람들이 법을 배우고 법을 지켜야만 평화롭게,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이 작품을 꼭 출판하여 세상에 알리자, 그리고 이 실화문학을 출판하는 경비를 모두 내가 부담할게…….”
이철은 벌떡 일어나 나의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이 글썽해서 말했다.
“수일아, 정말 고맙다. 나, 이 책을 쓰는데 엄청 많은 심혈과 시간을 투자했어. 너도 알겠지만 나 혼자 월급으로 아기를 키우며 생활하다 보니 여윳돈이 없어, 이 책을 어떻게 출판할 것인가, 경비 때문에 나 혼자 고민을 많이 했던거야…….” 

조금 후 이철이 아내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올렸다. 
미옥이 사육하는 토종닭은 정말 옛날 어머니가 집에서 기루던 토종닭 맛이었다. 이철은 일어서서 뒷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잔잔한 파도가 이는 호수가 한눈에 안겨 왔다. 윤기가 흐르는 호수에 갑자기 돌개바람이 일자 물이랑이 대팻밥처럼 돌돌 말아 사방으로 굴러갔다. 
한참 술을 마시다가 이철이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너 어찌 와이프랑 갈라지게 되었어, 지금 애인 있는 거야…….”
나는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배속에 내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느끼었다. 
“모두 지나간 일인데, 다시 얘기를 꺼내려고 하니 가슴이 아프네, 사실 내 와이프는 미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뻤어……, 한국에 가서 호프집에서 일하다 한국 남자와 눈이 맞게 되었고……, 우리는 며칠 동안 많이 다투고 싸웠어. 비 오는 밤이었는데 나를 보고 다시는 자기를 찾지 말라며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린 거야, 밖에서 한 남자가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더라구. 그 뒤로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어……. 우리 가슴 아팠던 얘기 그만하자, 응.”
“그래, 내가 너 아픈 과거를 일부러 물어본 것이 아니고 와이프와 확실하게 갈라졌나 알아보려고 그랬어. 오해하지마. ㅎㅎ”
이철은 자기 아내를 쳐다보고 눈을 깜빡거렸다. 
나는 호수 건너편을 가리키며 이철에게 물었다. 
“이철아. 너 생각 나는지 모르겠다. 미희 오빠 말이야, 내 어린 시절 호숫물에 빠져서 허위적 거릴 때 물에 뛰어들어 구해주었잖나, 그때, 만약 미희 오빠가 구해주지 않았으면 벌써 저세상 사람 되었을 거야. 생명 은인인데 한번 만나 보고 싶다. 그래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노? 미희 여동생도 이제는 시집갔제……?”
이철은 얼굴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

 “지금 미희 오빠와 미옥이 사는 것이 말이 아니야, 아직도 그 옛날 낡고 허물어져 가는 토 집에서 살고 있어, 하루아침에 여동생이 비참하게 죽고 집기둥이 무너지자 오빠와 여동생은 생활난으로 허덕이게 되었고 상호(미옥오빠)는 술로 나날을 보냈제. 얼마 가지 않아 그만 뇌졸중으로 쓰러졌어…….” 
“공부 잘하던 미옥이는 언니가 처참하게 죽게 되자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우울증으로 공부도 그만두었어. 몇 년이 지난 뒤, 엎친 데 덮친다고, 외지에서 돌산에 일하러 온 놈이 말이야, 미옥이를 꼬셔 동거하다가 한국 간다면서 떠나버렸어. 그 후로는 다시는 오지 않았어…… .” 
“미옥이 지금은 정신상태도 많이 좋아진 거 같아. 언제부터 수의사獸醫師 기술을 배워 토종닭을 기르는데 돌산과 사장(沙場)의 민공들에게 없어서 못 팔 정도야. 오늘 우리가 먹은 것이 미옥이가 키운 토종닭이거든, 진짜 옛날에 집에서 키운 토종닭 맛이 나잖나. 그렇제! 잉.”
 “그래 우리 식사 마치고 조금 쉬었다가 미희 오빠네 집에 가보자. 나도 오랫동안 못 가보았어…….” 

