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수 시집 「툭」이 추구하는 시의 문장부호 

 

시집 툭
시집 툭

짙은 안개가 걷히더니 맑게 갠 밤하늘에 총총 별이 박혔다. 정성수 시인의 시집「툭」을 펴들자 수많은 문장들이 안겨왔다. 문장들 사이에 돌못처럼 박혀 시의 축대를 떠받치고 있었다. 거대한 시인이지만 중후하기 보다는 소박한 감성을 담은 시집 ‘툭’을 평 한다는 것은 스스로 영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를 만난 것은
잠시 쉬어가라는 ‘ , ’일까 영원히 안주하라는 ‘ . ’일까
턱을 괴고 생각해 봐도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우리의 인연이 우연이라면 ‘  ’갰고 필연이라면 “  ”갰다. 
-이하 생략-
                                       
                                          -「문장부호」앞부분-

 눈에 뜨이는 시 ‘문장부호’는 문장부호들이 시의 콘텐츠 속에 들어가 움츠려있던 기지개를 펴고 있다. 보통 독자들은 시를 읽으면서 내용을 들여다보면서 의미를 유추해보며 시인의 심중을 파악하는 데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다각도로 시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가 가진 매력을 더 뽐내기 위해 창의적인 시 ‘문장부호’가 등장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내 모습은 ‘「  」’ 꺼야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이렇게 ‘『  』’ 일어나라는 네 목소리
그게 내게는 채찍이자 당근이었어
우리의 만남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 ? ’일까 아니면
가슴 뿌듯한 ‘ ! ’일까
그게 궁금해
                               
                                           -「문장부호」뒷부분-

 시는 많이 써봐야 자유자재로 시적 구사가 가능하고 단단하고 튼튼한 시가 된다. 결국 시는 시인의 시적 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어떻게 보면 시인이 시의 행간에 살짝 숨겨놓은 미로를 찾아가는 일로 ‘무지개 화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무지개 화법은 필자의 주장이다.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으로 무지개가 연상 되듯이 ‘시도 알록달록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이 시는 이런 것이다’ 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무지갯빛이 70% 이상 들어간 시여야 맛깔나게 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정 시인의 시는 농후하고 중후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필자가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시적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하고 있어 한 순간에 시에 매료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를 만난 것은’ 이라는 첫 행이 문장부호 ‘?’라면, 마지막 행 ‘그게 궁금해’는 문장부호 ‘!’라고 할 수 있다. 역시, 프로만이 가능한 일이다. 

툭 치고 가는 어깨 하나가 있었다 툭 하면 눈물 글썽이던 얼굴

세상에 툭 아닌 것 어디 있겠나 한 번 뒤집어 봐 툭하면 삐지지 말고, 흰 이빨을 던져 봐 그대가 던진 툭, 큐피드 화살이 되어 내 심장에 꽂혔다. 무지개가 포물선으로 툭, 떨어지는 가을 오후, 떠날 때는 침묵으로 떠나야 한다고 붉은 상처를 보여 준다.   
-하략-
                                                                        
                                                                       -「문장부호」일부분-

시집「툭」의 표제시 ‘툭’은 시집 62페이지에 안착되어 있다. 표제시 ‘툭’에는 반짝이는 시어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내게 속삭인다. 이런 시는 어떻게 평을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느끼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 능력은 의구심과 편향적인 생각까지 무력화시킨다. 사람에 대한 신뢰감까지 내포하고 있다. 결국 사람은 믿음이라는 그릇의 범주에 있다고 할 수 있어 시 ‘툭’은 시인의 감정들을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는 것이 발견된다. ‘툭 치고 가는 어깨 하나’는 눈물을 글썽이는 한 여인을 상상하게 되고 ‘떠날 때는 침묵으로 떠나야 한다고 붉은 상처를 보여준다’고 시인의 따스한 마음을 보여준다. ‘세상에 툭 아닌 것 어디 있겠나’ 맞다. 세상을 살아본 시인만이 쓸 수 있는 귀한 문장이다. 
  
시인의 시들은 중후하고 묵직하다. 중추적인 메시지를 어딘가 살짝 놓고 찾아보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를 찾아낸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말과 글을 쓰고 몸짓 언어로 대화가 가능하다. 서로 소통이 되는 것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렇게 잘 쓴 시에서도 그림이 그려진다. 여기라도 콕 찍지 않아도 ‘툭’ 내려놓은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신기하게도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한적한 길 끝쯤에서 가을의 저녁노을이 지고, 한 어깨가 한 어깨를 치고 갈 때, 붉은 상처를 발견한다. 
  
