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상징시동인회 작품특선


인형의 집/ 김현순


바람 부는 빗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방들 흐느낌이 낙엽 되어 길옆 벤치에 누워있었다
젖어드는 옷깃의 선뜩함이 
후줄근한 땀 씻어 내릴 때
코스모스 꽃잎 펼쳐 아홉 고개 넘던 날 
잘나도 못나도 내 새끼. 씨앗 품은 대궁의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즐거움임을 왜 몰랐을까
겹겹이 나이테가 굳어져 눈물 삼키는
안개강 기슭에, 사랑도 이별도 
새벽 잔등 보듬어주었음에랴…
그대 없인 못살아~!! 
음절수마다 보석 되어 잘랑거릴 때
미로의 향연, 그 페이지마다에 
단벌머리 질주하는 음성, 우러나기도 하였다 
집 나간 지 열흘이나 된다며… 참 안 됐당께라
영시의 별자리에 보석 박아 넣으며
미소 짓는 어둠의 영상 떨림도 있었다
길고 긴 가을편지, 휘파람 부는 사연…
백마 타고 영(嶺) 넘어오는 멋진 소년의 환영(幻影)도
구름 되어 성수기의 광야 덮어주고 있었다
노라~ 노라~!! 입쎈의 희곡
노르웨이 앞바다가 받쳐 들고 있었다 

 

자격론(資格論)/ 윤옥자


수석 입에 문 층계 
고공에 떠있다
빛이 만든 무지개 향기
풍선에 매달려 있다 

어둠 타고 날아오른 숙명은
그림자 숨겨놓는 것
추상어가 어지럼증 흔들어댈 때
무게 미달의 두려움은 
아픔으로 낙인 찍는다

믹스동음의 파도가 내일의 대안에
세월을 점지해둘 때

무서운 시간이 
문틈으로 내다보고 있음을 
바람은 안다

 

스타의 정원/ 리순희 


구름 잡아 끄는 
나무의 손길 
몸져눕는 시간을 만진다
날숨의 뜰에서 기억 잠 재우는 사이
그림자 움켜쥔 순간마다 
울음 틈서리에 방황 찢어 바른다
안개꽃 소리없이 부서져 내릴 때
재너머 동네엔 신망의 눈물 
탄식의 아우성으로
몸살 앓는 주소를 묻는다
별빛 사랑
이별의 옷자락 
어둠 밝히는 사연마다 칠흑의
밤을 감싼다 
사념의 손톱 새벽 긁는 메아리가
미리내 기슭 다독여준다

 

동경(憧憬)/ 김소연 


일기장 구멍 뚫는 기억의 눈금이
뒷골목 그라프에 역점 찍는다
발가락의 반란 
물집 터지는 소리

저녁 화분 내음새로
가을 볕 옮겨 심는다

아픔 밀고 들어와 어루쓰는 
풀벌레 울음소리
알 수 없는 별빛 환생으로
삶의 연장선 이어 나가는가

생의 의미를 정립하는  
추억 한 두름 
계단이 그 위에 드러 눕는다 

 

대춘부(待春夫)/ 조혜선


음보(音譜)의 거리에 
꿈씨 한알 떨군다
케익보다 좁쌀~! 하며 
숟가락들 데모가 러부 유 꺼내 흔든다
흑암의 웃음에도 
빛은 남실댄다고
사내는 대파머리에 
절벽 타는 소리 오려 붙인다
삐걱대는 걸상위로 
가야금 핏줄 타는 소리
새벽 올 거라는 믿음 하나로 
커피잔 사랑에 이념 하나 추켜세운다
기근은 종말이 아니었다
빈틈없는 눈물이 이별 닦는 시간은
어라랑 고개에 
슬픔 가꾸는 멋스러움이었다

 

늙으막/ 정두민


석양의 욕망 훔쳐 내어
제물 바치는 황혼의 핏빛
심방에 칩거한 록색 뿌리 갉아먹으며
빛과 어둠의 격투는
광란 한 토막
공포의 영혼으로 불태워버렸다 

찬바람의 빨간 함성들 
단풍잎 마지막 웃음소리 찢어 날리고
썰물의 그림자가 매립한
삼라만상 지평선에 어둠 분쇄하는 달
부엉이 울음소리에도
그리움 조각하고 있었다 

마음 공화국에 마지노선 침입한 시간이
연륜 살찌우고 있다

 

초가집/ 권순복


얼굴 찢긴 하늘이 
빈가지에 걸려 한숨 쉰다 
눈보라의 마실, 기억 노크하는 소리…
정원의 화초 말라버린 잔수염에
뿌리가 주름 늘어갈 때
추녀 끝 고드름 
기억 뾰족하게 꺼내들고 
집게 집힌 겨울 투명하게 찌른다
세월 잘라 등에 얹은 
겨울이야기 
비탈길에 멈춰서 있다

