複合象徵詩 감상

지문指紋 (외 3수)

정두민

 

 

혈형이 빚어낸 진액의 사연에

부서진 시간 한 쪼박 스며드는 순간

몽따쥬의 종이장이 동공으로 확대 된다

존엄을 뛰쳐나온 마주치는 댓가

함축된 모든 것이 손가락 끝에 방아쇠를 건다

재일 수 없는 사투가 피 흘리며

숨어든 신경선

승부의 재판에는 색깔이 층계 딛고

순번 딲아 전화를 건다

또 다른 계약서가 줄지어 이정표에

날인 찍으며, 아침의 등어리에

때 묻은 입술을 갖다 댄다

 

 

어둠의 색

 

저녁노을의 숨소리가

어둠에 질식한

태양의 발자국 쪼아 먹을 때

성형수술 한 바람이

지평선 파도에 들먹거린다

 

찻잔 속에 쌓여진 검은 비등점

고요의 기둥에 물소리 비끌어 매어두면

깎아버린 손발톱 무게들

분신자살한 별찌의 빈소를 짓고

추모의 눈물을 휘뿌려도

달은 아랑곳없이 태연함을 바른다

 

유언으로 남겨놓은 혜성의 간막을

이식수술 받아

광명 찾은 늙은 반딧불

잠자는 허공에게 해몽을 서두른다

 

 

전화 받지 않는 이

 

있다면 여자의 감옥에

겨울이 갇혀있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첫눈 향기에 입술 갖다 대던 순간

펜 끝의 탈출을 시도하던 글자들 반역이

꼬드겼기 때문이었다

잔에 담긴 언어의 외도()

탁월한 선택은 슬픔이 고민하고

웃음 비비는 그젯날 제스쳐(gesture)

레스토랑 마담의 손톱눈에

가시 박혀

어둠 찔러 주기 때문이었다

없다면 거짓말이 기억 찢어

바람벽에 향기 발라둘 신화로

잠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빚어낸 액체의 분말에서

수탉의 홰치는 소리

굴러 나온다

 

맥박의 뿌리에 꿈 매달은

우담화(優曇) 향기

 

새벽이 딛고 간 발자국마다에

드라마의 가슴 문질러 대면서

풀싹들의 속삭임

 

땀방울로

소망 두 잎에 받아 적는다

 

글자마다 보석 되어

빛으로 다시 녹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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複合象徵詩

어둠 더듬는 사나이의 색깔

정두민의 詩世界에 대한 진맥

 

중국 연변조선족복합상징시동인회 회장

詩夢잡지사 사장 · 발행인

김현순

 

 

사나이에게 눈물이 있다면 그것은 어둠 앓는 고름일 것이다. 그 고름이 얽히고 응어리져 보석으로 빛을 뿌릴 때 그것을 두고 세상은 별이라고 부르게 된다.

파란만장의 인생길을 억세게 헤쳐 나가는 사나이의 색깔, 그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제 정두민시인의 어둠의 색깔이 우리들 앞에 숙연히 침묵으로 다가서고 있다.

주지하는바 상징은 인류문명의 일종 표현이다. 상징의 푸른 하늘을 닦아가면서 자신의 영혼세계를 변형의 목소리로 화폭으로 펼쳐 보이는 정두민시인의 시세계는 낯선 자극과 생신한 흥분으로 세상을 전율케 한다.

 

혈형이 빚어낸 진액의 사연에

부서진 시간 한 쪼박 스며드는 순간

몽따쥬의 종이장이 동공으로 확대 된다

 

<지문(指紋)의 연출>의 첫 부분

 

드라마적인 인생을 걷는 화자의 독백으로서의 이 詩句에서 <혈형>은 인간에게 차례진 숙명적인 삶이라고 볼 수 있으며 <진액>은 고통이 낳은 상처의 기억이라고 볼 수 있다. 화자는 숙명적인 삶의 고통이 낳은 흔적을 <부서진 시간 한 쪼박> 스며든다고 하였으며 <몽따쥬의 종이장이 동공으로 확대 되는> 환각에 빠져들면서 삶의 섭리를 변형적 가시화로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의 욕구 앞에서는 존엄의 비굴함도 감내해야 하는 섭리를 일순간의 집념과 생각의 실천에 의해 좌우지 됨을 화자는 다음과 같이 읊조리고 있다.