무지개가 떠 있는 것을 보면 화려하면서도 결코 건조하지 않다, 비가 그친 후의 축축한 정경이 시가 되었다. 이 시는 ‘바둑판에 바둑알을 놓듯 툭 던진 돌멩이가 어둠 속을 날아가더니 무딘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툭’이라는 마지막 행을 낳았다. ‘툭’이라는 단어는 의태어이기도 하고 의성어일 수도 있다. 무언가 힘없이 떨어트리는 것을 연상할 수 있는데 과연 그 ‘툭’ 놓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재미도 있다. 정 시인의 툭툭 던진 시들이 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고른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꽃길을 걸을 때는 혼자서 걸으세요
발바닥이 부르틀 때까지
 
행여 꽃잎에 마음을 베인다 할지라도
꽃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축복입니다
아직은 두 다리가 성성함을
고맙다 고맙다
감사하세요
외롭고 슬프고 힘들다고 생각되는 날
꽃길을 걸으세요
꽃을 보면서 끝까지 걸어가면 마음에도 꽃이 핍니다

꽃길을 걸을 때는 맨발로 걸으세요
발등에 꽃물이 들 때까지 
            
                       -「꽃길」전문-

시 ‘꽃길’ 2연에 꽃길이 활짝 웃음 짓고 있다. 정 시인의 시의 논리성은 일관되게 타 시인과 대비된다. 신기함과 궁금증이 오버랩 된다. 독자들이 정 시인의 시를 주목하는 것은 삶과 생활에서 경험하고 느낀 일, 저 세상까지 들여다보는 안목이 복합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건너면서 담아낸 시라는 것을 ‘툭’을 보면 알 수 있다.

시집「툭」에는 ‘꽃’이라는 주제 가진 시들이 많다. ‘반지꽃’, ‘선암사 매화’, ‘찔레꽃’, ‘우리 집 꽃’, ‘명자꽃’ ‘꽃길’ 등이 있다. 시인이 꽃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살짝 지겨운 느낌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꽃길’이라고 하면 슬픈 꽃이기 보다는 문학적으로 보았을 때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시라는 느낌을 받는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시 ‘꽃길’은 마치 거친 숨을 쉬며 등산을 하다가 잠시 꽃길을 걷는 여유로움까지 보인다. 갈증을 해결하는 고마움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꽃길을 걸을 때는 맨발로 걸으세요 발등에 꽃물이 들 때까지’라는 마지막 연은 아무리 힘든 길이라도 꽃물이 지더라도 이겨내라는 격려이자 독려다. 누구나 고달픈 현실을 도피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문제 많은 상황들은 좌절하게 하고 약한 마음을 갖게 한다. 시를 읽어야하는 이유이도 하다. 시는 무의미한 시간 들을 꽃길로 만들어주고 마침내 월계관을 쓴 최후의 승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꽃길을 걷는 맨발은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까지 선사하는 것이다. 
  여백을 조정하는 정 시인의 능력이 시집「툭」여러 곳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이는 삶에서 받은 마음을 내려놓고 시를 읽을 때 찍는 인생의 쉼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애매하고 모호하지 않은 시어들을 아름다운 마음까지도 깊이 다가온다.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걷고, 말하고, 듣고 보는 것을 지나 4차원적이기도 하다. 숨겨진 세상을 찾는 잠깐의 행복보다는 함께 공감하고 아파하고 격려하며 힘내라고 토닥이는 시들은 대 할수록 공감력은 배가 된다. 시인의 문학 향기를 담뿍 담은 시집 ‘툭’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이마를 맞대고 논할 수 있는 시어들이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특히 감정의 공유를 뛰어넘은 시인의 시 세계에 침잠할 수 있는 기회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은 고립된 영웅보다 참여하는 영웅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세상의 수많은 꽃 중에서 유난히 
반지꽃을 좋아하던 내 아들
아들의 꽃으로 엄마가 만든 꽃반지를 무덤 앞에 바친다 
잊지 마라 아들아 
해마다 어김없이 반지꽃 피고 진다는 것을

                                            -「반지꽃」끝부분-
 

시 ‘반지꽃’은 국가유공자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한 2016년 11월 23일 제20회 호국보훈문예물 공모전추모헌시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반지꽃’은 메마른 땅에서도 반지꽃이 피듯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은 코끝을 시리게 한다. 정 시인은 교수이자 이미 성공한 문학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살아온 여정은 아무도 본 적이 없다. 오직 시 속에서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론서보다 시집을 읽어야하는 이유다. 사람이기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람 밖에 못하는, 세상일들을 담백한 필체로, 헤어 나올 수 없는 미로에 빠지게 한다. 특히 화자를 어머니로 치환하여 읊은 시적 감각이 돋보인다.