 나는 이철과 함께 호수를 돌아 미옥이 집으로 갔다. 작은 실개천을 넘어서자 허물어졌는지 오래되어 무덤같이 쌓여 있는, 중서네 옛 집터가 두 눈에 들어왔다. 을씨년스레 주춧돌이 튀어나온 집터에는 얼마나 많은 추억이 묻혀 있는가. 옛날에 조무래기 친구들이 중서네 집에 가장 많이 놀러 갔다. 집 뒤, 왕가네 비탈밭에서 참외를 서리하여 중서네 집에서 먹다 발각되어 엉덩이를 맞고 돈까지 물어주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쥐들이 욱실거리는 쑥대밭이 되었고, 손가락만큼 굵은 쑥대마다 하나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주황색 석양빛을 안고 한 방향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 넓은 채소밭에도 쑥대며 엉겅퀴, 같은 억세고 질긴 풀들이 서로 엉켜 있었다. 이따금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쑥대밭을 스칠 때, 아직 억새와 쑥대에 붙어있는 마른 잎들이 서로 스치며 휘휘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옛날 어린 친구들이 장난치며 놀던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메아리처럼 내 귀에 들려 오는 것 같았다. 
지금은 저 무덤 같은 황폐한 옛집터에 추억 이외,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이곳에서 살던 한 젊은 생명은 무모하게 억울하게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나는 쑥대가 무성하게 자란 흙더미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미옥네 초가집은 몇십 년 전의 모습과 거의 변한 것이 없었다. 싸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은 너무 낡고 오래 수리하지 않아 앞으로 엎어져 호수에 뛰어들 거 같았다. 그때, 집 뒤로부터 털이 듬성듬성 빠진 쥐 한 마리가 비칠거리며 마당 가운데서 기어갔다. 출입문 옆에 한쪽 다리가 없고 머리가 허연 아저씨가 쪽걸상에 앉아 저 멀리 저물어가는 석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은 암담하고 입은 찌그러진 초가집 출입문처럼 오른쪽으로 비뚤어졌다.
“아이구, 형님 안녕하세요, 이전에 여기서 공부했던 수일입니다. 옛날 내가 물에 빠졌을 때 형님이 구해 주었잖나요. 기억나지요?”
“이거 누꾸? 수일이라고? 잘 못 알아보겠다. 지금 어디서 살고 있노?”
“네, 한국에 있어요.”
이때였다. 이철이 다급한 목소리로 미희 오빠에게 물었다.
“헝님, 미옥이 와, 누워서 진땀을 흘려요?”
“아까, 닭장을 수리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졌는데 팔이 아프다고 해서 된장 붙여 놓았제…….”
나는 미옥이 방에 들어섰다. 음침하고 컴컴한 방에 한 사람이 눈을 감고 누워있고 신음이 들려왔다. 엉클어진 머리카락이 파리한 옆얼굴과 귀에 어지럽게 덮여 있었다. 옆으로 쪼그리고 누워있는 모습은 비틀어진 무우말랭이처럼 앙상하고 메말라 보이었다. 그 애처로운 모습에서 아픈 과거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이철이 퉁명스럽게 미옥 오빠에게 말했다.
“힝님, 미옥이 저렇게 놔두면 어떡하려고 거래요, 내가 택시 불렀게요, 향병원에 먼저 가서 치료하자요.”
조금 후, 택시가 도착했다. 이때, 갑자기 이철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학교에서 급한 일이 있다고 빨리 오라고 했다.
“수일아, 나는 일이 있어 학교에 가야하니까, 니가 미옥이 대리고 병원에 가면 안 돼……?”
“응, 그래, 내가 병원에 대리고 갈게, 너 가서 일봐…….”
나는 미옥이 옆에 다가가서 그의 허리에 손을 넣고 일으키려고 했다. 아픈 팔을 보니 많이 부었고 된장 냄새가 진동했다. 그녀는 너무나 연약하여 부딪치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았다. 나는 미옥을 일으켜 업었다. 그녀를 업는 순간 가슴이 너무 아팠다. 혼미할 정도로 아픈 사람에게 된장만 바르고 있으니…… 이윽고 그녀는 눈을 떴다. 눈, 코 이마는 미희를 많이 닮았다. 
“아저씨, 누구예요.”
“나, 옛날에 여기서 공부했던 수일이 오빠야. 팔꿈치가 이렇게 많이 부었는데 많이 아프지?”
잔뜩 찌푸린 얼굴이 밝아지며 그녀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수일 오빠라고요. 만나자마자 폐를 끼쳐 미안해요.”
병원에서 사진을 찍어보니 오른쪽 팔꿈치 안쪽 인대가 파열되었다고 하였다. 2주는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병원에 보증금을 내고 2주 동안 미옥 옆에서 간호하게 되었다. 미옥 대신 닭을 먹이고 밥을 해서 병원에 나르고, 그보다 현장에서 일하는 민공들에게 한꺼번에 닭 몇 마리씩 팔 때가 가장 재미났다. 나는 문뜩 그 지긋지긋한 한국 가지 말고, 미옥이에게 양계하는 기술을 배워 대형 양계장을 운영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중국에 와서 가장 바빴던 2주였다. 미옥이 퇴원하는 날이다. 이철과 아내도 찾아왔다. 
이철 아내는 놀라며 미옥이 병원에 있는 동안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고 했다. 퇴원 절차를 마치고 네 사람은 택시를 타고 호수가 쉼터에 갔다. 우리는 금방 파랗게 새싹이 돋는 초록색 잔디밭에 둘러앉았다. 신록들이 내뿜는 냄새는 향기롭고 청량하였다. 호수에 오리 행렬이 물 위로 미끄러지고 물속에 잠긴 봄의 활기찬 풍경은 잠잠히 하늘을 읽고 있었다. 
 이철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웃으며 말했다.
“하늘이 두 사람에게 선사한 2주 시간에, 서로 진솔하게 대화를 잘 나누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우리 집사람도 미옥과 대화를 해보았고 응, 나도 수일이와 진지하게 얘기해 보았는데, 두 사람 잘 어울리고 결합하면 잘 살 거 같아…… ㅎㅎ.”
그는 나와 미옥이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또 말을 이었다.
“그럼, 수일에게 묻겠는데, 앞으로 미옥이와 사귀어보면 어때?…….”
나는 이철의 물음에 미옥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뜨거웠고 젊은 피가 두 볼에 발그스름하게 피어올랐다.
“미옥이 받아주면 내사 좋지, 그저 우려되는 거는 내 나이가 좀 많아, 미옥이가 꺼릴까 봐 걱정이제, 뭐…….”
이철이 아내가 살짝 웃으며 미옥이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녀는 윤기 있는 까만 눈을 빛내며 생각 밖으로 대담하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저는 수일 오빠가 나를 좋아하면 동의해요”
“하하하, 호호호”
네 사람의 웃음소리에 호수 가에서 졸고 있던 집오리들이 놀라서 풍덩, 풍덩! 물에 뛰어들었다. 이철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일은 이미 앞날 계획까지 다 짜 놓았어. 어서 발표해봐…….”
나는 머릿속으로 이미 생각해놓았던 계획을 말했다.
“사실 한국에서 와이프 내 곁을 떠난 뒤, 항상 우울했고 한 번도 이번같이 행복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던 거야. 이번에 한국에 가서 정리하고 오면 다시는 안 갈 거야, 일단 중국에 돌아오면 먼저 간단한 결혼식을 올리고, 새집부터 지어야 하겠어. 집 짓는 돈은 모두 내가 부담할거구……, 앞으로 중서 집터를 사서 양계장을 확대 운영할 계획이야, 비록 우리 두 사람 지난날 아픈 상처가 있었지만, 앞으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 살거야……. 미옥 오빠도 우리가 모시면서……,”
이철 안내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리고 아들딸 낳고 잘 살아야지요. 호호호.”

