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

 

그네의 발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은 어디쯤 일까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밤, 별을 닮은 여자아이를 태운 그네가 한없이 삐걱 거린다. 책가방에 넣어 두었던 아침을 꺼내고 나무를 맴돌던 새가 하늘을 그으며 날아갈 때, 아이는 운동장에 피어난 반지꽃처럼 서서 맨 처음 그네에 오른다. 수업이 끝나면 그네를 향하여  달려가는 아이들, 
 
가위 바위 보

주먹을 내는 아이의 이마가 닿을 수조차 없이 높이 오른 그네는 순서대로 이리저리 늘어나기를 반복하며 마음의 무게를 재듯 녹슨 발판이 뱉어 내는 비명 그 정확한 음정으로 언제나 다시 돌아오고야 말던,

허공 저 멀리 아이를 새처럼 던지면 굵은 쇠사슬에 묶여 더는 날아갈 줄 모르던 파란 웃음과 앞니 빠진 속도를 받아내던 작은 분교 운동장에서, 하나 둘 아이들이 지워지고 바람만이 툭 치고 가는 속도로 느릿느릿 엇박자로 흔들거리는 그네

철없던 시절 벌겋게 들뜬 웃음 받아주던 먼 기억 속의 그네가 내가 살아 온 만큼, 내 마음이 커버린 만큼 힘에 부쳐 삐걱 거린다

마침내, 철렁이던 그네가 멈추자
천 개가 넘는 해를 삼킨 세월이 울컥 마침표 찍는다.


백야의 꽃


새벽을 지난 이슬이 찬바람을 게워내며 싹을 틔운다
계절을 돌아 찾아온 해를 본다
우수수 떨어진 낙엽이 봄을 기다렸지
겨울을 오래 앓고
나는 안개처럼 내려앉은 깊은숨을 들이마셔
파랗게 얼어붙은 꽃잎 속에서 잠들지 못할 이유를 찾아낸다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온도를 지켜주는 노란 동백꽃들
그 속에 밤이 끼어들 자리가 없구나
나의 낡은 무릎에 그리다 만 줄기가 남았다
겨울옷을 벗어야 할 시간
봄빛을 무두질하네
그들을 한데 묶은 바늘과 실
꿰맨 자국에서 석류처럼 붉은 피가 흐른다
마른 잎사귀에 수놓은 검은 바탕은 아물지 않는 상처
얼음을 조각해 한 겹씩 포개놓은 잎들이
꽃말의 의미가 다할 때까지 녹을 수 없어
지평선 너머로 불어오는 알알이 따가운 모래바람처럼
동백은 자라지 않는 나의 초상화
셀 수 없는 알갱이의 사정
울타리 속에 잠드는 꽃들의 심장박동 소리
봄의 오페라를 연주하는 벌들의 날갯짓이 풍경화를 낳았네
그물코로 빠져나간 거북이의 예감처럼
하얀 유화들은 온통 하나의 얼룩처럼 뒤섞여
가운으로 덮어 안에서 만개한다


바람 신호등
 (부제 : 단풍)

마당가 작달만한 단풍나무에
여름내 조롱조롱 
초록 불 밝히던 작은 손바닥들

시원한 바람 지나가고
더위 속에 점점 자라던
손바닥을 서늘한 바람이 핥고 지나가니

가을 왔다고  날씨 쌀쌀하다고
빨간 불로 바뀌었네.

혼자 사시는 할머니
장롱 깊은 곳에서
따뜻한 옷 꺼내시는 동안

차가운 바람  멈춰 서 달라고
빨간 불로 바뀌었네.

산천어 비늘같이  햇살은 속살이고
산속 고탑(古塔)은  만인의 옷깃 끌어 덮은 듯 
단풍 아래 잠이 깊어가네 

장끼가 홰치며 날 때 깃 바람 일어 소슬하고  
섣부른 예단에 곱게 물든 낙엽이  
적적한 두께로 산길에 쌓이네.

 

시인 신화정
시인 신화정

 

 

 • 법과대학원 상법학과 졸업, 노동법 부전공
 • 노무법인 한샘대표 (공인노무사)
 • 제12회 동서문학상 수상
 • 2020년 정지용 백일장 수상
 • 2020년 대전시장상 (수필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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