끝이라는 말에서는 막막함이 묻어난다. 가령 막차가 끝어진 정거장에서 시간표를 확인할 때, 자판기에 동전을 밑에 넣어도 묵묵부답일 때, 책 표지를 덮을 때, 이만 헤어지자며 네가 손을 내밀 때
                                                                               -「끝」앞부분-
 

시 ‘끝’은 정이 많은 시인 자신을 보여준다. 누군가 시작을 외칠 때, 끝을 아쉬워하며 기대하는 사람, 정 있는 사람과 정 없는 사람의 차이점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로 나타낸다. 시인은 경쟁 속에서 살아가지 말아야한다. 
  
물론 수상을 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렇다고 오직 성공만 추구한다면 그 사람은 공허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일 뿐, 사람들의 진정한 정까지는 느끼지 못한다. 성숙한 사람은 인생의 굴곡진 세월을 모두 이겨내 진정으로 웃는다.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이다. 그래서 일까. 정 시인의 시집「툭」은 툭툭 던지는 수많은 시어들이 우리의 가슴에 와 안긴다. 
  
서정적인 마음결은 전 세계인의 1%를 제외하고 99%가 가지고 있는 진한 향기다. 한 마디로 말 한다면 사치스러운 마음은 1도 없다. 시는 그렇게 한 올씩 한 올씩 각자의 마음에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정적인 시의 요건은 무엇일까. 성찰을 하고 고백을 하는 것, 고통이 아닌 친화적인 외에도 유년 시절의 교실 안의 모습과 출석부, 창 밖 너머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처럼 서정적인 마음결을 묻힌 글들을 보고 공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성찰과 자기반성은 문학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외적으로 꾸미기 보다는 내적인 단단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때 사실성을 부여하면서 예견이나 추측이 맞다는 독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인의 진정성이 나타나야 한다. 

한 그릇의 곰국을 위하여 
생을 지탱했던 소의 네 다리뼈를 무쇠솥에 넣고 장작불을 지폈다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국물 위에 뜬 기름 걷어내고 대파 송송 썰어 넣어 만든 
곰국 한 그릇
앞에 놓고 허한 속을 달래려니 손이 떨린다
살은 살대로 어떤 술꾼의 안주가 되었으리라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우려먹다니

한때 콧김을 뿜어대며 
산 아래 긴 밭은 갈아엎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멍 자국 깊어도 
뼈 쑤신다는 말 하지 않았으리라
밤이면 외양간에서 밤하늘 별을 바라보던 당신의 곡진 한 생이
뜨거운 곰국 한 그릇이 되었다

아버지는 뿔 없는 한 마리 소였다 

                                               -「곰국」전문- 

‘곰국’은 곰을 끓여 만든 국이 아니라 소의 양지, 사태, 양, 곱창 등의 부위를 많이 넣고 푹 고아서 끓인 국이다. 육탕肉湯이라고도 한다. 보양음식으로 여기에 밥을 말았을 때 ‘곰탕’으로 부른다. 반면 ‘설렁탕’은 소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소에게서 나올 수 있는 모든 부위를 함께 넣고 푹 끓인 국 또는 그 국에 밥을 만 음식을 가리킨다. 또한 국물 색깔이 눈처럼 뽀얗다고 설농탕雪濃湯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는 주장도 있다.

곰국이나 설렁탕을 먹으면서 한 번이라도 소에게 미안했던 적이 있었던가? 생각할수록 소에게 죄를 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시 ‘곰국’은 결국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마무리가 되었다. 앞에서 드러내지 않았던 시적 주제는 뒷마무리가 되면서 커튼식 구조로 짜여 있다. 시가 돋보이는 이유다. 서서히 드러내되 다시 감출 수도 있다는 것이 시의 마력이 아닐까? 자문한다. 

현저하게 관찰하고 관철해야만 알 수 있는 시들은 흥미가 결여된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 자연스러운 대화식의 시들은 감성이 깊을 수밖에 없다. 창조와 계승의 둘레에서 살았던 우리의 인생들은 마치 곰국처럼 사라지지만 깊게 여운을 남긴다. 뚜렷한 원리와 운율 구성이 아니더라도 시가 시답게 될 수 있는 것은 진실성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에 있다. 
  