 

존엄을 뛰쳐나온 마주치는 댓가

함축된 모든 것이 손가락 끝에 방아쇠를 건다

재일 수 없는 사투가 피 흘리며

숨어든 신경선

승부의 재판에는 색깔이 층계 딛고

순번 딲아 전화를 건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 쉽게 이루어지는 일엔 튼실함이 결여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또 화자로 하여금 <승부의 재판>을 위해서는 <색깔이 층계 딛어야>만 했으며 <순번 닦아 전화를 걸게 하고 있다. 여기에서 <순번 닦는> 표현은 언어의 강압조합으로서 삶의 뒤틀린 조화가 낳은 어둠의 색채를 한결 돋구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삶의 좌표는 운명적인 삶의 되풀이를 거듭하며 거기에 적응되고 습관 되기에 억울함을 익혀 둔다. 이런 복잡한 내면의 세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면서 시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계약서가 줄지어 이정표에

날인 찍으며, 아침의 등어리에

때 묻은 입술을 갖다 댄다

 

이렇듯 화자의 내면세계는 모순과 불만과 실의(失意)에 충만되어 있다. 하지만 또 그에 대한 탈리와 초탈의 그림자도 메아리로 화자만의 우주를 별처럼 장식해가고 있다.

<어둠의 색깔>을 조심스레 펼치어 보자.

(<어둠의 색깔> 全文 )

화자에게 있어서 인생의 색채는 어둡기만 하다. 아름다운 저녁노을도 화자에게는 <어둠에 질식한 태양의 발자국 쪼아 먹는> <숨소리>로 들리며 <별찌>의 존재마저 <분신자살>한 영상으로 비참하게 감지하고 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인가? 화자의 굴곡적인 삶이 그렇게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그런 삶에 대해 혐오를 느끼면서 그에 대한 반역과 탈출을 시도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 고통스러우면서도 악착스런 분투의 과정이 바로 찬란한 인생일 것이다.

현실을 개변하고픈 강열한 염원이 <성형수술 한 바람>이 되어 지평선 파도에 들먹>거리고 <달은 아랑곳 없이 태연함을 바른다>. <혜성의 간막을 이식> 받아 <광명 찾은 늙은 반디불/잠자는 허공에게 해몽을 서두른다>

이토록 화자는 암울한 현실에의 초탈을 갈구하고 시도하며 그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정두민시인의 시세계를 들여다보면 가슴에 연기가 꽉 차오고 숨이 갑갑해지면서 저도 몰래 한숨을 토하게 됨을 어쩔수 없다. 그 연유를 따져보면 답안은 한 여인에게 가서 떨어지게 된다. 화자의 영혼 저켠에는 소리없이 소담하게 피어나 묵묵히 향기에 젖어있는 들꽃의 그림자가 아미 숙이고 있다. 화자는 그것에 대한 집착과 연민으로 생을 괴로워 하고 행복해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 건너 켠의 아름다운 신전같은 존재로 화자에게 무한한 에너지의 근원을 자리매김 하고 있다. 화자는 그것에 감사했고 그것에 또 한()을 품고 있다.

(<전화 받지 않는 이유> 全文 )

화자에게 있어서 여인이란 즐거움의 원천이고 에덴동산의 향기로운 금단의 열매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의 여인은 요원하면서도 풍요로운 신화로, 신기루처럼 빛나고 있다. 그것이 다시 한() 많은 인생에 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의 결구와 표현기법을 살펴 보기로 하자.

