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으로 내모는 삶, 좌절하는 인간

-라오서의 ‘낙타 샹즈’-

 

산기슭을 밝히는 매화 향기가 차고 맑은 아침 기운과 잘 어울리는 날입니다. 음력 2월은 바람의 계절입니다. 맵싼 기운이 휘몰아치는 바람과 만나 변화무쌍함을 드러냅니다. 작은 풀 한 포기도 햇볕과 바람과 비를 만나야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바람이 학교 시멘트 계단 사이에 풀씨 하나를 떨어뜨렸습니다. 작고 여린 싹이 조금 보입니다. 하지만, 이 싹의 운명은 낙관할 수 없습니다. 먼지가 약간 모인 모서리는 물도 뿌리가 뻗어내릴 흙도 없습니다. 봄 햇볕이 뜨거운 어느 날 시들어 말라갈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몰리는 모습이 젊고 성실한 인력거꾼 샹즈와 겹쳐집니다.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이는 샹즈이지 낙타가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소설『낙타 샹즈』는 시작됩니다. 북경의 인력거꾼 샹즈는 농촌에서 올라와 인력거를 끌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가난한 농촌 출신으로 가진 것 없으며, 세상 물정에 어두울 뿐만 아니라 기댈 친지나 친구조차 없는 천애 고아나 다름없는 막일꾼. 오로지 자신의 인력거를 끌기 위해 먹고 마실 것조차 아끼면서 돈을 모았던 성실한 젊은이. 그러나 전쟁통에 인력거를 빼앗기고 대신 끌고 온 낙타 때문에 별명만 얻게 된 지지리도 재주 없는 사내. 그는 한 번도 자신을 위해 게으름을 피운 적 없었던 사람입니다.

1930년대 중국은 서구 여러 나라와 일본 등이 중국을 침략하는 가운데 나라가 기울어 가고 있었고, 부정부패와 혼란이 극에 달하여 사회주의 혁명 운동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었습니다. 구 중국의 군벌 세력들이 이익을 빼앗기 위해 전란을 일으켜 국민의 생활은 아주 어려웠고, 샹즈와 같은 사회 하층에 있는 노동자들의 생활은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작가 라오서는 그런 정치적 혼란의 모습을 직접 다루기보다는 가장 밑바닥 삶을 사는 인력거꾼 샹즈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당시 사회의 어둠과 혼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싸움에서 뒷다리를 잃은 귀뚜라미는 나머지 가느다란 앞다리로 기어가려고 애쓰게 마련이다. 샹즈는 자기 나름의 생각이 없이 그저 하루하루 일이 생기는 대로 겪어가면서 기어가는 데까지 기어갈 뿐 근본적으로 뛰어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p.148

누구나 살아갈 방법이 있고, 어디나 구멍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유독 샹즈만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바로 인력거꾼으로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인력거꾼이라는 게 먹느니 허접한 끼니요, 쏟아내는 건 피밖에 없었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돈을 벌지만 가장 낮은 보수를 받았다.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서서 모든 사람, 모든 법, 모든 고난의 직격타를 맞았다. p.189

사람들은 자신을 짐승에서 끌어올렸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과 같은 부류를 짐승으로 내몰고 있다. 문화의 도시 북경에 살고 있지만 다시 짐승이 되고 말았다.

추호도 그의 잘못이 아니다. 생각을 멈췄기에 설사 살인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 더 이상 희망을 품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몽롱하게 아래도 끝없는 심연으로 떨어져간다. <중략> 지금은 눈앞의 일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경험을 통해 그는 내일은 오늘의 연속이며, 내일이란 다시 오늘의 굴욕이 이어지는 날일뿐임을 알게 되었다. 솜옷을 팔고 나니 정말 통쾌했다. 돈이 있는데 뭔들 못하겠는가? 뭐하러 이 돈을 사람 숨통을 막을 정도로 매서운 바람 부는 겨울까지 남겨둔단 말인가? pp. 355~356

라오서는 ‘사람’의 운명을 통해 현실과 사회를 표현하였습니다. 평범하고 소박하게 사는 소시민 계층, 하루하루를 겨우 사는 도시 빈민의 모습이 이 작품을 통해 잘 나타납니다. 샹즈의 별명인 ‘낙타’라는 말에는 그가 살아온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낙타는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뚜벅뚜벅 쉼 없이 건너갑니다. 사람과 무거운 짐을 싣고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샹즈는 사회의 모순과 압력에 억눌려 살아갑니다.

