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철(경제학 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교육과학부 자문관)
이남철(경제학 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교육과학부 자문관)

1943년 10월 카자흐스탄에서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서거한 일제강점기 청산리·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1868∼1943)의 유해가 2021년 8월15일 광복절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많은 언론과 국민들은 중앙아시아‘고려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고려인'은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국가에 주로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이다. 연해주 한인들은 1919년 조선 독립을 위해 조직한 '고려인동맹' 등에서도 고려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조선인'이란 말도 함께 쓰였으나 남북 분단 후 '고려인'으로 굳어졌다. '조선인(북한)'도 '한국인(남한)'도 아닌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고려인들은 가장 오래된 한민족 해외이주의 역사를 가진 사람들로서 비단 극동 지방뿐만 아니라 19세기 말에 이미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한민족의 거주공간을 마련한 개척자들이다. 이들은 일본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선도하였고, 소련의 소수민족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구가하였다. 1937년 정치탄압과 강제이주를 겪었던 다수의 고려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현지 국가에서 안정적인 터전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필자는 대학에서 국제이주와 노동정책을 강의 하면서 고려인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트루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스탈린의 정치탄압과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 및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조치로 1937년 9월 21일부터 그해 말까지 약 17만2,000명의 소련 극동주 고려인들이 기존의 터전을 잃고 대부분은 카자흐스탄공화국과 우즈베키스탄공화국으로 집단 이주되었다. 우즈베키스탄공화국으로 이주된 고려인들 중 일부는 키르기즈스탄 및 타지크스탄공화국으로 이주되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공화국으로 이주된 고려인들 중 일부는 러시아공화국의 아스트라한 지역으로 이주되었다. 

중국 요녕신문은 2021년 1월18일 중국의 제7차 인구센서스 자료를 인용, 2020년 말 기준 중국 내 조선족 인구가 170만2,479명이라고 보도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인구는 약 50만 명으로 조선족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하는 상당히 많은 수이다. 고려인은 러시아를 비롯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그 중 대부분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거주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는 독립 이후 한 번도 전국 단위의 공식 인구조사를 실시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의 추정치에 의하면 고려인은 약 16만 명 정도이다. 

타슈켄트 서울공원 입구
타슈켄트 서울공원 입구

필자는 휴일을 이용하여 타슈켄트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서울 공원’을 찾았다. 이 공원은 2014년 6월 조성되었다. 공원입구 조각물에 “고려인 이주 80주년에 즈음하여 고려인들을 친구로 따뜻하게 맞아준 우즈베키스탄 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라고 한글, 현지어, 러시아어로 쓰여 있다. 이 글을 읽고 가슴 뭉클함을 필자는 느꼈다. 고려인‧한국교민들에게는 한국 고향의 정취를 더듬어가는 기억의 장소,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에게는 한국 전통경관의 멋을 느끼게 하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 시설물은 한국 전통미가 표현되도록 다양하게 상징적으로 구성되었다. 도시 타슈켄트를 상징하는 동시에,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한 17만 고려인들을 위로한다는 17개 서석이 있는 서석지가 있다. 이외에도 귀한 손님을 맞이하여 잔치를 열고 풍류를 즐긴다는 의미의 누대, 고려인 동포들이 함께 모여 씨름, 농악놀이 등 흥겨운 민속놀이 또는 단체행사 실시 등 향수를 해소코자 하는 염원을 담음은 ‘고려인마당’, ‘우정의 종’이 있다. 특별히 이국적인 건축물이 없는 타슈켄트 시에 매우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웨딩촬영 장소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자매도시인 서울시는 우즈베키스탄 거리를 만들겠다고 협약을 했지만 어찌된 사정인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이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필자는 무척 아쉽게 생각한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일요일 오후, 필자는 타슈켄트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김병화(1905-1974) 농장을 방문했다.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당시 정착하였던 지역의 하나로 당시엔 갈대밭이었으며 김병화는 1940년부터 1974년까지 이 농장 대표를 역임하였다. 우즈베키스탄공화국에서 노력훈장을 탄 650명 중 139명이 고려인이며, 김병화 농장에서만 24명이 받았다. 그 중 금별훈장(1급 노동 영웅훈장)을 두 번 탄 이중 영웅 4명중 한 명이 김병화였다.  

