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철(경제학 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교육과학부 자문관)

요즈음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이동과 활동이 제한적이지만 출퇴근 시간대에 젊은 사람들이 지하철역 부근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게 느껴지고 한편으로 부러운 생각이 들곤 한다. 필자는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35년 동안 주중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 생활을 하였다. 정규직으로 일터를 떠났지만 대학 객원교수와 프리랜서로 현역 못지않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전국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직업 관련 교과서 대표 집필자뿐만 아니라 직업연구의 대표적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직업능력연구원(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오래 근무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직업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어느 직업이 미래 유망한 직업입니까? 어느 직업이 좋은 직업입니까?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구할 수 있나요? 사람마다 다른 인성, 학력 수준과 삶에 이력 등이 다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응답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고 동감을 얻기 위해 쑥스럽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곤 한다. 중학교 졸업 후 재수할 때 짧은 기간이지만 신문배달과 미국 유학 중 초기 긴 여름방학 동안에 식당 주방보조원, 그로서리 캐쉬어, 햄버거가게 보조원, 시립도서관과 미국 대기업 사무실 청소원 등을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 일을 했다. 힘들고 범죄율이 높은 무서운 지역에서 일을 하면서 공부하기위한 소득창출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했다. 돈이 중요한 일에 대한 동기부여였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다.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은 것이다. 텍사스 주(州) 댈러스 다운타운 흑인 밀집지역에서 일하면서 교과서에는 배울 수 없는 그들의 문화를 많이 배우게 되었다. 미국 35대 대통령(1917년 5월29일~1963년 11월22일)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가 암살당한 근방이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연구원 생활하면서 다문화와 외국인 근로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댈러스 아르바이트 경험이다.

사회 저명인사들의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는 말에 지속적으로 필자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이어서 하는 직업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여론조사 기관 갤럽에 따르면, 전 세계 직장인들 85퍼센트가 직장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 채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불만족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직장인들이 현재 일터에서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이런 현상은 낮게 나타났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좋은 직업은 높은 임금수준,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으며, 경력 사다리에 있어 성장 가능성도 높고 만족스러운 일과 삶의 균형을 제공하는 직업이다. U.S. News는 이러한 척도를 이용하여 2021년 미국에서 최고의 직업 100개 순위를 선정하였다. 물론 최고의 직업과 별도로 높은 급여를 받는 직업도 같이 발표하였다. 좋은 직업 중 1위에서 40위까지 직업 중 대부분은 보건·의료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다. 이외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2), 통계학자(6), 데이터 과학자(8), IT 관리자(12), 정보 보안 분석가(15), 재무 관리자(17), 기계 엔지니어(23), 재정 고문(23), 지도제작자(25), 비행기 조정사(26), 운영연구 분석가(30), 마케팅 매니저(31), 풍력터빈 기술자(34), 변호사(38) 순이다.

그러면 연봉이 많은 직업은 어떤가? 마취과 의사(1), 외과의사(2),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3), 산부인과 의사(4), 치열교정 전문의(5), 치아 보철의(6), 정신과 의사(7), 내과 의사(8), 소아과 의사(9), 마취 간호사(10), 치과 의사(11), 석유 엔지니어(12), IT 관리자(13), 비행기 조정사(14), 마케팅 관리자(15), 재무 관리자(16), 변호사(17), 족부 전문의(18), 판매 관리자(19), 약사(20), 비즈니스 운영 관리자(21), 검안사(22), 보험계리사(23), 정치학자(24), 자산관리사(25) 등이다. 이와 같이 연봉이 많은 직업은 대부분 의사, 간호사, 약사 등 보건·의료 관련 직업이지만 한국의 고액연봉 직업과는 다소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은 ‘2019 한국의 직업정보’ 보고서에서 570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재직자 1만7,143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직업에서 요구하는 지식, 성격, 임금, 일자리전망 등을 조사하여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직업 세세분류 수준에서 직업 만족도를 분석한 결과, 직업 만족도가 높은 상위 직업은 1위 치과의사(34.53), 2위 비뇨기과의사(34.17), 3위 한의사(33.47), 4위 가정의학과의사(33.37), 5위 대학교수(33.27), 6위 안과의사(33.17), 7위 보건·의료 관리자(33.03), 8위 초등학교교장 및 교감(32.93), 9위 변호사(32.93), 10위 산부인과의사(32.90), 11위 감정평가사(32.70)순이다. 이비인후과의사(32.63)는 12위, 판사(32.47) 15위, 약사(32.43) 16위, 방사선과의사(32.23) 19위, 외과의사(32.20) 20위, 내과의사(31.97) 21위, 성형외과의사(31.83) 26위 등의 순위로 나타났다. 직업 만족도에서 보건·의료와 관련된 직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8년간 5,236개 직업이 늘어, 총16,891개 직업이 등재돼있다. 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다. 그러나 많은 직장인들은 대부분 자기가 꿈꾸었던 일이어서, 또 일이 좋아서 일터에서 일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수입과 생활의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경우일 것이다.

