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생각


참말로 어머니의 손맛을 따르려고 합니다
설탕, 소금, 간장, 된장, 고추장을 조금씩 넣어가는 우리 엄니의 손끝
결코 간을 강하게 하는 법이 없습니다
정성으로 양념을 하고 야무지게 나물을 무칩니다 
시장 바닥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난전의 채소랑 어물이랑 말을 걸어가며
너는 싱싱하니 깨끗하니 너는 맛있니 이러시면서
발품으로 좋은 재료를 구하는 데서부터 
요리는 시작되더군요
정말 중요한 건 손맛입니다 
손맛으로 재료를 다독여가며
혀끝에 대보고 또 대보면서 
조심스레 맛을 더해갑니다
오후 내내 이루어지는 저녁 준비
깊은 맛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어머니의 손맛을 사랑합니다
어머니의 부엌에 남고 싶습니다


철지난 모래성


빈집에는 흘러내리는 모래 소리만 들려서
살았던 흔적이 연대순으로 보인다

마당에 모래가 넓게 고여 들고
장닭 한 마리가 휑하니 지나가면
별모양의 발자국이 생겼다가
곧 모래에 묻혀버린다
닭의 눈은 봄 아지랑이가 살았던 먼 흔적

뿌리 채 뜯겨진 담장 허전하여
스스스 모래 스러지는 소리

서서히 윤곽을 잃어가며 수북이 쌓이면
알 수 없는 알몸의 남자가 깊이 묻혔다가
하룻밤 지나서야 몸을 턴다


무無


석상 같은 사람도 있을까
돌에서 태어나 석공이 준 표정 그대로
내 꿈은 늘 서 있는 것
꽃도 계절도 다 가도록

공 굴리는 아이 모양
꾸밈없는 표정으로 흘러내려
흔들리는 돌다리를 건너는 것도 잠시

수 만 번 돌을 쪼는 석공의 기도처럼
꽃 한 송이 담을 가슴마저 정질로 헤집고 
도드락질로 곱게 다듬어 흔적조차 버리고
모두 버리고 석상이 되었지

구름의 그림자에 얼굴 가려도
쉬어가는 물소리에 마음 디디고
지나는 바람도 버려두고
우연히 수면 위로 드러나
석공이 지어 준 미소나 보일뿐

 

시인 프로필

• 저서 : 시집 月幕. 시인을 프린트하다 가을 담장 안  외
• 수상 :  2019년 탐미문학상. 21향촌문학대상 외 다수
• 전) 고등학교 교사
• 현)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아시아태평양문인협회 이사장
 

시인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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