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행성

 

 

난 태양이다. 백만년 전만 해도 내 주변엔 귀여운 행성들이 줄지어서 돌고 있었다. 어떤 블랙홀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별들도 지쳐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다. 난 다시 차디찬 어둠을 마셨다.

갑자기 내 옆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어떤 검은색 행성이였다.

곧이어 귀여운 하얀색의 행성도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 너희들은 누구니?”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내가 수성이야!”

“아니야! 내가 수성이거든?”

그 때 또 다른 검은 행성이 금성 자리로 와서 말했다.

“그만해. 얘들아. 난 금성이라고 해.”

“넌 검은색이지 금색이 아니잖아?”

곧이어, 또 다른 하얀 행성이 금성 옆 지구 자리로 와서 말했다.

“반가워, 난 생명들을 품고 있는 지구란다. 네가 금성인걸 나는 알고 있어. 지난번 블랙홀 때문에 검해졌구나..”

“어? 너는 초록색 지구였잖아.

왜 하얗게 되었니?”

“그건...”

곧이어 어떤 검은 행성이 줄을 지어 다가와 말하였다.

“얘들아 뭐하니?”

“어! 너는 화성이잖아. 검은색으로 탔네?”

“응... 블랙홀이 재로 물들이고 갔어.”

점점 여러 행성들이 ‘수성-금성-목성-지구-화성’ 의 태양계의 자리처럼 줄을 지어 오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까?”

거대하고 하얀 행성이 목성 자리에 나타났다.

“네겐 분필 가루를 묻히고 갔구나?”

“응.. 우리 블랙홀을 혼내줄까?”

곧이어 토성 자리에 검은 행성이 찾아와 말하였다.

“얘들아 오랜만이야! 너희들 모두 없어진 지 알았어. 그런데 천왕성은?”

토성 자리 옆 천왕성 자리로 온 흰 행성이 말하였다.

“나 여기있지롱~ 보고싶었어. 토성아. 너랑 수다 떨어야 하는데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뭐야..”

해왕성 자리에 조용히 안착하였다.

“저, 얘들아.”

하지만 수다스러운 분위기 속에 꺼낸 말이 묻히고 말았다.

“여전히 시끄럽네. 좋다.”

해왕성 자리의 행성이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 해왕성 뒤 명왕성 자리에 한 행성이 다가와 말하였다. 다소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얘들아. 나도 가족 맞지?”

그렇지만 여전히 수다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럴만도 하였다.

태양계 가족이 헤어진지 무려 1,000년 만에 모인거라 그런지 신기한 일들을 많이 경험한 것일지도 모른다.

태양 옆으로 수성부터 명왕성까지 차례대로 안착한 행성들이 시끄러운 수다를 이어가는데, 태양 앞의 하얀색 행성이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 행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진짜 수성인데…”

“으음! 다들 조용하세요!”

금성 이름표를 가슴에 차고, 찾아온 새로운 행성.. 그 행성은 한숨 짓고 있는 수성 뒤로 와서 이름표를 건네주었다.

“저 줄은 뭐지? 우리가 태양계인데, 왜 또 행성들이 태양 앞에 줄을 서는거야?”

양쪽의 두 줄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한 행성이 그만하라며 지구 이름표를 달고 태양 앞 줄로 다가와 안착했다.

그 때였다!

블랙홀이 서서히 걷히면서 태양 앞 줄에 더 많은 행성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도.. 태양계 가족이 되고 싶어.”

크고 하얀 행성이 어느덧 붙어있었다.

“나도 별로 똑같은 위치에서 살아가니 재미가 없어. 공전하며 산책하는 너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 때 블랙홀 안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다!”

“뭐라고? 내가 왜 블랙홀인데!”

블랙홀 오로라를 뿜는 그 행성은 숨 쉴 틈도 없이 주변의 행성 2개를 순식간에 제거하였다.

“안돼!”

블랙홀로 빨려가는 검은 행성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블랙홀로 비어있는 금성 자리에 한 행성이 왔다.

“걱정하지마, 얘들아!”

하지만 또 다른 검은 행성이 걱정되어 다가오자 그 행성도 블랙홀 안개를 몰고 왔지만 어리둥절한 표정이였다.

태풍이 지나간 듯 고요해진 태양계..

“내가 도와줄께!” 라며 다가온 하얀 행성도 검은 오로라를 내뿜으며 블랙홀을 몰고 왔다!

그런데 블랙홀이 생길 때 무언가 규칙이 있었다.

누군가가 다이아 모양을 완성하는 자리로 오면 블랙홀을 만들어 행성들을 빨아드렸기 때문이다.

다시 주변의 별들이 모였다.

다이아를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며 태양계를 이뤄갔다.

생각과 다르게 자꾸만 누군가가 찾아와 다이아 모양을 만들었고 다른 별들을 흡수하였다.

그런데 신기한 건, 블랙홀에 먹고 먹히는 관계가 당연하다는 듯이 두려워하면서도 태양계를 이루려 몰려오는 것이였다.

별들이 원하는 행성 자리에 붙으려 하였고 자신도 모르게 다이아를 만들어 블랙홀이 되어갔다.

블랙홀이 지나가고 남은 자리엔 또 다시 텅빈 공간이 생겼다.

어느덧 태양 옆 줄이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을 앞 줄보다 먼저 이뤘다.

하지만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은 서로를 싫어했다.

블랙홀을 만드는 행성이 나타나면 그 행성과 다른 색의 행성들만 사라지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였다.