과학자는 과학을 연구하여 사실을 증명하고, 의사는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는 것처럼 시인은 따뜻한 가슴과 연민의 눈빛으로 시를 맞이하고 독자에게 보내야 한다. 결국 진실이라는 시적대상과 시 전달력이 파문으로 전파되어 시를 읽어야하는 이유가 된다. 짧지만 강하게 뇌리에 박히는 콘텐츠는 오직 시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다. 특히 시는 숨어있는 감성을 깨우는 뇌를 자극시키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이러한 감성을 자극하고 표현하는 사실은 시인이 갖춰야 할 덕목 중의 하나인 동시에 필수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정 시인의 시집「툭」에는 산문시의 형태를 가진 시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거침없이 읽혀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생이 숙명이라면, 어쩌피 일어난 일들을 퍼즐처럼 맞춰야 한다. 자유로운 삶에서 시는 퍼져나간다. 중추적인 인생을 알려주는 쉼표들이기 때문에 산문시는 그렇게 율격을 피하여 다가오고 가끔 율격과 함께 춤을 추며 발을 맞추기도 한다. 미학적인 언어 예술성은 시집「툭」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집 한 채를 지어 봄 하늘에 일자눈썹이 되어있는 
종달새에게 주었다
집 한 채를 지어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하는 
개미 부부에게 주었다
집 한 채를 지어 감나무 끝에 매달린 
늙은 저녁노을에게 주었다
집 한 채를 지어 허공에서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눈꽃에게 주었다

집 한 채가 없는 민달팽이가 
느릿느릿 
서쪽으로 가고 있다

집이 아홉 채나 되는 김여사는 몸이 하나다   

                              -「집」전문-

 시 ‘집’은 착하고 순수한 아이가 자연과 대화하며 상생하는 시골스럽고 순진 무고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대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을 정겹고 행복하게 해준다. 시인은 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조용한 시골마을을 그림처럼 그려내고 있다. 아이의 동심을 시로 풀어내 한 순간이나마 옛날로 돌아가게 한다.
근본적으로 가진 동심에는 향기가 있다. 뿐만 아니라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혼동할 일이 없는 ‘집’이라는 대상은 한국인의 속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읽는데 부담 없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시집「툭」여기저기에서 툭툭 불거지지만 아이들이 읽는다면 관념들이 형상화되어 심상이 발달하는 교육적인 시가 된다. 특히 시 ‘집’은 필자가 읽고 또 꺼내어 보고 싶은 시다. 시의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시적 가능성은 있다. 시만이 시적 비유와 생태적인 감성들을 경험케 하는 힘이다. 

옛날이야기를 마친 할머니의 얕은 코 고는 소리는 풀벌레 울음소리였다. 여름을 베고 잠이 든 평상은 고요하다. 메케한 쑥 냄새는 마당을 가득 채우고 모깃불은 속울음을 운다. 소년 동주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밤하늘에서 별 하나가 시의 밧줄을 내려 주었다. 별나라에는 아직 피지 않은 별, 막 피어나는 별, 활짝 핀 별들이 있었다. 소년 동주는 별 밭에 엎디어 바람이 전해 주는 시를 받아 적었다. 시 하나가 별똥별이 되어 북간도 어디쯤 떨어졌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시는 싹이 트고 꽃이 피었다. 향기는 사람들의 코끝을 적셨다.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소년 동주」일부분-

시 ‘소년 동주’는 시인의 황금펜 문학상 수상작품이다. 시인이 윤동주 시인을 흠모하는 것은 당당함에 있다고 한다. 흔히 윤동주를 주로 시로 투쟁한 인물이라고 알고 있다. 2010년에 세상에 공개된 재판 관련 문서를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많다. 당시 악명 높았던 일제 재판관 앞에서도 당당했다. 

소극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은 이미지의 시인은 사라지고, 형사 앞에서도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과 대책을 열정적으로 토로하기를 마다하지 않은 저항의 독립투사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당시 윤동주의 판결문에는 민족의식을 고취하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운동 방침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적시돼 있다. 훌륭한 시, 좋은 시를 쓴 시인 윤동주의 이면에 있는 당당함은 시인들이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

갈매기가 되고 싶었다
날개가 있어야 바다 위를 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 채 
하늘을 날겠다고 두 팔을 퍼덕이었다
그것은 허망한 생각이 아니라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절실한 믿음이었다
신앙이었다

전 생애를 걸고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이 세상 어디라도 날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뻘은
하늘을 나는 꿈을 꿀 때마다 몸을 흔들었다
겨드랑 밑에 날개가 돋으라고 기도했다

