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 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 회장

제정 러시아 말기 그리고리 라스푸틴이라는 수도사가 있었다. 그는 본래 떠돌이 수도사였으나, 혈우병을 앓는 어린 황태자의 병세를 호전시킨 것을 계기로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신임을 얻어 국정을 농단했다. 각종 인사와 국정 현안에 개입하고, 궁정의 분위기를 방탕하게 이끌었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에 패배한 뒤 전쟁을 종결하려던 니콜라이 2세에게 "남부전선에서 공세를 펼치면 승리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계시가 있었다"며 전쟁을 부추겼고, 이를 따른 니콜라이 2세는 전쟁에서 참패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서부 공업지대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까지 독일군에 빼앗기고 막대한 군비로 재정은 파탄이 났다. 이 때문에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제정 러시아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라스푸틴을 '괴승(怪僧)' 또는 '요승(妖僧)'으로 부른다. 

라스푸틴의 이야기는 권력과 무속이 결합하면 국정 농단이 이어지고 왕조와 국가가 멸망한다는 동서고금 역사의 교훈을 보여준다. 해방이후 이 나라 정치사에도 무속은 끊임없이 등장했다. 그들은 도참과 예언으로 권력에 접근해 국정을 어지럽혔다. 가까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둘러싼 무속 논란이 있었다.

이번 대선에도 무속 논란이 불거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진영에서 나온 것이다. 윤 후보가 TV토론에서 '왕자(王字)'를 손바닥에 쓰고 나오더니 부인 김건희씨는 "도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영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또 일명 건진법사라는 무속인이 윤 후보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선대본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국민의힘은 부랴부랴 건진법사가 활동했던 네트워크 본부를 해산했으나,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윤석열 후보를 둘러싼 무속 논란은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왜 윤 후보 주변은 무속과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후보의 식사 자리에 역술인이 동석하고, 캠프에 무속인이 활동을 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후보 부인의 무속 관련 발언도 부적절하다.

또다른 문제는 국정 담론 경쟁으로 가야할 대선 캠페인이 무속 논란으로 희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치러지는 대선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도사와 법사가 날뛰는 대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국제적으로도 망신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속은 항상 국정 능력이 없는 권력자에 기생한다. 라스푸틴이 그랬고, 고려시대 신돈이 그랬다. 해방후 무속인을 가까이 했던 권력자들은 모두 무능했다.

무속과 권력의 결합은 왕조와 국가의 멸망으로 귀결된다. 그 결과 백성의 삶은 피폐해지고, 세상은 어지러워진다. 그것이 난세(亂世)이다.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국민은 지쳤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희망을 주는 대선이어야 한다. 계속되는 무속 논란은 국민을 짜증나고 힘들게 한다. 윤석열 후보는 자신을 둘러싼 무속 논란에 대해 국민에게 진지하게 사과해야 한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김대중 정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 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을 역임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청연구원,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국기원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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