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선자 : 소설가/수필가,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1980년대 문단 데뷔,50여 편의 소설과 수필 발표.진달래 문학상, 윤동주 문학상, 도라지 문학상 등 10여 차 수상.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초록빛 보따리' 소설집 출간장백산 잡지사에서  '엄마의 대지' 작품집 출간.
▲ 권선자 : 소설가/수필가,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1980년대 문단 데뷔,50여 편의 소설과 수필 발표.진달래 문학상, 윤동주 문학상, 도라지 문학상 등 10여 차 수상.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초록빛 보따리' 소설집 출간장백산 잡지사에서 '엄마의 대지' 작품집 출간.

아침 해가 거실에서 잔잔한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을 때 나와 남편은 식탁에 마주 앉아 커피잔을 기울이는데 이때면 나의 입에서 어김없이 터지는 탄성이 있다. 한 입 가득 퍼지는 커피의 달콤함과 구수함 먼저 나는 나의 입술을 부드러운 비단마냥 살포시 덮어오는 커피잔을 먼저 만난다.         

“커피 맛도 맛이지만 커피잔도 따라 줘야 해.”

빨간 장미에 푸른 잎이 받쳐 주고 있는 예쁜 커피잔을 들고 즐거운 탄성을 연발하는 나의 목소리는 17 18세 소녀의 목소리처럼 톡톡 튀고 있었고 열이 잔뜩 올라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탄성에 비해 나와 마주 앉아 있는 남편의 얼굴은 무반응, 무표정 그 자체다. 그런 남편을 한참 바라보다가 늘 그랬듯이 나는 그만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이렇게 나 혼자 묻고 나 혼자 대답하고 나 혼자 감탄하며 산 세월이 어느 덧 40년도 훨씬 넘었다.

어디를 봐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우리 부부다. 그렇지만 결혼해서 40년이란 세월을 우린 아무 탈 없이 잘 살아왔다는 게 경이롭기만 하다. 꿈이 무엇인지 욕망이 무엇인지 모른 채 결혼했지만 가족이란 바줄에 묶이자 우리 둘은 금방 서로에게 맞는 퍼즐을 찾아낸 듯 잘 맞춰져 돌아갔다. 큰 꿈이 아닌 작은 꿈 때문이었던지 우리 삶도 큰 삶이 아닌 작은 삶, 남편은 평범한 중학교 선생님, 나도 평범한 문학창작원으로 우리는 살았다. 남들은 난방이 좋은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살지만 우리는 불 때는 작은 집에서 살아도 아무 불평 없이 잘 살았고 다른 집 애들은 대도시의 일류대학을 가고 우리 애들은 지방대학밖에 못 갔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 애들이 일류 대학 나온 것보다 더 뿌듯하게 생각하며 살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처럼 우린 소통을 모르고 살았지만 우린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처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꽤나 너그러운 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세월을 틈 하나 없이 큰 톱니와 작은 톱니처럼 단단하게 물려서 하나의 삐걱거림이 없이 앞만 보고 살았는데 내 집 마련하고 애들 결혼시키고 우리 둘만의 세상을 살면서 삐걱거림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게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몇 십 년 동안 경상도 남편의 그 무뚝뚝한 성격과 투박한 말투를 달콤하고 매끌매끌한 알사탕 넘기듯 매끄럽게 잘 넘기며 살아왔는데 이상하게 어느 날부터 그 투박한 경상도 남자의 성격과 말투에 그렇게 정나미가 떨어질 수 없었다.

그날도 우리는 마트에 갔다가 나는 짐도 많고 날씨가 더우니 택시를 타자하고 남편은 택시비가 많이 나오니 걸어가자 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마디 말을 주고받지 않았는데 갑자기 남편이 택시를 타든가 말든가 하고 돌멩이 던지듯 한 마디 툭 던져 놓고 길가에 나를 두고 혼자 가버리는 것이었다. 화가 난 나도 택시를 타고 혼자 집에 왔다.

