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다가치 포럼 대표 
김정룡 다가치 포럼 대표 

춘추시대에 예양(豫讓)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중국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자객이었다.

예양은 춘추에서 전국시대에로 과도하는 시기의 인물이었다. 그는 晉나라의 대권을 손에 쥔 여섯 씨실(氏室) 중 하나였던 지백(知伯)의 부하였다. 지백은 천하다툼에서 조씨 가문 실세 조양자에게 살해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양자는 원한을 해소하기 위해 지백의 두개골에 색칠하여 술 마시는 도구로 삼기까지 했다. 일설에 의하면 요강으로 삼았다고도 했다. 이 일은 예양에게는 엄청난 치욕이었다. 예양은 자신의 주군을 위해 복수하기로 맘먹었다.

예양은 이름을 바꾸고 진양(陳陽)에 잠입한 뒤 노역형을 받은 범죄자로 변장해 궁 안에서 변소에 석회를 칠하는 일을 했다. 그때 석회를 바르는 흙손 속에 비수를 감추고 있었다. 조양자가 나타나기만 하면 단칼에 저 세상으로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늘은 조양자의 죽음을 원치 않았다. 막 볼일을 보러 걸어오던 조양자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매 같은 눈초리로 예양을 노려보았다. 예양은 꼼짝 못하고 붙잡히고 말았다.

예양은 전혀 거리낌 없이 자기가 지백의 복수를 하려고 한다고 자백했다. 호위무사들이 포위한 채 검을 뽑아 들었을 때 갑자기 조양자가 손을 흔들어 제지했다.
“이 자는 의로운 인물이다. 죽은 지백에게는 후손도 없는데 가신이 이렇게 복수를 하러 나서다니 보기 드문 일이로다!”
그러나 예양은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복수를 위해서는 본래 얼굴로 활개 치며 다니는 것은 당연히 힘들었다. 용모를 바꿔야 했다. 예양은 눈썹과 수염을 뽑고 몸에 반점을 가득 그려 넣은 뒤, 시험 삼아 거지를 흉내 내어 구걸을 나섰다. 아내조차 그를 몰라보고 이렇게 말했다.

“신기하기도 해라. 이 사람 목소리가 내 남편을 닮았네.”

이처럼 갖은 고생 끝에 마침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제야 예양은 조양자가 늘 다니는 길에 몸을 숨기고 습격할 준비를 취했다. 드디어 조양자의 수레가 정해진 길을 따라 다리를 건너왔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 말이 놀라서 요동을 쳤다.
뭔가를 알아챈 조양자가 벌떡 일어났다.
“예양이 분명하다.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
예양은 재수 없게 다시 붙잡혔다. 이치대로라면 이번에는 다시 풀려날 가망이 없었다.

본래 예양은 복수를 위해 그토록 가시밭길을 걸을 필요가 없었다. 예양이 고통스럽게 용모를 고칠 때 한 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말렸다.
“이럴 필요가 뭐 있나? 자네 재주라면 투항해서 어렵지 않게 조씨에게 중용될 걸세. 그렇게 친해졌을 때 일을 도모하는 게 더 편하지 않겠나.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가? 자네가 이러는 건 기개는 있어보일지언정 너무 미련한 방법일세!”
예양은 웃으며 답했다.

“자네가 말하는 방법은 확실히 가능성이 더 크긴 하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좀 있다네. 만약 조씨가 정말 나를 가까이하고 신뢰한다면 내가 그를 죽이는 것은 옛 지기를 위해 새로운 지기에게 복수하고 예전 주공을 위해 지금 주공을 죽이는 꼴이 되지 않겠나. 지금 내 방법은 성공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만천하에 대의를 밝히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의 목적일세. 내가 어떻게 남의 밑에서 일하면서 그 사람의 머리를 취할 생각을 하겠는가!”
이런 ‘정의로운 뒷이야기’를 조양자가 반드시 알고 있었을 리는 없다.
이 순간 조양자는 예양 앞에 우뚝 서서 왕이 쓰는 ‘과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입을 열었다.
“예양, 네가 왜 복수를 하려는지 과인이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는데 너는 과거에 범씨와 중항씨를 섬긴 적도 있지 않느냐? 지백이 범씨와 중항씨를 멸했을 때 너는 그들을 위해 복수를 하기는커녕 도리어 스스로 지백을 찾아가 주군으로 섬겼다. 똑같은 주군이건만 너는 왜 지백에게만 충성하고 범씨와 중항씨에게는 충성하지 않았느냐? 똑같은 원수이건만 너는 왜 과인만 미워하고 지백은 미워하지 않고서 죽을 둥 살 둥 그를 위해 복수를 하려고 하느냐?”

예양은 당당히 대답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오. 범씨와 중항씨를 위해 일할 때 그들은 나를 보통 사람으로 취급했으니 나도 당연히 보통사람처럼 보답했을 뿐이오. 그러나 지백은 나를 하늘 아래 가장 뛰어난 인물로 여겨주었소. 이에 나는 가장 뛰어난 인물처럼 그에게 보답하려는 것이오.”
이 말을 듣고 조양자는 눈물을 흘리며 길게 탄식했다.
“알겠네. 알겠어. 예양 선생, 자네는 지백에게 충성을 다했고 명예도 이루었네. 그리고 과인은 벌써 충분히 아량을 베푼 셈이니 이번에는 놓아주지 않겠네."
말을 마치고 그는 호위무사들에게 예양을 에워싸라고 명했다. 조양자는 이 존경할 만한 자객이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배려할 작정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싸우다 죽는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죽음이 될 듯했다. 그것은 조양자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존경과 존중이었다.