그는 3년간 피땀을 흘린 끝에 마련한 인력거를 군벌 혼전 중에 빼앗깁니다. 온갖 잡일을 하다 낙타 세 마리를 가지고 도망쳐 나와 낙타를 팔고 인력거 임대회사에서 인력거를 빌려 끌고 다닙니다. 그 후 정보 형사에게 있는 돈을 빼앗기고 인력거 회사 노처녀의 꾀임으로 억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노처녀는 아이를 낳다 죽고 인력거 회사의 주인은 샹즈가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빼앗아 갑니다. 그가 마음을 주었던 소녀가 사창가에 팔려 가 자살을 한 것을 알게 되자 자포자기합니다.

샹즈는 인력거에 희망을 얻었고 또한 인력거로 인해 절망하였습니다. 인력거만을 바라보고 죽도록 고생하고 열심히 살지만, 실패와 좌절의 연속 속에서 그는 자기를 잃어버립니다. 결국 그는 하루하루 되는대로 살아갑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헤어날 수 없는 것이 당시 중국 사회의 비극입니다. 그래서 희망과 사랑을 잃은 사람은 누구나 샹즈처럼 암흑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에게 제일 힘든 것은 육체적인 고생이나 시련이 아닐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삶이 가장 큰 고통일 것일 것입니다. 젊은 시절의 샹즈는 미래에 대한 희망, 성공의 꿈이 있었기에 아무리 힘든 일과 고통에도 행복했고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력거를 빼앗기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더 불행해지는 그는 길잃은 낙타처럼 희망을 버립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젊은이가 사는 삶이 샹즈와 다를까요. 가진 것이라고는 젊음밖에 없는 청년들을 사막 같은 사회로 밀어 넣습니다. 얼어붙은 경제로 취직이 되지 않아 결혼과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산책을 하니, 계단 모서리 작은 풀싹은 두 개의 여리디여린 떡잎을 펼치고 있습니다.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란 뿌리가 흙먼지를 꽉 붙잡고 있습니다. 어린 생명 앞에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멀리 봄 논에 심어진 마늘밭이 싱그럽습니다. 건강한 젊은이 근육처럼 잘 자란 줄기와 파란 잎은 지난겨울을 잘 이겨낸 훈장일 것입니다. 현재의 고단한 현실을 우리처럼 잘 이겨보라고 저에게 말 없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봄은 벌써 곁에 와 있습니다.

『낙타 샹즈』, 라오서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황소 자리, 2008

 

반시대적 글쓰기, 이옥을 읽는다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뭉게뭉게 산줄기를 타고 피어나는 희뿌연 밤꽃과 구름이 가득 펼쳐진 무논 사이로 백로가 느릿느릿 움직입니다. 비닐로 지어진 하우스에서 철 이른 과일과 채소들을 생산하였던 대지는 골조를 이루었던 무거운 쇠막대기를 걷어내고 있습니다. 그 자리는 금방 무논으로 변해 어린 모가 심어질 것입니다.

세상의 시간이 바쁘게 지나갑니다. 현대인의 삶에 맞추어진 대지의 시간도 점점 빨라 지고 있습니다. 철을 앞당겨 출하되고, 조금 더 단맛이 깃들게 하고, 더 고운 색으로 물들인 과일과 채소들은 시장에서 소비자를 유혹합니다. 첫여름이 감싸는 강마을의 시공간에서 조선 시대 문체반정의 정점에서 자신의 글쓰기를 고집하였던 불우한 문인, 이옥(李鈺)을 만납니다.