 

여자의 감옥에 겨울이 갇혀있다

펜 끝의 탈출을 시도하던

글자들 반역의 꼬드김

잔에 담긴 언어의 외도(外道)

선택은 슬픔을 고민 한다

그젯날 제스쳐(gesture)

마담의 손톱눈에어둠 찔러 준다

거짓말이 바람벽에 잠들어 버린다

 

화자의 정감흐름에 따른 경지의 이동순서를 도표식으로 그려보았다. 현실적인 삶의 현장에서 한 여인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그리움의 모순 속에서 자신에 대한 학대의 장면을 목격할 수 가 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란 마음의 지배를 받게 되며 무의식적인 행동일지라도 결국 따져보면 그것은 영혼의 계시에 따른 행위에 귀속되게 되는 것이다. 영혼의 지령에 따르는 마음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환각의 나열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게 되므로 환각이라는 이 존재의 표현은 어디까지나 변형적인 모습으로 세상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여자의 감옥>이라는 말 자체부터 추상적인 상징의 세계를 그려 보이며 그 속에 겨울이 갇혀있다고 함으로써 더구나 환상적인 색채로 세상에 농후한 환각을 선물해준다.

<펜 끝의 탈출>을 시도하는 <글자들의 반역>은 기성되어 있는 관습내지 룰()에 대한 해탈의 의미를 이념의 상징으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잔에 담긴 언어의 외도>라거나 <마담의 손톱눈에 어둠 찔러준다>는 것과 같은 이념의 가시화는 상징의 깊이에 한결 더 색채를 보태주는 좋은 효과를 이룩하고 있다.

이제 <거짓말이 바람벽에 잠들어 버린다>고 상상해보자.

바람벽의 이미지에 대하여 세상은 익히 알고 있다. 모든 소식, 소문이나 스캔들, 지어는 한 여인에 대한 짝사랑의 찢어지는 감정마저도 바람벽에 잠재워 두려는 화자의 애절함이 현실 도피의 주제로 시()의 마감을 장식해주는 것이다.

복합상징시 멤버의 한 사람으로서 정두민의 시세계는 복합구성을 이루는 이미지들의 퍼즐조합으로 정체를 이루는 구조적 특점에선 변함없으나 그 퍼즐들이 화자의 이념적 감정색채의 조화에 따라 형태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데에 대해선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슬> 全文 )

이 시에서의 핵심은 노력의 결실이 빚어낸 생명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것인데 화자는 <수탉의 홰치는 소리>, <우담화(優曇華) 향기>, <풀싹들의 속삭임>, <소망의 두 잎(여기서는 마음가짐으로 상징되어 있다)>, <보석> 등 이미지들의 변형적 표현으로 <이슬>과 같은 맑은 영혼의 정화를 찬미하고 있다.

매 이미지들마다 변형된 능동적 가시화(能動的可視化) 과정을 거쳐 이미지의 구상적(具象的)표현이 잘 실행되었다.

화자의 사유와 감정의 흐름선에 의하여 이미지들의 내재적 연결고리를 꽉 틀어쥐고 환각의 퍼즐조합으로 영혼의 신질서를 열어간 정두민시인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정두민시인의 경우, 이념의 역설과 환각적 이미지와 스토리의 토막들을 변형시켜 화자의 내심을 보여주는데 성공한 사례라고 역점 찍어 말할수 있다.

정두민 시인의 시를 포함항 복합상징시 계열의 시들을 쉽게 알아볼 수 없는 것은 그것들이 교묘하게 변형되여 상징으로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지식결구와 인생경력 및 미학구도가 단순한 차원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겐 당연히 알아볼수 없는 미궁과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복합상징시의 답이 될 것이다. 그만큼 복합상징시는 대중문화적인 특색을 지닐수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즉 다시 말하면 사발과 꽃병의 구별점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두민시인의 복합상징시를 훑어보면서 이차원(異次元) 우주의 열쇠를 넘겨받은 듯 기분이 한결 흡족해진다.

정두민시인의 금후 창작에 더욱 주렁진 열매가 빛뿌릴 것이라 믿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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