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호虎虎虎 

-정성수-

호랑이가 이빨을 감추더니 굴문을 철가리했다
호피를 깔고 어둠을 끌어당겨 이마를 덮는다
간헐적으로 내뱉는 잔기침이 
목침木枕을 흔들어도
호랑이를 품에 안는 꿈을 꾸어라 女女女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꿈을 꾸어라 子子子
꿈들이 모여모여 好好好

호랑이 가죽이 욕심나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호랑이 꼬리를 밟아도 겁날 것 없다. 꼬리를 잡으면 로또를 맞은 거다. 나는 알고 있다. 흰 범은 함甝이요, 검은 범은 숙虪이라는 것을, 뿔은 있으나 앞발이 없고 표범무늬를 가진 놜貀이라는 짐승이 있다는 것도…   

호랑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곶감이 아니라 캄캄한 굴속이었다. 굴속으로 들어간 호랑이는 한 마리 두더지에 불과하지만 굴 밖으로 나오면 송곳니는 날카롭고, 수염을 날리는 구름무늬를 가진 조선표범이다.

멧돼지들이 나뭇등걸 파헤치는 소리에 잠이 깬 
호랑이가 
짐승의 피를 몸에 바르고 
양미간에 꽃물을 들이면 

와지끈 무너져 내리는 산이  
산을 부른다
虎虎虎

 

종이호랑이  

-정성수-

한 때 득실거리던 지리산 호랑이가 북극성을 바라보고 
밤길을 걷다가 
얼음장이 풀리자
봄을 따라 산 밖으로 나왔다

풍남문 위로 떠 오른 보름달이
먹이를 물고 가는 호랑이를 아슴아슴 비춰준다 

전설처럼 죽지 않는 뱀이 낸 꾸불길을 따라가며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침을 흘리던 날들이 갔다

콧속으로 호스를 밀어 넣은 아버지는 
이빨은 빠지고 발톱이 닳은 종이호랑이가 되었다 
한 때는 태산준령을 넘나들던 
왕중의 왕이었다

접으면 접히고 찢으면 찢기는 종이처럼 
오래 눕더니 얇아졌다
병실 밖 복도에 걸린 낡은 호도虎圖 처럼 밤낮을 
입을 벌리고 있다

한때 물고기처럼 싱싱하게 퍼덕이던 당신

토끼 한 마리 잡으면서 전심전력을 다하는 호랑이처럼 
삶에 치열했던 당신의 날들을 
하나씩 보내는 동안 
링거가 방울방울 떨어진다

 

전설 

-정성수-

건지산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위들이 죽순처럼 자라고 
나무들이 어깨를 짜고 
산을 이루어야만
호랑이가 출몰한다지만
건지산에는 호랑이 발자국들이 낸 길이 있다

귀청을 울리는 바람소리는 호랑이의 포효라는 것을 
나무들은 안다
빳빳한 수염과 날카로운 이빨은 
위풍이자 번갯불이다 
호랑이가 자세를 낮추고 두 눈에 힘을 주면 
발톱에 불씨가 돋아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무릎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신발 끈을 동여매야 비로소 
천리 길을 간다

발바닥에 물집 잡히는 힘으로 서 있는 
건지산은 
산적도 피해 간다는 산

피처럼 붉은 달이 뜨고 소리쳐 노래를 불러도 
메아리까지 받아주는
어머니의 산이다
아버지의 산이다

호랑이 발톱을 빌려 건지산 흙바닥에
발자국을 찍는 날
한 마리 호랑이가 억새밭에 전설처럼 엎디어 있다

․ 건지산 : 전주 북부지역을 감싸고 있는 해발 101m의 낮은 산.

 

산중호걸山中豪傑

-정성수-  

산군이 담을 훌쩍 넘어뛰자 
외양간에서 졸고 있던 소의 일생이 
한 순간에 절단 났다
전설 따라 삼천리는 할머니 혀끝에 있었다

총구에서 섬광이 터졌다
번뜩이는 것은 언제나 눈부신 것이라며 
얼룩무늬 가죽을 두른 사냥꾼이 오른 쪽 눈을 질끈 감는다
다시 방아쇠를 당기자 
호랑이가 꼬리를 흔들면서 어슬렁어슬렁 
나무속으로 들어간다
호랑이의 거처는 나무에 있었다 

바위 하나가 출입구를 막는 순간 수염은 빳빳하고 
동공에는 살기가 돈다
나뭇잎 사운 데는 소리에 잠이 들어도 
산군은 백수의 왕이다

잠에서 깬 호랑이가 발톱을 세우고 문 밖을 내다보면
산은 가부좌를 튼 채 말이 없고
나무마다 긁힌 자리 선명하다 
상처가 핀 것이 꽃이다
나무가 많은 산은 그늘이 들어 설 자리가 없다

산 구석구석에 호랑이가 발자국을 그려 넣으면
양 미간에 새겨진 임금왕(王)자가 
늙었어도 
산중호걸은 호걸 중의 호걸이다

화가 최정광
화가 최정광
시인정성수
시인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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