필자는 김병화 박물관을 찾았지만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관리인이 없었다. 동행한 현지 통역자와 운전기사는 여기저기 집을 방문한 결과 다행히 관리인을 찾아 박물관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박물관에는 1937년 강제이주 당시 한인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과 김병화 농장의 발전과정에 대한 설명이 있으며, 박물관 앞에는 김병화 동상이 위치하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친근감이 들었다. 관리인 박 블라디미르(64세)씨는 고려인 3세로 2022년 1월부터 박물관 관리인 일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부모님은 1937년 연해주에서 기차를 타고 이곳에 정착했으며 본인은 여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현재 이 농장에는 120명 정도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익숙하지 못한 한국말로 이야기했다. 본인 아들이 한국에 있는데 어느 지역인지는 모르지만 서울에서 400킬로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엄습해왔다. 한국어에 익숙하지 못하니 사랑하는 자식이 할아버지 고향, 어디에 사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타슈켄트 세종학당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리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가 고려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익숙하도록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병화 박물관 앞에서 고려인 3세 박 블라디미르씨와 함께
김병화 박물관 앞에서 고려인 3세 박 블라디미르씨와 함께

최근 정부는 재외동포를 위한 포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국내 초·중·고교를 다니고 있는 중국 및 고려인 동포의 미성년 자녀들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2022년 1월 3일부터 재외동포(F-4) 자격을 부여했다. 이번 조치는 부모의 주된 체류자격에 따라 방문동거(F-1) 자격을 받아 온 동포의 미성년 자녀에게 안정적인 체류 지위인 재외동포(F-4)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체류 불안정을 해소하고 학습 선택권과 진로탐색의 기회를 미리 주어 건강한 미래세대 인재로 적극 포용하기 위해서이다. 과거 ‘재외동포법’은 고려인의 경우 3세까지는‘재외동포’로 인정받지만 4세부터는 ‘외국인’으로 분류되었다. 2019년 7월, 기존의 동포 3세대까지만 재외동포로 인정하던 법률이 개정되어 전체비속으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고려인 4세, 5세도 법적으로 재외동포로 인정되어 한국 거주가 가능해졌다.  2019년도 12월 말 기준 통계에 따르면, 국내 거주 등록 고려인 동포는 우즈베키스탄 3만6,752명, 러시아 2만8,020명, 카자흐스탄 1만4,922명, 키르기스스탄 2,931명 등 8만2,695명으로 자녀동반비자(F1) 소지자까지 포함하면 최소 9만5,0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타슈켄트에 있으면서 우리 정부의 고려인 재외동포와 동포자녀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인도적인 조치 내린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고려인들의 가족 단위 국내 유입이 증가하면서 국내 고려인 4세 학생들의 수가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다. 재외동포재단의 고려인 동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고려인 우수 학생에 대한 장학금 지급 및 모국 학습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고려인들 중에 한국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과정을 더욱더 활성화 했으면 좋겠다. 이와 같은 정책추진을 통해 고려인들이 한국사회에 가지고 있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줄어들어, 우리사회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나타날 수 있는 경제활동 인력의 감소를 우수한 재외동포 인재를 활용하여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 전문가, 기업인들은 외국인근로자가 전문성이 낮은 단순직에 종사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동포 2-4세대의 모국 취업기회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고려인 재외동포가 고급 인재라고 판단되면 허가된 체류기간과 무관하게 장기체류를 허용하는 등 고려인 우수인재의 영주를 촉진하는 정책을 적극 시행할 필요가 있다. 홍범도 장군 귀환과 같이 일시적인 정치적 행사로 끝나지 않는 지속적인 고려인 재외동포 지원과 협조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들의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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