그런데 그날 저녁 늦게 돌아온 남편 손에 이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빨간 장미에 푸른 잎이 받쳐져 있는 커피잔, 언젠가 남편과 함께 백화점에 가서 가격표를 보고 도로 내려놓으면서 우리도 물컵이 아닌 고급스럽고 분위기 있는 커피잔으로 커피를 마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남편이 언제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커피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싫지 않고,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가까이에 끌어올 수 있는 그런 풍경 같은 존재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풍경을 담아주는 커피잔 역시 나한테는 또 얼마나 요상한 물건인지 모른다. 입가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커피잔을 홀짝이며 커피를 마시고 있느라면 나는 어느 덧 분위기 좋고 근사한 커피숍에 앉아 있는듯 그지없는 해탈과 여유로움 속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넉넉하고 여유롭고 고급스러운 삶을 가진 그런 사람들의 대렬에 끼인 듯 기분이 상승되고 고조되기까지 하는데 그 느낌을 말로 형용이 잘 안된다. 그래서 내가 커피잔에 그렇게 집착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세계에 잠깐이라도 머물고 싶고 그런 세계를 잠깐이라도 가지고 싶어서.

“당신이 찾던 커피잔 맞아?”

남편의 말투는 여전히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말투로 변함이 없지만 얼굴은 17 18세의 소년의 얼굴처럼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내가 한 말 언제 기억했지?”

나도 입을 삐죽이며 물었다. 그야말로 동문서답이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먼저 쿡 하고 웃었다. 그러자 나도 쿡 하고 웃었다. 톱니처럼 단단히 물려서 돌아가다가 이렇게 삐걱거릴 때면 우리는 이렇게 또 아무 의미가 없는 허무한 웃음으로 그 삐걱거림을 윤활시키며 살아온 것 같았다. 내가 공격하면 남편이 뒤로 한 발 물러서고 남편이 공격하면 내가 뒤로 한 발 물러서면서 오늘까지 왔는데 누가 더 많이 물러 섰는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는 상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씨름선수처럼 이 세상을 끝장낼 듯 싸워도 서로를 죽어라 놓지 않고 서로를 죽어라 끌어당기었다는 점이다.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듯 커피잔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우물 속에 두레박을 던져 보석을 들어올리듯 우리 함께 살아온 40년 세월을 들어올리고 그 세월을 이끌어온 남편과 그 뒤에 껌 딱지처럼 붙어 있는 나를 들어올려보았다.

신의 조화일까 아니면 세월의 조화일까 우리는 남매처럼 너무 닮아 있었다. 오불꼬불한 산길처럼 깊이 패어 있는 이마의 세 가닥 주름, 생선가시처럼 자잘하게 자리잡은 입가의 부채모양의 잔주름 그리고 낡은 속내의처럼 한결같이 아래로 처지고 있는 목살……남편 같기도 하고 나 같기도 한 남편, 나 같기도 하고 남편 같기도 한 나, 성격이니 말투니 하는 것으로 정평을 낼 수 없는 삶의 무게와 부피가 이렇게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놓았다.

나는 물기 하나 없는 건조하고 황량한 사막들 바라보듯 빛이 없고 열도 없이 하나의 운석처럼 굳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온몸을 작열하며 펄펄 끓던 별은 어디 가고 저렇게 운석처럼 굳어 있을까 왕성한 녹음을 이끌고 있던 청록은 어디로 가고 저렇게 멍들고 말라 있는 겨울나무처럼 죽어 있을까. 그 빛과 열을 우리가 다시 발할 수 있고 그 청산과 녹수를 우리가 다시 이끌 수 있을까. 
우리는 다시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와 있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언덕에 올랐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다면 무엇이 남아 있을까.

안쓰러움, 간절함 그리고 그리움일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는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자리에서 우리 사이를 오가면서 많은 말을 해주는 이 커피잔을 들고 마주 앉아 있다. 따뜻하고 폭신한 고치 속에 들어 있듯 서로의 옆에 자리를 하고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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