천만 년 전에는 오색빛깔을 가진 찬란한 별빛을 지닌 행성들이 서로를 아껴주며 평화로웠으나 거대한 블랙홀이 나타나면서 하얀색과 검은색으로 물들이게 되며 흑백의 블랙홀 법칙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화성이 되고 싶어서 찾아온 검은 행성들이 블랙홀을 만들어 주변의 하얀 행성들을 빨아들였다.

태양계가 되면 무엇이 남을까?

갓 태어난 아기 행성들도 따라서 태양계 행성이 되고 싶어했다. 아기 행성들은 영문도 모른 채 다가왔다가 블랙홀을 만들어 주변을 파괴하고 있었다.

“안돼!”

화성 자리에 있던 한 행성이 아기 행성에게 오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사라졌다.

텅빈 그들의 자리들..

언제쯤이면 이 전쟁이 계속될까?

그들은 영문도 모른채 전쟁터로 뛰어들고 있었다.

별들은 사라져가면서도 궁금해하였다.

우리들이 흑백으로 나눠진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은 흘러.. 행성들이 점점 자신들과 같은 색상으로 뭉치고 있었으며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과 같은 색의 행성을 찾아 태양계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가 먼저 태양계를 이룰 수 있어!”

“아니야! 우리야!”

기나긴 흑백 전쟁에 한 검은 행성이 외쳤다.

“내가 하얀 행성 줄에 가서 그들을 태양계에서 떨어뜨려 줄께!”

점점.. 검고 하얀 행성들은 자신들의 색상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하얀 행성 줄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왕성 자리의 뒤쪽이였다.

명왕성까지가 끝이라며 명왕성 뒤에 붙어있던 같은 색의 하얀 행성을 왕따시킨 것이다.

그 행성은 울며 저 멀리로 달려갔다.

이렇게, 하얀 행성줄은 ‘수성-금성-지구-화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명왕성’을 만들었다.

그리고 함께 “별!”이라고 외치자 태양계의 줄에 있는 행성들은 반짝거리는 별로 변하였다.

하지만 아직 태양계가 된 것은 아니였다.

태양이 승낙해야만 태양계로 인정받는 것이였다.

“태양님!”

하지만 태양은 답이 없었다.

태양계 줄의 별들은 하나둘씩 태양에게 말했다.

“태양님! 우리가 이겼어요.”

“우리가 먼저 태양계를 만들었어요.”

“저 쪽에 있는 검은 행성 줄을 없애주세요.”

“태양계는 오직 한 개여야해요.”

“맞아요! 태양님, 저희들은 태양님을 따라 늘 열심히 돌 거예요.”

“태양계를 완성하느냐고 많이 힘들었어요.”

“우리를 따스함으로 품어주세요.”

“저도 멀리 있지만 태양님이 필요해요.”

“태양님, 제발 대답해주세요!”

한참 뒤, 고요한 적막을 깨고 태양이 대답하였다.

“얘들아, 너희들이 태양계가 될 수 없어. 내 온기를 담아 저 멀리서 추워서 떨고 있는 작은 행성들에게 따스함을 나눠주는 일을 한 번이라고 생각하며 실천한 적이 있니?”

별들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백만년 뒤, 별들이 하나둘씩 떠나갔고, 태양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태양도 얼어붙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였지만 주변 행성들에게 빛과 열을 나눠줘야 반사작용으로 자신도 따뜻해지는데, 행성들과 별이 태양계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아 하나 둘씩 떠나간 것이다.

뜨거운 태양이 차갑게 얼어붙어 돌덩이처럼 굳어가자 갑자기 거대한 블랙홀이 나타나 힘 없는 태양을 흡수하였다.

태양은 다시 차디찬 블랙홀 속에서 어둠을 마셨다.

태양은 금방 죽을 것 같이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말하였다.

“조금이라도 보듬어줄걸.”

태양은 어느새 더 조금해지며 심장만 남기고 죽었다.

태양의 심장은 팔딱거리며 여전히 뜨거운 용암같이 부글대었다.

블랙홀 안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행성들이 심장 곁으로 다가왔다.

“아, 따뜻해.”

태양의 심장은 남아있던 공전의 힘으로 모여든 주변의 행성들을 빨아들여 블랙홀보다 더 큰 행성이 되어 블랙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태양으로 합쳐진 행성들은 천만년 전 아팠던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평화로운 태양계를 이루자며 회의를 하였다.

그 뒤, 평화조약이 체결되었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의 순으로 태양계가 되는 것에 동의하며, 따스함을 나눠주는 일을 하루라도 게을리 하면 태양계 별에서 영원히 퇴출됨에 동의한다.>

평화조약을 체결로 인해 부지런한 행성들만 태양계에 도전하였고, 블랙홀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 태양 바로 옆 수성이 산책하며 여유롭게 걷고 있을 때 태양의 끝에서 숨이 차게 달리고 있던 명왕성은 너무 힘들다며 태양계를 포기하였다. 명왕성이 나갔지만, 다른 태양계 별들은 오늘도 열심히 공전하며 주변의 별들에게 따스함을 나눠주고 있다.

 

작가 프로필

‧ 학력 : 고려대학교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재학
‧ 저서 : 동화 모음이 자음이. 시집 노트 숲의 속삭임 외 다수
‧ 수상 : 사회정의실현문학대상. 환경문학대상동화부문 외 다수
‧ 현) 제이엠그린 창작연구원. 세계문학예술작가협회 편집국장

 

동화작가 장용희
동화작가 장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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