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複合象徵詩 감상

안개의 해부도(2)

정하나

 

 

호랑이가

씨비리바람 올라타고

성에꽃 창문 노크할 때

사념 부푼 가을부채

무지개로 피어난다

길바닥에 얼어붙은 존엄의 작은 주먹

산호조각 등댓불 밝게 켜둘 일이로다

깨진 그릇 부여잡은 백로의 날개

갈대 물고 그림자 잡는

잠자리의 한숨 소리

광솔 되여 깊이깊이 잠들어야 하나

달빛 걸어둔 우주에

개나리 고은 치맛바람

고요 다독여 줄 이유가

향기 모아 새벽을 연다

 

 

 

시간의 목에 걸린 열쇠

놀음이 훔쳐갔다

 

고깔모자 쓴 바람의 반란

폐품 수구소 문어귀에 향기 재워

침묵을 일으켜 세운다

 

하늘나라 저 멀리

미소 짓는 우주의 영전 앞에

노을빛 후회

 

아빠라는 이력서에 별빛 들어

낙방의 날인 찍는다

 

기억 삼킨 뒷안길에서

구름의 입덧

서성이는 우윳빛 하늘에

아픔이 냇물 되어

 

기다림 흐른다

고독이 풀린다

 

 

참회

 

밤이슬 밟고 온 머리맡에

달빛 풀어 놓는다

 

별빛 묻은

선반 위 먼지

소매가 쓸어 담는다

 

때국물 고인 방안에서

길손의 손더듬

 

항아리도 입 벌리고

못본 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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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複合象徵詩 해설

안개의 대안에 미소 짓는 메아리

정하나의 詩世界를 열어 본다

 

중국 연변조선족복합상징시동인회 회장

詩夢잡지사 사장 · 발행인

김현순

 

 

삶의 시작은 어디고 끝은 어디까지일까. 안개 덮인 삶 속에서 반짝이는 희망을 찾아 마음을 갈고 닦는 淨化의 작업이 바로 고달픈 인생을 값진 보석으로 빛나게 하는 일일 것이다. 복합구성을 이루고 있는 우주의 큰 가르침 속에 무질서한 나열을 딛고 세상을 헤쳐 나가는 정나하님의 詩集 안개의 해부도가 지금 지구의 복부에 걸리어 있다.

이제 그 가슴을 문지르면서 정하님의 안개 속 팔딱이는 세포들을 현미경 걸고 살펴볼 이유가 다가서고 있다.

어려서부터 삶의 질고에 부대끼던 가난의 동년을 거쳐 파란만장의 청춘의 역을 지나 불혹의 계절을 맞이 한 정하나님의 안개의 해부도는 인간 삶의 축도이기 전에 예술의 극치에로의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화자 본인의 삶의 좌표의 흔적이기도 하며 판도라의 궤에 갇힌 희망의 씨실이기도 하다.

 

호랑이가

씨비리바람 올라타고

성에꽃 창문 노크할 때

사념 부푼 가을부채

무지개로 피어난다

 

안개의 해부도의 첫 부분이다.

시인의 생평 삶에 대한 갈구의 자세는 바로 호랑이가 씨비리바람 올라탄듯한 장엄과 웅장함이며 어려운 삶의 현장은 화자에게 성에꽃 핀 창문과 같다. 그런 현실의 창문을 노크하는 시인의 정감세계는 사념 부푼 가을부채가 되어 무지개로 피어난다. 삶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가 돋보이는 독백이 아닐 수 없다.

 

길바닥에 얼어붙은 존엄의 작은 주먹

산호조각 등댓불 밝게 켜둘 일이로다

깨진 그릇 부여잡은 백로의 날개

갈대 물고 그림자 잡는

잠자리의 한숨 소리

광솔 되여 깊이깊이 잠들어야 하나

 

비록 화자의 삶의 경지는 비참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으나 그것에 대한 시인의 자세는 산호조각등댓불로 환히 밝혀두려는, 악착스럽고 고집스런 백로의 날개 짓이며 그것은 또한 갈대 물고 그림자 잡는 잠자리의 한숨 소리로 광솔 되어 어둠속에 깊이깊이 잠들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달빛 걸어둔 우주에

개나리 고은 치맛바람

고요 다독여 줄 이유가

향기 모아 새벽을 연다

 

이 시의 마지막 결구로 되는 이 부분에서는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동경을 개나리 치맛바람향기 모아 새벽을 여는동작으로 그 화폭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시를 쓸 때 우선 포착하게 되는 것은 시의 내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내함의 우렬에 따라 시의 무게정도가 가늠된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내함이라 하여도 그 표현이 적절치 못하다면 그냥 내용덩어리내지 삶의 귀퉁이에 대한 생활용어 집합으로밖에 남을 수 없다. 이러한 특성들이 곧 바로 작품의 예술성을 추구하게끔 강요하는 것이다. 예술성이란 그것에 대한 표현기교에서 비롯됨을 세상은 다 알고 있는 이치이다. 그만큼 표현기교는 작품의 사활(死活)을 결정짓는 자못 중요한 인소로 되고 있다. 화자는 이 면에서 그 기량을 재치 있게 다루었는바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상징은 세상이 인류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이라고 했다. 상징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 인간은 상관물을 통한 이미지의 변형을 빌어 복잡한 내면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핵심은 변형의 표현이다.