이때였다. 이철이 뒷산을 바라보다가 얼굴에 웃음기를 거두고 천천히 말했다.
“오늘같이 날씨도 화창하고 미옥이도 좋은 인연을 맺었으니 미희와 중서 찾아보러 가자, 다들 어떻게 생각 해?”
“그래, 처형과 친구 보러 가는데 내가 매점에 가서 술과 과일 사올께, 중서 자슥, 오랫동안 술도 못 마셨겠다. 잠깐 기다려. 응.”

호수 북쪽으로 야산을 넘어 작은 계곡을 지나면 높은 산이 있다. 돌과 바위가 많은 산에 나무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산 중턱에 중서 묘지와 미희 묘지가 나란히 있었다. 
우리는 술과 과일, 과자, 사탕을 들고 미희와 중서의 묘지 앞으로 다가갔다. 둥그스름하게 생긴 봉분 앞에는 자그마한 비석이 오뚝 서 있었다. 봉분 주위에는 푸른 풀들이 융단을 깐 듯 부드럽게 펼쳐져 있고 자그마한 보랏빛 풀꽃들이 묘지 위에 여기저기 조용히 앉아 있었다.
더없이 밝고 투명한 햇살 아래 두 묘지는 무섭게 고요했다. 너무 조용하여 안에서 무엇이 벌떡 일어나 뛰쳐나올 거 같았다. 그러나 묘지의 주인은 친구, 동생이 찾아왔어도, 한과 억울함을 안고 고요 속에 묻혀, 신이 준 침목 이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술을 붓고 절을 올렸다. 미옥이는 벌써 울며 자기의 지나간 슬픔과 언니의 한스러운 죽음을 눈물로 쏟아 냈다. 나도 가슴 밑바닥부터 점차 차오른 아픔과 슬픔, 안타까움이 거센 분류가 되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네 사람의 눈물이 푸른 잔디 위에 떨어져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나는 술을 묘지에 뿌리고 엎드려 절을 하며, 앞으로 우리들의 삶에서 중서와 미희처럼 억울하고 처참한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말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때 나는 산 아래에 고요히 누워있는 호수에 눈길을 돌렸다. 호숫가 풀숲에서 이름 모를 검은 새 두 마리가 호숫물을 차고 날아올라 검푸른 산을 넘어 아득한 하늘 끝으로 사라지던 풍경이 보이었다. 
(끝) 2021년 4월.

연변문학 9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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