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철(경제학 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교육과학부 자문관)

보라매공원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관악구 , 영등포구 3개구에 걸쳐있으며, 지하철 7호선 보라매역과 2호선 신대방역에서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보라매공원’은 1958년부터 1985년 12월10일까지 공군사관하교가 자리 잡고 있었던 곳으로 공군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을 명명하였다. 이를 금방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보라매공원 정문을 들어서 정방향으로 '성무대 (星武臺)'라는 글씨가 새겨진 하늘을 찌를 것 같은 탑을 보게 된다. 후문 방향에 세워진 조형물에는 공군을 상징하는 보라매가 앉아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으며 탑 상단에는 ‘충효’ 그리고 그 아래 ‘호국비천 (護國飛天)’이라 새겨져 있다.

필자는 거의 30년 동안 집에서 가까운 서울 시립 근린 보라매공원을 일주일에 몇 번씩 찾고 있다. 공원을 자주 찾는 이유는 건강을 위한 운동하기에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혼탁 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서 산재근로자를 위한 희생탑, 반공반탁 참여 학생들을 위한 충혼탑과 독립운동가의 동상을 보면서 그들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의 30년 동안 조국 영공 수호를 위해 최 첨병인 수많은 공군 사관생도를 생각하면서 미력하지만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생각과 다짐을 할 수 있어서이다.

보라매공원만큼 충효, 호국, 반공, 통일 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공원이 아마도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성무대’ 탑을 지나 100미터 정도 걷다보면 버드나무가 즐비한 자그마한 호수를 만나게 된다. 호수 근방 산 아래 하얀 조형물인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이 있다. 이탑은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2000년에 세워졌다. 이 위령탑 앞에서는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기념하여 매년 4월8일 전후 '산재노동자의 날 추모제'가 열린다. 추모의 날로 4월 28일이 처음 지정된 것은 1996년이다.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재해율은 1998년 이후 전반적으로 증가추세를 보이다, 2004년부터 감소추세에 있으며, 2021년 3월말 현재 재해율은 0.15퍼센트로 전년 동기 대비 0.01퍼센트 포인트 증가하였다. 이 위령탑 앞을 지날 때마다 필자는 우울한 마음이 커진다. 왜 매년 예방 가능한 산업재해가 늘어나 노동자와 가족들에 큰 상처를 주는 것일까!

호수 근방에는 ‘반탁반공순국학생충혼탑’이 있다. 이탑은 한반도의 38선을 기준으로 미군과 소련군의 신탁통치에 반대하여 투쟁하다 순국한 청년 학생들의 넋을 기리는 충혼탑이다. 국가보훈처 지원 현충시설인 이탑 아래쪽에는 김구 (1876~1949) 선생의 휘호 ‘반탁승리"가 새겨져 있다. 충혼탑 옆에는 ’한국학생건국운동공적비‘가 있다. 탑 아래쪽에는 이승만 (1875~1965) 전 대통령의 휘호 '남북통일'이 새겨져 있다. 두 충혼탑 옆에는 ‘평화통일기원시비’가 있다. 이 시비 뒷면에는 일붕 서경보 (1914~1996) 스님의 시가 새겨져 있다.
 
錦繡江山兩分斷 (금수강산양분단)  삼천리 근수강산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으니
近親離散畿徑春 (근친이산기경춘)  하나의 민족이 헤어져 살아가고 있구나.
若能統一吾民族 (약능통일오민족)  만약에 이 강토 삼천리가 통일이 된다면
威力可驚世界人 (위력가경세계인)  만고의 근심하던 마음이 산을 오르고도 남으리.

일봉은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교토의 임제대학 전문학교를 졸업, 진주 해인대학, 부산 동아대학교 교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와 불교대학장을 역임하였다. 학구열도 대단해 미국 템플대학교(Temple University)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대학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주립대학으로 1884년 법률가이자 침례교 목사였던 러셀 H. 콘웰 (Russell H. Conwell)에 의해 설립되었다.

반공과 통일을 염원한 충혼탑과 시비를 뒤로하고 보라매공원 운동장 북쪽 위편 ‘보라매청소년수련관’ 건물 앞을 지나다 보면 중앙부에 여성의 형상을 한 동상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최초의 비밀 여성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이끌며 '혁명 여걸'로 불리기도 한 여성독립운동가 김마리아 (1892~1944)를 기리기 위한 동상이다. 1983년에 설립된 김마리아기념사업회는 1989년 시립공원인 보라매공원에 동상을 건립하였다. 기독교계 항일여성운동의 대모, 김마리아는 1892년 6월18일 황해도 장연 출신으로 일찍이 기독교로 개화한 만석꾼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최초의 비밀 여성조직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회장 김마리아는 기독교 학교인 소래학교와 정신여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철저한 애국애족 정신을 갈고 닦아 한평생 광복 운동을 하였다. 그 뒤 광주 수피아 여학교와 모교 정신여고에서 교사를 지냈다. 1914년 일본 히로시마의 긴조여학교와 히로시마여학교에서 수학한 뒤, 1915년 도쿄 여자학원 예비과에서 공부하였다. 김마리아는 큰 뜻을 품고 미국 파크대학, 시카고대 대학원, 뉴욕 신학교 등에서 수학하였으며, 1928년 1월 뉴욕에서 ‘근화회’를 조직, 항일여성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하다 혹독한 고문과 함께 구속되어 몇 차례 옥고를 치렀다. 옥고 중에 얻은 고문 후유증 악화로 해방을 17개월 앞둔 1944년 3월13일 평양에서 53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진정 필요한 것은 민족단결과 실력양성이다” 라고 주창한 김마리아는 항일여성운동의 대모'라고 불릴 정도로 여성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필자는 보라매공원의 위령탑, 충혼탑, 시비, 독립운동가의 동상 앞을 지나면서 매번 요즈음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언행에 대해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18대 집권당의 공천으로 국회의원 출마 후, 지역위원장 등으로 5년 정도 현실 정치에 참여한 필자로서 자괴감이 크다. 정책공약이나 정책분석은 없고 후보 가족들의 의혹만 난무하며 서로 헐뜯는 ‘가족 리스크’ 진흙탕 싸움 선거판에 일부 유권자는 선거에 등을 돌리고 있다. 2022년 3월9일 대통령 선거를 몇 달 앞두고 매일 벌어지는 우리 정치권의 정상적이지 못한 현상을 보는 국민은 짜증나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우리 세대와 후손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을 보전하고 구하는 일은 주권자인 우리 국민들의 역할이다. 산업역군으로 일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미군과 소련군의 신탁통치에 반대하여 투쟁하다 순국한 청년 학생, 항일 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여성 독립운동가, 조국 영공 수호를 위한 투철한 공군의 정신이 지금 혼탁한 정치판을 생각하면 무척 그립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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