변형이란 기존되어 있거나 기성된 상태의 것에 대한 외연과 내연의 불가사이 한 이질적 표현을 실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시의 경우 그 변형된 사례들을 모두어 보면 다음과 같다.

 

호랑이: 씨비리바람을 올라타다(바람을 올라타다니... 불가사의 한 표현이다)

부채: 사념으로 부풀다

주먹: 길가에 존엄으로 얼어붙다

산호조각: 등댓불로 켜두다

백로의 날개: 깨진 그릇 부여잡는다

그림자: 갈대를 물다

잠자리 한숨소리: 광솔 되어 잠이 들다

우주: 달빛 걸어둔 우주이다

치맛바람: 향기 모아 새벽을 연다

 

상기의 이런 변형된 이미지들의 이질적 표현이 바로 화자의 응어리진 내심세계를 낯선 표현으로 꿈틀거리게끔 함으로써 세상의 자극을 긁어주고 있는 것이다.

정하나님의 이와 같은 삶에 대한 지극한 집착과 역경의 해탈을 위한 모지름은 많은 작품들에서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고통”, “새벽”, “눈 내리는 고갯길”, “섭리의 하늘등 작품에서 절실히 체현되고 있다. 하지만 일일이 사례들을 분석하지 않고 고통이라는 시 한수를 더 살펴 보기로 하자.

(고통全文 )

정하나님의 시의 세계는 윗 시와 같이 회색의 잿빛 삶으로 충만되어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충격이 컸던 동년의 아픈 기억일수도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철모르던 동년시절 뜻하지 않게 억울한 누명으로 투쟁받던 아빠에 대한 쓰라린 기억의 시점에서 화자는 감정을 승화시켜 삶의 질고에서 해탈의 구심점을 찾는 정감의 세계를 변형의 화폭으로 可視化 둔갑시켜 펼쳐보이고 있다.

천진난만의 시름없던 동년에 대한 회포의 정을 화자는 시간의 목에 걸린 열쇠/놀음이 훔쳐갔다는 해학적 표현으로 발설 한다. 그러면서 철없던 시절 아빠에 대한 다 하지 못한 효성에 대한 회의(悔意)의 정감을 놀빛 후회라고 視覺化 하여 교대한다.

기억 삼킨 뒷안길에서/구름의 입덧이라는 표현 또한 절묘하기 그지 없다. 여기에서 구름은 화자의 암울한 심정의 代辯物이라고 볼 수 있는데 거기에 또 입덧까지 함으로 하여 회의(悔意)적 정감의 크기와 깊이와 여운을 확장시켜주는데 유력한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픔은 냇물이 되지만그런 기다림 속에서 고독은 풀리고 서정적 주인공은 점차 성숙에로 치닫게 된다.

삶의 철리와 섭리가 녹아들어 있는 이 한수의 시는 쉽게 읽혀지면서도 생동한 형상의 변형으로 심상을 그려보이고 있기에 독자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데 크게 유조한 특점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정하나님의 시의 세계는 해학과 유머적 색채도 가담가담 끼어 글의 지나친 엄숙성을 회피하면서 전반 시의 흐름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다.

(참회全文 )

이 시는 정지된 듯 한가한 공간의 단면에 대한 묘술로써 언젠가 게을렀던 삶에 대한 반성이의 성찰이다. 시속에 흐르는 이미지들의 장면적 흐름은 읽는 이의 취미를 부쩍 끌어당긴다. 다시 살펴보자.

밤이슬을 밞고 왔다. 누가? 생략되었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나일 것이다. 그런 나의 머리맡에 달빛 풀어놓는다 누가? 역시 생략되었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세월의 작간일 것이다.

별빛 묻은 선반위 먼지”, 여기에서 선반은 노동(勞動)의 대명사이다. 그런데 그 위에 먼지가 끼었으니, 잠시 잠깐의 한가함을 뜻하며 그것을 소매가 쓸어 담으니 다시 팔 거두고 나서는, 약동하는 삶의 시작을 뜻하기도 한다.

세상을 가꾸는 일은 어느 누구의 몫인 것만은 아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한 집착과 영위는 세상 모두의 몫임을 깨우치는 경상(景象)때국물 고인 방안을 손더듬하는 길손들의 행위로 변용하여 상징의 목적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항아리는 입 벌리고 못본 체 한다”. 그렇다면 항아리는 대체 누구를 뜻하는 것 일가. 항아리는 의심할 나위 없이 세상 자체를 뜻할 것이다. 인간이야 어찌 하든 말든 세상은 존재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런 세상에 대한 세탁과 정화를 자칫 잊고 산 삶에 대한 참회의 목소리가 이 작품에 엿처럼 녹아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정감의 기복이자 크라이막스이며 종결로 되고 있는 항아리도 입 벌리고 못본 체 한다는 표현은 그야말로 웃음이 쿡 터져 나오는 아이러니한 해학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열린 글로벌시대, 복잡다단한 인간의 진실한 내면세계를 무의식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질서를 잡아 변형의 能動的可視化로 펼쳐 보이는 작업이 바로 미래지향적인 복합상징시의 사명이라고 할수 있다.

금후 정하나님의 주렁찬 창작성과들이 더욱 밝은 별이 되어 어둠을 헤쳐가리라 굳게 믿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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