그럼, 100세 시대에 어떻게 직장생활을 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즐기면서 일을 하면 좋겠다. 현재의 일에 충실하면서 몸값을 올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지속적으로 찾아가면 어떨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즐거운 마음가지고 일을 한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보람된 일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현재 하는 일을 충실히 하면서 업무역량 증진과 긍정적인 자세로 나아간다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상외교 제1호 중화민국(현 대만) 초대 총통 ‘장개석(蔣介石)(1887년 10월31일~1975년 4월5일)’에 대한 이야기를 필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이름도 나라도 생소한 사람 이야기를 왜 자주하는지 그 당시에는 무척 의아해했다. 장개석은 어릴 적 사무실과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어른들의 심부름을 하는 사환이었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어린 장개석은 어른들이 사무실 근무를 시작하기 전 사무실과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를 오랫동안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누가 이런 일을 하는지 궁금해 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렇게 깨끗한 청소를 한 소년이 장개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새벽 청소 를 하면서 자기 미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장래 목적달성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이런 일들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장개석이 9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한 후 가정 형편은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모친은 재혼하지 않고 어린 장개석 남매를 양육하였다. 모친은 전형적인 현모양처로서 불교신앙이 깊고 자녀들 교육에 엄격하며 매우 근면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필자 아버지가 어린 자식에게 장개석 이야기를 자주했던 것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성실·근면하게 생활하기를 바라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해보기는 해봤어” 라고 정주영 회장이 즐겨 쓰던 말이다. 어떤 일이든 해보면 의외로 잘 풀리고, 잘 되기도 하고, 하다보면 목표로 하던 그 일이 아니더라도 다른 쪽으로 일이 풀리거나 해결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일은 해봐야 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주영은 1915년 11월25일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이 현대화되는 과정에 큰 업적을 남긴 창조적이며 글로벌 기업가이다. 정주영은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농사를 도왔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차례 가출을 반복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단돈 47전을 들고 친구와 함께 청진으로 떠난 첫 가출과 소 판돈 70원을 들고 서울로 내달렸던 두 번째 가출에서 그의 '안 되는 일은 없다'는 신조는 시작됐다. 결국 정주영은 무려 4번째 가출에 성공하여 1933년 19살의 나이로 인천 중구 신포동에 위치한 인천항에서 부두하역과 막노동을 하다가 경성(서울)으로 상경하여 이듬해 복흥상회라는 쌀가게 배달원으로 취직했다. 이런 난관과 많은 실패를 경험한 정주영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현대’를 만든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한다. 통계청 ‘2021년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64세 고용률(OECD 비교기준)은 67.2퍼센트이지만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5.3퍼센트로 나타났다.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5.4퍼센트로 전체 실업률 2.7퍼센트에 2배 수준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많은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운 지금 상황이다. 장개석과 정주영은 작은 일, 사소한 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맡은 일을 즐기면서 했던 사람이다. 이들이 어릴 적 난관을 극복하고 힘든 일을 하면서 몸값을 올린 것처럼 발전 지향적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지속적으로 찾아갈 필요가 있다. 현재 급여가 적고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이 크다고 할지라도 열정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1년, 2년, 3년 후 자기가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직장에서 일을 경험하지도 않고 좋아하는 직업, 즐거운 직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머리가 영특한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직장생활에는 정년퇴직이 있지만 우리 인생에는 정년이 없다. 즐거움과 책임감을 지니고 일을 하고 있는 한 우리는 지금도 현역 활동가이다.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면서 하기 란 쉽지 않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맡은 일을 즐기면서 수행하는 행동은 본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아름답게 보인다. 현재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즐기면서 일’을 하면 어떨지! 우리 주위에서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믿음직하게 보인다. 그들은 이 가을, 국화가 향기를 전하는 것 같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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