그런데 예양은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자기가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지혜로운 군주는 다른 사람의 뛰어남을 가리지 않고 충신은 절개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의리가 있다고 들었소. 오늘 나는 마땅히 엎드려 죽음을 기다려야 하지만 부디 내 청을 하나 들어주시오. 당신의 옷자락을 베어 소망을 이룬 셈 치게 도와주시오.”
뜻밖의 부탁이었지만 조양자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알겠네. 그러면 검을 뽑게.”
예양은 검을 뽑아들고 뛰어들어 조양자의 옷을 베었다. 검을 휘두르면서 그는 울고 있었다.

“하늘이시어, 마침내 지백의 은혜를 갚았나이다!”
세 번 검을 휘두른 뒤 예양은 태연히 자신의 목을 베었다.
이 일을 전해들은 천하의 인의지사들은 슬프게 울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군자는 예양처럼 고귀하게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예양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도 모두 동감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

기왕에 자객 얘기가 나온 김에 역사상 최초로 자살한 자객 서예(鉏麑)의 이야기를 좀 해보자.

서예는 예양보다 100세쯤 앞선 선배였으며 춘추시대 진영공(晉靈公) 집정 때였다.
진영공(晉靈公)은 인간적으로 악독하고 악랄하기 짝이 없는 폭군이었다. 그는 산해진미를 먹거나 백성의 소혈을 쥐어짜 궁궐을 꾸미는 데에만 열중했다. 이런 행위는 임금으로서 흔히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다음 행위는 너무 끔찍해서 소름이 돋는다. 높은 누대에서 활로 탄알을 쏘아 사람을 맞히고 행인들이 그 탄알을 피해 허겁지겁 숨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기원전 607년 어느 날 그는 곰발바닥이 설익었다는 이유로 요리사를 죽여서 키에 그 시체를 담아 밖에 버리게 했다.

진영공의 이 악랄한 행위는 정경(正卿:국무총리에 해당되는 직위)인 조순(趙盾)의 눈에 띄었다. 조순은 정의로운 관리였다. 진영공의 행위에 당연히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 진영공의 앞에 선 조순은 눈엣가시였다. 횡행패도(橫行覇道)하려면 조순을 제거해야 했다. 그런데 죄명의 꼬투리를 잡지 못해 내놓고 공명정대하게 죽일 수가 없어 자객을 파견하여 없애기로 하였다.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암살하려 했으니 보통일이 아니었을 것이고 자객도 보통 자객이 아니었을 것이다.
진영공이 물색한 자객은 서예(鉏麑)였다.

서예가 조씨 저택에 잠입했을 때는 마침 동틀 무렵이었고 저택의 세 대문이 모두 활짝 열려 있었다. 조정에 나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었으므로 조순은 의관을 차려 입고 방 안에 단정히 앉아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자객이 왔는지는 당연히 몰랐으며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순의 모습이 하도 대바르고 있어 서예는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당시 서예는 깊은 감동을 느끼고 내심 탄복했다고 한다.
‘홀로 있을 때도 정중함을 잃지 않다니 실로 백성들을 책임질 만한 인물이로구나!’
이런 사람을 살해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었다. 실제 죽여야 할 사람은 조순이 아니라 진영공이라는 생각이 서예의 머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서예는 진퇴양난에 처했다. 명령에 따라야 했지만 충신을 죽일 수는 없었다. 나라의 동량을 죽이는 것은 불의였다. 그러나 군주의 명을 어기는 것은 불충이었다. 서예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는 스스로 죽는 길을 택했다. 홰나무에 머리를 부딪쳐 죽은 그는 역사상 최초의 ‘자살한 자객’이었다.

유교의 본산지는 중국이지만 한국은 500년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유교 국가로 자리매김 되어왔으며 한국의 유교는 중국 유교보다 훨씬 더 유교적이다. 필자는 한·중·일 삼국 유교를 다음과 같이 비유한 적이 있다.

‘일본유교는 피부유교, 중국유교는 근육유교, 한국유교는 뼛속유교이다.’

어느 학자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인 중 불교신도가 26%, 기독교신도가 19%, 유교신도는 2%밖에 안 되지만 한국인의 사고 90%이상은 유교의식(儒敎意識)이며 실제로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유교사상이다.

유교에 인·의·예·지·신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을 오상(五常)이라 부른다. 이 오상은 유교사상의 핵심이다.

자객 예양은 의리를 지킨 모델이며 믿음을 지킨 아이콘이다. 자객 서예는 인을 지킨 모델이고 예의를 지킨 아이콘이다.

거창하게 유교사상을 들먹일 필요 없이 쉬운 말로 말하자면 자객 예양과 서예는 둘 다 자기를 알아준 주군을 위해 최선을 다 했고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주군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는 예양의 말은 오늘날에도 매우 감동적이다.

하지만 유교 국가인 오늘날 한국정치판에서는 이 감동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으며 오히려 배신을 밥 먹듯 하며 줄 서려는 정객이나 민중은 그러한 배신을 허물로 삼지 않고 높은 지지율을 보내는 현 상황을 지켜보는 필자는 당황하기만 하다.

아무리 1인1표 선거민주주의사회라고 하지만 어떻게 변방을 맴돌던 자기를 그 분야의 최고 자리에 앉히는, 즉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는 못할망정 배신을 때릴 수 있느냐 말이다.

어느 후보가 슬로건으로 내건 상식은 도대체 무슨 상식인지? 인간사회의 전통적인 상식이 철저하게 허물어져 가는 한국정치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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