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숙 수필가/재한동포문인협회 수필분과장
천숙 수필가/재한동포문인협회 수필분과장

며칠 전에 내가 십여 년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한국 할머니가 향연 84세로 영면하시였다. 그렇게 마음 고우시고 현명하시던 할머니, 첫 한국생활에서 외로움과 서러움을 가득 안은 나를 이해해주시고 위로주시던 할머니, 손자,손녀들앞으로 달마다 대학 학자금 저축을 해주시던 할머니셨다. 며느리도 딸처럼 이해해주시고  80세에도 봉사하러 다니시며 그렇게 즐거워하시고 행복해하시였다. 나는 그 할머니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늙어가리라 마음 속으로 다졌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에게도 한가지 큰 걱정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친딸이 부모형제들과 거래를 끊고 산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 밖에 안되었을 때였다. 나에게 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할아버지는 예날 고속버스기사였는데 열심히 사셔서 자식 셋을 모두 명문대에 보내셨다고 하였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재산문제로 딸과 모순이 생기면서 딸이 친정과 인연을 끊었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하면서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페암으로 앓으시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할아버지명의로 되었던 집을 할머니명의로 이전해주시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딸은 아들에게만 재산을 넘겨주려고 그런다고 노발대발하면서 친정에 있는 자기 사진을 다 가지고 가면서 이제는 친정과 인연을 끊고 살겠다고 했다고 하였다. 그 후로부터  딸은 전화도 안받고 손군들도 외할머니의 전화를 못 받게 하였다. 할머니는 아들들을 더 생각했던 것만은 사실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할머니의 친어머니가 아들을 낳지 못해서 아버지가 새 부인을 맞이하여 아들을 낳아 엄마가 괴로워하던 일이 자꾸 떠오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어릴 때부터 남존여비사상이 생겼다고 하였다. 본인이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으니 너무도 대견스럽고 행복했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딸도 배아파 난 자식인데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는가면서 섭섭해하셨다. 

  할머니의 여동생을 통해서 아무리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라고 하였다. 딸의 요구가 무엇인데요?라고 내가 물었더니 십 억이 넘는 집을 팔아서 작은 집으로 할머니가 이사를 가고 나머지는 자식들에게 분배해주고, 자식들이 달마다 할머니에게 생활비를 주면 되지 않는가고 했단다. 들어 보니 사위는 대기업에서 높은 직함을 가지고 있어 월급도 상당히 높았다. 할머니는 자식들의 의견에 따르지 않고 할아버지의 피땀으로 산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고는 방을 세 놓아 자식들의 도움이 없이 생활하셨다. 알뜰살림으로 모은 돈은 손군들에게 대학 학자금 저축을 해놓으시군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퇴근하고 서울대병원장례식장으로 달려 갔다. 다행히 11월부터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거리두기 단계가 많이 풀리여서 장례식장에는 조문객들이 적지 않았다. 두 아들며느리, 할머니의 여동생, 여동생네 자식들 모두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는데 한번도 본 적 없는 할머니의 따님만은 조문객들에게 인사도 별로 안 나눈채 한쪽 구석에 앉아서 소리없이 울기만 하였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참회의 눈물일까? 애통의 눈물일까? 아니면 친정엄마에 대한 원망의 눈물일까?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공통된 특징은 누구에게나 흘려야 할 눈물이 있다. 눈물은 슬픔과 아픔, 감격과 기쁨과, 분노와 사랑 등 감정을 응축시켜 흐르게 하는 신비이다. 우리는 눈물을 통해 아픔과 슬픔을 씻어내고, 눈물을 통해 감격을 더 풍성하게 터쳐 낸다.그러므로 우리가 흘리는 작은 눈물방울 하나에도 무수히 많은 의미들이 담겨져 있다. 그 눈물의 진정한 의미는 당사자 본인밖에 모르는 것이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벌써 변호사를 통해 미리 유언장을 작성해놓았던 것이다. 세 자식 아들 딸 차별없이 유산을 똑같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었다.

   논어에서는 효를 단순한 효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효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경우도 아주 드무나 오히려 논어의 주제는 仁이나 군자같은 존재라고 보고 있다. 공자는 효제가 인의 근본이고, 모든 도덕과 행실이 효제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하였다. 효는 부모에 대한 윤리이고 仁은 흔히 人과 二의 합자로서 두 사람의 관계를 뜻하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원만할 수 있는 원리가 곧 인(仁)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맺는 것은 최초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시작되고 이어서 형제간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모든 인간관계의 시발인 부모와 형제간의 관계는 모든 윤리의 시발이고, 또한 인(仁)의 기초가 된다. 조선의 교육사 회고록의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서기 372년) 때 공자의 사상이 전해졌고, 철학교육으로, 그 핵심은 인효 仁孝가 중심이 된 교육이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인효사상은 근대로 접어들면서 큰 수난을 겪게 된다. 일제의 혹독한 식민지 교육정책이 우리 효사상의 원뿌리와 정맥을 자르더니 서구사상의 강한 파도가 밀려들어와 효사상과 노인공경사상을 흐려놓았다. 이로 인해 사회는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다.  가족끼리 희생이나 양보를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는 지나간듯 하고,  청소년 인성문제도 아주 심각하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단적으로 말해서 자녀양육의 원뿌리를 망각하고 조선민족의 전통사상의 정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국정과제와 교육정책의 방향은 "효문화와 인성"에 역점을 두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해보게 된다.

  할머니는 긴 여운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가셨다. 과연,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부모로 자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행복은 무엇일까? 돈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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