18세기 조선이라는 시공간은 문화의 소용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학 군주 정조가 있었고, 유목적 지식인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통해 깊은 사유와 탁월한 문장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은 변치 않는 신념과 일관성으로 박학과 신실함의 대명사 <여유당전서>라는 압도적 지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일개 성균관 유생 이옥은 정조 16년 10월 19일 <조선왕조실록>에 처음으로 이름이 등장합니다. 정조가 유생들에게 내린 <시경>에 관한 물음에 그가 쓴 응제문은 '문체반정'의 서막을 알리게 됩니다. 그 후 소품체 문체의 수난으로 충군(조선 시대에 죄를 범한 자를 군역에 복무하도록 한 형벌)과 과거 낙제처리 등의 조치를 당하며 10년을 떠돕니다. 그는 결국 과거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글을 씁니다. 그의 글은 주류에는 속하지 않지만 섬세한 촉각이 포착하는 미세한 욕망과 새로운 감수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글쓰기는 시대에 대한 저항이 아니었을까요.

이옥이 전하는 최고의 러브스토리는 <심생전>입니다. 약관의 준수한 양반가 소년 심생이 길거리에서 업혀 가는 소녀를 뒤따르다 서로 눈이 맞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버들잎 같은 눈 속의 별빛 같은 눈동자 네 개가 서로 부딪혔다!" 기가 막힌 표현이 아닐까요. 청춘남녀가 서로 반하는 첫 순간의 짜릿함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유안성모 사목상격 (柳眼星眸, 四目相擊) 소녀의 ‘다소곳이 아름다운 눈’과 소년 심생의 ‘초롱초롱한 눈’이 갑자기 마주친 것입니다. 이 문장의 압권은 격(擊)이라는 글자입니다. 서로 몰래 훔쳐보다 일순간 들키게 된 돌발상황에서 두 사람이 느꼈을 법한 놀람과 민망함, 부끄러움이 이 한 글자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심생은 곧 사라진 그녀를 찾아 동네 사람에게 정보를 얻고, 친구네 집에서 밤을 새우겠다는 핑계를 대고 여인의 집을 찾아가 몰래 훔쳐봅니다. 이를 눈치챈 여인은 스무날 지나자 방에 들입니다. 중인 집안의 딸과 양반가 자제의 혼인은 당시로는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당돌한 여인은 심생을 방으로 들이더니 부모를 불러와 그간의 일을 고하고 동침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계속되기 어려웠습니다. 심생의 거짓말을 안 부모가 북한산성으로 보내어 이별하게 됩니다. 이후 심생이 전해 받은 것은 그녀의 유서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남편이라 부르지 못하고 며느리 대접도 못 받고, 손수 옷 한 벌 못해 입히고 병을 얻어 죽게 되니 한스럽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심생은 공부를 접고 무관이 되어 벼슬까지 했으나 그 역시 일찍 죽고 말았다는 후일담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한눈에 반하는 만남, 신분의 차이, 원하지 않은 이별, 죽음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로맨스입니다. 덧붙이는 말에 이옥이 어린 시절 스승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전합니다.

이옥은 성리학적 질서가 준엄한 18세기에 <심생전>을 비롯한 파격적이고 다양한 소재의 글을 창작합니다. 유연한 사고로 표현하는 새로운 문장은 정조의 강한 문체정책에 막혀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함에도 쓸 수밖에 없었던 그의 글은 새로운 시대의 조짐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어 지금 우리에게 다가섭니다. 조선 문단의 이단아, 왕의 말을 거역하고 자신의 글쓰기를 고집한 이옥, 그의 글을 읽습니다.

『심생전』, 이옥 지음, 정환국, 전국국어교사모임 기획, 2019, 휴머니스트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 채운 지음, 2013, 북드라망

 

수필가 이선애
수필가 이선애

 

• 학력 :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동대학원교육학 석사
• 저서 : 수필집 강마을 편지. 강마을에서 책 읽기 외 다수 
• 수상 : 민들레 수필문학상. 향촌문학 대상 외 다수 
• 현) 경남 의령 지정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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