저물녘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외로움이 길어질 때 
비로소 바다 위를 나는 한 마리 갈매기가 될 수 있었다
눈은 가졌으되 눈물이 없는 뻘은

                                          -「뻘」전문-

인간은 죽음 뒤에 오는 사후세계를 알고 싶어 하고 신앙으로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한다. 특히 시를 이러한 관점에서 풀어낼 때 시적 감응은 살아난다. 눈물이 없는 ‘뻘’에서 활짝 날개를 펼치고 자유롭게 날아가는 갈매기의 아름다운 환생은 시인의 눈으로만 볼 수 있다.
  시 ‘뻘’은 화려하였던 인생보다는 죽음 같은 쉼터가 되었다. 독자는 잠시 갈매기가 되어 우리의 삶을 관망하고 있다. 대중성과 독자성을 가지는 시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시들이 대부분이다. 설령 대중성과 독자성이 없더라도 마음을 토닥이는 시 ‘뻘’은 현실 세계에 동떨어진 시 세계에서 내던진 채 비켜서서 관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중하고 혁신적인 흐름을 유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체보다는 비운 마음을 도입시킨 텅 빈 자리만이 남겨져 홀로 쓸쓸하다. 그러나 전시품이 아닌 내면의 거울을 깨트린 잔해물들은 시선을 먼 곳에 두고 하나 둘씩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시 ‘뻘’은 눈은 가졌으되 눈물이 없다.

남대천 밤하늘에 별들이 날아다닌다
별들이 눈을 감은 후에도 
빛이 그린 궤적은 
오랫동안 어둠 속에 머물러 있었다
작고 엷은 빛들은
밤하늘에
은하수가 되어 흘러간다

어둠 속에 사라진 반딧불이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동공이 팽창할 뿐
시선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빛은 언제까지나
가슴속에 남아
길 잃은 영혼처럼
밤하늘에 또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궤적」전문-

시의 언어란 기이하면서도 무언가를 터뜨린다. 거기에 붙여 조용한 정적인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선물해준다. 영적인 리듬을 타고 오다가 막바지에 시 ‘궤적’을 만나게 되었다. 마침 이 시를 읽은 시각은 아침이었다. 하지만 밤하늘에 별들이 날아다니듯, 은하수가 되어 흘러가듯, 유원지에서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태양을 바라보았다. 포효하는 시어와 고개 숙인 시적 표현이 없더라도 시는 멋지고 화려하게 꽂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의식적인 남대천의 불빛은 밤하늘을 바라보는 화자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었다. 은하수와 반딧불이는 화자와 함께 그림으로 살아나 포물선으로 넓게 뻗어 저 멀리 시가 되어 날아간다. 삶은 부정할 수 없듯이 또 다른 궤적으로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조용하지만 강한 시의 면모다. 눈을 반짝이며 동공이 커진 시야는 단지 겉모습일 뿐, 내면의 모습은 영혼과 대화하는 내 자신을 알려주며 얽혀있는 것들을 풀어내고 있다. 진정한 내면의 모습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몫이다. 시 ‘궤적’은 시인이 염려하는 인류애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영의 세계를 화려하고 심도 있게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당당히 시인으로써 겸손한 시의 맛을 알려주는 시의 사상을 배울 수 있는 귀한 시집이자 멘토였다. 
   
문장의 뜻을 돕거나 문장을 구별하여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하여 쓰는 문장부호文章符號는 다양하다. 쉼표, 마침표, 따옴표, 묶음표, 이음표, 드러냄표, 안드러냄표 등으로 분류한다.  시집「툭」에서 문장부호는 문장 속에서 살아 숨 쉬고 격려해 주는 듯, ‘툭’ 친근한 말을 내뱉고 힘내라고 다독여 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타나는 문장 부호들을 숨죽이며 바라봤다. 문장부호들을 따뜻한 손길로 쓰다듬어 주는 시인이 바로 정성수 시인이다.

 

장용희 프로필

․ 학력 : 숭실대학교 졸업, 고려대학교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재학
․ 경력 : 에듀스낵, 플라워팟, 멀티바스켓, 알알이빅 등 개발 및 출시
․ 저서 : 동화 모음이 자음이, 시집 노트 숲의 속삭임 외 다수
․ 수상 : 강건문학신인문학상, 전국여성문학작품공모전 대상, 
       환경문학대상 동화부문 외 다수
․ 현재 : 국제아이디어협회 사무총장, 이엠그린 창작연구원, 
       세계문학예술작가협회 편집국장, 독서논술 강사 

평론가 장용희
평론가 장용희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