 

안타까움/ 강려


그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언어장애의 공간엔 
버스에 장착된 벨의 고장(故障)이
빛 잃은 뭇별의 
녹쓴 눈동자로 가물거린다
한번 꾹 누르면 금새라도 
터져 나올 
향기 대신에
삐걱이는 우주의 적막…
입 다문 함성들이 지구의 귀퉁이를
스쳐 지난다
답답한 일상들이 기억의 편린들을
움켜잡을 때
빠져나가려고 바둥대는 
바람의 물살들…
욕망의 언덕에 발톱 박는다

 

오십 세의 미소/ 신현희


아침에서 저녁까지 
교차로의 시점에서 
땀 한 방울에 발자국의 무게를 찍는다

행복의 돌담에 입맞추는 밀어같이 
애인의 문턱에서 굳잠 자던 
에너지의 기침소리가 
드넓은 품에 바다 껴안을 때까지

강물은 촉박한 발걸음에 
깃 펴야 한다 

관심과 배려의 메아리가  
표정과 숨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미소로
가슴에 와닿을 때까지

이제 무심한 행복 라인은 더 아스라이
안개 낀 가을 하늘 
닦아주고 있을 것이다

 

달은 코 골고/ 황희숙  


호주머니에서 
빨간 꼬리 꺼낸 요정들이 
행복 퍼마시는 모습이 들켜버려도 
세월의 잠꼬대는 느끼지 못 한다
구름의 속살에 얼굴 파묻고
꿀잠 자던 날
파도의 포효(咆哮)하는 메아리도
가려 듣지 못 한다  
갈매기 부리에 물린 짭조름한 바다 비린내가
하늘 닦는 바람이라는 것도
감지하지 못 한다 
풀잎 적시고 언덕 넘는 
개똥벌레의 한스런 뉘앙스에도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딸的心)이라는  
노랫말 적혀있음을 감감 모른다
님은 가고 이별은 
낙엽 되어 들을 덮는데…

 

비야 비야/ 신금화


그리움의 낚시에 걸려든 
심장의 미소
팔딱거림이 소리 안고 부서진다
울적한 아가씨 삼단 같은 
화풀이가
실실이 꽃그물 펼쳐들고
그라프의 풍경선으로 
생각의 지평선 곧게 드리운다
녹아내리는 문전에서
울바자 되어주는 
향기의 점선들이, 하늘과 땅
그 사이에 
교합의 전주곡으로
어둠 열어갈 때
촛불의 계시록에 싹트는 
낱말의 메아리가
추적추적…
계단 밟는 역사의 뒤안길
적시어준다 

 

비야 비야.../ 신정국


밤은 거리의 네온 글자를
해독하지 못한 채
가로등만의 도시를 읽어간다
벽을 핧으며 내려오는
밀물이 모서리에 
헤딩하며 곤두박질하는
물방울의 입질...
막연한 현실 앞에 
찌는 더 떠오르지 않고
무엇이든 실행할 수 없음이 
순간을 역류하는 
생각의 포말...
거리의 구토가 오물에 
흠뻑 젖어있다 


삶의 페이지/ 류송미


나이테 조립하는 공간에
조바심을 덧보탠다 
길은 꿰질러 앞내가에 이르고
딸기 익는 청춘이
사랑엽서 물들이고 있다
조락의 운동장에서 
걸음 재겨 딛는 주춤거림에도
여유는 있었다
함께 마시는 옛사랑 갈래마다
긴 겨울 하얗게 염색해갔다
결코 그것은 
명중탄 날리는 기억의 손떨림이었다
회식의 세탁은
날숨의 하늘에 눈발 되어 
뜻 찢긴 향기로 깃 펴고 있었다

 

지하철 입구에서/ 정하나
—위안부 동상 앞에 멈춰서서


발목 잡힌 이유
초침 끌어
오늘을  기다려 본다

스칠 수 없는 까닭이
위로의 뜻 담아 수건 받쳐 든다

우수에 절인 원혼,
가시 돋친 어둠은
얼룩진 역사를 지우고

밀려가는 사색은
파도의 자락 잡고
갈매기 울음 찢어 삼킨다

침묵
기다림
다시 침묵
… … …

비여 있는 자리엔
구원의 메아리
망치 든 하늘에서
은빛이 번뜩거림을 본다

 

애숭이/ 강성범


아지랑이 춤삼월이
남실바람 간질이는 
꽃망울의 언어 부풀려간다 

수집음 따서 미소에 감추어두고 
노란 속살에 연지 찍는 
향기의 밀어

부끄럼이 문 열고
세상구경에 손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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